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번에는 폴라우드 씨네 빵집으로 출발!”
“빵집? 몬스티아에도 빵집이 있어?”
포포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당연하지. 몬스티아에도 있을 건 다 있다구. 그나저나 서두르자. 좀 있으면 막 구운 빵이 나올 시간이거든."
가게를 향해 출발하기도 전에 벌써 달콤한 빵의 향기에 취했는지,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갑자기 포포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루비! 그리고 잠시 후, 그녀를 머리에 태운 채 시내에 도착한 포포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활기찬 거리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과 길다란 원형의 모자를 눌러 쓴 마법사들과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 그리고 시내 곳곳에 자리 잡은 다양한 물건을 사고 파는 수 많은 가게들.
태어나서 이런 분주한 도시의 모습은 난생 처음이었다. 단순히 사람이 많고 적음을 떠나, 살아 있다는 생동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고아원 근처에 있는 시장을 그렇게 수 없이 돌아다녔어도 이런 생동감을 느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또 다시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하는 포포!
특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과 짐승의 모습을 섞어놓은 반인반수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전신을 덮고 있는 가득한 털에, 힘줄이 다 보일 정도로 잘 단련된 근육, 그리고 네 발달린 짐승과 같은 다리에 이어 굳게 다문 입술은 꽤나 고집스러워 보였다. 포포가 한참 동안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자, 반인반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내가 그를 향해 다가와서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봐! 꼬마.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란 나머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포포!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반인반수 사내가 거칠어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성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포포는 반인반수 사내의 그 짐승 같은 모습에 충격을 먹은데 이어,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내의 목소리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역시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때 포포의 머리 위에 앉아 있던 루비가 대신 입을 열었다.
“툼크스님, 오랜만이네요.”
루비는 반인반수 사내를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툼크스라 불린 사내는 그녀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넌 누구 길래 날 알고 있는 거지? 난 요정하고 별로 친했던 기억이 없는데."
“후후, 성격이 급한 것은 여전하시네요. 정말 제가 기억이 안 나세요?”
루비의 물음에 반인반수의 사내 툼크스의 얼굴에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교차하더니, 곧이어 갑자기 그의 입 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요정, 루비의 정체가 기억난 까닭일까?
잠시 후, 툼크스의 입술이 열리면서, 기쁨의 눈물과도 같은 아름다운 그의 미성이 퍼졌다.
“루블데이 시장의 수행요정. 오랜만이군.”
“그래도 기억하고 있었네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유일한 존재의 요정인데.”
상처를 입힌 유일한 존재? 루블데이 시장님을 말하는 것일까?
포포는 툼크스라는 이름의 반인반수 사내와 루비, 그리고 루블데이 시장님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대강 짐작했지만, 어떤 관계인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이어서 반인반수의 사내, 툼크스가 강렬한 눈빛으로 포포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봐, 수행요정! 이 꼬마와 아는 사이냐?”
“네! 시장님의 초청으로 몬스티아에 온 라우드인 포포에요.”
“라우드 인이라고? 그래서 날 그렇게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군. 이봐, 꼬마.”
툼크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놀라 움찔하는 포포.
“네?”
“라우드인이라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 또 우리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용서하지 않는다. 알겠냐?"
"네? 네!"
잔뜩 긴장한 포포의 음성!
곧이어 그의 대답을 확인한 툼크스가 반대쪽으로 사라지자, 포포는 긴 한숨을 내쉬었고, 그 모습을 본 루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포포, 봐서 알겠지만 몬스티아에는 여러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어. 우리 같이 마법사와 함께 살아가는 정령 계열의 수행요정이 있는가 하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있는 '울지 않는 요정 세르핀' 이 있지. 그리고 방금 전 네가 본 툼크스씨는 반인반수 족인 캄푸족 제일의 전사야. 너도 봐서 알겠지만 캄푸족은 성질이 급해서, 사고를 자주 일으키키는 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종족이야. 냉정하다고 소문난 유니코안들에 비하면 말이지.”
