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 성기사 베르시안의 유물을 찾아서.
테이메르력 1300년 3월18일
온몸을 감싸 도는 따뜻한 햇살과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꽤 쌀쌀한 아침 공기는 나의 폐포 하나하나를 자극 시켜 상쾌한 기분을 주었고, 성벽 밑으로 곳곳에 자란 수많은 꽃들은 각자의 향기로 내 후각을 자극 시켜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눈만 뜬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광활 하기만 한 푸르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새들의 놀이터가 됐다. 나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기운을 느꼈다. 뭐랄까... 그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굳이 표현 하자면 온 만물이 소생하는 그 에너지가 나의 몸에도 전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후아~ 이런데서 자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군..."
그때 언제 왔는지 보스칼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당연히 깜짝 놀랄 수 밖 없었다.
"케이아스! 여기서 잤었어?"
"네."
나는 왕자의 말에 대답하며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보스칼에게 물었다.
"보스칼 형!"
"응?"
"어제 왕궁에 자객들이 침입 했던 거 알아요?"
"...!!뭐!? 자객들이? 언제!?"
보스칼은 자객이 침입 했었다는 소리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흥분했다. 솔직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한 달 동안 옌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적이 한 번도 없을 뿐더러, 자기의 계속되는 승전에 보스칼은 약간 교만해 있어서 자객들의 침입을 막을 대책을 전혀 세워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밤에요, 어제 밤, 그때 제가 여기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제니프리 국왕님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구요."
"....그, 그래...?"
"그리고 저 성벽 위의 애꿎은 병사들만 아깝게 목숨을 잃었어요, 그러게 평소에 대책을 잘 세워 두시지 그랬어요.., 쯧, 이래서 교만은 몸에 좋지 않다니까...."
".............제길, 뭐라 할 말이 없군... 케이아스, 너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걸 저한테 물어 보시면 어떻게 해요? 병법에 있어서는 저보다 보스칼 형이 더 밝으실 것 같은데요... 뭐, 그래도 물어 보시겠다면 할 수 없죠, 저라면 성벽 위에 경보 마법을 걸어 놓겠어요, 지금 저 성벽 위에서 지키고 있던 최고 엘리트 병사들이 손쉽게 당했다는 소리는 적들의 실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약한 상대들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니까요... 그리고 성벽 밑, 즉, 지금 이곳을 포함해서 모두 성벽 밑쪽에 궁병과 보병들을 배치 할 겁니다. 물론 왕궁의 최고 정예 부대로요."
"...후우.... 경보 마법이라...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또 좋은 방법은 없어?"
"네, 있긴 있는데요, 그 자객들이 한 무리로 몰려다닌다는 조건 하에 적용 돼야 효과가 큽니다. 물론 그럴 일이 없겠지만요..."
"그게 뭐지?"
"음.... 역시 마법사가 필요한데요.. 자객들이 성벽 위에서 뛰어 내리는 그 순간, 그들이 밟은 부분을 늪지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늪지대에 빠지면 곧바로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은 다음 사살하면 그들은 검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는 겁니다."
"오~! 그거야 말로 아주 손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인데?"
"훗! 그렇죠."
"자~ 그래, 그럼 이제 아침이나 먹으러 갈까?"
나는 보스칼이 이 말을 할 것이라는 걸 기다렸다는 듯, 반문이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요! ... 참!! 그리고 할 말이 있어요."
"뭔데? 해봐."
"........이곳에는 제가 없어도 안전할 것 같습니다. 공주님이 검을 완전히 다루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구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 바로 떠날려구요."
"그래? 이유를 물어도 될까?"
"방금도 말씀 드렸다시피, 제가 공주님을 지켜드리지 않아도 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공주님이 검을 완전히 다루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하니 그냥 어느 정도 하는 기사만 붙여 준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일을 그만 두면 뭘 할 생각인데?"
"그건... 제가 어려서 부터 계속 하고 싶던 건데요, 200년 전에 페르세닌 전쟁 때 라이온경 이라 불렸던 성기사 베르시안님의 유물들을 찾고 싶습니다. 실제로 많은 교단에서 그 유물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유물들을 다 찾으면 위대한 모험가가 될 생각입니다."
"그렇구나... 아쉽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클레오네가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 너 좋을데로 해, 그리고 계약한 날 까진 안돼서 그렇게 많이는 못주지만... 자...여기! 내 작은 성의야 내가 개인 적으로 주는 것이니 너만 알고 있도록 해."
"..네... 감사합니다."
나는 보스칼에게서 금화가 가득 들은 작은 주머니를 받았다. 말이 작은 주머니였지 느껴지는 무게만 해도 처음 계약한 200골드의 무게보다도 더 나갔다.
