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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걸 - (2) 슈퍼맨을 만나다.

아랑 |2006.05.02 22:55
조회 982 |추천 0

 

#2. 슈퍼맨을 만나다.


 나윤은 꿈자리조차 그녀를 뒤숭숭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 못마땅했다. 김 이사가 걱정하는 일을 해결하려면 넋 놓고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지금 상황을 버티고만 싶었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야! 강 나윤 강 작가님아~ 제발 전화 좀 받아. 너 집에 있는 거 다 알고 있거든?”

 나윤은 나른한 몸을 일으켜 룸메이트인 은지의 목소리에 천천히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왜?”

 “왜는 지금 빨리 나와. 내가 괜찮은 물건 하나 발견했거든? 지금 빨리 나와”

 “거기가 어딘데?”

 

 은지의 ‘괜찮은 물건’이라는 말에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서둘러 옷을 챙겨 입기에 바빴다.

 

-로빈슨 크로스-


 은지와 함께 일하던 사진작가가 바텐더로 일하는 레스토랑까지 오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사실이 얼마나 놀라웠던지 그녀가 들어서자마자 빨리 오라고 아우성을 치던 은지마저 격하게 그녀를 나무라고 말았다.

 

 “미친 것 너 속도계를 때버리고 왔냐?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30분 만에 와!”

 “네가 빨리 오라며, 그런데 그 물건은?”

 “갔다.”

 “뭐?”

 

 나윤은 은지의 말에 기가 막혀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마치 커다란 망치로 둔부를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레몬레이드를 권하는 은지의 동료에게 울컥 화까지 나고 말았다.

 

 “야~ 화났냐?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는 마라 조금 있다 다시 올 거니까. 아마도”

 “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요즘 얼마나 쓸만하고 괜찮은 물건을 찾느라 애먹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하하 기막혀서 웃음도 안나온다. 아씨~ 종배씨는 뭐가 웃겨서 웃어요. 남 화나서 죽겠는데”

 “크크크 나야 원래 웃음이 헤프잖아요. 그래서 오늘 음료수는 서비스입니다. 작가님”

 “그래그래 열 받지 말고, 이거 마셔. 종배씨가 새롭게 기술 연마한 레몬레이드다.”

 “새롭기는 하~ 웃기셔들. 참, 요즘 유행이 사람 뒤통수치는 거냐?”

 “엥? 그게 뭔 소리야?”

 

 은지와 그녀는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하는 사이라지만 왠지 한석의 엉뚱한 프러포즈에 대해서만은 함구하고 싶었다. 이 일이 은지의 귀에 들어가면 어떠한 사태가 될지 불 보듯 뻔하기에 한석과 그녀를 위해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야! 저기 왔다. 으흐흐 어때 참하게 생겼지?”

 

 레몬레이드안을 가득채운 얼음을 입에 물던 나윤은 갑자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문가를 가리키는 친구를 따라 시선을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입에서 차가운 얼음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탁자위로 떨어졌다.

 

 투 다 닥-----

 

 어느새 그녀의 입은 다물어 지지도 않는 것처럼 헤~ 하고 벌리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그가 그 멋진 몸을 움직여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너무 멋지게 생긴 남자에게 시선을 때지 못하던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필사적으로 닦으며, 본능에 충실하려는 듯 그의 눈매를 자세히 관찰하고 말았다.

 

 ‘헉~ 파  파랗다. 아니 심봤다!’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 그녀를 미친 듯이 웃게 만들었다. 눈앞의 남자는 그녀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있는 모습으로 나윤의 친구인 은지와 녹녹한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 갔던 일은 잘되셨나요?”

 “네. 덕분에”

 

 그들의 대화를 간간히 알아들을 수밖에 없었던 나윤은 속이 답답해 터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은지와 대화를 하는 사이사이 그녀를 흘깃거리는 그의 눈매에 완전히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래 내가 원하고 바라고, 찾았던 게 바로 당신이었어. 아니 당신 눈. 오마 이 갓~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전히 저를 버리지 않으시는 군요. 여전히 당신은 저의 태양이십니다.’

