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나의 무식을 고백하게 돼 챙피하지만, 나는 고갱과 고호를 구별못했다. 두 ‘고’자 돌림 중에서 자기 귀를 잘랐던 미친 화가가 누구인지 늘 헷갈렸었다.
드디어 이번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고갱 특별전과 퀸즈로 잠시 옮겨가 있는 현대미술관(MoMA)에서 고호의 ‘The Starry Night’를 보고 확실히 알았다. 폴 고갱(1848~1903)은 죽을 때까지 잘나가는 화가였고, 빈센트 반 고호(1853~1890)는 살아생전 단 한점밖에 그림을 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걸.
▼이기는 삶을 만들어온 고갱▼
지난번 일기에서 ‘세상엔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며 사는 부류와 어떻게 해야 이기는가를 먼저 따지는 부류가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이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고 메일을 주신 독자가 몇분 있었다. 아마도 이기는 삶을 먼저 따지는 부류에게 진 경험이 있거나,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며 사는게 과연 옳은 삶인지 고민하는 분이 아닐까 싶다.
이 이분법을 고갱과 고호에게 대입해 보자면, 고갱은 어떻게 해야 이기는가를 먼저 따졌던 화가였고 고호는 그 반대편에 있었다.
고갱은 ‘고갱 비즈니스’에 공격적으로, 경쟁적으로, 그리고 언제나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주목받는 걸 좋아해서 기묘한 옷을 입고 다녔고, 쇼킹한 얘기를 곧잘 했으며, 명성을 얻어 그림을 팔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1891년 타히티로 간 것도 ‘경력 관리’를 위해서였다고 뉴욕타임스의 홀란드 코터기자는 평하고 있다.
내가 제일 충격을 받은 건 고갱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리고 좀더 유명해지기 위해 사람을 조종해왔다(manipulate)는 부분이었다.
‘Ia Orana Maria’등 타히티의 이국적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은 그가 데리고 살면서 아이까지 낳게 했던 10대 타히티 소녀들이었으며(덕분에 유럽 남자들은 자기들도 어디론가 떠나서 뭔가 저질러보고 싶다는 성적 욕망을 불태우게 됐다), 고호 덕분에 공짜로 1889년 아를르에서 나인 하프 위크(9 1/2 week) 동안 한집에 살면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끊임없이 짜증을 내고 자연의 노예라고 조롱했었다.
하지만 이런 ‘배경’이 무슨 상관이랴. 이번 전시에도 선보인 ‘노란 예수’에서 예수의 얼굴을 제 얼굴처럼 그린데서 짐작할수 있듯,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의 수퍼스타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너무 좋아해서 그림그릴 시간도 돈도 부족했다지만, 어쨌든 그가 늘 원하던 주목을 받았고 죽은 후에도 화상들의 열렬한 수집대상이 됐다.
▼고민하다 미친 고호▼
이에 비하면 고호는 불운하다. 생의 마지막 10년간 그림 한가지에만 몰두했지만 인정받기는커녕 그 때문에 고통받은 순교자였다. 착하기는 또 한량없어서 스물여섯살 때 전도사로 일하던 교구에선 쫓겨나기까지 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가진 걸 다 퍼주는 바람에 교회 분위기를 망치는 걸 우려한 교구측에서 떠나줄 것을 정중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잉그리드 샤프너의 평전 ‘빈센트 반 고호’에 따르면, 자기를 위해 타인을 조종했던 고갱과 달리 고호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던 사람이었다. 모델들과는 고갱이 했던 성관계 대신 우정과 인간미를 나누었고, 자신을 예수 또는 장발장으로 묘사한 고갱과 딴판으로 고호는 예술의 전당 속 불쌍한 경배자 또는 정체성 갈등에 놓여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자화상을 그리곤 했다.
그런 고호가 왜 고갱과 지내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오른쪽 귀(의 일부분)를 베어내야 했을까.
매독 때문에 생긴 간질 발작으로 사료되는 고호의 광기는 요즘말로 치면 우울증으로 읽힌다는게 샤프너의 지적이다. 그리고 이 증세는 고갱으로 말미암아 더 심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갱의 이기적 삶의 자세, 이와 상관없이 번쩍이는 예술적 성공(이 무렵 고갱은 드가 같은 유명화가로부터 전시회 초대를 받고 그림도 많이 판 반면, 고호는 철저하게 외면당했었다)을 목격하고는 급기야 자해를 하고만 거다.
