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나이 차이는 20년 정도. 그러나 고운 이미숙과 철부지 막내동생 같은 류승범은 아주, 썩 잘 어울렸다. ‘나이가 오십이든 육십이든 내가 사랑하는 한 당신은 여자’라며 사랑을 고백하는 젊은 청년 앞에서 이 사랑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여자의 사랑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열다섯 살 된 딸을 둔 미혼모 경민과 유학을 마치고 그녀의 회사에 입사한 20대의 청년 영우. 바로 이미숙(42)과 류승범(22)이 맡은 역할이다. 두 사람은 드라마 ‘고독’에서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진다. 표민수 PD는, 드라마 ‘거짓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기주의를 깼다면 ‘바보 같은 사랑’에서는 돈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다루었다. 연상녀와 연하남 커플을 불륜이 아닌 사랑으로 다룰 드라마 ‘고독’은 겉으로는 아름답지만 ‘속이 텅 빈 고목 같은 여자’의 마지막 사랑 얘기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진정 사랑한다면 고독은 없어질 것이라는 소망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이미숙이 3년 만에 출연하는 드라마. 2년 전 ‘슬픈 유혹’이라는 특집극을 보고 표민수 감독에게 반한 그녀는 표PD와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말했다.
“제가 맡은 조경민이라는 여자는 열다섯 살짜리 딸을 둔 미혼모예요. 대학교 때 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가졌고 출산했지만 그 남자에게는 비밀에 부치죠. 소극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 일만 하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그녀에게 ‘젊은 아이’가 다가와요. 스물다섯 살의 부하 직원. 그녀에게는 그가 남자가 아닌 아이로 보이죠.”연상과 연하라는 조합에는 늘 ‘불륜’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미숙은 ‘불륜’이 아닌 ‘사랑’으로 연상과 연하의 만남을 지켜보는 시선이 제일 맘에 든다고 했다. 영화 ‘정사’에서 호흡을 맞춘 이정재와 류승범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정재씨와는 10년 정도의 나이 차이지만 시대를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어요. 그런데 승범씨는 굉장히 틀려요. 세대가 완전히 다른 느낌. 제가 어린 후배들하고 잘 동화되고 세대 차를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고 자부했는데 이번엔 안 돼요. 그래서인지 더 신선한 느낌도 있고.” “이미숙 선배님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저런 분하고 공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굉장’해 보였거든요. ‘커’ 보였다고 할까요. 그런데 얼마 되진 않았지만 실제 성격이 너무 ‘털털’하셔서 많이 편해졌어요.” 헝클어진 머리, 양복바지에 스니커즈를 신은 모습이 묘한 균형을 이루는 류승범. 스물두 살의 류승범, 과연 그가 고혹적인 여자 이미숙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이미숙은 ‘떨그럭떨그럭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것이 오히려 매력적인 커플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예고편에서 잠깐 미리 만난 ‘영우’의 캐릭터에 류승범은 아주 잘 동화된 모습이었다.
“많은 분들이 철진이의 이미지를 버리지 않고 계신 것 같은데, 그런 선입견을 깨고 싶었어요. 제가 어딜 봐서 멜로 드라마 배우처럼 보이겠어요? 그래도 ‘류승범식 사랑’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저만의 색깔로 사랑을 그려낼 거예요.”
실제 40대인 이미숙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자기 또래의 주부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남자들은 20년 연하의 여자와 사는데 여자는 왜 안 돼요? 이게 다 편견이에요. 처음에는 영우를 귀여운 동생쯤으로 생각하다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열게 되는 경민의 심리 변화를 시청자들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사랑을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내 또래의 주부들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연상 연하 커플의 남자는 으레 남성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로 그려냈던 이전 드라마의 상식도 깰 생각이다. 늘 가난하고 어렵지만 밝게 살아가는 청년을 연기했던 류승범은 처음으로 엘리트 냄새가 나는 인물을 연기한다. 그는 ‘영우’를 통해 남녀간의 사랑이 이성간의 사랑 외의 것도 있다는 것,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사랑에 빠진다면 어떨 것인가 물어봤다.
“저는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사고 방식도 그렇고 좀 구닥다리에 가까워요. 그래서 사회 통념에 어긋난 사랑은 못할 것 같아요. 아직 어려서 ‘사랑’이 어떤 건지, 어떻게 시작되는 건지도 잘 몰라요. 아직까지는 편한 친구 같은 사이가 더 좋아요.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또래와 사랑하는 게 더 좋죠.”
촬영이 계속되면서 영우와 경민의 사랑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두 사람. 세련되지만 사랑에는 소극적인 여자와 투박하지만 순수한 모습의 남자가 만들어내는 사랑은 그래서 더 깊고 강하게 전달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