 그녀의 감사기도를 제대로 들어주신 걸까. 드디어 은지와 길고 긴 대화를 끝 낸 그가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 주었다. 저 웃음이 주는 의미를 나윤은 또 다른 성공이 목전에 놓였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이~ 하하 하하하”

 

 그녀는 우선 어설픈 인사말로 그와 대화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맞은편에 앉은 그도 그녀를 향해 살인적인 미소를 지어주며, 가볍게 그녀가 했던 것처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안녕?”

 “어? 한국말 할줄 아네요?”

 

 그녀의 말이 기분 나빴는지 그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 모습조차 어찌나 멋지게 보이던지 그야 말로 ‘젠틀(Gentle)하다’라는  의미를 실감에 통감하고 있는 그녀였다.  나윤은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아 그를 향해 평소처럼 직설적으로 말을 걸었다.

 

 “나랑 함께 가지 않을래요?”

 

 은지는 나윤의 직설적인 말에 눈앞에 그보다 더 놀라고 말았다. 나윤의 ‘함께’란 의미는 물론 ‘같이 일해보자’란 뜻이겠지만, 저렇게 대놓고 ‘함께 가자’라고 말하면 어느 남자가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까. 정말 어이없이 말을 하는 친구를 도울 생각에 머리가 지끈 거렸다.

 

 “저 저기요. 하하 애가 워낙에 직설적이라서 나윤이의 말은 함께 일해보자 이런 뜻이에요. 조금 전에 제가 조단씨에게 말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 일과 비슷한 거랍니다.”

 

태완은 그제 서야 이해를 한 듯 은지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그녀를 향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웃어주었다. 그가 그녀를 향해 나른하게 웃어 주는 모습에 그제야 안심이 된 듯 은지가 볼일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 나윤은 은지가 가버린 것을 아쉬워하며, 얼음만 가득 차있는 유리컵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기를 10여분 모르는 사람과 아무런 말도 없이 10여분을 보내기란 정말 지옥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리 그가 잘난 사람이라도 숨 막히게 싫은 게 말 안하고 있는 지금인 것 같았다.

 

 “성함이 조단씨? 죄송해요. 제가 워낙에 입이 거칠어서. 하지만 제 글을 보시면 맘에 드실 겁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게 되시면 절대 후회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그리고 누가 당신이랑 일한다고 말했나?”

 

 은지와 함께 있던 그는 신기루처럼 사라진 건지 그의 차가운 한마디에 나윤의 머릿속이 까마득하게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뭐지 이 기분?’ 나윤은 생각보다 더 차갑게 눈을 빛내는 남자를 향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수습해야만 했다. 그의 태도는 마치 새내기 기자를 다루는 듯 능수능란한 그것과도 같았다.

 

 “하긴 당신이 날 언제 봤다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하고 싶겠어요. 그 맘 이해해요.”

 

 나윤은 남자를 향해 사근사근하게 웃어 주었다. 우선은 그를 설득시키는 것 밖에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세계에 속한 사람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그녀가 써놓은 시나리오에 맞는 사람이라는 확신만을 앞세워 그를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당신 같은 분이 저와 함께 일을 하신다면 더없는 영광이겠는데........”


 태완은  눈앞의 여자가 보이는 헤픈 웃음에 그녀를 자신의 선 밖으로 밀어 내고 싶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 올 때 알게 된 송은지라는 여자가 뜬금없이 자신에게 패션잡지에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을 때부터 탐탁지 않았다. 한국을 찾은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친모를 찾는 것과 미국에서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는 것인데 이제 와서 언론에 공개되어 피곤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당신에게 영광이 되기 싫은데”

 

 눈앞의 이 남자 무슨 말이든 단번에 거절을 하는 그런 무례한 남자였구나. 그래도 나윤은 왠지 눈앞의 시건방진 남자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하지마하지마’ 그러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그녀의 심리였다.

 

 “좋아요. 그럼 당신 스스로 영광이 될 거에요.”

 

 태완은 눈앞의 조그만 여자에게서 나오는 대단한 자부심에 어이없이 웃고 말았다. 뭐랄까. 그녀는 왠지 다른 여자들과는 조금쯤 달라 보이는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그로 하여금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you is not also a pride (당신은 자존심이란 걸 버린 여자 같군.)”

