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술자리에서 혈액형 인간학 매니아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재치있는 말에 끌려서 그 날 이후 혈액형 인간학 시리즈를 탐독했습니다. 2대에 걸쳐 혈액형 인간학을 연구한 마사히코 부자가 쓴 혈액형 시리즈는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히 베스트 셀러를 기록 했지요.
그 책은 O형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기술을 하였고, 그 다음이 A형, AB형 B형 순이였습니다. B형은 사회적 관계에서 뒤떨어지는 존재로서, 한 분야에 집중하고 혼자 무언가를 골똘히 하는 일에 뛰어나다고 말합니다. (현재 B형은 매우 특이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기술 되어 있지만, 초기 일본 혈액형 유전학은 B형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전 B형 남자로서 한없는 자괴감에 빠져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껏 살아오면서 실수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면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그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열성적인 유전형질을 물려준 조상님들을 원망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미 나에게 있는 형질은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점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까 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됐지요. 혈액형 유전학에 의하면 이런 면은 O형의 기질입니다. 여담으로 저의 혈액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O형이나 A형이 아닐까 생각을 하곤 하지요.
어느 날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혈액형 인간학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사에 의하면, 혈액형 인간학은 서구 제국주의 시대때 우생학을 근거로 만들어진 학문이랍니다. 동아시아의 혈액형의 분포는 구미와 달리 B형과 AB형이 많습니다. 유럽에서는 O형이 우점종이고 동아시아에서는 A,B형 O형보다이 상대적 많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구미에서는 희귀 혈액형인 AB형이 상대적으로 상당히 많았던 것입니다. (일본은 예외로, A형과 O형이 많고 B형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특히 한국은 전세계에서 AB형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B형과 A형의 비율이 비슷하기 때문이지요.
서구 열강들은 O형은 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기에 순수혈통이고 가장 뛰어난 형질이라 정의를 내리고 동양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B형과 AB형을 평가절하시키지요. 왜냐하면 제국주의 시대때 식민지화 되는 민족의 열등성은 식민지화의 정당한 명분이기도 했기 때문이였지요. 이때, 일본은 근대화를 한창 진행중이었고 서구 문물을 배우러 간 학자들은 이때 우생학에 근거한 혈액형 인간학을 받아 들입니다.
50년대 까지 일본에서는 혈액형 인간학에 대한 연구가 있었으나,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배척을 당하여 그 맥이 끊깁니다. 왜냐하면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고,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의 냄새가 농후한 학문 분야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수년 후 이 연구를 재발견한 인물이 오늘 우리가 읽는 혈액형 인간학의 저자 노미 마사히코와 그의 누이랍니다. 그리고 일본내에서도 이 책에 대한 의식있는 학자들의 배척은 여전하답니다.
그럼 혈액형 인간학이 증거로 내보인 통계적인 수치는? 이 또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통계랍니다. 보통 통계치는 보편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되어져야 하나, 이 책의 저자가 한 통계치는 전혀 보편타당하지 않은 비과학적인 조사로 이뤄졌습니다. 왜냐하면 통계에서 표본 추출 방식이 저자의 임의대로 행해 졌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자료를 총합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한 것입니다.
그럼 혈액형 인간학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인간이란 것이 무언가를 반복하여 암시를 하면 암시하는 방향으로 변해 버립니다. 자신에게 어떤 특성을 당연한 것인냥 정의내리면 그 혈액형의 특징을 어느 순간 몸에 배는 것이고, 그 때문에 자신에 대한 확신은 더욱 강해져서 강한 확신은 더욱 강한 특성을 만드는 것이지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주위 사람들의 경험담은 다분히 미신적인 혈액형문화를 양산하는데에 큰 공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자신을 찾는 길이라 하지요. 어떤 사람은 학문적으로 어떤 사람은 종교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세속적인 목표 추구에 의해 자신을 발견하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월등한 누군가가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기를 바라지요.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누구도 자신을 정의해 줄 수 없습니다. 자신을 찾는 여행은 절대적 존재로 부터 시작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기 때문이지요.
정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