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6년 4월 마지막 주말에 결혼식을 하기로 했어요.
양가 부모님들 다 만나시고 예식장 예약까지 전부 마친 상태입니다.
중매나 맞선을 통해서 만난 사이가 아니라 5년 전부터 사귀어 오던 사람이라
집안에서 특별한 반대는 없었고, 반대라기보다는 친 아들처럼 잘 해주셨죠.
그 사람이랑 처음 만난 건, 웃기지만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였어요.
채팅이라는게 한참을 하다 보면 사람들의 속물적인 모습을 많이 보게 되서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은 특별했어요.
참 예의 바르게 말도 잘해주었고, 배려하는 모습도 정말 좋았어요.
한참동안을 전화통화와 메신저로만 연락을 하다가 몇달이 지나고 마침 제 생일이 되었을때
그 사람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죠.
물론 깍은듯 잘생기고 멋진 사람은 아니였지만 학생다운 소박한 모습과
저를 소중히 다뤄주는 모습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전라도 쪽에 살았고 그 사람은 경기도..
자주 만나서 살을 붙이는 연애는 아니였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 하나로 너무나
확고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사이였죠.
거의 매일밤 캠을 통해서 얼굴을 보고 메신저로 얘기하고
통화는 밥먹는 횟수보다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달려와주었죠. 제 생활의 절반이었고.
그 사람도 그 사람 생활의 절반이 저였어요.
그사람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취업을 해야 하나 계속 공부를 해야 하나... 그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을때도,
생각이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공부를 계속 했으면 좋겠어. 당장에 돈을 버는 것보다 공부 할 수 있을 때 하는게 좋을 거라고.
곧 석사 학위가 끝나고, 또 박사를 하고 싶은데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있을때도
공부하라고, 그때까지는 나도 벌면 되는거고, 오빠도 특별히 돈을 벌어야 하지 않으니까.
나중에 공부 많이 해서 지난 몇년간 못벌었다고 생각된거 한꺼번에 많이 벌면 된다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서로 확실하게 결혼할 사람이라고 믿으며 지난 5년을 지냈었죠.
2005년이 되자 양쪽 집안에서는 점점 결혼 얘기가 확실해지고
살고 있는 거처에 대한 문제며 아직 벌이가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대한 걱정이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크게 작용이 됬나봐요.
다행히 제가 지내고 있는 전라도에 24평정도 되는 아파트를 갖고 있는 상태라
굳이 그걸 팔아서 서울에 작은방 전세를 얻는 것보다는
몇년만 주말부부로 서로 열심히 모아서 서울에 큰 집을 사서 옮기자고
그렇게 까지 이야기가 다 맞춰졌습니다.
저도 물론 3월부터는 대학원에 다니려고 준비중이고.
그 사람도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지금까지도 잘 지내 왔으니 이제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달라지기 시작한거에요.
달라진 것인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는지.
제가 사는 아파트에 오면 온 집안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져보고.
옷장이며 하다 못해 싱크대까지 뒤적거리기 시작하더니...집전화기 발신번호에
어디어디 전화가 찍혀 있는지까지 확인합니다.
그것도 제가 자는 시간에만 슬쩍슬쩍. 자다 깬것처럼 뭐해~ 하고 물으면
아무것도 안한 것처럼 아니야~ 이러곤 다른 거 하는 시늉을 합니다.
제가 자기만 기다렸다가 핸드폰 비밀번호를 캐내려고 별 버튼을 다 눌러 보고
제 컴퓨터에 무슨 자료가 있는지 하드 곳곳에 숨은 파일까지 다 꺼내 확인하고...
언제 한번은 그런 걸로 시비가 붙었는데
뭔가 큰 한방을 먹인다는 듯이 툭 내뱉은 말이
야~ 나 니꺼 싸이 비밀번호 다 알거든? 다 읽어 봤다고!
이러는 겁니다.
사실 제가 숨기고 안보여 주려고 했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제가 인터넷이 안되는 곳에 자주 있다 보니 한번씩 멜 확인도 해달라고 하고
싸이나 네이트에 들어가서 자료도 좀 보내 달라고 하는게 태반이었습니다.
비밀번호 알고 있다는거 특별한 사실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르켜 주었으니까요.
근데 그것을 5년간 사귄, 그것도 결혼약속한 여자한테 약점이라도 잡은 듯이
툭 내뱉는 다는 건.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혼자 생활하고 있는 것에 불안해서 그러는 가 보다 싶어서
지난 10월부터는 시골 부모님 집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결혼 전에 더 이상 오해가 생기는 것도 싫고 또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해서..
그런데 제가 시골에서 부모님과 하루종일 지내는 데도 불구하고
며칠에 한번씩
너 거기에서 다른 남자 만나고 다니지?
싸이 보니까 니 초등친구라고 언제 보자고 하더만 그 놈이랑 사귀냐?
