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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인생

무상이 |2006.02.26 17:26
조회 1,026 |추천 0

2005년초 모 결혼전문회사의 주선으로 인천 모처에서 첫 만남을 가졌는데 첫 만남에서 둘은 상호간에 호감을 가졌다.

나는 이 첫 만남에서 그녀에게 3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그 첫째는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낼 것이며, 둘째로 한눈팔지 말 것이며, 셋째는 부부싸움이나 다툰 경우 등 돌리지 아니할 것이며, 넷째는 남편의 기를 죽이지 아니할 것이며, 다섯째는 경제를 튼튼하게 세워 가정의 기반을 마련할 것 등 이었다. 그 대답으로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였고, 모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과 많은 아픔을 겪어 충분히 공감하고 가정을 이루고, 조화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말에 아이를 대동하고 만남을 가졌고,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나는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내가 배우고 학습한 바에 따라 그녀의 딸, 어머니, 처남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였고, 외롭게 살아온 그들을 위로하고 같이 호흡하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혼을 결정하고 05년 여름 인천의 모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였다. 결혼에 앞서 가족들에 대한 인사가 있었고, 인사에서 가족들은 참고 잘 살아갈 것을 주문하였다. 가족들에 대한 인사에 이어서 직장근처 한식집에서 장모와 큰형 간에 만남을 가졌는데, 서로 양보하고 잘 살 것을 주문하였다. 만남에 앞서 결혼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어느 토요일, 밤을 세워 아파트 폐인트 작업을 하였는데 새벽 4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정말 살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첫 번째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폐인트 작업을 마치고 며칠 후, 전세 살던 서울의 집을 빼서 인천의 그녀 소유의 아파트 월세 보증금을 대체토록 하고, 먼저 이사를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니와 같이 있기가 싫어 빨리 이사를 해야겠다고 하여 그녀도 이사를 해 사실상의 혼인 관계가 시작 되었다. 그 때 즈음하여 그녀를 믿고 신용카드를 주면서 1,000만원 내외에서 가구, 가전 등 생필품을 해결할 것을 주문하였다.