눈물겹게 아름다운 ‘아이리스’와 최고의 걸작 ‘The Starry Night’이 고호가 가장 고통스럽던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죽기 얼마전에 그려졌다는 걸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그리고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참 감정이 복잡했다.
▼선수의 세계, 민간인의 세계▼
‘죄인’(샤프너의 표현이다) 고갱이나 ‘성자’(역시 샤프너의 표현) 고호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누구를 더 좋아하고 또 평가하는지는 다를수 있으되, 지금에 와선 모두 위대한 화가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둘다 위대하다’는 건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에나 해당되는 얘기다. 보통 사람이 사는 현실에선 한쪽은 승리자로, 또한쪽은 패배자로 남기 십상이다.
물론 무엇을 성공으로 보느냐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터이다. 부와 명성 같은 세속적 성공의 잣대엔 초연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분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신념을 갖고 추구하는 확신범들이지,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세상을 경기장으로 간주하는 ‘선수’(이기는 삶을 먼저 따지는 부류를 이렇게 불러보자)들을 이들 ‘민간인’(옳고 그름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들은 결코 이길수 없다. 생각과 행동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민간인들이 세상을 일차원적으로 본다면 선수들은 사차원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상은 미안하지만 공정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이 속에서 민간인들이 살아남는 방법을 말해도 된다면 첫째, 선수의 삶으로 전향하기 둘째, 개인주의적 도를 닦아 나름대로 잘살기 그리고 셋째 보다 교활하게는, 민간인의 탈을 쓴채 선수로 사는 방법이 있다.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 측면에선 이런 식으로 생존 또는 승리하는게 가능할지 모른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받쳐주거나, 내부의 착한 밀고자(미국 기업 엔론의 회계부정이 드러난데도 이런 Whistle Blower가 큰 몫을 했다)가 있어 ‘사회 정의’의 실현이 어느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방법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다.
▼마음의 정치학, 그 권력의 모순▼
세상에서 제일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내 마음이다. 뼈속까지 선수이거나 사기꾼이 아닌 이상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지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게 마음이다.
여기에도 권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Feeling Politics(마음의 정치학. YS식의 ‘感의 정치’를 떠올리지 말았으면 좋겠다)에 있어서는 더 많이 마음쓰는 사람이,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이 사랑 또는 증오하는 사람이 영원한 루저(Loser)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다. 왜 그런줄 아는가. 자식이 부모를, 자식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보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맞은 놈은 발뻗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속담도 이젠 유효하지 않다. 당한 자가 더 속끓인다. 대부분의 권력관계에선 더 많이 가진 자가 이기게 돼있으나 마음의 정치학에 있어서는 그렇지 아니하다.
여기엔 사필귀정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죽기 전에 진실이 밝혀지면서 상처를 입힌 자가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아름답게 막이 내리지만, 현실에선 글쎄 모르겠다. 그게 얼마나 가능한지.
오죽하면 미국의 베스트셀러 ‘Life Strategies’를 쓴 닥터 필이 “세상엔 평생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엔 자신 때문에 타인이 고통받는 것에 대해서 손톱만큼도 개의하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고 했을까.
▼“너의 죄를 사하노라”…용서의 미학▼
그런데 며칠전 ABC TV ‘오프라 쇼’를 보고 나는 알게 됐다. 마음의 정치학에선 가장 높은 차원이 바로 용서라는 걸.
17년전 거의 시력을 잃을 만큼 자신을 때렸던 남자친구에 대해, 13년전 단돈 43달러를 뺏기 위해 부모를 죽이고 자신을 강간한 자에 대해, 출연자들은 “그를 용서함으로써 나는 평화를 얻었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분하고 그자를 괘씸해 했는지는 이루 말할수 없죠. 하지만 다른 사람이 과거에 나한테 준 아픔 때문에 현재까지 내가 괴로워한다는 건, 그가 계속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가 돼요. 차라리 용서를 하면 그걸로 나는 과거로부터 놓여날 수 있어요. 그러면 난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수 있게 돼요.”
2차 세계대전중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의미를 찾음으로써 사람은 살수가 있다고 했다. 모든 일엔 의미가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지독한 일이라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 보다는 낫다. 나를 단련시키는 불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면 나는 조금이라도 성장할수 있다. 그런 기회를 내게 주었으니 되레 내가 고맙다.
진정한 용서는 패자의 위선이 아니다. 패자가 승자 되는 관계의 역전이다. …그만두자.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이기고 지는게 무에 그리 중요하랴. 한꺼풀 벗기고 보면 그도 나도 다 애쓰고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인 것을.
source 동아일보<김순덕의 뉴욕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