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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회 옹이 밝히는 '야인시대 어디까지 진실인가'

김지영 |2002.10.19 11:11
조회 2,998 |추천 0

'우미관' 앞 결투는 없었다, 드라마'야인시대'허와 실
구마적과 대결은 실제 조선극장 공터에서, 극적 승부 없이 싸움은 길어야 2~3분
일본 순사 눈 피해 한밤에 싸워` 어디까지가 진짜야?'
시청률 50%의 벽을 훌쩍 뛰어넘은 SBS 시대극 `야인시대'는 역사속 실제 인물과 정황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을까. 김두한의 유일한 생존 친구 김동회옹(85)을 통해 야인시대의 허구와 진실을 알아봤다.

 우미관 앞은 만인이 모이는 종로의 결투장?=그렇지 않다. 그곳엔 실제 작은 골목 정도의 공간밖에 없었다. 인파가 모일 수도 없는 곳이다. 김두한-구마적 대결은 우미관(종로구 관철동)의 길 건너편 조선극장(종로구 인사동 금강제화 근처)뒤 공터에서 이뤄졌다. 당시 두사람 모두 체계화된 조직을 거느리지 못했다. 조직의 `오야붕'대 `오야붕'간 정식 `타이틀 매치'는 장충단공원 또는 수표교에서 벌어졌다. 장충단공원은 수십명이 들어설 수 있는 최적의 결투장이었다.

 일본 경찰은 늘 싸움을 방관했다?=일제하 치안은 현재보다 철저했다. 결투 사실을 입수하면 당장 출동해 예비금속(긴급체포)후, 유치장에 가뒀다. 그래서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끊긴 한밤이나 새벽에 했다. 양측 수하들 수십명이 집결한 가운데 은밀히 싸움을 치른 것이다. 물론 결과는 입소문을 타고 다음날 아침이면 온 종로 바닥에 퍼졌다.

 우미관은 `종로 주먹왕'의 거점이었다?=주먹들이 가끔 드나들긴 했지만 결코 그들의 거점은 아니었다. 구마적 등 주먹왕들이 상주하는 시설도 아니었다. 다소 허름하고 단조로운 3~4층 구조물이었고, 멀리서 겨우 보일 정도의 작은 간판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우미관의 관리와 운영권을 쥔 주인은 엄연히 따로 있었다.

 구마적-김두한의 결투는 극적인 한편의 드라마?=지난 15일 방영된 김두한-구마적의 결투처럼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극적으로 승부를 뒤집는 경우는 현실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결투는 길어야 2~3분이었다. 특히 김두한은 두발차기 한방으로 속전속결했다. 무기를 쓰지 않고 결과에 승복하는 룰은 사실 그대로다. 그러나 집단싸움의 경우 룰이 지켜지지 않아 사상자가 나왔다.

'설향'
기생 아닌 中 영어교사 고유 미인상 김두한 여인중 가장 인텔리
'애란' 구출
문영철 애인 구하려 '혼마치칸 기습' 실제 불가능 설향이는 실존 인물?=비슷한 인물은 있었다. 하지만 기생이 아니었고 당시 중학교 영어교사였는데 한국고유 여인상으로 대단한 미인이었다. 해방전후 김두한과 함께 투옥됐을 때 극진한 옥바라지를 해줬다. 22년간 지켜봤는데 김두한을 거쳐간 여인 중 가장 인텔리이자 순정파였다.

 김두한은 늘 정장차림이었다?=맞다. 전투에 편한 `핫바지'에 고무신을 신었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고무신 신고 어떻게 싸우나. 또 명색이 `오야붕'인데 부하들 앞에서 핫바지가 뭔가. 정장을 하고 다니다 결투시엔 외투를 벗거나 갈아 입었다. 재킷은 투 보턴에 깃이 넓고 길었다. 구두도 늘 신었는데 구둣방에서 특별제작한 권투화 모양이었다.

 김두한이 비련의 여인을 구하기 위해 `혼마치칸'을 기습, 5000원을 강탈했다?=혼마치칸(지금의 명동 대연각 부근)에 홀로 침입, 5000원을 빼앗아 빚 때문에 팔려갈 위기에 놓인 문영철의 애인 `애란'을 구하는 장면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도 나오지만 허구다. 혼마치칸은 통로가 하나뿐인 철통같은 요새라서 맨몸으론 침입이 불가능했다.

 하야시의 처제 나미코는 실존인물?=그렇지 않다. 극의 재미를 위해 끼워 넣은 인물이다. 당시 하야시에게 처제가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조선에서 술집을 경영했던 처제는 없었다.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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