어머니와 큰형의 상견례를 위하여 1~2주 전부터 그녀에게 준비를 요구하였으나, 상견례가 왜 필요 하냐, 어머니 옷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회피하려 하였다. 상견례를 가지기 전 백화점에서 내 카드로 장모 옷을 마련하여 선물하였다. 일요일 당일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장모를 먼저 인천 아파트에 모셔놓고, 큰형님 내외분을 한식집에 모셔 두고, 다시 아파트에 이미 기가리고 계신 장모와 애 엄마를 만남 장소로 이동시켜야 했다. 이 날 아침 일찍부터 혼자서 분주하게 뛰어야 했으며, 형님이 멀리서 오셨으니 그리 멀지 않으니 장모님을 모시고 택시로 시내까지 올 것을 주문하였으나, 돈이 아까워 안 되며, 돌아갈 때도 형님 내외분은 전철을 타고 가시고, 장모와 그녀는 자가용을 이용하여 집으로 귀가하였다. 이날 너무 바쁜 나머지 아파트와 약속장소간의 중간 쯤 되는 도로에서 과속으로 사진이 찍혀 나중에 범칙금 고지서가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8월 중순쯤으로 기억하는데 범칙금 고지서가 배달되었을 때, 그녀는 당신이 과속하고서 왜 내가 범칙금을 내야 하느냐는 등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였고, 범칙금 고지서는 결국 10월말에 내 통장의 돈으로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혼식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아 아파트 월세 보증금 2,500만원을 충당하였고, 텔레비전, 침대 등 혼수품 일체를 장만하였는데, 장만에 앞서서 그녀에게 돈이 많이 없으니 1000만원 내외에서 장만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녀는 나에게도 물품을 눈여겨보고 구입할 것을 권고하였는데 실질적 지출이 총 천오백을 넘어서 버렸다. 그런데 연예시절부터 그녀의 돈은 단 한 푼도 지출된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을 내 카드만을 사용하였다. 나의 가족들은 흔히 말하는 예단과 관련하여 그 돈으로 더 잘살 것을 주문하며 예단등을 생략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혼 보름~한달만에 우리는 인천 모처의 성당에서 가족, 친지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으며,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외로울 때나, 힘들 때 서로를 돕고 의지할 것을 하나님께 맹세하고 혼인서약을 하였다. 그러나 결혼 초부터 그녀는 경제적으로 나의 목을 조여 왔다. 다소 상황이 어려움을 설명하고, 현실이 이러하니 상호 협조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그녀의 생각은 딴데 있었다. 결혼 과정에서 그녀가 지불한 돈은 단돈 80만원, 그 외에 모든 것 일체를 내가 지불하였으며, 그녀의 지갑은 결코 열리지가 않았다. 나는 서로 사랑할 것을 굳게 믿고 신혼여행임에도 불구하고 향후 아이와의 관계 및 일생에 한번임을 고려하여 다소 경비가 지출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대동하고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마치고 보니 세간 살이 장만을 포함한 여행 등에 비용이 다소 과하게 지출이 되어 카드 결재대금이 상상외로 많이 나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는 그녀가 결혼 전에 했던 약속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낼 것이며, 등돌리지 아니할 것, 한눈팔지 말 것이며, 남편의 기를 죽이지 아니할 것이며, 경제를 세워 가정을 튼튼히 할 것” 등을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혼생활을 위하여 그녀는 아내의 십계명 1장, 남편의 십계명, 그리고 양측이 지켜야 할 원칙 등에 관한 인쇄물을 가져와 생활원칙을 제시하고 도장을 찍어 줄 것을 요청 하였다. 그냥 별거 아니니 도장을 찍으라고 해서, 일부 내용에 불공평함과 경제문제에 관한한 다소 무리가 있음을 느끼면서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도장을 찍어 주었다. 결혼 경비가 생각보다 다소 과하게 지출되어 7월 결재 분부터 어깨를 짖 눌러 왔다. 8월에는 카드 결재액이 300-400만원에 육박하는 등 심각하게 다가왔고 한정된 봉급으로 처리가 거의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애 엄마에게 현재 상황이 어려우니 십시일반으로 조금만 보조를 하면 한결 가벼워짐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도리어 현금을 줄 것을 요구하였고 신혼여행 등의 비용은 본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지출이 불가함을 강조하였다.


결국은 7월에 시작된 경제여건이 2005년 내내 트집을 잡고 문을 잠그고 다투는 간접적인 원이 되었는데, 직접적인 원인은 그녀의 성격탓 이라 생각된다. 부부간에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해도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악순환의 시초가 된 셈이다. 서울의 재개발지구에 재개발을 앞둔 내 소유의 연립주택이 있었는데, 그 연립주택 관련 대출부채가 있어 경제가 약간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연초에 아이엄마에게 우리가 생활이 좀 어려우니 재개발 되면 정리해서 쓰는 것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그녀가 하는 말이 집은 팔면 후회하니 투자계획을 잘 세워서 보탬이 되도록 합시다 라고 했다. 그래서 본인이 직장동료로부터 천여만원의 대출을 해와 연차적으로 갚는 것으로 하고 다 갚을 때 까지 월 100만원에 10만원의 이자를 붙여서 상환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인이 가지고 있던 돈으로 남편한테 이자놀이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부간에도 돈빌려 주고 이자받는 일을 할 수 있는가보다. 시간이 흘러 추석 2주전쯤인 것으로 생각된다. 엄마하고 머리끝을 붙잡고 싸우는 모습을 내가 보는 앞에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보여주곤 아무런 이상도 없고 평소처럼 그렇게 하는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인 것처럼 나에게 보이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리구서 일주일 후 쯤인가 장모되는 분이 아침일찍 술이 취해서 용돈이 적으니 더 달라는 것이었다. 참 기가 갈수록 막히는 이야기 아닙니까?