"참! 그래서 말인데 더글라스 교장님한테도 잘 말해주세요."
"응, 알았어, 그런데 지금 당장 떠날거야? 아침이라도 먹고 가지..."
"성의는 감사하지만 그냥 갈게요, 유물을 찾는 것 말고도 제 나름대로 할 일이 많으니까요."
"..음...그렇구나... 알았다. 나주에 또 만날 날이 오길 바라마, 사람의 일은 사람이 창조될 때부터 이미 계획된 일이라니까..."
"후후, 네, 그럼 저는 방에서 짐 챙기고 이제 그만 가볼게요."
"응, 그래, 몸조심해라."
나는 보스칼과 얘기를 끝낸 후에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대충 샤워를 끝마치고 여기 처음 왔던 그대로 짐을 챙기고 방문을 빠져 나왔다. 그때였다. 갑자기 무언가가 내 얼굴로 날아오는 게 아닌가?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면 쉽게 피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만 날아오는 물체에 맞아 버렸다.
- 퍽
"윽! 뭐, 뭐야!?"
나는 그 물체에 맞고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며 맞은 부위를 만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얼굴을 강타한 물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주의 목소리였다. 나는 방에서 나오다가 내 방문 옆에 몰래 서있던 공주의 주먹에 맞았던 것이다. 꽤 강한 타격이었다. 거의 20초 동안 맞은 부위를 마사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웅크리고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을 동안 클레오네 공주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호호, 케이아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거야!? 감히 당사자가 허락 하지도 않았는데 훌쩍 떠나버리려 하다니... 들어오는 건 쉬워도 나가는 건 어렵다는 걸 몰라? 여기서 나가려면 최소한 작은 송별회쯤은 해야......"
아픔이 다가시고 나는 클레오네 공주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복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에 공주가 복도 끝에 서있는 병사들에게 날 막으라고 소리치자 그 병사들은 내 키만큼 긴 창을 크로스 형태로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나는 복도 바닥에 미끄러지듯 슬라이딩으로 병사들 사이로 빠져나왔다.
"쯧쯧, 바보들! 그런 거 내겐 통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그렇게 내 앞을 가로 막아선 병사들은 뭐 저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병사들에게 미소를 지어준 뒤, 내 맞은편에 있는 창문으로 뛰어 내렸다. 내가 뛰어 내린 높이는 약 3미터, 정확히 2층 정도의 높이였다. 나는 낙법으로 안전하게 착지한 후에 성문 쪽으로 뛰어갔다.
성문 앞에는 서너 명의 병사들이 지키고 서있었고 내가 다가가자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줬다.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고 급하게 밖으로 뛰어나온 공주는 고함을 지르며 병사들을 구박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공주의 구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한테 어서 가라는 손짓만 할 뿐이었다. 그들이 감히 왕족의 명을 어기면서 까지 나를 보내주는 이유는 이렇다. 내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 이들이 내 붉은 머리를 보고 재수 없다며 건들거리며 시비를 걸어왔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내 붉은 머리와 눈동자를 보고 '재수 없다.','기분 나쁘다.'등 이런 말을 하는 것인데 하필이면 이들이 그런 나의 콤플렉스를 건드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뒷마당으로 불러내어 흠씬 두들겨 패 줬다. 그렇게 그때부터 그들은 더 이상 내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한테 얻어터진 그들의 나이가 평균 40대 초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보다 스무 살 씩이나 어린놈에게 얻어맞고 내 앞에서 굽신거려야 한다는 게 그들도 자존심이 무척 상할 것이다. 비록 요 며칠 동안이긴 하지만, 난 그들에게 그 이후로 훼방을 논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저들이 바보인 것이다.
"훗! 고마워요! 바보 아저씨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당장 갈 곳은 없다.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하여튼 우선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상점에 가서 테이메르 왕국의 새로운 지도와 그 오의 여러 가지 여행 장비들을 살 생각이다.
나는 계속 달리다가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닌데 왜 달렸나 싶은 생각이 들어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는 새에 많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거리 한 복판에 들어서게 됐고, 나는 계획 데로 잡동사니 상점들을 찾기 시작했다. 잡동사니 상점은 여행 장비며 무기, 마법도구, 그림, 책, 우표, 특수 제작된 옷 등, 많은 물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 가게인 만큼 최고급 물건들만을 추구하고 잡동사니 가게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곳의 귀족이나 부자들 같은 부류 때문에 이렇게 넓은 도시에서 잡동사니 가게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제길!.. 배고프네... 아침 먹고 나올걸 그랬나? ...... 앗!! 드디어 찾았군!"
