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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女戀愛白書 [남여연애백서] -09

양윤정 |2006.06.07 09:25
조회 487 |추천 1

스튜디오로 들어선 여진은 괜히 들떠 있었다. 모델은 정후인데 여진이 한술 더떠 호들갑이다. 티비에서나 볼 수 있는 스튜디오의 광경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다니.. 감개무량할 뿐이다.  CC라는 잡지가 어디서 나오는 잡지인지 몰라도 무척 잘 팔리는 잡지인 듯 싶다. 옷걸이에 잔뜩 걸려 있는 화려한 옷들과, 모자며, 벨트, 반지, 목걸이.. 모두 고가의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여진의 관심이 집중되는 건 방송용 카메라였다.


“이거 디게 비싸다던데.. 그쵸?”


정후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카메라의 렌즈를 닦고 있는 사진작가에게 다가가 여진이 묻자 너 이런거 처음 보냐? 라는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진작가.


“어디서 오셨어요?”

“아..네. 저기.. 모델, 친, 친구에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친구라고 둘러댔는데, 이정후와 친구라는 말이 영 어색해서 여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쭈뼛 웃고 만다. 더 이상의 관심이 없다는 듯 렌즈만 닦고 있는 사진작가의 옆에 뻘쭘하게 서 있기 민망했는지 여진은 자리를 옮겨 스튜디오 구석진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대체 오늘 안에 사진을 찍기라도 하는거야? 도대체 언제 나오는건데..’


옷을 입으러 간 게 언젠데 이 정후는 나올 기미가 안보인다.

처음에는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게 신기해서 호들갑을 떨었던 여진이 시간이 지나자 지루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피부 맛사지 상품권에 눈이 멀어 CC잡지 관계자들보다 더욱 솔선수범해서 정후를 끌고 왔던 것도 내심 후회 된다.  그놈의 피부 맛사지 상품권이 뭐라고 이정후가 거절하는데도 극구 데리고 왔는지.. 아니다. 곧 30대를 바라보는 여진에겐 피부 맛사지 상품권은 꼭 필요하다. 요즘 밤샘작업에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하다보니 피부가 많이 상했다. 뾰루지도 나고, 눈가에 주름도 잡히기 시작 하는 게 피부가 귤껍질과도 같았다. 여은이의 화장품을 몰래몰래 퍼다 쓰는 것도 한 두번이지, 이러다가 30대가 되기도 전에 피부노화가 시작 될 듯 싶었다. 여진에게는 피부맛사지 상품권이 절실히 필요했고, 공짜로 생기는 피부맛사지 상품권이라면 더더욱 갖고 싶어졌다.

‘사진 촬영비는 너 갖고, 피부 맛사지 상품권은 나 갖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이런걸 사자성어로 일석이조.’

공짜로 받은 상품권으로 맛사지를 받고 난 뒤 십대의 탱탱하고 깨끗한 피부를 상상하자 여진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 촬영 시작합니다.”

사진작가의 말이 끝나자, 조명이 켜지고 이정후가 모습을 나타냈다.  잡담을 나누고 있던 스텝들 모두가 그의 모습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이정후씨 긴장하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떨 거 없습니다.”

사진작가는 약간 긴장하고 있을 정후에게 그리 말했다.

하지만 웬걸?  긴장했을 거라 생각한 이정후는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의외로 당당했다. 시키지도 않은 온갖 폼을 잡으며 카메라 앞에 섰고, 사진작가와 스텝들은 모두 그의 폼 나는 포즈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여기 또 한사람. 스튜디오 구석에 자리 잡고 앉은 여진도 정후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 눈이 미치지 않고서야, 저 남자가 멋있어 보이다니.’

마치, 조인성과, 강동원을 보는 것 같다. 아니, 그들보다 더 멋있어 보인다.  메이크업때문인지 조명때문인지 모르지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온다. 가슴에서 콩닥콩닥 소리가 나고, 볼이 발그랗게 물이 들어버린다. 어찌된 일인지 단 한순간도 이정후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 남자, 팔색조다. 입고 나오는 옷들 족족, 어쩜 저리도 잘 어울릴까.