결혼후 추석날에 시댁에 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 추석즈음에 절대 못가겠다고 버텼다. 그러더니 이모라는 사람이 새벽에 갔다가 새벽에 오는 것도 괞찮다고 새벽에 가자고 버티다가  저녁 7시가 되서 마지못해서 갔다. 그런데 새벽부터 친정에 엄마 혼자있어서 아침일찍 가자는 말 안한다고 삐치는 행동을 보였다. 그래도 엄마 혼자계신 것을 고려해서 처갓집에 일찍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 계통이라 절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장모님이 절을 하라 그러길래 절을했다.점심때에 아래층에 사는 이모네 식구들이랑 모여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2주전에 엄마와 싸우는 생각이 나서 애 엄마가 장모한테 잘해야지 나도 마음이 생겨서 더 잘하지라는 말을했다. 그런데 술이 취하고 얼굴이 달아올라 그녀가 하는 말이  "야 이새끼야 입닥치고 가만히 있으란 말이야. 여자가 하는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살아야지"  라는 말을 하고 자기가 하는 행동은 무조건 올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시키고 욕지꺼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점심 후에 집으로 차가지고 와버렸다.  학교선생님이란 사람이 쓰는 용어하고는 애 아버지한테 "늬놈, 심지어는 야 씹할놈아" 등 차마 입에 담지못할 욕설도 곧잘 사용을 했다. 그녀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해도 본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평소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대하듯이 했다는 거였다. 그리고서 차가 본인의 차이니 가지고 오라는 폭언을 했고, 월요일날 일거리가 있어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최초로 문을 잠근 것으로 기억되며, 이후로 기분상하면 수시로 문을 잠그고 열어 달라하고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결혼의 목적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그냥 결혼을 했기 때문에 나나 우리가족에게 잘할 의무도 없고 잘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어려움은 당신의 어려움일 뿐이지 본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시종일관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버는 돈, 아파트, 차, 아이와 함께 여전히 자신의 것임을 주장했다. 또한 나의 봉급과 집 또한 그녀의 것이며, 따라서 봉급과 내 소유의 집도 그녀한테 소유권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적 여건 등에 상관없이 결혼 전부터 생활비 등에 관한한 본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서약서라고 하는 것을 공증을 받고, 본인 주장에 의하면 선생님한테 돈을 빌릴 때, 써준 종이 쪼가리를 가지고 공증을 받아놨다고 하는 등 가족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신을 조장하였다. 우리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그녀는 직장생활을 핑계로 늘 가정생활은 뒷전이었으며, 항상 성인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부부생활을 하기 보다는 스트레스를 나에게 푸는 듯 거의 매일 짜증스런 모습을 보였고, 상호간의 입장보다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과 조금이라도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양보나 타협을 불허하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뱃는 철두철미한 이기주의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우리 가정은 둘 사이의 아이가 아니지만 돌보아야 할 아이가 있고, 서로 과거가 있어, 원만한 가정생활을 위하여 상호간에 말, 행동 등을 좀더 신경 써 가능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고, 상호간에 잘해야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서로를 위해줄 수 있으니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시종일관 나만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있어 모든 생활에 있어서 상처주는 언행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05년말 해외출장을 앞두고 그녀에게 정말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정말 3일간을 정성을 들여서 보살폈다. 그리고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생활비로 100여만원을 송금하고 출장지로 출발하였다. 그곳에서 그간 그녀가 내 가족들에게 너무나 못했고, 지금이 조금이라도 만회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몇가지 주문를 하였다.  메일로 그녀에게 주문하기를 그간 형제들과 소원하게 지내서 관계회복을 위해서 전화도 하고, 안부를 주고받을 것을 주문했는데 그녀의 대답은 돈을 월 000만원 주지 않는 한 잘하고 싶은 생각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이 의의가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 그로 인하여 그녀와 매일로 다툼이 있었고 서로 간에 심한 말이 오가게 되었다. 현지에서 귀국을 앞두고 생각하기를 언제나 평소에도 집안에 냉기와 싸늘함 그리고 이유없는 미움이 집안을 감싸고 있었듯이 돌아갈 따뜻한 집이 없고, 반겨줄 사람이 없으니 너무나 허무하고, 가슴이 아팠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날 귀국장에 나오는 것은 요원한 꿈이었고, 집에 도착해보니 보일러가 고장났으니 누나집으로 가라는 메시지와 함께 방안 가득 쓰레기더미와 냉기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일러는 고장이고, 집안은 온통 엉망에 세탁기에는 출발 전에 넣어놓은 빨래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등 삶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참 어이가 없었다.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친정으로 간 그녀는 전화를 해도 끊어버리고 받지 않고 사람을 고의적으로 피하였다. 당일 날 난 직장근처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다음날 일이 힘들고 늦을 것을 알면서도 전화해서 하는 말 일찍 집에 들어와서 보일러 고쳐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보일러를 고쳐놓고 그녀는 친정으로 가버렸다. 23일 저녁 그녀는 월급날이 다가온 줄 알고 들어와서는 비디오는 왜 사왔느냐는 것이었다. 늘 그렇듯이 서로 따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다음날 그녀가 급여날이 되어 돈 달라는 말을 할 외에는 없는 뻔한 상황에서 행동이 괴심하여 그녀가 화장실에서 세면하는 중에 일찍 집을 박차고 나왔다. 버스를 타고 출근중일 때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한 이유는 봉급날이 되니 돈달라는 것이었다. 난 경기도 모처의 누이집에 잠시 다녀 올 테니 그리 알라고 하고 출근을 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나간사람은 다시는 못들어 오고, 그녀가 늘 그렇듯이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난 그녀가 무릅꿀고 내 앞에 나타나기 전에는 안들어 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문을 절대 안열어 줄 것임을 문자메시지로 통고해 왔다. 그리고 24일부터 몇일 동안 끈질기게 아이를 지우겠다고 협박을 하고 온갖 욕설을 동원해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12월 말경 그간의 생활이 너무도 지겹고 다시 또 시작되는 것이 두려워서 직장근처에 방을 얻었다. 12월 31일에는 다소 누그러져서 노력해보자는 메시지와 함께 들어올 것을 종용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과거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어왔던 그녀의 말과 행동을 봤을 때  그 정도의 행동으로 내 마음을 돌려놓치는 못하였다. 그리고서 ‘06년 1월초 그녀는 이혼을 요구해왔고, 이혼을 해 주지 않으면 상급자 등에 연락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등 갖은 술수를 써서 이혼을 종용했다. 심지어는 죽이겠다고 협박을 일삼는 등 발악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중순쯤에 이혼에 합의했다.

