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차피 누구나 속물은 된다
생(生)은 고(苦)다.
굳이 석가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사는 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서른 이후의 삶을 사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관찰해 보면 그 고통 한가운데에 속물스러움과의 싸움이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그들이 너나 할것없이 세상살이가 이렇다는 걸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하면 젊은 시절에는 외면했던 가치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돈 잘 버는 남편, 근사한 옷, 강남 아파트, 안정된 일상 등 20대에는 시답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그녀들에게 소중해졌다. 예전의 그녀들이 경멸해 마지않던 '속물' 이 된 것이다
그녀들은 다만 현실을 알게 된 것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나 저러나 똑같은 가치들에 눈을 뜨는 것 뿐인데 왜 20대에 알면 '속물이 되는 것'이고 30대에 알면 '현실적이 되는 것'일까?
20대는 순수를 강요받는 시기다. 이런 대세에 순응하여 어영부영 20대를 보내다가 30이 되어서야 남은 평생을 속물소리 듣고 살게된다.
일찌감치 돈과 친해지고 나면 40,50대는 우아하게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m은 같은과 p를 늘 한심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p는 당시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 정도는 보는 철학서의 제목조차 몰랐고, 늘 경제신문이나 패션지를 가까이했다.
그녀는 많은 대학생들이 공들여 활동하는 서클활동조차 하지 않았다.
m은 노는것과 자기공부에만 열심인 그녀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보일수가 없었다.
늘 흐트러짐없이 잘 다듬어진 외모는 그녀가 속물이라는 심증을 더욱 굳히게 만드는 단서이기도 했다.
어느날 m은 급기야 p앞에서 대놓고 비난을 했다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거니? 마치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아"
m의 난데없는 독설에 p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내가 뭐 어때서? 그러는 넌 무얼 위해서 사는데?"
"나도 대단한 걸 하면서 살지는 않지만 적어도 너처럼 생각없이 살지는 않아. 대학생이라면 적어도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니?"
p는 열을 올리는 m에게 한마디 쏘아 붙이고 뒤돌아섰다.
"지금의 네가 사회를 위해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자기자신도 책임 못지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를 책임질 수 있다는 건지 .원 ...."
m은 p의 말에 대꾸할 수 있는 말이 수백가지 넘게 떠올랐지만 이미 자리를 피하고 있는 p의 뒤통수에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였다
"속물!"
십년 후, m은 우연한 기회에 p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졸업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 해 이 일 저 일 전전하면서 결혼한 언니집에 얹혀살고 있던 m이 식빵을 사러 나온 제과점에서였다.
"어머,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p는 10년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아니, 넉넉한 표정을 품고 있는 p는 오히려 예전보다 이뻐진 것 같았다.
m은 스트레스로 푸석푸석해진 자신의 피부와 불어난 몸집이 새삼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기관리에 능했던 p는 그동안 쌓은 경력을 인정받아 최근 외국계 회사로 옮겼다고 했다.
m도 p가 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고 있고 능력있는 신랑과 결혼해 잘 산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웬 빵을 그렇게 많이 사?"
"응, 몇년 전 부터 정기적으로 봉사하는 공부방이 있거든. 거기 애들 갖다 주려고..."
"네가? 너 그런 데 관심없지 않았니?"
"일하다가 거래처 사장님한테 들어 알게됐어.내가 별로 해줄 건 없고 가끔 이렇게 먹을 거나 사들고 가고 그래."
p의 말과 행동에서 가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m은 사는 것에 찌들어버린 자신이 대학시절 갖고 있던 모습을 p에게서 보았다.
대학 졸업이후 봉사라곤 꿈도 꾸지 못했고 먹고사는 문제와 씨름하는 동안 이상은 점점 멀어져갔는데...
m은 거대한 빵봉지를 들고 제과점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나 까먹으며 편하게 먹고사는 p와, 뭔가 대단한 활동을 하며 세계를 누빌 것 같았던 자신의 모습을 새겨넣었던 10년전 상상과 현실사이의 간극은 그녀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제대로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많은 젊은이들이 막연한 지식인의 색깔을 내세워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다.
요즘은 그나마 현실에관심이 많아지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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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질질 끌려다니다 어쩔 수 없이 속물이 되어 비참해 하는 것보다 일찌감치 현실을 컨트롤해서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것이 백배 현명한 일임에 이의를 달지마라.
무엇보다 20세에 속물이 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현실에 눈을 뜬다는 것은 현실이 주는 압박에 초연해지고 현실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데 어찌 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 속이 꽉 찬 속물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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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에 들어선 제가 한편 많은 공감을 느끼는 글이네요..
에혀...독수리타법이라 옮기느라 힘이 드는군요...가입기념으로 남겨보는데..^^
때론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해 온 가치관도 시간에 따라 바뀔때가 있지요..
저 또한 그랬고..
가끔 인터넷을 보면 돈과 사랑을 고민하는 글들을 보게 되는데..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한번 쯤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또 한가지를 얻으면 나머지를 조금 양보해야 하는 것도 있게 마련이니까요..
며칠전 기사를 보니 자식에게 선택하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하더군요.
책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더라구요..
결국엔 어떤 결정이든 자신의 상황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부자가 되고싶은 것도 결국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거니까요..
모두들 부자 되어서 행복해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