나는 왕궁에서 아침을 먹지 않고 나온 것을 후회하며 한참을 걷고 있을 때에 20터 앞에 있는 건물에 정확히 '잡동사니 점' 이라고 쓰여진 작지만 꽤 예쁘게 꾸민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 간판을 보자마자 잽싸게 달려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게 주인 한 명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손님, 어떤 물건이 필요하십니까?"
들려오는 목소리는 40대 이상 되는 남자의 목소리로 굵직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정작 그의 표정만큼은 내 기분을 망치는 표정이었다. 주인이 그러는 이유는 간단하니, 바로 나의 붉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때문이었다. 그의 표정 때문에 기분이 엄청 나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누군지 모를 그 망할 부모가 날 이렇게 만들어놨는데...제길!
"............이봐요 아저씨!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우리나라 지도 좀 줘 봐요!"
"아, 네, 어느 지도를 원하십니까? 200년 전 성 기사 베르시안님이 소유하고 계셨던 지도를 드릴까요? 아니면 요즘 새로 만들어진 지도를 드릴까요?"
"그야 당연히 새 지도.... 아, 아니! 그 옛날 지도로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주인은 뒤로 돌아 잠시 동안 뒤적거리더니 둘둘 말려있는 먼지가 쌓인 허름한 두루마기를 꺼내 카운터의 바(BAR) 위에 펼쳤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이 지도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일 먼저 이 지도는 마법지도임을 알려드립니다. 이 지도의 사용자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길과 방향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능이 있는데요, 사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이 지도를 펼친 상태에서 가고자하는 목적지의 이름을 외치면 길의 방향과 목적지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을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그럼 제가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손님의 고향이 어디시죠?"
"메슬린."
"아! 참!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군요, 한 가지 알려드리지 못한 게 있습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이름을 말하기 전, 짤막한 마법 주문을 외워야 합니다. 외워야 할 주문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뷰어 맵(Viewer map)'이라고 외치면 지도에서 빛이 희미하게 생겨납니다. 그럼 그게 주문이 발동 됐다는 뜻으로 빛이 사라지면 목적지를 말하면 됩니다."
"그런데 난 마법 같은 거 못하는데요?"
"하하.. 괜찮습니다. 이 주문은 꼭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더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주문이니까요."
"아... 그래요? 그럼 한 번 해볼까? ...뷰어 맵!"
내가 시동어를 외치자 지도에서 하얀 빛이 조금 올라오더니 이내 사라졌고, 더 큰 변화는 평범하기만 해 보이던 지도상의 산과 강 그리고 호수, 길 등과 같은 그림들이 테이메르 왕국을 엄청 축소시켜서 종이 위에 올려놓은 듯, 실제 자연과 흡사한 모형이 생겨났다. 그리고 나는 고향 이름을 외쳤다.
"메슬린!"
그러자 그 지도 위에 수직으로 백지장 같은 스크린이 생겨나더니 지금 내가 있는 이 테스메르 도시로 부터 완전 북쪽인 메슬린 도시로 가는 길이 보였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가락이 없는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슬린, 이 도시는 국토의 북쪽인 끝자락에 위치 해 있으며, 지금 지도의 사용자가 위치해 있는 테스메르 수도로부터 약 2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이 도시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은 ‘절망의 숲’을 5일 동안 쉬지 않고 걸어야 통과할 수 있다. 그렇게 그 숲을 통과 한 다음 이틀 동안 더 가야 메슬린에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절망의 숲’에 들어가는 것을 삼갈 것을 강요한다. 이유는 아직 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몬스터들이 번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슬린 도시의 설명과 그 곳으로 향하는 길의 경로와 주의할 점의 설명이 다 끝나고 나는 카운터 바(BAR) 위에 펼쳐져 있던 마법 지도를 말아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중얼거리는 듯 한 소리로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흠.... 절망의 숲이라..... 그곳이 그렇게 위험한 곳인가요?”
“저도 자세히는 알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는 그곳에는 아주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알아주는 검사라도 그 몬스터에겐 상대도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이름이 뭐라 했더라? ...아! ‘포이라’요! 들어보셨을지는 모르지만 그 몬스터는 개미와 똑같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기사나 검사들이 개미라는 소리만 듣고 그 숲에 들어갔다가 한 사람도 살아 나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살아 돌아오지 못했죠?”
“그야 그 몬스터들에게 죽거나 그곳에서 쫒기다가 굶어 죽었거나 했겠죠.”
“....거 되게 궁금하군.... 자, 지도 값은 얼마죠?”
“5골드입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또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