 “네?”

 

 나윤은 갑작스런 그의 영어에 알아듣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의 남성다운 허스키한 목소리에 반해 ‘어떻게 하면 저런 목소리를 가질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오. 잠시 당신이란 여자가 대단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하하  대 대단하긴요. 오히려 당신이 더 대단해 보이는 걸요.”

 

 나윤은 어떻게 하면 그를 구슬릴 수 있는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사이 그가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쩜 좋아 그를 붙잡아야 하는데....... 연락처를 물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생각은 일시에 행동으로 옮겨져 그의 옷소매를 붙잡고 말았다. 그가 당황한 듯 그녀를 바라보는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뭐지?”

 “아........ 저 그러니까. 연락처를 물어 봐도 될까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전화기에 대고 간단히 뭐라고 말한 다음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을 그녀에게 건 내 주었다. 그의 행동에 넋이 나간 나윤은 남자의 휴대폰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난 무지 바쁜 사람이야. 당신처럼 일일이 사람을 쫓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라고, 어서 뭐해 당신 전화번호를 넣어”

 “네? 아~ 넵.”

 

 그제 서야 그가 보인 행동을 이해하다니 나윤은 자신의 어리버리한 행동이 한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서둘러 나가는 그를 붙잡아 그의 휴대폰에 자신의 폰 번호를 입력시키는 것 까지 성공을 했다는 사실이 실로 기쁠 뿐이었다.

 

 “이름이 뭐지?”

 “강나윤”

 

 그는 그녀가 불러주는 대로 곧잘 핸드폰의 입력란에 주입시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왠지 기분이 들뜨는 것 같았다. 그가 나가버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바텐더 일을 보던 은지의 동료가 그녀를 은근슬쩍 놀리기 시작했다.

 

 “나윤씨 표정 묘하네. 마치”

 “마치 뭐요.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할라고. 워워~”

 “쓸데없는 소리는 나윤씨 아까 그 남자에게 홀딱 반한 거 맞지?”

 “누 누가요. 난 일적으로 그 남자가 맘에 들었을 뿐이라고요.”

 “기집에 너 물밑작업 다 끝났냐?”

 

 어느새 자신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은지가  그녀의 등을 심하게 때리며,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녀는 수중촬영이라도 하고 왔는지 아까완 다르게 머리가 젖어 있었다.

 

 “어? 너 언제 왔냐?  그리고  누가 물밑작업 했데 난 엄연히 직업정신으로 다가....... 야! 그런데 너 머리 왜 이래? 수중촬영이라도 있었냐?”

 “딩동댕~ 누가 아니라니 오늘 촬영해야할 부분이 수중촬영이었거든”

 “진짜? 어우야~ 좋았겠다. 참 배우는 누구였는데?”

 

 은지는 나윤의  물음이 어이없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한석과 새로운 브랜드 촬영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새 한석의 일을 잊어버리다니 이건 필시 안 좋은 징조였다. 아까 한석의 표정만으로도 무언가 짚이는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서 왠지 그들의 행동이 수상쩍기 이를 대 없었다.

 

 “뭐냐? 니들 싸웠냐?”

 “어? 뭘 누가 싸워?”

 

 나윤은 누구랑 촬영을 했냐는 질문에 싸움이라는 말로 대답을 하는 은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어렵푸시 한석이와 만나기로 했다는 은지의 말을 들은 것이 떠올랐다. 그렇담 혹시 한석이 놈이 함부로 입을 놀리지는 않았을 것인데.......  나윤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은지의 시선을 피하며, 요즘 들어 부쩍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만 느껴졌다.

 

 “그런데 왜 그래 너처럼 한석이 일 발 벗고 나서는 애가 너처럼 한석이 일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왈가왈부 하던 애가 아니지 시시콜콜 참견하던 애가 왜 오늘 촬영 있다는 말을 못들은 척 하냐고? 혹시 너”

 “뭐? 내가 어쨌다고?”

 “니들 뭔 사고라도 쳤냐? 아니면 한석이 놈 혼자 천하의 강나윤이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큰 사고를 쳤든가. 뭐냐 대체?”