가슴팍이 다 보이는 브이넥 티셔츠도, 꽃 나비 모양이 화려한 프린트 남방도, 은은한 광택이 느껴지는 실크 소재의 정장도 이정후는 모두 소화해냈다. 옷 발도 어쩌면 저리도 잘받을 까 싶을 정도로 요즘 떠오르는 예쁜 미남답게 섬세하며 여성스럽고, 섹시하며 로맨틱하기도 했다. 역시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그 멋진 날개를 걸칠 옷걸이 역시 중요하다는 걸 여진은 오늘에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여진은 손으로 입술을 닦아냈다. 입을 헤~ 벌리고 구경하느라  침 까지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CC잡지 실장의 말대로 이정후는 올 여름 남성복 패션코디와 딱 맞아떨어지는 모델이었다.  구릿빛 피부에 근육으로 똘똥뭉친 남자들의 세대는 갔다. 이제 메트로 섹슈얼의 시대, 이쁜 남자들이 뜨는 시대다. 더 이상 여자만 이쁜 옷을 입을수 없다며, 남자들도 화려하고 예쁜 옷을 입겠다고 나섰단다. 그래서 거리엔 여자만큼이나 예쁜 남자들이 넘쳐났고, 여자만큼 옷에 신경을 쓰는 남자가 넘쳐났다.

 

“이정후씨 좋아요. 그 포즈 완벽해요.”

 

사진작가는 신바람이 온갖 칭찬을 퍼부으며 정후에게서 카메라를 떼지 않았고, 스텝들도 이번 잡지는 대박날 거라며 수군거렸다. 

마치 패션쇼장에 온 것 같은 사진 촬영이 끝난 뒤 정후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마에 땀이 맺혀있어 다소 지쳐보였지만 그는 무대에서 만큼은 훌륭했다. 여진은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어땠어요?”

수건으로 땀을 닦은 정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었다.

“뭐.. 봐줄만은 했어요.”

“봐줄만은 했다뇨. 완벽하지 않았어요?”

“너무 웃더라. 이정후씨는 웃음이 너무 헤퍼.”

“그럼, 카메라 앞에서 무표정으로 있으라고?”

“입에 경련나는거 까지 다보이니 문제지.”

멋있으면 멋있다고 칭찬을 해줘야 하건만, 여진은 영 삐닥하게 군다. 멋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인정하기는 싫은 이 못되먹은 심보는 도대체 무엇인지...

 

 

“필름 한 장이 남는데, 이 정후씨 괜찮으면 여자친구랑 사진 한방 더 찍읍시다.”

“아니에요. 됐어요. 그리고 저 여자친구 아닌데...”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으라고 했지만 여진이 손 사레를 치며 일언에 거절했다. 하지만, 정후는 여진의 손을 끌고 무대위로 올라갔다. 여진이 빼는데도 정후는 끝까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공짜니까 그냥 찍읍시다. 저 필름, 무지 비싼거라 호박도 수박으로 나오니까 걱정 말고.”

여진이 정후를 팩 노려보았다. 호박도 수박으로 나와??

“자~ 여자분 너무 떤다. 좀 웃어봐요.”

사진작가가 스마일을 부르짖자 여진은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세겨 넣었지만, 입에 본드를 붙여놨는지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이정후씨가 여자분 어깨에 손도 좀 올려보고. 자 찍습니다. 스마일”

찰칵~ 소리와 함께, 정후와 여진의 얼굴이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사진 찍어줘서 고맙다며 소품용 곰인형을 선물로 받은 여진은 고개를 내빼고, 뭔가 진중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실장과 이정후를 훔쳐본다. 실장과 연신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는 걸로 보니, 이번 일을 계기로 CC잡지와 손을 잡으려는 모양이다. 연예인이 꿈인 이정후에게는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여진에게는 맛사지 상품권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고.

“뭐래요? 다음에도 또 오래요?”

“거절했어요.”

“왜요?”

“난, 모델이 되고 싶은게 아니라, 배우가 되고 싶으니까.”

“요즘은 만능 엔터테이너가 유행인데, 가수도 하고, 모델도 하고, 연기도 하고.”

“난, 엔터테이너보다, 배우 이정후가 더 좋거든요.”

