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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12화> 의혹

바다의기억 |2006.01.05 21:53
조회 10,625 |추천 0

오늘 날씨가 옴팡지게 춥더군요.

 

도장에서 땀흘리고 그대로 나왔다가

 

제대로 얼어죽을 뻔 했습니다.

 

손에는 아이스크림까지 들고 있었는데...

 

모두들 감기조심하시고

 

건강한 한해가 되시길...

 

=========================== 그래도 아이스크림 끝까지 다 먹었다 =====================

 

 

의사 

- 눈 밑에 난 상처는 다소 통증이 있겠지만


아슬아슬 하게 뼈 위를 스친 정도라


한 2주면 가라앉을 겁니다.


딱 1cm 정도만 비껴 위치에 맞았으면


광대뼈에 구멍이 났을지도 모르겠군요...



본래 파출소에서 나오면


조용히 집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민아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바득바득 병원에 가자고 떼를 쓰는 통에


난 예전에 손등을 꿰맸던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민아가 야간응급실 접수창고에서


내가 곧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통에


많이 민망하긴 했지만...


나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하고 고마웠다.



의사

- 그 외에.... 왼팔은 두 군데에 금이 가서


붓기가 빠지는 데로 깁스를 해야 할 겁니다.


오늘은 우선 반깁스를 하시고....



기억 - 음... 그건 집에 쓰던 게 있습니다만....


의사

- 허허, 그럼 그걸 쓰셔도 되고요.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오른쪽 손등인데


이거 참... 뭐라 말하기가 그렇군요.


반쯤 아물었던 상처가 뜯어지는 바람에


완전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봉합은 안 될 겁니다.


굳이 하려면 뜯긴 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봉합해야 하는데....


그냥 자연치유 쪽이 나을 겁니다.


창구에서 드레싱 연고랑 붕대를 드릴 테니까


꾸준히 관리해 주세요.


특히 감염에 주의하시고...



기억 - 아.... 예.


의사 - 어깨랑 가슴 쪽엔 별 통증이 없나요?


기억 - 딱히 이렇다 할 건....



내 진료를 맡은 의사는 진찰을 하는 내내


=어이구 딱한 녀석= 이라고 말하는 듯 했지만


난 이정도면 곱게 끝난 거라 생각하며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부어오른 얼굴도, 금이 간 팔도


시간이 지나면 다 나을 수 있는 상처다.


손등엔 어느 정도 흉터가 남을 수밖에 없겠지만


원래 없던 상처도 아니고...


무엇보다 파출소에서 무사히 나왔다는 게 어딘가?


어쩌면 망치를 휘두른 그 녀석에게


고마워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잠시 후 치료를 마치고


이곳저곳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치료실을 나서는 길.


밖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황급히 내게로 달려왔다.



민아 - 괜찮데? 괜찮아? 괜찮은 거야?


기억 - 응. 말했잖아. 별 거 아니라고....


민아 - 별 게 아니긴! 얼굴이 이지경이 됐는데..


기억 - 아아아아, 만지지는 마.... 건드리면 아파.


민아 - 미, 미안...



손수건 한 장을 꼬깃꼬깃 손에 쥔 채


힘없이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는 그녀의 모습에


난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원산폭격을 하는 한이 있어도


아버지께 전화를 했어야 하는데....


그래도 앞으로 전진만은 정말....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비교적 멀쩡한 오른팔로 어깨를 보듬어주자


그녀는 두 팔로 내 허리를 감싸며 바짝 몸을 기대왔다.



민아 - ......



그녀는 내 심장소리를 더욱 가까이서 느끼려는 듯


가슴에 귀를 대며 눈을 감았다.



=꾸르르르륵....=



그 순간 내 뱃속에서 들려오는 위액의 파도소리.


가슴에 고개를 붙이고 있던 그녀는


그 살아있는 진동까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기억 - ..... 미안.



갑자기 내 자신이 몹시 혐오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다소 민망한 분위기 속에


우린 근처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이미 저녁을 먹었다는 그녀의 말에


비빔밥 하나를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 사이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민아 - 왜 싸웠어?


기억 - ....그러게 말이야.


민아

- 그런 식으로 말하지 좀 마!


그러게 말이야, 뭐 어쩌다보니, 누가 아니래...


지금 남 이야기 하는 게 아니잖아!



갑자기 버럭 역정을 내는 그녀.



..... 그녀의 말이 맞다.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이 내게


=왜 그랬어?= 라고 물으면


그렇게 남의 일처럼 대답하게 되었다.


어차피 진지하게 생각해봐도


별 다른 이유가 없거나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민아 - 왜 싸웠냐니까.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재차 이유를 캐묻는 그녀.


그녀는 진지했다.


아마 나 자신보다 더.



기억 - ........ 미안.



그 때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한참 망설이던 난


그렇게 말을 마무리지어버렸다.



그냥 조용히 묻어두자...


아직 마음속에 남아있는 쓰린 감정의 잔흔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민아 - 하아......



내 대답 아닌 대답을 들은 그녀는


정말 막막하다는 듯


한숨을 푸욱 내쉬며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점원 - 비빔밥 나왔습니다.