어떻게 결혼 날짜 받아 놓고 따른 남자랑 사귈 생각을 하냐?
제가 하도 억울하고 답답해서 시골 집에서 부모님하고 하루종일 붙어 있다고
너가 그렇게 말하는건 우리 부모님을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로 만드는 거라고
결혼 날짜 잡아 놓은 딸이 다른남자사귀는 것을 가만히 둘 부모가 세상에 어디있겠냐고.
그렇게 말하니까 그 사람 하는 말이 더 가관이었습니다.
직접 만나는 것만 사랑이래?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나보지.
이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요.
몇번을 이해를 시키고 여러시간을 들여 말을 하면 잘못했다고 싹싹 빕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다시 시작이죠.
결국 한달 전 쯤에 크게 터진 일이 있어요.
그 사람이 저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저희 엄마가 결혼전에 예민해져서 그럴꺼라고 크리스마스 이브때
시골 내려오면 김치랑 반찬이랑 몇가지 챙겨서 보내주자고, 내려 오라 하라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술을 좀 심하게 먹었더군요.
대뜸 한다는 소리가.
우리 형이 너랑 진짜로 결혼 할꺼냐고 물어보더라
그리고 우리엄마가 너는 왜 자꾸 전라도에서만 살려고 하냐고
서울 올라와서 돈벌어서 공부하는 아들 뒷바라지 해야지 지가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 시골에서 안올라오고 버티고 있는 거냐고 그러더라
우리집 식구들도 니가 바람난거 다 알고 있어
제가 물었죠. 내가 지금 서울가면 뭘 해먹고 살아야 하는데?
여기서 학원강사하던 애가 아무도 없는 서울에 가서 뭘 해야 하는지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서울에 널린게 일자리다. 식당이나 편의점은 사람이 없어서 일못해.
너 바람피고 있는거 우리집 식구들 다 아니까 내가 결혼해주는거 고맙게 여겨.
이러는 겁니다.
저보고 하는 공부 그만두고 결혼해서 서울올라가서 식당에서 일해가지고
남편 공부 뒷바라지를 하라는 겁니다.
버젓히 우리집에서 편히 살라고 마련해준 아파트와 그 안에 집기들 다 버리고
한달 10마넌짜리 삯월세 방에서 식당 아즘마로 일해서
자신의 아들 박사학위 마칠때까지 돈벌라고 그랬답니다.
저 위의 모든 통화 내용.. 저희 엄마가 옆에서 다 들어 버리셨습니다.
솔직히 저도 지방대이긴 하지만 대학원까지 다니는
저희 부모님이 봤을때는 부족함 없이 자라온 아이입니다.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꿈도 있었고, 제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은 생각도 야무지게 키우고 있는
그래서 지난 5년간 공부해서 성공하겠다는 제 꿈을 이해 해주는 그 사람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변해 버린 모습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있죠.
마지막 통화가 있고 다음날 그 통화에 대한 이야기를 메신저로 하면서
계속 통화만 하고 메신저로 얘기할게 아니라 얼굴 보면서 이야기 해야 한다고
부모님도 알게 되버렸으니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되던 직접 얘기 해야 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자기한테 원하는게 뭐냐면서. 접속을 끊더군요.
그리고 연락이 없습니다.
저번달. 좀 사이가 좋았을 무렵에 약속한게 있었어요.
1월 9~10일 에 스키장을 가자고
연락이 없길래, 나름대로 힘들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나보다 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었죠.
근데 얼마전에 알게 된 사실은요.
주변에 사촌동생과 스키장에 다녀 왔다더군요. 싸이 방명록에...
그때 쯤이면 저희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전화 걸어서 한번 내려오라고 했었던 시기였습니다.
사위도 아들로 생각했기에 호통을 치며 그래야 되겠냐고
내려와서 이야기 하자고 그랬었습니다.
오지도 연락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이 계속 꼬이기시작하면서 제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저번주에는 급기야 응급실에 실려가게 됐었죠.
몰랐는데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워낙 급해서 그랬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그사람한테 엄마와 아빠가 서로 모르게 전화를 하셨더라구여
다섯번정도씩.. 합이 열번 정도겠네요.
무슨일때문에 그시간에 전화를 못받게 됐으면
궁금해서라도 다음날 연락을 해야 되는것 아니겠어요?
어른들이 전화했는데.
그런데. 아무런..연락도 없습니다.
머리속이 답답해 죽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여자가 결혼까지 해야 겠다고 생각했으면
어느정도는 그 남자를 평생 배우자로 생각하고 결정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됩니다.
속이 터져서..
부모님한테도 죄송스럽고...
계속 연락만 기다린다는 것도..
그렇다고 제가 먼저 전화해서 할말도 없습니다.
결혼 하지 말자는 얘기가 나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