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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와 요정사냥꾼(5)

유상민 |2006.02.20 02:50
조회 219 |추천 0

마법궁전을 나온 포포는 시내로 향하는 중에도 루비가 목에 걸어준 자그맣고 동그란 돌을 만지작거렸다. ‘륨’ 이라고 부르는 마법석의 한 종류로 약간 불그스름한 색을 띄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고, 주로 출입을 통제할 때 사용하는 마법석이었다. 그리고 '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륨’과 출입문에 달려 있는 ‘륨’에 동일한 암호주문을 걸어 두면 출입자가 문 앞에 이르는 순간 두 개의 ‘륨’ 끼리 반응을 일으키면서 자동으로 출입문이 열리는 원리로 작동했다.

어쨌든 포포가 신기한 듯 계속 ‘륨’만 쳐다보자, 루비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포포! 륨은 그만 보고, 우리 빨리 룰리아에 가자.”


“룰리아? 뭐하는 곳인데?”


“일단 가보면 알아!”


잠시 후, 루비와 함께 도착한 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작고 허름한 가게로,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세월의 친구로 지내왔는지, 룰리아 상점이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마저 희미해 보일 정도였다. 이어서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넉넉한 몸집의 노인이 미소로 그들을 맞았는데, 다름 아닌 룰리아 마법상점의 주인인 하델만씨였다. 루비와 마주친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루비! 오랜만이구나.”


“네. 하델만씨!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장사는 좀 어때요?”


“흠......”


루비의 물음에 마법상점의 주인인 하델만은 대답대신 짧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반응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충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케 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어진 그의 이야기는 별로 기분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루비, 너도 알다시피 아크리포 마법 상회가 생긴 뒤로는 전 같지가 않구나. 이제 마법 도구로 먹고 사는 일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크리포 상회에서 젊은 사람들 취향에 맞는 새로운 물건들을 싼 가격에 대량으로 내놓고 있으니, 우리 같은 작은 가게들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속이 상해서인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하델만의 모습에, 우울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루비!


“음...짐작은 했지만, 그 정도라니...이따가 궁전에 들어가면 시장님께 하델만씨의 사정 이야기를 해 볼게요.”


그러나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흰머리가 희끗한 룰리아 마법 상점의 주인은 정색을 하며 두 손을 내저었다.


“허허...그럴 필요 없다. 루비. 괜히 시장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아. 다만 이 곳에서 수백 년이 넘게 장사를 해왔는데,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 옳고 그름을 떠나 모든 것이 너무도 빠르게 변하기 마련이니, 나이가 들면 그 변화의 흐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 여기까지가 내게 주어진 축복의 선인가보다.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려고 애쓰고 있단다. 사실 생각해보면 수 백년 동안 별 탈 없이 장사를 해올 수 있었던 것이 더욱 감사할 일이었는데, 그런 축복을 받았으면서도 불평만 잔뜩 늘어놓았으니,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요즘 이 늙은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고 있단다.”


말을 마친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짐과 동시에 가게 안의 분위기 역시 왠지 모르게 숙연해졌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무거워진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하델만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어이구, 이 늙은이가 괜한 소리를 했구만. 그나저나 루비, 옆에 있는 아이는 누구지? 처음 보는 아이 같은데......”


“포포라고 하구요. 시장님께서 초청하신 라우드인이에요.”


라우드인? 갑자기 왜 날 라우드 인이라고 부르는 거지?

포포는 루비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당연할 것이 몬스티아에서 라우드라는 명칭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의미했다. 왜 그런 명칭이 붙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초로 몬스티아를 방문했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명칭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전설처럼 떠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포포가 자신을 라우드 인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곧이어 하델만의 얼굴에 깜짝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라우드 인? 오호...정말 오랜만에 보는 귀한 손님이군. 반갑다, 꼬마야. 아니 포포라고 했던가?”


“네. 맞아요.”


“그래. 포포. 정말 반갑구나. 난 룰리아 마법상점의 주인인 하델만이라고 한다.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에 보는 라우드인이군. 그렇지 루비?”


하델만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한 채, 루비를 향해 물었다.


“네, 정확히 13년 만이죠.”


“그래. 맞아. 그 정도 된 것 같군. 당시 추적자들이 로델린을 잡아올 때 함께 잡혀 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이반이요.”


“아...그래. 이반. 이제 기억이 나는구만. 물론 그 친구는 라우드로 바로 추방됐겠지?”


“그랬을걸요.”


“역시 내 짐작이 맞군. 여하튼 그 당시 로델린 사건 때문에 몬스티아가 한참 동안 떠들썩했었지. 아! 맞다. 포포. 너한테 주면 되겠구나."


갑자기 하델만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무릎을 치고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점 안을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엇을 찾아서 준다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줄 물건이 무엇인지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한 포포!

그런데 한참 동안 상점안을 헤매도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 듯, 하델만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흠...그게 어디 있더라......이쯤 어디에 둔 것 같았는데.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군.”


그의 난감해하는 표정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드디어 포포에게 줄 물건을 찾은 듯, 하델만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찾았다. 여기 숨어 있었군.”


그가 찾은 물건은 다름 아닌 사진을 넣을 수 있도록 되어있는 금박장식의 목걸이였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까닭일까? 목걸이는 여기 저기 흠집이 나 있는 상태였지만, 보기 싫은 정도는 아니었다. 이어서 하델만이 포포를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를 건네자, 그는 조심스레 목걸이의 덮개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목걸이 안에 담겨져 있는 젊은 여자의 사진 한 장!