“오디션만 봐서 언제 붙을지 모르잖아요. 그냥 모델하다가 연기자 되는 게 빠르지 않나? 아까 들어보니까 채민서도 CC잡지 모델하다가 데뷔했다던데.”

“내 신조가 뭔지 알아요?”

“글쎄요.”

“한길만 뚫자!”

“푸하하하하하”

“왜 웃어요?”

“인생이 무슨 뚫어뽕이에요? 한길만 뚫게?”

한길만 뚫자는 정후의 신조에 여진은 뚫어뽕 생각이 나서 웃음보가 터졌다. 그만 좀 웃으라고 말해도 여진은 눈물이 찔끔찔금 나올 정도로 웃어댔다. 그런데, 참 마음에 드는 신조였다.  그동안 얼굴하나 믿고 연예인 되려는 속물로만 봐왔는데 좋은 기회를 버려두고 진정한 연기자를 꿈꾸는 이정후가 여진은 진정으로 멋있어보였다. 그리고, 그만의 신조가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여진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로서, 이정후와의 공통점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같은날 동시에 차인것과, 진정한 드라마 작가와 연기자가 되기 위한 미래의 꿈.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여진과 정후는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히 찍은거 같아.”

여진은 사진작가의 등살에 정후와 찍은 사진이 영 마음에 걸린 모양인지 툴툴댔다.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했는데도  찜찜하네.”

“찜찜할 것도 많네. 재밌는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나쁘지 않았잖아요. 선물로 요 곰인형도 받고.”

여진의 품에 안겨있는 곰인형의 귀를 만지며 정후가 말했다.

‘뭐야, 곰인형으로 입 싹 씻으려고? 맛사지 상품권은?’

여진은 맛사지 상품권과, 촬영비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정후가 못마땅했다. 뭐, 모델은 정후가 했으니 촬영비에는 눈독 들이지 않는다 치지만은 맛사지상품권은 기다려줘서 고맙다며 여진에게 줘도 되지 않겠나 싶었는데, 정후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촬영비 얼마 받았어요?”

여진이 은근슬쩍 묻는다.

“오십만원.”

“와~ 많이 받았네. 또 뭐 받았어요?”

“맛사지 상품권.”

“이정후씨는 피부 좋아서 맛사지 안받아도 될거 같은데.”

“그런가? 하긴, 내가 한 피부하지.”

“부모님 드리려구요? 아님 여동생?”

“나, 외동아들이거든요. 그리고 부모님은 줘도 안가시더라구.”

“그럼 어떡할라구요?”

“뭐? 이거?”

이정후가 피부맛사지 상품권을 꺼내어서 여진의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자 여진이 군침을 삼킨다.

이여자의 속셈을 알았다. 바쁘다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스튜디오까지 ?i아온 이여자의 속내는 바로, 이 피부 맛사지 상품권이었다. 그녀의 속내를 눈치챈 정후는 살랑살랑 흔들고 있던 상품권을 냅다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다.

“아, 옆집 사는 동생 갖다 줘야 겠구나. 수험생이라고 공부하느라 피부가 많이 상했던데.”

“아니, 무슨 수험생이 피부 맛사지라고...”

“아니죠. 수험생일수록 피부에 신경을 써줘야 한다니까.”

“십대는 안 해도 다 예쁠 나이에요. 나처럼 나이 먹은 아가씨들한테나 필요하지.”

“하긴, 여진씨는 관리 좀 받아야겠다.”

“그렇죠? 저 피부 맛사지 한번 받고 싶었는데.”

“가서 받아요. 좀 비쌀 텐데. 한번 받는데 십 만원이던가? 내가 잘 아는 집 있는데 소개 해줄까요?”

절대 피부 맛사지 상품권을 뺏길 수 없다는 것처럼 말을 돌리는 이정후가 얄밉다. 이렇게 눈치를 줬으면 알아먹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백조가 돈이 어딨다고 피부맛사지를... 공짜라면 모를까...”

“그럼, 지금 그대로 살던가.”

곰돌이를 안고 있는 여진의 팔에 우드득 힘이 들어간다. 마치 곰돌이가 이정후라도 되는 것처럼 여진은 사정없이 목을 졸라댔다. 


‘됐다, 됐어. 더럽고 치사해서 안 갖는다. 너한테 기대한 내가 바보 등신이다.’