 “그런 거 없다. 괜한 가십거리 만들지 마라.”

 

 은지는 그녀 아니 그들의 행태가 수상하기만 했다. 아니 미심쩍었다. 분명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기는 한데....... 도대체 그 무언가가 무언지 종잡을 수 없는 게 그녀의 한계였다. 캐스팅 건 만 해도 그렇다 나윤의 시나리오를 본 그녀와 김 이사도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당연히 한석이라고 생각하고 만 있었는데 어째서 이제 와서 다른 누군가를 찾으려 용을 쓰는지 나윤의 속을 알다가도 모를 지경이었다.  당체 비밀이 많은 그녀였기에  이번일도 아무런 질문도 없이 넘어가보려고 했지만, 자꾸만 의심에 꼬리가 늘어가기만 했다.

 

 “그렇게 처다 볼 거 없어. 네 말대로 내가 한석이를 너무 오랫동안 움켜쥐고 흔들었는지도 모르잖아. 이젠 그놈 훨훨 날아가라고 놔주고 싶다. 그러니 더 이상 나와 한석이를 엮을 생각일랑 버리시지.”

 “쳇~ 말 같지도 안은 소리 집어치워. 너 같은 노계가 감히 한석이 같은 영계를 넘볼 심산이었냐? 넌 진작부터 한석이 놈에게 미련을 버려야 했어.”

 “킥킥 누가 아니래.  우리 같은 노계를 누가 좋아~라 하겠냐.”

 “이거 왜 이래 넌 노계라도 난 아니다. 이래 뵈도 아직까지 이 바닥에선 잘나가는 송은지님 이란 말이지 움 하하하”

 “강 작가 이 사람 너무 띄워 주지 말아요. 송양 이거나 마시고 정신 차리시지 둘 다 우리들이 보기엔 오십보백보니까.”

 “뭐예요! 이런 버릇없는 친구가 다 있나. 야! 강작가 우리 그만 가자 우리가 너무 많이 놀아 줬나보다.”

 

 그녀는 은지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카페를 나섰다. 어둑해진 하늘빛이 곧 비라도 한줄기 쏟아 놓고 말 것처럼 우중충하기만 했다.  봄이라고 하기엔 음산한 날씨가 솔로인 그들을 더욱 외롭게 만드는 듯 했다.

 

 ‘따라라~ 라 라라라~ 랄 라라~’

 

 여지없이 울리는 그녀의 핸드폰을  원망어린 시선을 담아 한껏 노려보았다.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군지 확인 하는 순간 긴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김 이사의 전화였기에 차마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네.”

 “어이~  강 작가 어디야?”

 

 평소보다 몇 곱절은 녹녹해 보이는 목소리로 그가 그녀를 찾고  있었다.  나윤은 어제의 일을 생각하니 김 이사에게 괜한 심술을 부려보고 싶었다.

 

 “왜요. 내가 어디서 뭘 하든.......”

 

 김 이사는 그녀가 괜한 심술을 부리는 걸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그깟 노처녀 심술 따위가 무슨 대수겠는가. 어제 저녁  한석을 만났던 일을 떠올리며,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안 바쁘면 나랑 저녁이나 함께 하지”

 “....... 왜요? 무슨 일 부려먹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하하 이봐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당신들 등이나 처먹는 그런 몹쓸 인간처럼 들리잖아.”

 

 어제와는 사뭇 다른  그의 말투에 나윤의 직감은 안 좋은 쪽으로 자꾸만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 회식비도 아까워 스리슬쩍 피하는 양반이 내가 무슨 예쁜 짓이라도 했다고, 이른 오후부터 저녁타령을 할까. 김 이사의 좀처럼 볼 수 없는 후덕한 인심에도 그녀는 갈수록 심드렁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 이사님은 그 말을 하면서도 양심에 가책도 안 느끼죠?”

 “뭐?  뭘 느껴?”

 “아  아니 됐어요. 저녁도 됐고, 당분간 혼자 있고 싶으니까. 되도록이면 나란 존재 잊어 주세요.”

