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떻게 샜는지도 몰랐다. 밤새 할아버지의 그 이상한 행동에 대해 생각을 하다 새벽녘에 얼핏 잠이 들었던 민석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로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아침잠이 덜 달아나서일까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민석은 간밤의 일어났던 일들이 마치 악몽을 꾼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도 변함없이 마을로 일을 나가면서 민석은 아침 일찍 그 무장공비가 도망을 갔다고 믿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신이 그 놈을 숨겨주었다는 것이 나쁜 일이기에 그냥 모른 체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민석은 걱정이 되어 일을 마치자마자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집에 다다른 민석은 재빨리 울타리에 몸을 숨겨야만 했다. 어젯밤 그놈과 할아버지가 서로 얘기를 하고 있어서였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얘기를 나누다가도 다시 서로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했다. 두 사람으로부터 좀 떨어져 있던 민석은 그 대화를 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 두 사람의 대화보다는 마을 이장의 말과 어젯밤 군인들이 했던 말만이 민석의 머리를 울리고 있었다.
'짐승만도 못해! 사람을 여섯이나 죽였소! 짐승만도 못해! 사람을 여섯이나 죽였소! 짐승만도……."
민석은 그 길로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허겁지겁 마을 이장의 집에 도착한 민석은 헉헉거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이장에게 사실을 알렸다. 민석의 말을 들은 이장은 즉시 군에 알렸고, 잠시 뒤 민석은 출동한 군인들을 따라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한 군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집을 포위했다.
"너는 이제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군인들 중 대장인 듯싶은 사람이 계속해서 소리를 쳤지만 집 쪽에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침묵이 흐르다 갑자기 집 쪽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을 향해 소리를 치던 군인이 안에서 다투는 소리를 듣고 집안으로 발을 들여놨을 때 할아버지의 방에서 '탕!'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민석은 가슴이 철렁하며 정신이 아득해져왔지만, 방문이 열리면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할아버지가 나오자 집을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은 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고 민석은 할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할아버지는 뭔가에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다가는 털썩 마당에 주저앉아 버렸다. 민석은 그런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마루에 앉혔다. 할아버지를 마루에 앉히며 방안을 힐끔 보니 방안에는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군인들이 말하기를 자살 한 것 같다고 했다.
그 날 저녁 민석은 오랜만에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민석이 신고한 덕분에 무장공비를 잡았다며 쌀 한 가마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충격을 받으신 것 때문인지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오늘 저녁만 여기서 자고 내일은 마을로 내려가자며 민석과 같은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내내 혼자 잠자리에 들다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같이 누워서인지 민석은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는데 할아버지도 잠을 자지 않았는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민석아! 너 혹시 비익조(悲翼鳥)라는 새에 대해서 아느냐?"
"……."
민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할아버지는 푸념하는 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얘기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새는 정말 비극적인 운명을 지닌 새지. 그 새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반쪽이란다. 그래서 날 수도 없지.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야 한쪽뿐인 날개로는 날수가 없거든. 그러나 그 새가 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란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날개의 반대쪽 날개를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비익조를 만나면 날 수가 있지. 근데 자기의 반대쪽 날개를 가진 비익조를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만났다 하더라도 두 놈 중 한 놈이 크거나 작으면 몸이 맞지 않아서 날 수가 없게 되지. 그래서 그들은 한평생을 슬픔 속에서 살아간단다. 그런 그들을 보는 다른 새들은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지. 다른 새들은 혼자의 힘으로도 하늘을 날아다니거든. 아무도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지. 그것은 그들만의 슬픔이니까……."
힘없는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면서 민석은 어느 새 잠이 들어버렸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를 잠을 자고 난 후 민석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이 꽤 밝아 있었다. 분명 할아버지가 깨워야 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리지가 않았다.
민석은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할아버지를 찾았지만 마당에도, 부엌에도,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잠시 어디 가셨겠지라고 생각을 하려해도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진정을 하려해도 진정이 되질 않자 민석은 정신없이 산 속을 내 달렸다. 그러다 그만 학바위 옆의 한 늙은 소나무 아래에서 우뚝 서버렸다. 어디 가셨겠지라고 생각을 한 할아버지가 그곳에 힘없이 매달려 있어서였다.
어떡해야 될지 몰라 가만히 서있던 민석은 떨리는 손으로 나무에 매달려 있는 할아버지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눈물은 계속 나서 앞이 자꾸 뿌옇게 변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할아버지의 목에 감겨있는 줄을 풀어낸 후 도저히 서 있을 기운이 없어 할아버지의 옆에 주저앉자 할아버지의 품안에 있는 편지 한 통이 보였다.
꿈만 같았다. 아니 꿈을 꾼 적도 없으니 꿈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의 기억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를 만나다니……. 처음으로 안긴 어머니의 품. 그것이 나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어머니의 느낌이었다. 누구한테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만 지금 나와 어머니도 기쁨과 슬픔이 뒤엉킨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를 부둥켜안은 체 울고 만 있었다. 그런 우리를 보며 북에서부터 같이 왔다는 나의 친형도 가만히 선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첫날 만나는 두 시간 정도의 시간중 한 시간은 그렇게 서로를 안은 채 울기만 했다. 어머니는 우는 내내 '미안하다. 이제야 와서……. 정말 미안하다.'라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그동안 이 에미 원망 많이 했지. 미안하다."
어느 정도 복받치던 감정이 가라앉은 후 나는 자리에 앉아 천천히 어머니의 모습을 살펴봤다. 이제는 칠순이 넘은 모습에는 그동안 겪은 고생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때 너도 데려갔어야 했는데 넌 너무 어려서 네 형만 데리고 갔었던 것이 이렇게 되다니……."
잠시 말을 하던 어머니는 또 눈물이 나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널 만나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다고 내내 말씀하시더니만, 결국은 이렇게 만나게 되는 구나."
어머니가 말을 하지 못하자 형이 말을 이었다. 나와는 세 살 차이라는 형은 나이에 비해서 더 들어 보이는 외모가 고생이 심했었다는 말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근 오십 년을 떨어져서 지냈기에 어색하기도 할 텐데 만나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정이 드니 이래서 피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동안 어찌 살았니? 할아버지와 둘이서 고생이 많았지."
갑자기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순간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던 그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네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같이 오질 못했다. 그 사람도 널 무척 보고 싶어했는데……."
어머니의 입에서 아버지의 얘기가 나오자 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정말… 정말 죄송해요! 아버진..... 아버지는……."
내가 갑자기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울자 어머니와 형은 놀랐는지 어리둥절해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용서를 빌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도 용서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셨던 어머니는 천천히 내가 잡았던 손을 빼내신 후 울고 있는 나의 등을 토닥여 주셨다.
"어머니… 제…… 제가… 아… 아…버지를……."
할아버지의 품에서 편지를 빼낸 민석은 천천히 그곳에 써있는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편지를 읽을수록 자꾸 눈앞이 흐려졌고 결국 민석은 땅에 엎드려 소리치며 울고 말았다.
"민석아! 이 할애비는 먼저 가련다. 부질없는 희망하나로 지금까지 이 늙은 몸뚱이를 이끌고 온 것도 이제는 소용이 없으니……. 너만 홀로 세상에 남겨두고 가는 것이 맘에 걸리지만 우리 민석이는 잘 살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민석아, 아버지의 시신은 꼭 찾도록 해라. 시신만이라도 꼭 찾아서 양지 바른 곳에 묻어야 한다. 누가 뭐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네 아버지인 만큼 부끄러워 하지 말고 되도록 빨리 아비의 시신을 찾거라. 그게 이 할애비의 마지막 소원이구나."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