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7막 : 붕괴
#01
제국력 1346년 겨울.
빙백의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에서 적령(赤靈)은 무려 7년 동안 욕창에 썩어 들어가던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그녀는 지금 필사적으로 일어서고 있었다.
‘큭!’
고통이 온 몸에 전율처럼 전해져 왔다. 사실 그녀는 지금 제대로 발을 떨 수조차 없었다.
‘근육이 모두 굳어져 버린 건가…’
필사적으로 거의 기다시피 하여 어두운 동굴 속 밀실의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는 만년설로 뒤덮인 새하얀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여긴…”
그 광경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초란이 문득 떠올랐다.
‘이게… 그 녀석이 말하던 풍경인가…?’
그때, 그녀의 뒤에서 누구인가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녀의 둔해진 감각은 뒤에서 누가 다가올 때까지 그러한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은 빙백의 정상이라네.”
“당신…”
적령은 뒤로 돌아서 자신을 구명해서 7년 동안 치료해 준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왠지 모르게 갑자기 경계심이 발동한 그녀가 말했다.
“당신… 아무래도 도저히 의원이라고는…”
“다 죽어가는 당신을 살렸는데도 내가 의원이 아니면 무엇인가?”
“…”
그의 이 말에 적령은 다시 말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눈 덮인 빙백을 보며 말했다.
“내가 얼마 만에 걸은 것이지?”
“무려 7년 만이네.”
“시원한 물을 좀 마시고 싶은데…”
“소동아!”
“네!”
그녀는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양의찬의 제자인 소동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냇가로 내려갔다.
“넌 여전히 활기가 넘치는 구나.”
“환자를 돌보는 사람인데 항상 웃어야죠.”
“…”
그녀는 소동과 함께 냇가에 도착해서 빙판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소동이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되겠죠?”
“그래. 고맙다.”
그러나 미소 짓던 그녀는 금방 얼굴이 굳어졌다.
“이게…”
물을 마시려다 냇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 적령은 자신도 모르게 멈짓했다. 냇가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어느새 그곳에는 양의찬이 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물음을 듣지 못한 듯 계속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겠어… 이래가지고는…”
“응?”
그녀의 뜻 밖의 이 발언에 양의찬은 다소 놀라워했다.
“당신…”
그때 적령은 양의찬에게 결정적 질문을 던졌다.
“내 남편… 살이 있겠지?”
“…!”
양의찬은 그 물음에 크게 놀라 잠시 침묵하는가 싶더니 곧 침착하게 말했다.
“그럴 거야. 틀림없이…”
“그렇겠지…”
“당신의 남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가 당신을 발견한 것은 남방대륙의 마지막 통일전쟁에서였네. 그 곳에 당신이 남편도 있었나?”
“남방 대륙… 이라고?”
“무엇이 문제인가?”
“빙백… 그렇군. 제, 작, 용이 국경을 같이한 이곳. 당신은…”
“작은 이미 멸망했네. 그리고 이곳은 제나라 땅이라네.”
“왜… 날 구했지…?”
“의원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 기이한 일인가?”
“…”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자 소동이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장군님이 남방대륙의 영웅인 적령이기에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가…?”
“…”
“미안하군.”
“되었네. 그런데… 왜 갑자기 남편의 일이 생각난 것인가?”
“왜라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리고 갑자기가 아냐. 그 동안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어. 어서 만나고 싶어. 지금 당장…”
“그 몰골로는 무리네.”
“…”
“아직 으스러진 뼈가 제대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있네.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지 않나? 좀 더 기다리게. 그러면 얼굴도 원래대로 회복되고, 또 그 한쪽 눈도 고쳐질 것이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얼마나…”
“제대로 모든 기능이 회복되려면 여래 해를 다시…”
“여러 해라…”
“그렇다네.”
“안돼! 난 이미 7년을 기다렸어.”
“하지만…”
“난! 이미 결정했어. 내일 길을 떠날 거야!”
그러자 소동이 놀라 적령을 만류했다.
“안됩니다. 스승님 말을 들으세요. 너무 위험합니다. 더군다나 남방은 아직도 혼란스럽다고요. 자칫 큰 변을 당할 수도 있어요.”
“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건 이미 다 옛날 이야기입니다.”
“옛날… 이야기?”
“네.”
“옛날…”
“과거에 어땠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지금은 지팡이 하나 들 힘도 모자란 평범한 환자라고요.”
“…소동아.”
“네.”
“고맙구나. 하지만, 난 남편을 보아야겠다. 반드시…”
“…”
소동이 진심으로 말렸지만 적령은 끝내 그 만류를 물리쳤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다음날 빙백을 나섰다. 남편을 만나기 위해…
‘기다려. 여보…’
그녀의 마음은 이미 중림에 있었으며, 그 발걸음을 재촉해서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02
다 망가진 몸으로 말에조차 오를 수 없었던 그녀는 양의찬의 마차를 빌려 대륙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빙백에서 중림까지는 너무나 먼 길이었다.
‘언제쯤이면 도착할까…’
그녀는 마차가 덜컥거릴 때마다 전신에 전해져 오는 고통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었다. 하루빨리 남편 무를 만나기를…
‘이런 나라도 반겨줄까…? 틀림없이 그럴 거야. 왜냐하면, 무가 나와 같더라도 난 틀림없이 그를 반겨줄 거니까…’
깊은 밤.