누구지? 포포의 궁금증을 뒤로 하고, 하델만씨가 말을 이었다.


“그 이반이라는 추방당한 라우드인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라고 하더구나.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로델린과는 아주 각별한 친구 사이였다고 하더라. 하긴 그러니까 다른 차원의 세계인 이곳까지 함께 왔겠지만...흠...갑자기 로델린 녀석이 보고 싶어지는군. 벌써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늘 이맘 때 쯤이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오곤 했었지. 포포 넌 잘 모르겠지만, 로델린은 천재마법사라고 불리울 정도로 마법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던 귀족 마법사였다. 더욱이 귀족 마법사이면서도, 그를 아는 모든 시민들이 다 좋아할 정도로 성품이 아주 착했지. 불쌍한 로델린...그러게 호기심 때문이라면 빨리 돌아올 것이지. 왜 도망을 쳐버린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군. 이 곳에서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마법사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잠시 회상에 잠겨 두서없이 중얼거리던 하델만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포포는 갑자기 천재 마법사라고 불리웠던 로델린에 관한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 무슨 이유에선지 약간은 다급한 음성으로 말을 끊는 루비!


“포포! 그만 가자. 다른 데도 가봐야지. 하델만씨! 그만 가볼게요.”


포포는 로델린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서두르는 루비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룰리아 마법상점의 주인인 하델만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인 듯,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벌써 가려고?”


“네. 다른 데도 들려야 하거든요.”


“그렇구나. 루비. 그럼 가기 전에 마법가루나 좀 가지고 가거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옆에 있던 낡은 검은색 상자의 뚜껑을 열더니, 루비를 향해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무지개 빛 색깔을 띄고 있는 마법가루가 가득 담겨져 있었는데, 그 빛이 얼마나 영롱한지, 마치 형형색색의 보석 가루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앙증맞은 손을 뻗어, 매고 있는 조그마한 가방에 마법가루를 가득 채운 루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히히...고마워요. 하델만씨!”


“그래. 루비. 그럼 어서 가 보거라. 그리고 포포, 너도 즐거운 하루 보내거라. 몬스티아는 라우드 보다는 재밌는 곳이니까.”


“네, 그럴게요. 하델만씨! 그리고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어차피 라우드인의 물건이었으니, 나보다는 네가 가지는 게 낫겠지. 그럼 어서 가거라”


“네, 그럼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마법상점에서 나온 포포는 계속해서 천재마법사 로델린에 관한 궁금증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그와 함께 잡혀왔다고 알려진 라우드인 이반의 존재와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목걸이 안에 있는 여자에 대한 궁금증 역시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라우드인에 대한 설명을 들은 포포가 또 다시 물었다.


“그럼 아까 그 천재마법사 로델린은 누구야?”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해하는 루비!


“음...가끔 젊은 마법사들이 다른 차원의 세계인 라우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때문에 몰래 차원의 문을 통해서 나가는 경우가 있어. 그리고 로델린 역시 그런 호기심 많은 젊은 마법사 중 한명이었지.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라우드에 몰래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마법사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가 나갔을 때만 하더라도 시장님이나 다른 마법사들 역시 젊은 마법사의 호기심 정도로 여기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야. 그런데......”


일순간 루비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게 변했다.


“로델린은 돌아오지 않았어.”


“왜?”


“그건 아무도 몰라. 나중에 추적자들한테 잡혀온 뒤에도 그 이유는 절대 말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시장님께서도 매우 안타까워 하셨지. 로델린이 천재라고 불리울 정도로 마법에 재능이 남달랐던 이유도 있었지만, 도도하고 냉혹하기로 소문난 아크리포 계열의 귀족 마법사이면서도 정말 착해서 시장님이 많이 아끼던 마법사였거든.“


“아...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차원의 문이랑 추적자가 뭐야?”


“차원의 문은 라우드와 몬스티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문이야. 네가 이 곳에 올 때 통과했던 문 있지? 그게 바로 차원의 문이야. 그리고 추적자는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친 마법사들을 잡아서 ‘바다 감옥’에 가두는 일을 하는 어둠에 속한 자들이야. 늘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데, 아주 무시무시한 자들이지.”


루비의 설명처럼 차원의 문은 율리안의 기둥이 가진 마법의 힘으로만 열리는 서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의미한다.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몬스티아의 지도자인 시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가끔 젊고 실력 있는 젊은 마법사들이 호기심 때문에 허락없이 차원의 문을 통과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돌아오지 않은 마법사는 없었기 때문에 루블데이 시장을 포함한 역대의 어느 시장도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몬스티아 역사상 최초로 돌아오지 않은 마법사로 기록된 로델린 사건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마법사들의 두려움의 대상인 추적자들이라고 차원의 문을  철저하게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똑같이 마법사의 피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빛을 위해 어둠에 있어야 하는 필연적인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  그리고 그들이 잡아온 마법사들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바다 감옥’

몬스티아 가장 북쪽에 있는 ‘잠들기 위한 바다'  깊은 곳에 있다고 전해지는 ‘바다 감옥’ 은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알려진 마법사들의 무덤과도 같은 곳이었다.

무시무시한 추적자들 역시 직접 바다 감옥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고, 잡아 온 마법사를 '잠들기 위한 바다' 에 던지면 한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감옥지기가 마법사들을 바다감옥에 가둔다고만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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