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맑은 하늘은 세상속에 깃든 슬픔과 어려움을 모두 떨쳐 버린듯 맑게 투명하게 그리고 우리의 검은 눈동자를 파랗게 비추어주느듯 했습니다. 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 옆에 함께 있어주는 그녀와 닮은듯 보입니다.
한국에 돌아온지 6개월 남짓이 지난 지금 제 곁에는 윤정이가 있습니다.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버린 그녀는 제 친구가 사랑했던 한 사람입니다. 그녀를 바라보면 언제나 전 제 소중했던 친구얼굴이 떠올라 문득 문득 그리워 집니다.
친구와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12년된 우정을 간직한 사이입니다. 그가 살아있다면 말입니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그 친구는 어려운일 힘든일이 있을때 속에 간직하고 애써 미소를 띄우면 소주 한잔을 하자고 하던 그런 친구입니다. 누구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 친구는 예술계 쪽 학과를 지원하려는 것을 반대하시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의대에 들어간 친구가 어느날 제 앞에 데려온 그의 애인이 바로 윤정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직은 수줍은듯하고 아직은 애띄어 보이는 소녀티를 벗지 못한 여자였고 친구는 그녀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둘의 사이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어느날 제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그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의 목소리는 윤정이었습니다. 제 친구가 몇일째 연락도 안되고 집에서 나간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 후 저에게 친구의 부모님께 전화가 왔고 전 그 친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가 사라진지 보름이 지난날 저에게 친구의 전화가 왔고 우리는 속초의 한 회집에서 만났습니다. 연거퍼 몇 잔 소주를 마시던 친구의 얼굴은 더욱 말라보였고 창백해 보였습니다. 한 병의 빈 소주병이 만들어지고 입을 연 제 친구의 첫 마디는 윤정이와의 결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왜...무엇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는것일까 궁금했으나 묻지 못했고 또 다시 제 앞에는 한병의 소주병이 비워졌습니다. 몇시간이 흘렀을까 친구는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말했고 자기가 하고 싶다던 미술 공부를 하러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윤정의 얘기는 뒤로 한채 유학에 대한 성공만을 바라며 축하하고 격려해주었던 그날의 제가 친구의 건강도 챙겨주지 못했던 바보였다는 사실에 눈물이 고입니다.
유학 갔다던 친구는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그의 소식은 6개월뒤 걸려온 그의 어머님의 전화 한통으로 전해들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뛰어간 병원 빈소에 친구의 사진이 걸려 있고 모두가 망연자실하며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수 없었습니다. 그 곳에서 6개월만에 만난 윤정의 수척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우리를 허망하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왜 저에게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려주지 못했던 것일까요. 저에게 말해도 자신의 시간이 늘어나지 못했기에 아니면 진정 그를 위해줄수 없는 그런 친구였던 것일까요. 전 묻고 싶었으나 그의 사진은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제게 그가 남긴 것인 한통의 작별의 편지 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제가 슬퍼하며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이 그로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바보같이 조금은 더 추억을 만들어놓고 가버리던지 하늘은 제게 소중한 친구를 주었으나 금방 데려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윤정이를 위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해주지 못한 것을 저보고 해달라는 멍청한 말만을 잔뜩 하얀 편지지위에 써놓았습니다.
그럴수는 없었습니다. 전 그녀를 바라볼수 조차 없었습니다. 전 그의 영전을 뒤로 한채 돌아온후 다음해에 시애틀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내던 세월속에서 L.A로 가게 되었고 그곳 마켓에서 물건을 사던 한국인 여인을 보았는게 그게 3년만의 윤정이였습니다.
아트스쿨로 유학온지 일년이 된 그녀는 많이 변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친구의 그림자는 그녀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듯 보였고 제가 그녀 앞에 있으면 그 그림자는 영원히 드리워 지지 않을것 처럼 보였습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제게 윤정이는 연락처를 주었고 친구의 기일날 윤정이는 전화속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친구의 그리움의 상처를 가진 그녀를 내가 조금은 치료해줄수 있을까...자신이 없었고 확신도 서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떠난후 세상과의 벽을 결코 허물것 같지 않았던 그녀와 가지는 시간이 하루 하루 길어졌고 지금 제 곁에는 매일 매일 그녀가 옆에 있습니다.
친구가 사랑했건 그녀가 지금 제 옆에 있는것입니다. 용서해 달라고 친구에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수 없습니다. 저는 먼저 귀국을 했고 그해 9월 그녀도 귀국을 했습니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정이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욕을 해달라고요. 저를 나쁜놈이라 욕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친구들은 용서해줬습니다.
하지만 전 제 친구에게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지금까지도요. 하지만 전 하늘의 제 친구에게 다짐했습니다. 당신이 소중했던 그녀에게 당신이 아꼈던 그사랑 만큼 깊은 사랑을 주겠다고 푸른 하늘만을 보여주겠다고요. 비구름이 몰려와 그녀에게서 파란 하늘을 보이지 않게 하면 제가 그녀를 그 구름위로 데려가고 그러지 못하면 파란하늘의 그림을 그려주겠다고요.
오늘은 서울의 하늘도 푸르게 보입니다. 스키장의 하얀 풍경을 좋아했던 그 친구가 보고 싶은 겨울입니다.
올해는 친구가 잠든 제주도 하얀바다에 그녀와 가서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언제나 소중한 저와 그녀와 제 친구가 함께 하는 2003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