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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상이나 불상을 우상이라는 이유로 파괴하는 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으로도 옳지 못합니다.

돌아온 탕자.. |2006.05.17 20:36
조회 975 |추천 0

그동안 개신교 일각에서 단군상이나 불상을 우상이라는 이유로 파괴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행위는 결코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서도 단군상이나 불상 파괴를 광신적인 행위로 비판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광신이나 맹신은 결코 신앙의 정도가 아니며 불신보다 더 무서운 해악을 끼치기 때문에 광신자는 결코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단군상이나 불상을 파괴하는 행위가 왜 옳지 못한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서 설명을 드립니다.

 

1. 세상법에 저촉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 있지만 세상의 법도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법은 인간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2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하고 증거했습니다.

 

  "권세에 굴복하라"는 것은 세상의 법을 지키라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심판을 자취한다고 했는데 법치국가에서는 국법을 어긴 사람은 그 법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제정된 세상의 법도 준수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군상이나 불상을 파괴하는 행위는 질문자님의 말씀처럼 재물손괴죄에 해당합니다. 즉 남의 재산에 손상을 입히거나 파괴하는 죄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단군상과 불상이 우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파괴하는 것은 세상법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세상법을 어기는 것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성경말씀을 거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단군상이나 불상을 파괴하는 것은 옳은 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2. 우상파괴 조항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나라의 법이었습니다.

 

  단군상이나 불상을 파괴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근거로 우상을 파괴하라는 구약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민 33:52).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그 당을 훼파하고 그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그 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왕하 11:18).

 

  그런데 그들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우상을 파괴하라는 것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나라에 주어진 법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그들이 이룬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였습니다. 율법은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당신의 뜻대로 살게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나라에 주신 국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신정국가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우상을 파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오히려 이것은 법을 시행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의 법이 세상 모든 나라의 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헌법이 대한민국의 헌법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일 누가 미국 땅에서 자기 나라의 법으로는 적법이지만 미국의 법으로는 위법이 되는 행위를 했다면 미국의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이스라엘의 율법을 우리 나라에 적용시켜서 우상을 파괴한다면 이것은 법과 사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위법행위입니다.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일부 극렬신도들의 단군상 및 불상 파괴행위를 지지하지 않는 것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3. 우상에 대한 개념의 변화입니다.

 

  '우상'이란 단어는 기독교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용어이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우상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의 우상은 사람이나 그밖의 것들을 형상화한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하나는 형상이 있던 없던 하나님 외의 다른 거짓 신이며, 다른 형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며 만든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은 이와 같이 여러 형태의 우상을 숭배하다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사서 이방 민족에게 나라를 잃는 심판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이와 같은 형태의 우상숭배가 별로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구약 중간시대의 유대인 해방전쟁인 마카비 전쟁의 영향으로 유대인들이 구약시대의 우상숭배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의 유대인들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이 행한 것과 같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과는 달리 우상파괴에 대한 기사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우상의 개념을 확대하여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을 더 신뢰하거나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24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소유를 삶의 중심가치로 삼는 것을 우상숭배로 간주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8-25에서 우상숭배란 유일신 신앙으로 진화해가는 인간 종교의 첫 단계가 아니라 고의적인 종교적 배교의 결과라고 가르쳤습니다. 즉 인간이 자연이 계시하는 창조주를 섬기기를 거부하면 그로 인해 부끄럽고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신약성경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을 우상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면 그 돈이 우상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보다 명예를 더 사랑하면 그 명예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4에는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하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탐심이라는 것은 구약시대의 우상숭배자들이 섬긴 것과 같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탐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탐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게 하므로 우상숭배라고 일컫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약성경에서 정의하는 우상은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을 더 신뢰하거나 더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의 최후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의 불못에 떨어지는 형벌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계 21:8).

 

  오늘날은 이스라엘에 주어진 율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구약시대가 아니라 복음이 전세계에 전파되고 있는 신약시대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법과 신약의 법이 상충하거나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면 신약의 법을 우선해야 합니다. 세상의 법도 구법(舊法)보다 신법(新法)이 우선으로 적용되지 않습니까?

 

  우상이란 의미의 이같은 개념 변화에서도 단군상이나 불상을 파괴하는 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으로도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단군상이나 우상을 파괴하는 행위가 옳지 못한 이유에 대해 몇 가지를 들었습니다.

 

  물론 기독교는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과 다른 종교의 우상을 파괴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단군상이나 불상을 숭배해서는 결코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파괴하는 행위는 바른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기독교인들 가운데 광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광신도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무리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광신은 불신보다 더 위험하고 더 무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신은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고 전도의 길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많은 안티 세력을 양산한 원인 중의 하나도 광신적인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바르지 못한 삶의 모습입니다.

 

  이곳 지식인에도 광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바르지 못한 답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곳에 올리는 수준 이하의 글들은 자신들의 저급한 신앙수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하고 말씀하시면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신도들의 가장 큰 착각은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2에서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율법을 맹신하는 유대교 광신도에 다름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출회하고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고 했지만 실상은 그들의 큰 착각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큰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바른 신앙의 삶을 살아가려면 삶에 있어서나 신앙에 있어서나 행위에 있어서도 비그리스도인들의 칭송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할 수 있었던 원인 가운데는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던 점도 있습니다(행 2:47).

 

2006년 3월 13일 * 샬롬방 신앙공동체(shalombang.com) 김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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