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언체인드 멜로디.> - 1
미우는 작성된 기획안을 훑어보다가, 태봉쪽을 바라보았다
좀처럼. 웃는 얼굴이라곤 볼수 없는 요즘 태봉의 분위기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미우는 이미 검토가 끝난 기획안을 들고, 조심스럽게 태봉에게 다가갔다.
“태봉씨. 이것 좀 봐봐요.. 기획안 보충한 건데, 자료가 너무 많은가?”
“어... 거기 둬봐요.. 이것부터 좀 하고..”
“그래요, 한번 봐줘요.”
미우는 찜찜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얼굴한번 쳐다보지 않고, 두고 가라는 퉁명스런 한마디. 저 태봉이란 사람의 속을 알 수는 없었지만, 쪼잔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였다. 사람이 많이 놀라서 그럴 수도 있을 일을, 태봉은 그때 이후로 쭉 저러고 있으니... 그리고, 왠지.. 태봉의 그런 모습에 미우는 서운하기만 했다.
이제 좀 친해진것 같았는데... 태봉의 딱딱한 모습이 서운하기만 했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한식식당에서 윤호는 권여사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는 중이였다.
권여사는 윤호의 당당하고 젠틀한 모습에 매우 흡족해하며, 마음속으로, 미우와 윤호의 모습을 그려보는 중이였다.
“회장님!.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 아닐세.. 어서 들게나..”
“네....”
“그래.. 창원 지사로는 언제 내려가는 거지?”
“네.. 다음 주에 내려갈겁니다..”
“흠... 그렇군... 굳이 창원으로 가지 않아도.. 내, 조만간, 갖은 핑계를 대서라도, 미우를 다시 집으로 데려올텐데.. 굳이 가야하겠나?”
“.. 글쎄요.. 아직까지, 미우씨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지난 일 때문에 상처가 많아서인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를 않으니.. 제가 좀더. 가까이서, 친해져봐야죠..그리고, 창원지사로 내려가겠다는 선택은 미우씨 결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원했던 일이니 만큼 중간에서 그만두게 할 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것도 맞는 말이군... 내 손녀이긴 하지만, 미우 고것이 꽤 까다로울게야..고집도 있고.”
“네.. 지금 열심히 체험중이니까요..”
“그래.. 아버님, 병세는 좀 호전되셨는가?”
“네.. 신경써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다행이구먼.. 어서 들게나..”
“네...”
권여사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깍듯하고 반듯한 윤호를 보면 볼수록 흐믓하게 바라보았다.
설사 정말 순수하게만, 미우를 좋아하는게 아니더라도, 정이야 살면서 붙이면 되는거고, 어처구니 없이 뒷통수를 치지는 않을테니까.. 든든하지 않은 집안 배경덕에, 그럴 배짱도 없을거라고, 권여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윤호는 흡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권여사를 보면서, 시골에 있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자신의 능력을 담보삼아. 손녀에게 좋은 짝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부모된 마음을 기만하는것 같아. 찔리기는 했지만, 전미우란 여자를 잡으면, 자신의 인생도 펴지고, 권여사는 인재를 하나 얻게 되는셈이질 않은가?.. 미우가 자신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지만, 또,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 여자는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만나게 될 것이고, 자신은 든든한 배경을 얻게 될테니. 누구 한쪽이라도, 손해되는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미우는 하다의 잔소리와 함께, 한참 북어를 손질하는 중이였다.
수칙중 하나, 요리를 배우는 것.. 오늘 미우가 배우고 있는건 북어국이였다.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지만, 아직까지 많이 서투른 미우의 손놀림을 보면서, 하다의 잔소리를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크게 뜯으면, 먹기 불편하잖아. 먹기 적당한 크기로, 찢어야지..”
“알았어... ”
하지만, 하다의 잔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미우는 다른생각 중이였다.
어떻게 하면, 태봉과 다시 스스럼 없어질지.. 아무리 처음엔 인생의 태클이라고 싸웠던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하다 다음으로, 친한사람이니 요즘처럼 불편한 분위기가 싫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서운한 느낌도 드는데다가. 태봉이 딱딱하게 대할때마다. 왠지 울컥울컥. 눈물이라도 날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니.. 심난하기 그지없었다.
“저기.. 하다야..”
“응?”
“태봉씨 말이야...”
하다는 미우의 입에서 태봉의 이름이 나오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렇지 않아도, 부쩍 둘의 분위기를 간음하기 힘들었는데, 미우가 먼저 태봉의 얘기를 꺼내니, 어떠한 실마리라도 잡아야 했다.