“유니코안?”
“응. 캄푸족과 똑같은 반인반수 족이지만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종족이야. 그런데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도도하고, 차가운 성격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어. 그리고 캄푸족이 오늘처럼 가끔이라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반면, 유니코안들은 절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지. 그건 유니코안들을 본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든 자신들의 모습을 본 사람은 반드시 죽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모, 모두 죽인다고?"
포포는 루비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들의 모습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험악한 인상을 가진 캄푸족보다, 유니코안이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크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유니코안이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는 포포.
캄푸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알려진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참 호기심 많은 열 세 살 소년은 유니코안의 존재가 두려운 동시에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루비가 물었다.
“포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아, 아니야.”
“빨리 가자. 늦으면 빵 나올 시간을 못맞추거든.”
“응. 알았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포포는 루비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성큼성큼 폴라우드 빵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쯤 갔을까? 길 모퉁이 구석에서 바르르 떨고 있는 아주 자그마한 동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몸길이가 대략 20센티미터 정도나 될까?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망울 하며, 새하얀 털을 가진 녀석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비로우면서도 귀여운지 포포는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쿠루네."
그의 머리 위를 떠나, 공중으로 날아오른 루비가 말했다.
“쿠루?”
“응! 몬스티아에서도 아주 보기 드문 녀석이야. 그런데 이런 길 한복판에 있다니, 신기하네. 여하튼 한 때, 엄청난 능력을 가진 마법동물이라는 소문 때문에 귀족 마법사들이 데려다 키우곤 했는데, 사실은 전혀 근거 없는 헛소문이었어. 게다가 이 녀석들이 보기와는 다르게 성질이 너무 사나워서 다들 키우기를 꺼려하는 바람에 번식에도 실패한 종이지."
루비의 말에 포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성질이 사납다고?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데?”
“음...나도 그게 이상해. 원래는 사람이 곁에만 다가서도 털을 세우고 공격할 정도로 경계심이 많은 녀석인데..."
쿠루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루비 역시 지나치게 얌전한 쿠루의 행동이 미심쩍은 듯 인상을 썼다.
그런데 루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포포가 쿠루를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루비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나운 쿠루의 성격을 생각하면, 손을 물리는 일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쿠루는 오히려 겁먹은 표정을 한 채 잠시 머뭇거리고는, 곧 포포의 손에 머리를 부비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게도 귀족 마법사들조차 다루지 못한 성질 사나운 쿠루가 포포 앞에서는 너무도 쉽게 경계심을 누그러트린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이 남아 있던 경계심마저 완전히 무너트리고, 품에 안기자 포포가 쿠루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루비를 향해 물었다.
“루비, 이 쿠루 내가 키워도 돼?”
“흠...글쎄.”
갑작스런 물음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듯 보이는 루비!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포포에게 차마 안된다는 말을 하기도...그렇다고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쿠루를 함부로 키우라고 할 수도 없는 일! 루비는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포포와 쿠루가 그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그녀를 쳐다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나 불쌍한 쿠루랍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쿠루의 눈빛과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포포의 모습에 루비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결국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알았어. 알았다구! 그렇게 키우고 싶다면, 할 수 없지. 대신에 만약 시장님이 안 된다고 하시면 나도 할 수 없어. 워낙에 사납기로 소문난 녀석이라서 시장님이라고 해도 쉽게 허락하시지는 않을 거야.”
루비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환한 미소를 짓는 포포!
“응! 고마워, 루비!”
“됐으니까 빨리 가자. 오늘은 왜 이렇게 일이 많이 생긴담.”
투덜거리는 루비와 쿠루를 품에 안은 포포는 또 다시 폴라우드 빵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빵집에 도착하자마자 인심 좋게 생긴 중년 사내가 그들 일행을 향해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