2화 the Cafe-1
브릭먼은 찬 아침 안개를 해치며 윈드파크를 지나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차를 이용하여 출근하겠지만, 브릭먼은 이 정도는 걸어다니기로 했다. 하루 종일 고층의 사무실에 일과 함께 갇혀있다가 집에 오는 길마저 승용차에 몸을 실으면 다리가 퇴화되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의 비서 린지는 그의 손이, 그의 발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오늘도 윈드파크의 아침은 평화로왔다. 영국의 겨울이 그렇듯, 아니 사계절이 그렇듯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이것이 영국의 아침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쌀쌀한 아침이죠?"
매일 자신의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조깅을 하는 , 어디사는 지는 모르지만, 브릭먼이 출근 할 때마다 만나는 남자였다.
" 오늘은 트레버도 추울 것만 같은 아침이군요 "
브릭먼이 말을 건내자 마자 남자와 개는 멀어져갔다 .
무거운 회전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위가 브릭먼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엘레베이터를 탔다.
물론, 사무실까지 계단을 이용할까 생각 해보지 않은 브릭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사무실은 29층이었고 만약 올라간다면 하루종일 지쳐있을것이 분명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 브릭먼씨~"
어김없이 환한 얼굴인 린지가 인사를 건냈다.
브릭먼은 눈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미리 린지가 환기를 시켜 놓았는지 차갑고도 상쾌했다. 창밖은 짙은 안개너머에서부터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고마워요, 오늘도 전쟁을 치룹시다 .."
린지가 가져온 짙은 홍차와, 잉글리쉬 머핀을 받으며 말했다.
어제도 미쳐 처리하지 못한 서류들이 오늘도 못할거라며 약올리고 있었다. 항상 이 일이 그러했다.
실마리를 잡고 풀릴 때까지는 정신없이 혹은 고도의 집중력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했다.
게다가 한 두건이 아니었다.
브릭먼은 이 회사의 변호사중 한 명이었다. 회사의 공적 변호를 맡고 있지만, 1년전 회사의 사장의 사적 변호를 성공리에 끝내고 승진하여 29층에 오게 된 것이다.
그때 그는 미친듯이 이기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무심하게 떠나버렸으며 이십여년이란 세월을 지켜주던 아내가 떠나버린 브릭먼은 어느 곳에도 의지 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의 딸들이 든든하게 그를 지켜주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딸들은 자신이 보살펴야하는 것이다.
한 동안 그는 미쳐있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허무감에 빠져 천장만 보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더 독한 술을 마시고 더 독한 술, 더 독한 술.....
그의 작은 딸 끌레르가 그런 아빠의 모습을 가까스로 발견하고 울음을 떠뜨리며 안기기 전까지 말이다. 그는 며칠간 방문을 걸어잠구고, 변호사란 것도 아빠란 것도 잊은채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 남자로서 충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끌레르가 울자 에바가 건너왔고 제 엄마를 꼭 닮은 그 손으로 브릭먼을 감싸 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면 안된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만한다.
그렇게 브릭먼은 일어났고 술병을 치우고 창문을 열었다. 면도를 하고 세수를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브릭먼, 끌레르, 에바 모두 전혀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지만 잊어내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고, 그들은 집에 다시 들어올때 한결 나아진 모습이었다.
끌레르는 애교많고 귀여운 딸이었지만 의젓하기도 했다. 브릭먼은 그것이 에바의 영향일거라고 생각했다. 에바는 성숙했고, 제일도 열심히 했다. 절대 사람들 앞에서 이성을 잃는 모습 또한 없었다. 엄마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끌레르를 챙겼다.
그래서 그는 상사가 추천하는 그 일에 매달렸고, 돈을 위해서도 아닌 오직 이기려는 마음 하나로 자료를 찾고 법전을 뒤지고 판례를 찾고 온갖 머리를 동원하여 물론 적법하지만 조금, 아니 충분히 비열하게 보일 수 있는 방법으로 해낸 것이다.
그렇게 그 사건이 끝을 맺은 뒤 브릭먼은 그런 자신에게 회의도 들거니와, 원고측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는 집을 새단장 했고 에바가 원하던 프룻레슨을 시켜주었고 끌레르의 방도 멋지게 꾸며주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해줘도 남고 남는 돈이었다. 브릭먼은 그 돈의 일부를 고아원에 기부했고 나머지는 은행에 넣어두었다.
다시는 사적인 변호에 나서지 않기로 다짐하며, 또 다시 사적인 변호가 들어오지 않도록 더 많은 공적 업무를 자청해서 처리했고 성과도 좋았으므로 브릭먼은 그 회사에서 가장 바쁜 직원이라고 해도 여지가 없었다.
어제 보다 퇴근한 그 서류는 보기 싫었다. 오늘 마저 저것과 시작한다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았다. 좀더 수월한 서류를 꺼내고 켜진 컴퓨터에서 필요한 것을 찾은 뒤 홍차를 두어모금 마시고 머핀은 손도 대지 않은채 다시 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