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공장, 고등공장,
중학교에 다녔던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중학공장이었고, 고등학교인 줄 알았는데 고등공장이었다. 사기업체의 운영에 정부가 간섭한다고 공장 문을 닫겠다는 작금의 일이다. 나는 1960년대에 중학공장과 고등공장을 다녔었다는 결론이다. 무릎을 탁 쳤다. 공장직공 치고는 너무도 생산성이 낮았기에 그렇게 힘들었던 직공생활이었다. 그 공장생활을 집어치우고 삼십년 이상 지난 오늘에서야 내가 그 옛날에 공장유니폼을 입었던 공돌이었던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시절은 암담했었다. 왜냐하면 가난했기에, 등록금을 제 날짜에 갖다 바치지 못했기에, 잡부금에 시달리느냐고, 심지어 선생님 생일이 돌아온다면 근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사학기업체 이사진에서 보면 참으로 생산성 낮은 직공일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직공은 운 나쁘게도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윗대가리를 만나기 일쑤였다. 종례시간이 두려웠다. 선생님은 등록금 못 낸 학생을 엄한 목소리로 호명했다. 물론 나도 호명되어서 벌떡 일어섰다. 참으로 난감했다.
“등록금을 어제 낸다고 하더니, 왜 안 냈어? 약속을 지켜야 할 것 아냐,”
나는 어떻게 또 이 자리를 모면할까 궁리했다. 사실 집에서 등록금을 달라는 말이 안 나왔다. 어제도 쌀 한 되하고 새끼줄 끼어진 연탄 두 장 사오는 심부름을 했었다. 오늘도 어머니는 행상으로 번 돈을 저녁에 펼치면서 또 하루를 연명할 쌀 한 되, 연탄 두 장을 사오라고 심부름 시킬 것이다. 주삣 대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주 안으로 해 준다고 집에서 그랬어요.”
선생님은 눈썹을 찡긋하더니, 냉정한 말투를 던졌다.
“이번이 몇 번째야? 자꾸 날짜만 미루며 거짓말 할 거야?”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거짓말인 것은 사실이었다. 오늘도 또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선생님을 속여도 분수가 있지, 너 삼일 간 교실하고 변소청소 해. 알았어?”
오늘은 선생님이 항상 들고 다니는 짧고 딱딱한 막대기로 때리지 않아서 좋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체육복, 그리고 하얀 운동화,
이번 체육시간에 그것을 마련해 가지 못하면, 악명 높은 체육선생님한테 치도곤을 당한다. 또 힘없는 발걸음으로 학교를 향했다. 체육복은 어찌 할 수 없었지만, 하얀 운동화는 어떤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체육시간에 평소에 신고 다니는 검은 운동화에 하얀 백묵을 잔뜩 칠했다. 운동장에 줄을 쭉 선 우리들을 날카로운 눈매로 검열하던 선생님은 내 앞에 딱 섰다. 발로 내 조인타를 팍 깠다. 허리가 휘청했다. 감히 귀신의 눈을 속이냐는 호령과 함께 내 엉덩이에 몽둥이가 날아왔다. 퍽퍽 떨어지는 몽둥이세례가 지나자 안심이 되었다. 다음 체육시간까지 어떻게든 마련하면 될 것이다. 일주일은 편하겠다.
상업선생님은 긴 회초리를 항상 들고 다녔다. 주판을 마련해 오라는 명령이었고, 아침부터 징징 울며 겨우 집에서 돈을 타냈다. 학교매점에서 반들반들한 주판을 샀고, 주판검사를 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어깨를 쭉 펴며 주판을 책상위에 당당히 올려놨다. 맨 뒤부터 선생님의 눈초리가 학생들의 책상 위를 훑기 시작했다. 가끔 “너, 앞으로 나가.”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러면 주판을 마련하지 못한 급우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앞으로 나가 섰다. 뚜벅뚜벅 다가오는 공포의 발자국소리였다. 내 짝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놈도 집안이 가난해서 주판을 마련해오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 경고였는데, 앞으로 끌려 나가면 긴 회초리로 마구 맞을 것이다. 나는 슬며시 주판을 책상 아래로 가져가 한쪽 발등 위에 걸쳤다. 그리고 다른 발로 힘껏 주판을 밟았다. 우두둑하는 감촉이 발끝에 전달되어왔다. 긴 주판은 두 쪽 났고, 나는 반쪽의 주판을 짝에게 주었다. 그리고 부러져 나간 면이 안 보이게 하려고 책을 살짝 그 위에 올려놨다. 물론 독일 비밀경찰과 같은 눈을 가진 선생님에게 발각되었다. 회초리가 바람을 갈랐다. 그 다음날 아침에 나는 쩔뚝거리며 학교에 가야했다.
전교생에게 웃통을 다 벗은 채 운동장에 모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날씨는 추웠다. 오늘 학교 이사장이 외국인 몇 명을 모시고 학교를 방문한다는 말이었다. 거의 천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추위에 떨며 줄을 쭉 섰다. 스피커에서 하나, 둘, 셋, 넷, 하며 노래가 흘러나왔다. 모든 학생은 두 손을 활짝 펼치고, 보건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의 나였지만, 수치심이 들었다. 쳐 놓은 천막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높은 사람들, 내가 크면 저 사람들처럼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그러면 추운 날에 웃통을 다 벗고 모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그러다가 나는 운 좋게도 친척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고등학교 2학년 말의 일이었다. 미국에서 편입시험을 보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무슨 학교가 돈이 하나도 안 들어가는 것이었다. 모두가 거저였다. 교과서는 도서관에서 내주었고, 잘 쓰다가 반납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일체의 잡부금이 없었다. 환경미화를 하기 위하여 환경미화비를 안 내어도 되었고, 선생님 생일에 선물을 사려고 돈을 바치지 않아도 좋았다. 참고서를 안 사도 좋았고, 체육복도 학교에서 무상으로 지급되었다. 그들은 등록금이 무엇인지조차도 몰랐다. 오직 학교만 충실히 다니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나는 왜 선생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다니지 않는지 궁금했다. 미국학생에게 물어보니 무슨 말인가 하여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선생님이 학생을 때린다고? 한국은 선생님이 학생을 마구 때리고 그래? 미국학생은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학교에 다닐 맛이 났다.
내가 이런 글을 올리면, 공부 못하고 말썽만 피던 녀석이 아닐까 하며 누구는 의심할 것이다. 최소한도 이상한 공장에서는 그랫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고등학교에서 나는 착하고 순하다는 소리만 들었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 칭찬도 들었다. 매일 선생님에게 호명이나 당하고 얻어터지고, 청소당번이나 하던 내가...... 미국에서 천국의 맛을 보았다. 사학재단이라는 이상한 기업체가 직장폐쇄를 하는 나라, 학생들이 생산성으로 평가되는 나라, 그곳에는 학교가 없다. 오직 중학공장과 고등공장만 있을 뿐이다. 공돌이 유니폼을 입은 공돌이들이 그 나마의 직장이 문 닫는다고 하기에 눈만 꿈뻑거리고 있을 뿐이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