길을 재촉하는 적령 때문에 마부는 어쩔 수 없이 밤에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아직 안전하지 못한 용의 치안 상태에서 깊은 밤에 홀로 마차가 산을 지나가다 누군가의 표적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해서 결국 적령이 탄 마차는 산적을 만나게 되었다. 이 사태로 인해 말을 달려 도주하려던 마부는 산적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고, 그나마 양의찬에게서 받은 노자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젠장! 난 가야 한단 말이야. 가야 해…”
적령은 다 망가져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일으켜 칼을 들고 산적들에게 저항하려 했으나, 지금의 그녀는 무거운 칼을 들고 있을 기력조차 없었다. 산적들은 비록 여인이지만 흉측한 그녀의 몰골에 모두 기절할 듯이 놀랐다.
“뭐야? 이것도 계집이야?”
“에이 퉤!”
그들은 적령을 발가벗기고 그 흉측한 몰골에 침을 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그러진 알몸에 소변을 뿌려댔다.
“크윽…”
그러한 참혹한 농락은 새벽까지 계속 되었다.
“난 가야 해… 나는…”
그녀는 신음했다. 날이 발을 때 까지…
“뭐라고 계속 지껄이는 거야?”
“내버려 둬! 그냥 둬도 곧 죽을 것 같으니까?”
마침내, 날이 밝자 그들은 하나, 둘 산중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산적에게조차 버림받고 혼절해 있던 그녀는 다시 따가운 햇살에 몸을 일으켰다.
“가야 해! 나는… 가야 해…”
그녀는 지금 무엇엔가 이끌려 미친 듯이 다시 중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기다려! 무…’
몇 개월 후.
적령이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기며 중림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피했으며, 아이들이 그녀에게 돌을 던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강한 이끌림으로 지체하지 않고 운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제발… 조금만 더…”
그러나…
‘안돼… 조금만 더…’
결국 그녀는 운산 중턱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산장.
적령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침대에 뉘여 있었고, 악취도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건…’
그때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것은 다름아닌 무연이었다. 그러나 적령은 한번 스치듯 지나간 무연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은…”
“전 무연이라 해요.”
“무연…? 당신이 나를…”
“허락도 받지 않고 목욕을 시켰어요. 실례가 되었다면 정말 죄송해요.”
“여긴…”
“저희 집이에요.”
“저… 난 운산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여기가 운산이에요.”
“그래요?”
”저희 모자가 중림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행히 부인을 발견했어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어요. 그런데 다행이 제 아들이 처음 부인을 발견했지 뭐예요.”
“네…”
무연은 문 밖에 있는 듯 보이는 아들을 불렀다.
“비야!”
“비?”
“아들이에요.”
“…”
“비야! 죽은 아직이니?”
“지금 들어가요.”
어머니의 부름에 문을 열고 한 아이가 방에 들어섰다.
“비…”
적령은 비가 방에 들어서는 순간 환상을 보는 듯 몽롱해 졌다.
“왜 그러시죠?”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연은 아들에게서 죽 그릇을 받아 들며 말했다.
“자 어서 드세요.”
“네…”
그렇게 적령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무척 낯이 익은 집… 그리고 편안한 침대… 그리운 이 기분은 뭐지…’
그렇게 한참 동안 단잠에 빠져 있던 그녀는 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단잠에서 깨어났다.
‘행복한 가정이구나… 남자 목소리… 남편이 온 모양이군…’
그녀는 감사의 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엇보다 그녀는 빨리 무에게 가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문고리를 잡고 문을 조금 열었다.
‘저 사람이 남편…’
마침내, 잠으로 몽롱했던 그녀의 시야가 맑아지면서 비친 그 모습에 적령은 그만 온 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헉!’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한 가정. 한 여인과, 아들… 그리고 저기 있는 저 남자는… 틀림없는 자신의 남편.
‘무(誣)…’
무연이 무에게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당신은 비와 같이 자야겠어요.”
“알았어. 그리 하지.”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해야죠?”
“그래야겠지?”
“그런데, 미리 말해둘게 있어요. 어디서인지 모르지만 흉측해서 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상처를 입고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로 실례되는 행동은 하지 않을게.”
“되었어요. 그럼…”
남편을 주지시킨 무연은 무를 소개시키기 위해 방 문을 열었다. 그러나 적령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어딜 간 거지? 성하지도 않은 몸으로…”
적령은 지금 그곳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녀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지팡이를 의지해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왜? 왜 도망치는 거지? 왜?’
그녀는 그만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다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없이 굴러서 운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지금 운산에 거대한 통곡이 메아리 치고 있었다.
“으아악~”
마구 구토가 밀려왔다. 온 몸이 떨려 폭발할 것만 같았다. 아물었던 상처가 터져서 피가 솟았다.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절대로… 절대로… 거짓말이야! 거짓말!”
그녀의 거대한 노기는 피를 뿜고 있었다.
‘모두 죽일 거야… 모두…’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적령이 이제 의지할 곳은 오직 한 곳 뿐이었다. 그곳은 바로 빙백의 만년설로 뒤덮인 차갑고 어두운 동굴 속 밀실이었다. 그곳에 마련된 작은 방 만이 그녀가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다시… 돌아온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