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전 지방에서 연고 하나없는 인천으로 올라와서
남동공단의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기숙사생활을 하였습니다.
촌놈이 대도시에 처음 올라와서 전철도 처음 타보고 전철역 게이트의
입구와 출구를 구분하지 못해 나오는데로 들어갈려구 할정도의 엄청난 시골놈이였습니다.
동암역에서 택시타고 썰렁한 남동공단 까지 가는중에 부슬비까지 내려 참 우울한 하루였죠.
이때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고, 안구에 습기부터 찹니다.
창성정밀(지금은 망함) 금형설계실에서 근무했는데, 실력이나 경력이 안되다보니
설계과장님이 그리라는 도면이나 그리고, 복사심부름이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말이 기숙사지 반지하 빌라 방 두개짜리에서 또래 애들이랑 생활했고,
방 한개는 파키스탄 노동자 3명이서 차지하는 비좁은 생활이였습니다.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저녁 7시 퇴근인데, 일이 많은 설계실은 밤 10시까지 일하는게 보통입니다.
일요일 구분 없이 출근하여 일했는데, 그당시 월급이 297000원입니다.
그렇게 몇달을 생활하고 군대나 다녀오자는 심산으로 15년전 의무경찰에 지원하여 입대합니다.
부평서 남동서 서부서등 이때 인천 지리를 많이 알게 된거 같습니다..
동구나 중구 지리는 아직도 어둠!
군대(의경)을 제대하고 나니 설계기술은 드래프터가 아닌 모두 CAD로 바뀌었더군요.
삼년만에 세상은 순식간에 바뀐것을 실감했습니다.
(동기들은 야간대 다녀서 현재도 설계일을 하고 팀장 위치에 있음)
군 제대후 순경시험을 볼까하다가 생각보다 경찰일이 힘들고 위험하다는것을 느꼈습니다.
평생직업으로 생각한게 철도공무원(현재 철도공사로 바뀜) 시험이였습니다..
3개월을 도서관에서 대충 공부하고 10:1정도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습니다.
그당시는 현재처럼 공무원이 인기가 없어서 좀만 공부하면 거의 합격입니다.
6개월간 철도공무원 연수원에서 교육받고 발령나기만을 기다림..
(일이년정도 기간걸림)
자격증이야 많았지만 그걸로 마땅히 할일은 없고, 한국샤프에 입사합니다.
청천동에 있는 한국샤프 오디오 조립라인에서 일했는데,
하루종일 전동드라이버로 볼트를 채우는 일이나
납땜일만 하루 종일 하는 단순 노동였습니다.
한국샤프 다닐때 월급이 45만원이고,
월급가지고는 월세내고 생활비도 모자라서 공장일이 끝나고 퇴근 후 저녁부터는
부평역 로타리에 있는 빌딩 2층의 필(지금 없어짐)이란 레스토랑에서 01시까지 웨이터일을 했습니다.
13년전 부평역 근방 철도길(남초등학교쪽)옆 단칸방에 보증금 백만원에 월 팔만원짜리로 시작함
전철길옆 바로 옆이라 전철이 끝나는 12:30분까지는 소음과 진동으로 잘수가 없었죠.
전철이 끓겨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전철 첫차 시각인 5:30분에 자동으로 깹니다.
전철이 지나면 진동으로 방바닥과 창문이 흔들거렸고,
새벽에는 가끔 화물을 실은 기관차가 지나가서 시끄럽게 합니다.
이때가 인생 최고의 춥고 배고프던 시절였지만
살림살이(티비.냄비등 주방기구) 하나 하나 장만할때의 기분은 좋았습니다.
1000만원짜리 원룸 이사
2000만원짜리 원룸 "
4200만원짜리 빌라 "
7500만원짜리 빌라 "
현재의 아파트까지 집을 늘려갔습니다.
한국 샤프를 그만두고는 계산동에 있는 나드리 쇼핑몰 건축현장에서 막노동을 합니다.
막노동일이 끝나자 부평엡스건물 앞에 있는 삼미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합니다.
접시닦이 그만두고 부평역 먹자골목에 있는 중국관(현재 사라짐)에서 배달일을 합니다.
서운동 일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새로오픈한 찡구짱구란 분식점에서
고액의 임금과 신형 오토바이를 받고 전문적인 배달을 합니다..
다시 부평공단에 있는 섬유공장에 취직하여 섬유 염색일을 합니다.
원단을 뜨거운 염색약에 넣었다 빼었다 하는 일인데 겨울에도 더워서 훌렁벗고 일함
섬유공장은 일이 힘들어서 대부분 동남아시아인들이고 한국인은 절 비롯하여 몇명 안되었습니다.
공장다니면서 밤에는 부평의 시맨스 클럽이란 재즈바에서 서빙일을 합니다.
얼마후 동양화재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고 3달간 교육받은후 보험판매를 시작합니다.
이때 서울시내 빌딩을 다 돌아다녔고, 건물에 들어가려고 경비들과 많이 실갱이 하였습니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직업을 경험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네요
과거를 회상해보면 정말 파란만장한 삶이였던거 같습니다.
어려운 과거가 있기에 지금도 흔들림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는게 아닌지
이일 저일 닥치는대로 해보니 사람이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겠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고,
시험 합격후 몇년만에 철도청에 발령나서 입사하여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첫월급이 75만원으로 기억되요.
위에 글은 99% 실화를 바탕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