지하철이 역에 들어왔고, 정후를 모르는척하고 혼자서 지하철 안으로 들어간 여진이 자리에 앉았다. 정후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줄까요?”

“됐네요.”

“정말 됐어요?”

“더럽고 치사하서 안 갖네요. 그냥 옆집 동생이나 갖다 주시죠.”

“장난이에요, 장난. 난 우리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거든요. 여진씨 줄께요. 받아요.”

정후가 주머니에서 피부 맛사지 상품권을 꺼내 여진의 손에 쥐어주려 하지만 토라진 여진은 받지 않으려 했다.


“안받는다니까요.”

“빨리 받아요. 진짜 안받으면 찢어버릴게요?”

“찢던지 말던지.”

“또 나왔다 저 똥고집.  좋아요. 진짜 찢어 버릴거에요,”


정후가 상품권을 찢는 시늉을 하자, 여진은 잽싸게 그의 손에서 상품권을 빼앗았다. 하마터면 귀하디 귀한 상품권이 정후의 손에서 찢겨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리 내요. 이걸 아깝게 왜 찢어요?”


빼앗은 상품권을 고이 접어 지갑 속에 껴놓는 여진은 입술을 쌜죽댔고, 그런 그녀를 보는 정후는 웃음을 삼켰다.

서여진, 이 여자는 공짜 상품권하나에 목숨 거는 참으로 단순한 여자다.   



공짜 피부 맛사지를 받고 몰라보게 달라진 피부에 감탄한 여진은 십대피부처럼 매끈해진(?) 피부를 자랑하기위해 여은이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나 뭐 달라진 거 없니?”


여진이 문지방에 서서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탱탱 치며 묻는다.


“글쎄.. 모르겠는데.”


침대에 엎드려 누워서 잡지를 보고 있던 여은은 별 관심 없는 듯 여진을 한번 훑어보곤 다시 잡지책에 눈을 돌렸다.

“다시 잘 봐봐. 달라졌지?”

어떻게 서든지 “어머, 언니 피부 끝내준다”라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여진은 잡지책 삼매경에 빠져있는 여은의 눈 밑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가.”

어지간히 언니가 귀찮았던 여은은 여진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 냈지만 여진은 얼굴이 밀리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잡지책의 한 면에 보이는 남자 모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몇 주 전에 CC잡지에서 캐스팅 되어 정후가 모델로 섰던 그 잡지였다. 여은의 손에서 냉큼 잡지를 빼앗아든 여진이 손가락에 침을 묻히며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보았다. 대문짝만하게 찍인 정후의 모습이 가득 실려 있었다. 비싼 필름이라고 하더니 실물과는 다소 차이가 났지만 여은이가 침을 흘리고 보고 있을 만큼 멋지게 잘 나왔다.


“여은아, 이 사람이 그렇게 잘생겼냐?”

“그 정도면 잘생긴 거지.”

“잘생긴 사람들 다 얼어 죽었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는.. 성격은 또 어떻고, 완전 개차반이야. 개차반.”

“언니가 이 사람 성격을 어떻게 알아?”

“아는 사람이거든.”


마치 아는 사람이라는 걸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여진이 어깨가 올라갔지만 여은은 그런 언니가 한심스러운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잡지책을 빼앗아버렸다.


“거짓말 하지 말고 이리 내.”

“거짓말 아니야. 나 이사람 진짜 알아. 이름이 이정후야.? 이정후.”

“쯔쯧, 나이 먹더니 거짓말만 늘어서는..”

“거짓말 아니라고.”

“언니, 난 장동건이랑 싸이 일촌이야. 몰랐지?”

여진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 여겼는지 다시 잡지책에만 집중하던 여은이 갑자기 눈을 부비고는 잡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머어머!! 이거.. 언니야?”

여은이 손가락으로 가르 킨 부분엔 여진이와, 정후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떡하니 박혀있었다.

하느님 맙소사!


“아니, 이게 왜 여기에..”

모델같이 멋있는 이정후의 옆에 달덩이 같은 얼굴에 사알짝 눈을 감고 일자로 굳은 입매가 절대 조합이 되지 않는 서여진의 얼굴.

