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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이병 사람만들기 프로젝트 (9-4)

paikshow |2006.02.11 00:51
조회 143 |추천 0

 ** 4 **


 어깨에 터질 것 같은 더플 백을 매고 본부4 내무실에 들어선 대환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긴장하느라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던 탓에 더 이상 남아 있는 힘이 없는 것 같았다. 열 평 남짓한 내무실에 있던 일곱 명의 병사들은 열리는 문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하나같이 티비에서 하는 시트콤에 빠져있었다. 대환을 데리고 내무실에 들어온 이 상병은 온통 녹이 슨 관물대에 짐을 풀라고 턱짓으로 가리키고는 침상에 대자로 누웠다. 대환은 전투화를 허겁지겁 벗고 나서 침상에 올라갔다. 더플 백을 풀어서 하나씩 물건들을 꺼내어 옆에 잘 정돈되어 있는 관물대를 보기삼아 똑같이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씨발, 이게 뭔 소리야. 시끄러워서 티비를 볼 수가 없네. 너 누구야!”

 이 주일 후면 전역하는 권병장의 신경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환의 동작을 바로 멈추게 했다. 대환은 관물대 하단에 세면 백을 넣던 그 동작 그대로 굳어버렸다. 박 병장은 권병장의 ‘말년 꼬장’ 이 시작되기 전에 대환을 데리고 내무실 밖으로 나갔다. 막사 휴게실로 나가자 야외 세면대에 일렬로 쭈그리고 앉아서 걸레를 빨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곰처럼 큰 체격으로 웅크리고 앉아서 엉거주춤 걸레를 빨고 있는 신병 뒤에는 멸치처럼 생긴 고참이 신병 뒤통수를 계속 때리고 있었다. 대환은 이상한 풍경과 분위기 속에 다시 한 번 낯선 세상에 던져진 느낌 때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임대환. 너 아직도 분위기 파악 안 되냐? 이러다가 사령관님 오실 때 사진 찍을 수 있겠어? 신병이면 쥐 죽은 듯이 짐 풀고 씻고 올 것이지, 너 새로 이사 왔다고 광고라도 하는 거야?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네....... 그나저나 너 밖에 있을 때 사진은 좀 찍어봤냐?”

 “별로 찍어본 적 없습니다.”

 “뭐? 제대로 카메라 다뤄본 적도 없는 얘를 정훈병 하라는 거야?

 “저도 그냥 하라고 하시 길래.......:

 “이거 정말 미치겠군. 난 부사수 들어와서 좋다고 했더니만, 어떻게 이렇게 쓸모없는 녀석을 정훈병이라고....... 아무튼 너 사령관님 오시면 사진은 네가 찍는 거다. 그 전에 알아서 준비해. 알았냐?”

 “네, 알겠습니다.”

 박 병장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주머니에서 마지막 하나 남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하늘은 내일 비라도 내릴 듯 먹구름이 보름달의 반 이상을 삼킨 채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연병장에는 거대한 모래바람이 물결 퍼지듯 원형을 이루며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검정색 헬기가 연병장 중앙에 내려앉고 있었다. 사열대에는 단장과 주임원사가 삼십 분 전부터 나와 사령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헬기의 두 다리가 연병장 바닥에 내려앉자 요란하게 돌아가던 프로펠러가 조금씩 잠잠해졌다. 원을 그리며 돌던 프로펠러가 멈추어 두 개의 날개를 드러내자 사령관은 헬기에서 내려 사열대쪽으로 걸어왔다. 단장과 주임원사는 아직 채 멈추지 않은 프로펠러 소리보다 큰 목소리로 ‘충성’을 외쳤다. 사령관은 가볍게 경례를 받고서는 사열대 앞에 도착하자 단장과 주임원사를 향해 오른 손을 내밀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 옆에서 사진기를 들고 있던 대환은 네 개의 별을 달고 있는 사령관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없는 분위기에 짓눌렸다. 사령관의 어깨 견장에 붙어있는 별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앞에서 빙빙 도는 것 같았다. 그 때 뒤에서 가까이 가서 찍으라는 박 병장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대환은 성큼성큼 사령관 뒤쪽으로 다가섰다. 사령관과 단장은 형식적인 안부를 물으며 참모부 쪽으로 걸어갔다. 참모부 정문 앞에는 각 참모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있었다. 대환은 사령관 바로 뒤에서 사령관의 모습들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사령관은 지원과장부터 전산실장까지 악수를 나누고는 단장실로 들어갔다. 간단한 다과와 함께 단장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삼십분 가량 계획되어 있었다. 그만큼 대환에게도 삼십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자 멀찍이 뒤따라오던 박 병장이 대환의 앞으로 뛰어왔다.

 “야, 너 사진기 줘봐. 사진 몇 장이나 찍었어?”

 “한 열 장쯤 찍었습니다.”

 “그새 많이도 찍었네. 필름은 땅 파서 나오나?”

 대환에게 사진기를 낚아챈 박 병장은 사진기를 살펴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너 미쳤어? 이게 무슨 디지털 카메라냐?”

 갑자기 대환의 귀 속으로 박 병장이 내뱉는 욕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환은 이유도 모른 채 겁에 질리고 말았다. 한참을 욕을 쏟아내던 박 병장은 필름 없이 사진이 어떻게 찍히냐며 대환의 머리를 사진기로 내리찍었다. 사진기를 받아든 대환은 사진기 뒤를 살펴보고는 필름이 있어야 할 곳이 텅 비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어젯밤에 급하게 사진 찍는 요령을 배웠을 뿐, 필름을 먼저 넣어야 된다는 말은 듣지 못했었다. 당연히 필름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너 빨리 가서 필름 갖고 와. 너 우리 부대에 포스타가 몇 년 만에 온 줄 알아? 십 년만이야, 십 년! 너 영창 갈 각오해! 빨리 뛰어!”

 박 병장은 대환의 실수에 흥분했는지 이마에서부터 턱밑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대환은 갑자기 쏟아진 욕을 다 받아내며 제자리에 서있기가 힘들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실수였다. 필름은 당연히 사진기 안에 있어야 할 부품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대환은 엉거주춤 거리다 정작과 쪽으로 힘든 발걸음에 속도를 높였다.

 인근 부대에 맡겼던 인화된 사진을 찾아 온 박 병장의 얼굴빛은 며칠 밤을 샌 사람처럼 탁했다. 대환은 박 병장의 표정을 보고 손에 들린 사진 봉투를 쳐다보았다. 박 병장은 사진 봉투를 반쯤 구겨서 들고 있었다.

 “임대환. 너 도대체 뭘 찍어 놓은 거야? 눈 있으면 네가 봐봐. 사령관님이 시체냐? 왜 다 하나같이 허리가 댕강댕강 잘려있는데? 그리고 이거 기념 촬영한 사진 봐봐. 심령사진처럼 다들 얼굴이 두 개야. 어떻게 제대로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냔 말이야!”

박 병장은 대환 앞으로 사진을 집어 던졌다. 사진들은 요란하게 펄럭거리며 뒤죽박죽 흩어졌다. 박 병장은 당장이라도 대환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 싶은 듯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욕을 해대고는 박 병장은 밖으로 나가버렸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정훈장교는 대환이 안쓰러웠지만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대환은 뜨거운 눈물이 당장이라도 사진을 적실 것만 같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어야 하는 지금 자신의 신세가 갑자기 불쌍하게 느껴졌다. 대환은 바닥에 흩어진 사진을 주워 담으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이 눈물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정말 하나같이 심령사진을 찍은 것처럼 빛이 사방으로 번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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