뒤에서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던 점원이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


재빨리 그릇을 놓고 사라졌다.



묵묵히 숟가락을 들어 밥을 비비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누군가 노리고 시작한 일 같다는


음모론적인 직감이 자꾸만 들었다.


뭐 지금 상황에서 누구라고 해봤자


누구 밖에 없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다음 날.


나란히 수업이 끝난 나와 그녀는


함께 연습실을 찾았다.



기억 - 안녕하십니까.


부원들 - ........


기억 - 하. 하. 하.



처참한 내 몰골에 연습실 전체가 침묵해버리는


당황스러운 사태를 맞이해


어색한 웃음을 웃고 있을 때


연출이 제일 먼저 내게 물었다.



연출 - 너.... 민아랑 싸웠냐?



........


이 인간이 아직 술이 덜 깼나....


지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민아 - 풋..... 크흠, 큼.



조용한 분위기 속에 혼자 웃음을 터트린 게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삼키다 내 눈치를 살피는 그녀.


난 슬쩍 웃음을 지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기억 - 아뇨, 어제 일이 좀.....


김씨 - 오옷!! 기억아!!


허씨 - 이야~ 설마 했는데 진짜 너였구나!



내가 사정을 설명하려는 찰나


어느새 뒤따라 들어온 김씨와 허씨가 내 말을 끊었다.


양쪽에서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서서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두 사람.



김씨 - 어제 버스에서 17대 1로 싸웠다면서?


허씨 - 그것도 흉기를 든 녀석들이랑....


김씨 - 총까지 들고 있었다던데.... 그건 아니지?


허씨 - 발차기 한방에 유리창 깨고 튕겨나가고 그랬다며?


김씨 - 어떻게 된 거야, 조폭이랑 붙은 거야?



이 사람들이 단체로 왜 이래....


현실을 직시하라고 현실을!!


대체 누가 그런 소문을 퍼트린 거야?



기억 

- 남자 셋이랑 시비가 좀 붙었던 것뿐이야.


총은 무슨 얼어 죽을....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민아도 함께 있는 마당에


소문이 부풀려져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던 난


손을 휘휘 내저으며 김씨와 허씨의 공세를 일축했다.



그런 내 반응에 맥이 빠졌다는 듯


궁시렁 거리며 돌아서는 그들.



허씨 

- 아..... 남자가 갑빠가 있지...


원래 이런 건 좀 뻥튀기를 해야 맛인데.



김씨 

- 진짜 재미없는 놈이라니까...


말세야 말세, 에휴....



....... 아무래도 그들은


소문의 진상을 거의 알고 있으면서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띄워


내가 허풍을 떨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자칫 말려들었으면


두고두고 놀림 당할 뻔 했다.....



기억 - ...... 그런데 그 이야기 어디서 들은 거야?


김씨 

- 응? 몰랐냐? 소문 쫙 났어.


셔틀버스에서 싸움 났었다고...



허씨 - 애들이 사채 이자 얼마냐고 물었다가 싸웠다며.



민아 - .... 그래서 싸운 거였어?


기억 - 아.. 아냐, 그 말 때문에 싸운 거.....


허씨 - 어? 그럼 왜 싸운 건데?



점점 혼잡스러워지는 분위기에


보다 못한 연출이 끼어들었다.



연출 

- 자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모두 자리에 앉아.


지금부터 다음 연극에 대해 설명하겠다.


사정상 공연까지 시간이 얼마 없어.



민아 - 예? 다음 연극이요?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장난 끼 어린 얼굴로 주변을 휘- 둘러보던 그는


박수를 두 번 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연출 

- 다음 연극은.... 연극부 최초의 뮤지컬로


기억이가 주연을 맡게 되었습니다.



기억 - 예? 그게 무슨....


연출 - 뮤지컬 제목은... 오페라의 유령.



.......... 지금 얼굴 한쪽이 묵사발 났다고 놀리는 건가.



부원들 - 푸핫핫핫!!


연출 - 자자, 모두 분장비를 아끼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연출의 유머에 연습실엔 거듭 폭소가 터졌다.


비록 내 얘기긴 했지만


워낙 활기찬 분위기에 덩달아 웃음 짓고 있을 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안군 

- 여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응? 기억이 너 얼굴이 왜 그러냐?



기억 - 하하..... 아.....



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한껏 위로 솟아있던 입술 끝이


단계적으로 뚝뚝 떨어져


무표정으로 돌아서는 게 느껴졌다.



안군 

- 어라, 왜 그런 얼굴로 보냐?


내가 뭐 잘못 물어봤나?



만약 어제 조그만 증거라도 잡았다면


지금 바로 주먹이 날아갔겠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었다.



기억 - 어제 일이 좀 있어서요.


안군 - ..... 술 마시고 계단에서 구른 거야?


기억 - 아뇨, 그냥 시비가 좀 붙어서....


안군 - 흐음.... 뭐. 심각한 건 아니고?


기억 - 2주면 낫는답니다.


안군 - 음... 그래. 빠른 쾌유를 빈다.


기억 - 감사합니다.



지금 한 순간만....


대한민국이 법치국가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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