 

 휙! 그녀의 전화기가 어느새 은지의 손에 들려있었고, 그녀는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 난 것처럼 김 이사와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나윤은 은지의 그런 모습에 기가 막혔다.

 송 은지. 그녀가 김 이사 김 석재를 맘에 두고 있다는 걸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의 막나가는 성질에 차마 은지와 그가 잘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는 은지의 말에 꼼짝 못하는 몇 사람 축에 들어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 될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나윤이 보기에 1%가능성에 목숨 걸기를 좋아하는 은지인지라 차마 그녀를 실망시키는 말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자.”

 “뭐? 야? 어딜?”

 “그냥 따라와 이씨~”

 

 은지의 거친 행동에 차마 반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그 비싸다는 해밀턴호텔의 스카이라운지까지 질질 끌려오고 말았다. 은지를 보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지배인이 그들을 향해 문을 열어 주고, 조용한 룸으로 안내해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스카이라운지의 밤 배경을 바라보고 서있는 김 이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 야! 송 은지 너!” 

 

 나윤은 설마하면서 따라오긴 했지만, 정말로 그가 여기 있다고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나윤의 성격상 한번 화나거나 틀어진 사람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그녀 스스로 화가 풀릴 때까지 절대로 먼저 만나거나 하지 않는 것이 그녀의 성격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친구란 사람이 그녀를 이렇게 물을 먹이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그녀를 화나 게 했다.

 

 “나윤아 화낼 거면 집에 가서 해라. 우선은 네 늦은 27번째 생일이나 축하하자!”

 

 은지의 변명과도 같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웨이터들이 미리 준비한 음식들을 줄줄이 나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더욱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윤은 할말을 잃어 가고 있었다.

 

 “생일 축하해. 강 나윤 작가 그리고 이건 강 작가 평소에 원하던 거야.”

 “어? 이건.........”

 

 김 이사가 준비한 뜻밖의 선물에 나윤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 감동을 받고 말았다. 그녀가 평생 단 한번 소원이라고 생각하고 이루어지길 바랐던 그 어머 어마한 크루즈여행이었다.

 

 “어때? 맘에 들어?”

 “네. 감사해요. 그런데 이거........”

 

 김 이사가 준비해준  선물은 한 장이 아니라 두장이었다.  너무나 비싼 선물을 두장이나 준비한 김 이사를 바라보며,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건 당연히”

 “당연히 너랑 네 남자친구랑 같이 가라고 김 이사님이 큰마음 먹고 선심 쓰신 거네. 맞죠. 내말이?”

 

 석재는 갑자가 그의 말꼬리를 잘라 대신 말하는 은지를 바라보며, 모처럼 좋았던 기분이 엉망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두 장중 한 장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뭐. 그렇다고 해두지.”

 “하하 거봐. 나윤아 난 생일 축하를 좀 있다가 해줄게. 네가 깜짝 놀랄 선물이 기다리고 있거든”

 “뭐? 그게 뭔데?”

 “핏 지금 말하면 재미없잖아. 한 5분만 더 기다려 보자.”

 

 은지는  무언가  대단한 선물을 준비한 사람처럼 초초한 모습으로  시계만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한 5분여의 시간이 지나고 10분이 다 되어 갈 무렵 세 사람의 조용한 저녁식사를 방해하는 노크소리와 함께 스위트룸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하이~”

 

 은지가 말한 뜻밖의 선물은 다름 아닌 그였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내가 초대 했어. 앉으세요. 조단씨”

 “그러기 전에 소개부터 해주는 게 어때.”

 

 석재는  문을  열고 들어선 낯선 이방인으로부터 왠지 모를 불쾌감을 느꼈다. 늑대의 직감으로 볼 때 굉장한 분위기를 몰고 들어온 그가 범상치 만은 않아 보였다.

 

 “네. 그럼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 이분은 클라크 조단씨 미국과 프랑스에서”

 “제 소개는 제가 하죠. 그래도 괜찮죠. 은지씨?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저를 은지씨가 너무 과장되게 소개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는 일부러 은지의 말을 잘라버렸다. 시시콜콜 그의 일을 다 떠벌리려는 건 왠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은지는 조단의 말에 할말을 잃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오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조단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입으로 말하듯 하찮은 사람이 아니란 걸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가 보아온 사람들 중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살고 있는 사람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시는 일은?”