CC잡지 관계자 말대로 꼭 보내준다는 여진과 정후의 사진은 그녀의 염려와는 다르게 무사히 우편으로 도착했고, 조막만한 얼굴 옆에 달덩이 같은 큰 얼굴을 하고 있는 대조되는 사진을 받아본 여진은 기겁을 하며 누가 볼세라 사진을 책상서랍에 처박아두었다. 이로서 증거 인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마이 갓! 전 국민이 다 볼 수 있도록 잡지책에 실린 것이다. 그것도, 마포에 살고 있는 서여진이라는 실명까지 거론되어 있으니 그것이 문제일세.



<마포에 살고 있는 27살의 이정후와 그의 동갑내기 여친 서여진. 안어울릴거 같으면서도 어울리는 이정후 서여진 커플에게는 은밀한 매력이 있다. 잡지촬영이 끝난뒤 인터뷰도중 잘생긴 남친을 둔덕에 가끔은 불안하다고 수줍게 웃는 여진씨의 미소가 천진하다.>



에라이~

“이게 뭐냐고. 뭐? 잘생긴 남친을 둔덕에 불안해? 수줍게 웃는 여진씨? 에라이. 에라이~”

충격적인 사진과 100% 거짓말인 사진 설명에 분을 참지 못해 폭발한 여진은 잡지를 북북 찢어버렸다.



사진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여진은 오후 내내 몸져누웠고, 오후 내내 배꼽 빠져라 웃어대던 여은이가 여진의 방문을 빠끔히 열었다.


“수줍은 미소가 천진한 여진씨, 밥 먹어요.”

“안 먹어.”

“유난이다, 유난. 좋잖아, 잡지에도 실리고...”

“좋은 말? 할 때 나가.”

“아니, 어떻게 잡지에 실릴 생각을 다했데?”

“서여은!”

“화장이라도 하던가. 맨 얼굴이 그렇게 자신 있었어?”

“너어-”

“미남과 추녀도 아니고, 솔직히 비교되더라. 언니 옆에 서있는 남자랑 얼굴 크기.”

“죽을래?”

“경락 맛사지 좀 받아.”



더 이상 참이 못한 여진이 벌떡 일어나 옆에 있는 곰 인형을 여은을 향해 집어 던지자, 여은은 잽싸게 방문을 닫아버린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여진의 입맛이 좋을리 없다. 가뜩이나, 열 받아 죽겠는데 연락없던 친구에게서 조금 전에 전화까지 왔었다. CC잡지에 너랑 똑같이 생긴 여자 사진이 있던데 혹시 서여진 너냐고.. 처음엔 아니라고 발뺌하다가 결국엔 ‘그래 나다, 나” 라고 인정을 하며 전화를 뚝 끊어버리기는 했지만, 집에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여진은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그런 언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밥 먹는 내내 고개를 쳐 박고 웃음을 참고 있는 여은이 때문에 여진은 더 심난해진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소를 해야 하는 건가? 고소를 하자니, 소문만 더 날거 같고. 비참하다. 비참해.

밥알이 모래 알 같다. 참새처럼 깨작깨작 밥알만 새던 여진이 한숨을 푸욱 내쉰다.


“지붕 무너져. 한숨소리에.”

“휴우....”


그럼에도 또다시 한숨만을 내쉬는 여진.

맛사지 상품권과 바꾼 서여진의 초상권은 세상엔 공짜란 없다는 교훈을 여진에게 몸소 깨닫게 해주었다.

입맛이 뚝 떨어진 여진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의자를 밀고 일어나려고 할때 밥을 먹던 여은이 갑자기 생각 난거라도 있는지 이마를 쳤다.


“아, 맞다. 언니야 한 테 할말 있었는데.”

“그 얘기라면 관둬.”

“나 어제 진우 오빠 봤다?”

“진우? 어디서?”

진우를 만났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 여진이 다시 의자에 앉아 여은이의 말에 귀를 귀울였다.

“회식하고 있는 술집에서.. 술마시고 있더라고.”

“누구랑?”

‘누구 랑이겠어. 그 불여시 랑 딱 붙어서 마셨겠지.’

