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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해군에있을때 얘기

안녕하세요 |2006.03.27 20:14
조회 296 |추천 0

76년 봄, 해군 입대 날짜가 정해지고 저는 서울의 직장에 휴직 신청을 하고 짐을 싸서 부모님이 계시는 대구의 집으로 갔습니다.
드디어 진해로 떠나던 날.
어머님이 기차역까지 배웅 나오시겠다는 걸 극구 만류하였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냐면서요.
하지만 어머님 못지 않게 다정다감하신 큰 누님은 기어코 동대구역까지 따라 나오셨습니다.
플랫폼까지 들어오신 큰 누님은 기차가 출발할 때 기어코 눈물을 훔치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허, 그것 참.

진해에 도착하여 그날 밤은 여관에서 묵고 이튿날 이른 아침, 진해역에 집결하여 구대장들의 인원점검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구대장들이 경어도 쓰고 상당히 예의가 있어 보이더군요.
처음 후보생대에 도착하는 날, 보이는 것이라고는 넓은 연병장과 모래, 자갈 등이었고 사람의 인기척 조차 없어서 황량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훈련 기간 중 외부와의 전화는 임관 시까지 허용되지 않았었고 편지만 얼마가 지나자 가능해졌을 뿐이었습니다.

사관후보생대에 입교하여 입교식을 마치자마자 지금까지의 생활과는 180도 다른 힘든 하루하루를 보낼 때 다른 것보다 사회와 격리되어 있다는 것 또한 마음고생 중의 하나였습니다.
훈련도중 아주 가끔씩 민간인을 실은 버스들이 후보생대 옆을 지나가는 것이 보이기도 했는데 그 속에 탄 사람들이 어찌 그리 부러운지…
이렇게 고되고 외로운 하루하루는 아침에 모포를 박차고 기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강하고 멋있고 미더운 해군장교가 된다 !!’

그 다음 모포를 개고 세면을 하는데 그 다음 하는 일이 달력의 오늘 날짜에 크게 X표를 치고 임관까지 남은 일수를 계산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후보생대 화장실 곳곳에 가장 많이 보이는 낙서는 ‘임관 xx일 전’ 이었습니다.
시내 구보를 하다가 중위나 대위 계급장을 단 선배들을 보면,
휴~ 무겁지도 않나? 저것 중 하나만 떼어서 날 좀 주면 안되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간다는 만고의 진리(?)에 따라 어느덧 18주의 훈련이 모두 끝나고 옥포만이 바라다보이는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하정복 차림으로 꿈에도 그리던 임관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정복 어깨 위에 붙이는 계급장은 다이어몬드 모양이 아니고 그냥 금색 작대기 한 개가 소위 계급장입니다.
임관한 후보생들을 일일이 악수를 해야하는 임석 상관은 좀 지루했을 겁니다.
물론 부모님들도 오셔서 축하를 해 주셨지요.

임관식이 끝나고 특별휴가를 얻어 진해 기차역에서 각자의 집으로 출발하게 됩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자연의 원리를 뜻하는 원시반본(原始返本)이란 말과 같이 훈련생활은 진해역에서 시작되어 같은 곳에서 끝이 난 셈입니다.
차창 가에서 우리들에게 거수경례를 하신 후 손을 흔들며 전송하는 부장님, 훈육관님 그리고 구대장님들….
특히나 훈련기간 중에는 그렇게도 밉던 구대장들의 그런 모습을 보니 왠지 코끝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18주 동안 온갖 훈련과 일상을 구대장들과 함께 보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군 생활의 한 고비가 넘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이상 해군 사관후보생 생활의 시작과 끝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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