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0년 후, 채은영은 아주 예뻐졌다.
성형수술은 하거나 살을 빼서가 아니라 그냥 예뻐졌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의 은영은 찌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격에 딱 좋았다. 지겨워 지겨워하다 졸업한 대학생활은 은영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던 것이다.
1. 인기 없는 사람은 성형수술을 해도 인기 없다.
2. 인기 없는 사람은 살을 빼도 인기 없다.
3. 인기 없는 사람은 춤을 잘 춰도 인기 없다.
4. 인기 없는 사람은 유머를 잘 해도 인기 없다.
결국 인기 없는 사람이란 뭘 해도 끝까지 인기 없는 법이다.
가끔은 10년 전 대학 미팅 때 그 끔찍했던 남자애를 생각해본다. ‘지금쯤 어떻게 되어있을까?’하고. 일류대학이라고 들어갔지만, 공부하고 담 싸고 코만 후비던 그 남자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학점도 나쁘고 잘 놀지도 못했다고 했다. 목소리 성형했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하다. 그 애는 애헤헤 헤헤 도널드닥 소리가 나는 목소리를 평생의 BGM으로 깔고 살아야하니 말이다.
그 때 그 애와 뺨따귀를 주고받은 후, 은영은 거지같은 충격으로 미팅, 연애 그런류의 것들과 완전 단절된 생활을 했다. 그런류의 것들과 단절된 생활은 은영에게 인생의 진리에 대해서 남들보다 빨리 깨닫게 해주었다. 타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즉, 인간의 인기란 노력으로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각이나 강의를 제끼는 일들도 전혀 안하게 되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예뻐진 것처럼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대학 졸업 후엔 한 리서치 회사에 들어갔다. 한 오년간 일했는데 오늘이 근무 마지막 날이다. 어제 사표를 집어던지고 오늘 짐을 챙겨 나왔는데 속이 시원했다. 카오디오에서 나오는 제니(제니퍼 로페즈)의 노래처럼.
사건은 그 간 누적된 일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은영이 사표를 내던지게 된 것은 어제의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자체가 코믹하긴 하다. 내일 대통령선거가 은영의 사표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은영의 상사는 유명 여성 CEO로 당대변인이다. 당은 뭐 재벌아들이자 대통령 후보 K가 총재로 있는 보수당이었다. 은영의 상사는 보수당 총재 K의 수족과 같이 일했고 은영도 말이 리서치회사 직원이지 실제로는 당대변인 A의 보좌가 실질적인 업무였다. 당내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K와 B라는 치열한 경합이 있었는데 원로들의 중재로 이번에는 K가 양보하기로 했다. A는 당의 이미지를 위해 양보의 의미로 화합의 장소로 성당을 마련했고 스케쥴에 따라 K와 B는 성당에서 함께 기도를 하며 미사를 마쳤다. 미사 후, K는 양보가 억울했는지, B에게 다음번 대통령선거 후부로 자기를 전격 밀어 달라했다. 하지만, B는 영리한 사람으로 이를 거절했다.
설사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 해도 당내 쟁쟁한 후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K를 전적으로 밀어주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불같은 성격의 K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K는 자기 성질을 못 이기고 코 앞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장 당대변인 A를 불러 경선을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이리저리 눈치보고 사는 A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자신이 뭐나 되는 것처럼 각종 신문사에 후보들의 화합과 이에 따른 리서치 결과를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기자들을 데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를 피다, A는 만만한 상대 은영에게 온갖 분풀이를 해댔다.
“ 다 너 때문이야? 안 그래? 네가 리서치 결과만 제대로 제출했어도 총재님께서 더 빨리 결정을 하셨을 거 아니야!”
은영은 기가 막혔다. 당대변인이자 CEO인 A가 자신이 코너에 몰리자 코너자리에 엉뚱하게 은영을 쑤셔 박을 생각하는 것이다. 은영은 진절머리가 났다. 이때까지 그녀가 은영에게 해댄 행동들도 위험수치까지 올라온 상태이기 때문에 더 진절머리가 났다. 은영은 원래 조사원이었는데, 승진을 시켜준답시고 A가 자신의 보좌 역할 시킨 다음, 온갖 허드렛일을 마구 시켜온 것이다. 당대변인이 된 다음에는 더욱 심해졌고 그 때부터 사람들 많은데서 은영을 모욕을 주는 것은 보통이었다.
은영은 그 길로 차를 몰고 사표를 A 책상에 내던지고 오늘은 바로 짐을 챙겨왔다. 자동차 DMB 방송에서는 B와 K의 경선 사건이 떠들썩하게 보도 되었지만, 은영은 보지 않았다. 제니(제니퍼 로페즈)를 들었다. 극적은 극적이다. 은영이 사표를 던진 날이 보수당 경선 선언일이니.
---Baby when I think about
The day that we first met (the day that we first met)
Wasn't lookin for what I found
But I found you
And I'm bound to find happiness in being around you
[I'm Glad - Jennifer Lopez]
‘그녀는 선거가 끝나도 뻔뻔스럽게 TV를 나대고 다니겠지?’
은영은 제니의 노래와 함께 아파트 단지에 차를 주차하며 몸을 길쭉이 폈다.
몸을 길쭉이 피며 잠시 그대로 있자, 새벽녘 별들이 하늘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름다웠다. 어제까진 몰랐었다. 항상 이맘 때 쯤 퇴근하고 바로 아파트로 들어갔기 때문에 피곤에 지쳐 별을 볼 새가 없었다. 은영에게 홀가분한 지금은 눈 안에 들어오는 별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근데? 저건 누구야?’
새벽녘 별들을 정신없이 바라보는 은영의 시야에, 은영네 아파트 위층 수상한 그림체가 갑자기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