 “의류 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의류 업이요?”

 “네.”

 

 조단은 일부러 자신의 일을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누군가에게 그럴싸하게 보여 지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자신의 일을 떠벌리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경영의 일선에서 한발 물러선 그저 조언이나 해주는 위치에 있는 그로써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나윤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의 조용한 목소리에 일제히 모든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차마 친구가 준비했다는 선물이 눈앞의 조단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물질적인 욕심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나 뜻밖의 일에 입속을 맴도는 말을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그러니까. 에......... 은지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죠?”

 

 엉뚱한 그녀의 질문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궁금하진 않지만 새로운 호기심으로 채우길 갈망했다. 한번도 저렇게 멋진 남자를 만났다는 걸 은지에게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문뜩 떠올렸다.

 

 “정말, 송은지씨는 어떻게 이런 멋진 분을 알게 된 거요.”

 

 은지는 나윤의 질문을 똑같이 되풀이 하는 자신의 이름을 한번도 은지라고만 불러주지 않는 멋없는 남자를 바라보며, 괜한 질투심을 유발하고 싶었다. 왠지 이번이 아니면 저 남자의 속내를 알아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마저 그녀를 마구 다구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조단씨를 만난 건 가수 JJ의 음반작업에 쓸 사진과 뮤비를 찍기 위해서 유럽으로 갔을 때죠. 그때만 해도 조단씨가 JJ의 잠깐의 파트너로 출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인연이 없었을 거예요. 안 그런가요? 조단씨?”

 

 느끼함.  저 느끼한 눈빛은 뭐지?  나윤은 갑자기 목소리를 저음의 허스키로 변화시키는 은지의 말투에 온몸이 소름 돋도록 움찔거렸다. 게다가 상대방도 그녀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라니 정말 어이상실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건 아닌가 싶었다.

 

 “나도 그때 은지씨를 못 만났다면 한국까지 올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고 있어요.”

 “뭔가 두 사람만의 긴밀한 일이 있는 모양이로군.”

 

 나윤이 듣기로도 꽤나 삭막한 어투로 말을 하는 석재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사실 그가 평소의 성격대로 한다면 웬만큼 차갑게 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지만, 그녀 즉 송은지 앞에서는 늘 유유자적한 모습만 보여 왔던 사람이란 게 지금 이 순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뭐야? 설마 그 차가운 아이스 맨이 은지를?’

 

 나윤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고 있는 사이 은지의 다음 말이 그녀를 또 다시 놀라게 했다. ‘선물이라니? 약속이라니?’ 도대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일어나는 일을 도저히 이해하거나 감당하기 힘들어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나윤이 은지를 향해 질문을 던지기 전 석재가 재빨리 은지를 다그쳤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나무라듯 그는 거칠게 질문을 던졌다.

 

 “뭐라 긴요.  여기 계신 조단씨를 제가 사랑하는 룸메이트 강나윤의 27번째 생일 선물로 준다고 했죠. 나윤아 생일 축하한다. 이사님이 너한테 준 선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번에 기획한 시나리오에 조단씨가 출연하기로 결정 하셨단다.”

 “congratulates you birthday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은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단이 그녀의 생일을 형식적으로 축하하는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의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그가 그 일을 승낙했다는 게 그녀로써는 믿기지 않았다.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야! 강 나윤 정신 차려! 네가 그렇게도 원하던 일인데 왜 표정은 하나도 안 기쁜 표정이야?”

 “어? 아니 아니야. 기뻐 무지무지 기뻐. 3일전에 지나간 내 생일이었던 때보다도 더 기뻐”

 “정말로 당신이 우리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겁니까?”

 “네”

  

조단은 자신의 강렬한 인상만큼이나 너무도 강력하게 석재의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윤 역시 자신도 모를게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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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쳤나 봅니다.

제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사랑이란 흔한말에

온몸으로 환희를 느끼다니요.

그래서

네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여러분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순간 순간을 떠올리며,

또다시 많은 분들의 가열찬 리플을 기다려봅니다.

늦은 밤...... 행복한 사람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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