여은이의 입에서 백진우 랑 그 기집애 랑 사이좋게 마셨다는 당연한 대답이 나올거라는 걸 예상 했으면서도 뭣 하러 속만 상하게 그런 질문을 했나 여진은 잠시 후회해보았다.

하지만.

“혼자서.”

뜻밖에도 진우 혼자서 술을 마시러 왔다는 대답이 나왔고, 여진은 믿지 못하겠는 듯 다시 한번 되물었다.

“혼자?”

“안 좋은일 있나봐. 술 많이 취했던데? 옆 테이블 사람들이랑 싸울 정도면 술이 떡이 된거지 뭐. 시비는 그쪽에서 걸었는데, 나중엔 얌전한 진우오빠가 더 달려들더라고. 경찰차까지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여은이의 말에 여진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눈으로 여은을 쳐다봤다.

싸움이라면 죽기보다 싫어하는 평화주의자인 진우가 싸움이라니.. 절대 주먹이 먼저 나가지 않는 남자인데, 싸움에 경찰서까지 가다니..

“잘못봤겠지. 진우, 그런 사람 아니야.”

여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래, 나도 알아. 진우오빠 그런 사람 아니라는거. 근데 맞다니까. 오빠가 취해서는 나한테 그러데? 언니는 괜찮냐고. 아무일, 없냐고.”

“진우가?”

“괜찮을리 있냐고 내가 막 따졌어. 오빠 때문에 울 언니 죽다 살아났다고. 오빠라고 부르기도 싫고 얼굴보기도 싫다고 하니까 미안하다고 하데? 눈물까지 보이던데?”

“넌, 별 시덥지 않은 얘기 까지 진우한테 다하니? 자존심 상하게.”

“혹시, 그여자랑 헤어진거 아닐까? 그래서 후회하고 있거나? 에이. 샘통이다. 행여나, 진우오빠한테 연락오면 절대 받지마. 한번 바람핀 남자 받아주면 버릇돼서 안돼.알았지?”

“.......”

“왜 대답안해? 언니 너, 설마 백진우랑 다시 시작하려고 그러는건 아니지? ”

“걱정마. 안해. 됐냐?”

“아무튼 동생한테 속 없는년 이라고 욕먹기 싫으면 진우오빠 전화 받지도 말고, 하지도마.”


여은은 그리 엄포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여진의 머리속엔 여은이의 경고따윈 들어오지 않은채 진우의 걱정으로 가득찼다.

진우에게 무슨일이 생긴게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진우가 그런 모습을 보일리가 없다. 싸움이라니.. 정후가 술먹고 싸움질을 했다니.. 필시 무슨 일이 생긴것이다. 무슨일이.

여은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사이, 여진은 몰래 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곧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전화기를 들어 진우에게 전화를 걸어보려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 걱정되서 전화하는거야. 옛정이라는게 있지, 경찰서까지 갔다는데 모르는척 하면 그건 사람된 도리가 아니지. 암~”


다시금 전화기를 들어 진우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막 신호가 떨어지려고 할때 여진은 재빨리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미쳤어. 미쳤어. 너 정말 왜 이러니. 신경꺼! 신경끄라고, 백진우가 경찰서를 가던 말던 나랑은 이제 상관 없다고..”


방으로 들어가버린 여진은 침대위에 벌러덩 누웠다. 천청을 쳐다보던 여진이 눈을 감았다.


“나.. 무슨 기대를 갖고 있는거지? 설마.. 백진우가 그 불여시랑 헤어져서, 그래서 방황하고 있는거라고 생각하는거니? 그래서 날 그리워하나, 지금와서 후회하는건 아닌가 그생각 하고 있는거니?”


오후 내내 사진 걱정 때문에 몸져누웠던 여진은 이번엔 백진우 걱정에 새벽 내내 몸져누웠고, 급기야는 피부 맛사지를 받고 탱탱해졌던 피부는 단 하루 만에 일어났던 사건들 때문에 원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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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가 왜 혼자서 술을마시고, 싸움을 하고, 경찰서까지 갔다오는 수모를 겪었을까요??

궁금하시죠??으흐흐흐흐.

그러니까 놓치지 마시고 끝까지 저와 함께 달려주세요~~

 

꼬리말 남겨주신 분들 쌩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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