이혼 당일 나는 마지막으로 고심했다. 아이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최종 도장을 찍기 전에 아이가 있다면 나는 살기를 원한다고 의사표시를 하였는데, 그녀는 의사가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지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 아이의 상태를 의사가 나에게 직접 이야기 해 줄 때 까지는 믿을 수 없으니 의사와 직접 대면 후에 결정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고, 결혼 시 마련한 살림살이 일체 또한 돌려줄 것을 구두 합의하고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1월 4일, 5일쯤에 아이 아빠인 나의 동의 없이 아이를 저세상으로 보내 버렸었고, 살림살이를 에시당초 돌려줄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내가 시간에 쫒기고,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는 것과 나의 직업의 약점을 최대로 이용하여 돈과 살림살이를 갈취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뒷통수를 날리는 파렴치한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상급자에게 전화해서 모든 것을 알리고 회사생활 못하게 한다느니, 회사로 찾아 온다느니 협박을 일삼았다. 나중에 계산해 보니 그녀에게 5개월간 살면서 카드지출 등 그녀에게 건내진 돈이 천만원이 넘은 것으로 확인이 됐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형편이 닿는대로 우선 경제를 꾸려나가고 서로간에 아끼고 살아도 힘든세상인데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가정을 위해 헌신을 해도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불신, 냉대와 질시 그리고 돌팔매였다는 것에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

그녀는 종이쪼가리 한장도 이미 공증을 받아놓고 있었고, 돈을 비롯해서 냉장고, 티비 심지어는 총각 때 쓰던 선품기 등 물품 하나까지도 본인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싹쓸이 가져가 버렸다. 삶의 목적이 돈인 여자.... 그녀와의 잠자리 또한 글쎄 같이 한이불에서 잠을 잔 것이 5개월 중에 한달정도 되고 부부관계 또한 손꼽을 정도인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참 여자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내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외여행 시켜주고 직장과 가정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결과가 결국은 발등을 찍은 꼴이 된 것이다. 여러분 정말 여자든 남자든 상대를 잘만나서 서로 사랑하면서 아들 딸 낳고 오손도손 살아야 합니다. 정말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과 양보 그리고 희생이 필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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