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이 정장을 입지 않는 이유
[2006년 01월 03일 14시 51분]경기가 끝나고 난 뒤
유럽 축구의 볼 거리 중 하나를 꼽으라면 홈팀 선수들이 경기를 마친 뒤 정장을 입고 퇴근하는 모습일겁니다. 홈팀 선수들은 팀 정장과 함께 넥타이까지 동일 하게 맞춰 입고 경기장을 빠져나가죠. 울버햄튼 원더러스의 설기현 선수, 그리고 토트넘 핫스퍼의 이영표 선수 역시 멋지게 정장을 빼 입고 귀가합니다. 매번 유니폼이나 트레이닝복 입은 모습만 보다가 사복, 그것도 정장 입은 모습을 보는 건 또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죠. 운동으로 잘 다녀진 몸에 정장을 입고 나가는 모습이 팬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홈 팬들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영국파 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는 정장 입은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맨유 입단식하던 날을 제외하면 말이죠.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서 경기 후 샤워를 마치고 터널을 빠져나오는 선수들은 온통 트레이닝복 차림입니다. 홈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 그리고 원정 온 상대팀 선수들이 죄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퇴장하거든요. 재미있는 것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구김이 전혀 없는 잘 세탁된 트레이닝복을 입고 퇴장한다는 사실. 트레이닝 복을 어찌나 새옷처럼 잘 처리했는지 매 경기 새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오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답니다.
박지성 선수도 예외는 아닙니다. 샤워를 막 끝낸 자연스럽게 덜 마른 머리에 파란 상의 또는 하얀 상의에 검정 바지. 아! 그리고 후원사인 나이키의 가방도 잊지 않는답니다. 문득 지난 대표팀 첫 소집 후 딕 아드보카드 감독님이 요구했다던 말이 떠오르더라구요. “ 명품 가방 말고 후원사 가방을 매도록 하라” 명령 말이예요. 시즌 초반에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홈 경기를 치를 때는 멀리서 온 원정팀 선수들이 정장을 차려 입고 나가는 장면이 오히려 어색하고 혼란스러워 보일 정도로 맨유 선수들의 트레이닝 복 차림은 이제 제게 친숙합니다.
시즌 초반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지성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보통 홈팀 선수들이 정장을 입고 집에 돌아가는데 박지성 선수는 왜 정장을 입지 않으세요?” 평소의 습관처럼 손을 입에 가져다댄 박지성 선수의 대답, “ 다들 이렇게(트레이닝복) 입고 돌아가는데 저 혼자만 정장 입고 나올 수는 없잖아요.” 아인트호벤에서 정장 차림에 익숙해졌을 박지성 선수 역시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유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만큼은 단체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퇴근을 하는 게 조금 신기해 보이기도 합니다. 퍼거슨 감독의 지시였겠지만요.
맨유의 복장 자율화
그런데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세계적으로 수준높은 스포츠 마케팅을 전개하기로 유명한 맨유가 아무 생각없이 정장을 벗어던질리는 없잖아요. 구단 홍보를 위해서 경기장을 퇴장하는 순간까지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엠블럼이 선명하게 박힌 트레이닝복을 입고 퇴장하는 것일지, 아니면 편한 복장으로 귀가할 수 있도록 선수들을 배려한 것인지… 아무래도 전자에 더 가까운 모습이겠죠?
여담을 더 얘기하자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들 중 종종 특별한 차림으로 퇴장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 과감하게 사복을 입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경우죠. 한국 케이리그에서도 잘 일어 나지 않는 일이예요. ^^;;; (한국에서는 홈팀 선수들이나 원정팀 선수들이나 특정 장소에 모여 버스를 통해 함께 이동, 경기장에 도착하고 끝난 뒤에도 함께 돌아갑니다. 단, 외국인 선수들은 경기 후 경기장에서 직접 해산하더라 구요. 몇 년 전에 케이리그 선수가 사복을 입고 버스에 올라타자 주위에 있던 팬들이 귀엣말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재 진짜 버릇 없다. 도대체 어디에 가려고 벌써부터 옷 갈아입고 나왔대?”) 챔피언스리그 믹스트존(취재구역)에서 모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뒤이어 원정팀 선수들이 잘 차려 입은 정장차림으로 지나치자 문득 정장 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상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많이 본 익숙한 얼굴이 사복을 입고 출현하는 게 아닙니까. 맨유의 수문장 반데르사르. 사복을 입고 나와서도 자연스레 기자들과의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 인터뷰가 끝나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왠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일어났달까. 그 후, 몇몇 선수들이 종종 사복을 입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더군요. 반데르사르의 경우는 사복을 입는 날이면 네덜란드에서 온 손님이나 가족들과 함께 경기 후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웨인 루니와 리오 퍼디낸드는 어딜 가는지 사복 입는 날이 매번 똑같더라구요. (어디 갈 지 대략 짐작은 가시죠? ^^;;;)
생각 외로 자유로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모습이었습니다. 아! 또 재미있는 건 맨유의 새 주장 게리 네빌이 홈 경기이든 원정 경기이든 기내용 캐리어를 끄는 모습입니다. 축구 실력도 각각 개성이 강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경기 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에서도 각자 강한 개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경기 후에 무슨, 어떠한 일이 일어나던지 스스로 자신의 몸과 컨디션을 관리하며, 경기장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자유스러운 복장 정도라면 팬들도 기꺼이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영국 맨체스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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