“...태봉씨가 왜?”
“그러니까..말이야... 요즘 좀 이상해... 내가 전에 말했잖아.. 내가 끌어안은 것 때문에 오해하는것 같다고... 어떻게 해야하냐? 요즘 출퇴근 할때도 그렇고, 일할때도 그렇고.. 어색해 죽겠어..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니까!”
“어떤식으로?”
“그냥.. 옆에가서 뭘 물어봐도, 대답은 하는데, 엄청 짧고, 아예 시선 외면하는데.. 솔직히 어색하고, 기분나쁘고 그러네..”
“뭐.. 별 다른건?”
“없어.. 그냥.. 아예 날 무시하는 태도지.뭐.. 그래서 말인데.. 혹시! 태봉씨가 너 좋아하는건 아닐까 싶어서... 너 때문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내 행동덕에 오해해서 어색한가 싶어서..”
하다는 말없이 물끄러미 미우를 쳐다보았다.
거듭된 상처의 휴유증인지.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을 좋아할거란 생각자체를 하지 않고있다니... 그래서 고작 생각한다는게, 저렇게 유치한 발상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건 아닌것 같은데? 난.. 태봉씨가 오해를 한다기 보다는,, 뭔가.. 뭔가.. 다른게 있는것 같아.. 가령.. 널 좋아한다던가 ?뭐.. 그럴수도 있잖아..”
하다의 말에 미우는 피식웃음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그리고 짧게..
“알잖아? 그럴리 없다는거?”
“왜? 그렇게 생각해?”
“몰라서 물어?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닌데...”
“그럼... 니가 좋아하니?”
“무슨말이야?!! 난, 지금 너한테 조언을 구하는거지.. 농담하자는거 아니다!”
“나도 농담 아니야.. 뭐,, 내가 제 삼자라서 잘은 모르겠지만..뭔가 다른 감정이 있는것 같긴해..”
미우는 별 대꾸없이 뭉턱뭉턱 뜯어놓은 북어를 잘게잘게 찢어발랐다. 태봉이 자신을 좋아해서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않았다. 그럴리 없을테니까.. 그리고, 그렇다고 해도, 나이가 몇인데... 그런식의 반응을..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꽤, 구체적으로 생각하던, 미우는 잘게 찢은 북어를 믹싱볼안에 넣고는 싱크대 앞으로 갔다. 머릿속으로 어느새, 지금 하고있는 요리에 열중을 하기 시작했다.
이 요리를 제대로 마쳐야 빨리 하다의 잔소리에서 벗어날수 있을테니말이다..
한참만에 앞에 놓여진 국그릇을 보던 하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숟가락을 들어올렸다.
이제까지 미우의 전적으로 봐서는 처음해본 요리는 분명.. 뭐라고 형언할수 없는 맛을 냈던 것을 익히 알고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래도, 완성했다고 들고오긴 했으니, 먹어는 봐야할테니. 하다는 천천히 한수저를 떠서 맛을 보았다.
그런데..하다는 자신의 미각이 잠깐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숟갈...
“어?,,,야. 전미우.. 너, 나 안보는 사이에. 밖에 나가서 사왔니?”
“무슨 소리야? 또? 어때? 별루야?”
“아니.. 너무 맛있어... 내가 만든 것 보다, 더 맛있는데? 어떻게 끓였냐?”
“니가 가르쳐준대로.. 근데.. 정말 맛있어?”
“어~ 야~ 왠일이니? 천하의 전미우가, 한번에 요리 완성을 시키다니.. 이건, 기적이야!”
“다행이다~ 그럼 오늘은 이만 실례해도 되지?”
“그래!”
미우는 입었던 앞치마를 벗어두고, 쪼르르 자신의 방으로 달려들어갔다.
업무시간중, 태봉의 눈치 살피고 다른 생각하느라, 미쳐 끝내지 못한 기획안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다는 하다가 끓여놓은 북어국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결심한듯. 자그만한 남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그 냄비에 적장히 담아서는 태봉의 집으로 향했다.
[딩~동~]
막 저녁식사를 마친 태봉은 뉴스를 보기위해 편안하게 앉았다가,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간.. 아니, 자신의 집을 찾아올 누가 있었던가? 태봉은 인터폰에 달린 화면으로 누구인지 먼저확인을 하고는 현관을 열어주었다.
