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하다
- 눈 오면 좋을거 같지 않아요? 눈 오면 좋겠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내가 채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난데없는 말을 꺼낸다.
나는 일단은 좀 당황스럽고, 그 다음은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든다.
말하자면, 생각이 그렇게 흘러가서겠지.
그녀는 눈을 기다린다.
그녀는 지금이 아닌 다른 순간을 그린다.
난 지금 그녀와 함께 있다.
그녀는 지금 나와 함께 있는걸 그다지 행복해하지 않는다.
아니, 최소한 나처럼 우리가 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완전히
만족하진 않는다.
하지만 늦게 도착한데다가 아직 마음만큼 그녀와 친하지도 못한
나는 감히 서운함을 표시할 생각은 못하고 일단 맞장구를 쳐주기에 바쁘다.
- 그러게요. 오늘 너무 더웠는데..
눈 생각만 해도 좋네요
눈 좋아해요? 겨울 좋아해요?
그녀는 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여름 빼곤 다 좋아요' 말을 하면서..
그 말이 난 또 왜이리 서운할까..
여름에 이렇게 나랑 만나고 있으면서 여름빼곤 다 좋다니..
나는 그 순간 탁자위에 놓여있던 설탕통 안에 들어있는 각설탕을
부셔놓은 설탕 알갱이 한알만큼 쪼잔해지고 작아진 느낌이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이놈의 소심증.. 이놈의 울렁증..'
나는 괜히 할아버지처럼 흠.. 헛기침같은 것도 해본다.
하지만 결과는 괜히 꺽꺽대는 그냥 목이 좀 지저분한 남자로 보였을 뿐이다.
그냥 조용히 자리에나 앉을걸..
나는 이렇게나 긴장해 있는데 그녀는 어쩜 모든 행동이 참 자연스럽기도 하다.
창밖을 내다보면서 "어! 저 강아지 너무 예쁘다" 란 말도 하고,
유리막이 쳐있는 흡연석을 바라보며
"저사람들 꼭 어항에 갇힌 붕어같지 않아요?" 그런 말도 하고..
난 그럴때마다 예스맨처럼,
아, 예..
아, 예..
그녀는 나랑 있는게 얼마나 재미없을까?
뭔가 재밌는 말을 하자!
재밌는 말.. 재밌는 말..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이 안난다.
하는수없이 난 어정쩡하게 웃는 표정이나 계속 유지하며 고개나 열심히 끄덕인다.
못난놈..
커피잔에 다이빙을 해라. 다이빙을..
재미없는 스스로를 자학하며..
그런데 그녀가 무슨 이야기끝에 이렇게 말을 한다.
- 우리 겨울에 눈오면 춘천갈래요?
호수위로 눈 떨어지면 정말 예쁘거든요
겨울에? 겨울?
난 그만 너무 좋아서 버럭 소릴 지르고 만다.
- 겨울에요? 겨울!
겨울에도 나랑 만날거에요?
내가 점점더 많이 보여줄게요
점점더 많이 웃겨줄게요
점점더 많이 좋아할게요
그때까지 꼭! 너그럽게 기다려 주세요
아직은 너무 떨리는
아직은 바보같은 소리나 하는
아직은 덜 솔직한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