“하다씨.. 왠일이세요? 이 시간에?”
“아~ 이거좀 드셔보라구요..”
하다는 방금 미우가 끓여놓은 북어국을 태봉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북어국이요..”
“어.. 잘먹을게요.. 고맙습니다..”
“뭐.. 제가 들을 말은 아니구요.. 이거, 미우가 끓인거에요..”
미우가 끓였다는 말에. 태봉은 다시한번 하다에게서 받아든 남비를 내려다 보았다..
뭔가... 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좋아해서 그런가? 뭔가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하다는 태봉의 살짝 흔들리는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태봉씨! 실례가 안된다면, 잠깐 커피한잔 주실 수 있어요?”
하다의 갑작스런 말에 태봉은 의아했지만, 곧, 하다가 집안으로 들어올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네,, 그러세요...”
잠시뒤, 하다의 앞에는 향긋한 커피한잔이 놓여졌다.
하다는 은근히 집안 여기저기를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남자혼자 사는 집인데, 꽤 깔끔했다. 화려하지도, 삭막하지도, 적당히 심플한 인테리어에, 은은히 베어나오는 아로마향.... 꽤, 깔끔한 남자인것 같았다.
태봉도, 커피를 한잔 들고 하다앞에 앉았다.
“무슨.. 할말이라도...”
“뭐.. 다른건 아니구요... 그냥.. 미우가 쫌 신경을 쓰느것 같아서요.. 요즘 태봉씨 때문에,.,”
“네? 그게 무슨....”
태봉은 미우라는 말에 귀가 쫑긋 움직였다. 미우가 자신 때문에 신경을 쓰다니.. 뭣 때문에?
“요즘 태봉씨 분위기도 그렇고, 말도 잘 하지 않고.. 뭐.. 미우말을 빌려서 얘기 하자면.. 무시당하는것 같다구요.. 뭐. 미우는. 지난번 산에서 길 잃었다가. 찾아온 태봉씨보고 안심해서 자기도 모르게 끌어 안았다던데... 그일 때문에, 태봉씨가 신경쓰는 것 같다구요...”
“..........”
태봉은 대답하지않고, 물끄러미, 커피잔에서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김을 보고있었다.
자신의 태도가 전과같지 않은 이유는 분명, 그 이유는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 잘 역여가고 있는 미우를 좋아하게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서, 필요이상의 말과, 필요이상의 행동은 자제하고있는 중이였다.
하지만, 구구절절, 그 말을 하다에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우의 친구이니, 분명. 그 말을 하게 되면, 미우에게 말해줄것이고, 그럼.. 지금보다, 더, 어색한 관계가 되버릴테니..
“그런거,, 아니에요.. 그냥.. 요즘 신경쓰는 일이 있어서, 그래요.. 미우씨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네요..”
하다는 열심히 태봉의 표정을 살폈다. 분명, 뭔가 어떤 표정을 짓깃했지만. 그 표정을 읽어내기엔 역부족이였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저.. 태봉씨, 혹시 일요일에 시간 있으세요?”
“왜요? 무슨 일이라도..”
“아, 저희부서에 동료아버지가 도예를 하신다 더라구요.. 힘쓸 사람이 필요한가봐요.. 어때요? 시간되세요?”
“힘쓸사람요?”
“네, 원래는 인부가 있었는데, 갑자기 몇일 자리를 비웠대요.. 하루 아르바이트 안하실래요? 부탁할게요..”
“... 네.. 그러죠뭐...”
태봉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원래 이번 주에도 등반이 있었지만, 미우를 피해서 다른 일을 할 생각이였는데, 잘 됬다 싶었다.
“그럼. 내일 약도 받아줄게요..커피 잘마셨어요.. 쉬세요..”
용건을 마친 하다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동료에게 전화를해서 약속을 잡았다. 물론, 일꾼이 필요하다는 말은 순 거짓말이였다. 모른척, 둘을 그곳에서 만나게 해두고,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태봉의 마음이 어떤지, 미우의 마음이 어떤지..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하다가 돌아간 다음 태봉은 미우가 끓였다는 북어국을 열어 맛을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가득 미소를 퍼트렸다.
“분리수거도 잘 못하는것 같더니.. 음식솜씨는 꽤 있나보네?”
저녁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불렀지만, 태봉은 미우가 끓인 북어국을 다시 맛있게 먹었다.
아마.. 자신의 누나가 해준 음식 다음으로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져.. 막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