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惡戰苦鬪)
A3 대회. 지난해 대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나 있을지 모르겠다. 기간 1주일에 경기 수는 6경기. 한중일 프로리그의 챔피언들이 격돌하여 동아시아 프로리그의 최강을 가린다는 것이 대회의 가장 큰 흥미요소이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관심이 저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회를 코앞에 놓았지만 정작 나 자신도 일본으로 향하기전에는 대회 일정도 제대로 모를 정도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컵 대회가 진행되면서 터져 나온 K리그의 현상에 대한 여러 논란 속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것이 J리그와의 비교와 아무리 경쟁국이지만 배울 것은 배우자는 것이었다. 과거 나도 J리그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과 함께 그 방법을 K리그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들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이런 생각도 점차 바뀌어 K리그와 J리그, 그리고 한국과 축구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일본이 우리 미래의 표본이 될 수 있을까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 일본행은 그런 머릿속의 그리고 가슴속의 의문들을 가득 담은 채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출발 전일에야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을 알게 되었기에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A3 대회 취재가 여하튼 잡혀있는 가장 큰 이유였고 그 틈틈이 일본 축구의 현상과 한국에의 적용을 위해 JFA(일본축구협회)와 J-리그 위원회, 그리고 우라와 레즈, 요코하마 FC 관계자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있었다. 하지만 J-리그 위원회와 요코하마 FC 관계자와의 인터뷰는 확정되어 있지 않았었을 정도로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우리 Flamma의 상황상 여유 있는 출장동안의 생활은 생각할 수 없었다. 싼 숙소(이른바 멀쩡한 고급호텔은 생각지도 못한다. 화장실은 쭈그려 앉아야 하는 곳이었고 방도 좁을 뿐만 아니라 방에서 인터넷? 이런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에어콘과 샤워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도 큰 만족이었다.)에 최소의 체류비를 손에 쥔 채 떠나는 일본으로의 취재여행이었다. 그야말로 ‘열악(劣惡)’이었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덧붙여졌다. 나는 눈이 매우 나쁘다. 시력이 어느 정도냐고 하면 식사할 때 안경을 벗으면 반찬은 색깔별로 나뉘어 진다. 빨간 색, 초록색 기타 등등 색 이런 식으로. 가까이 있지 않으면 사람의 얼굴도 식별 불가능. 그런데 그야말로 출국직전, 공항에서 티켓팅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을 때 일이 나버렸다. 짐 정리를 위해 몸을 구부리고 움직이는 동안 얼굴에서 안경이 벗겨지며(아직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바닥을 강타! 그야말로 안경알이 ‘날아가’버렸다. 순간적으로 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 없는 생활은 그야말로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일본행? 더군다나 축구를 위한 취재? 이게 가능할까? 하지만 집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나쁜 시력 탓으로 그렇게 빠르게 안경을 새로 할 수도 없었다. 처음부터 왠지 꺼려졌던 취재여행, 하지만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열악이 아니라 ‘최악(最惡)’의 조건이었다.
도쿄는 이전부터 나에게 큰 어려움이 없는 도시였다.(물론 ‘돈’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만) 하지만 이건 안경을 쓰고 있을 때의 말이다. 안경이 없으면 실제 도쿄건 서울이건 그 어디든 크게 다를 바 없기도 하지만 주로 전철로 이동하는 도쿄에서 표지판이 보이지 않아 전철표를 얼마짜리 사야하고 어디서 갈아타야하는지도 잘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은 그야말로 난감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다행히 며칠 뒤부터는 일본 유학중인 곽형덕군이 동행해 큰 도움을 얻었기는 했지만 처음 며칠간은 난감함 그대로였다.
A3 경기를 보러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안경을 벗고서는 경기장에 앉아서도 거의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처음 경기 일에는 가지고간 캠코더를 켜고 캠코塚?그 조그만 화면에 머리를 묻고 봐야만 했다. 안경알이 둘 다 깨진 것은 아니라서 가끔 안경을 쓰고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눈이 너무 아팠다.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프레스’로 들어가 캠코더를 켜두고 있는 것은 그 ‘중계권’ 문제와 관계되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첫째날의 경기가 끝난 후 재일 축구컬럼리스트인 신무광씨와 늦은 저녁식사를 했는데,(우리 사이트에도 가끔 글을 써주시고 있다.) 캠코더 문제에 대해 지적해주었다.
“일본에서는요 프레스로 들어와서 캠코더로 촬영하고 하면 바로 쫓겨나요.”
이런 문제를 물론 사전에 알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덜컥 겁이 났다. 더군다나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킬까 두려웠다. 따라서 두 번째날의 경기에서는 아예 캠코더를 꺼내지도 않았다. 깨진 안경을 끼고 벗는 행위를 반복해야 했다. 이천수의 헤트트릭을 비롯한 6골, 그리고 이어진 경기에서의 4골은 대부분 경기장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다시 돌려진 화면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축구 경기를 취재하러 갔지만 도저히 ‘축구 경기 자체’를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경기에 대한 상보는 동행한 윤형진 기자가 쓴 것이므로 큰 상관은 없었겠죠?)
관심 없기는 일본도 비슷. 하지만...
A3 대회의 무관심(?)은 일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그 무관심도를 측정 가능했던 것은 프레스 등록 때. 한국에서의 기자 등록은 5명뿐이었다. 그 가운데 La Flamma가 3명.(본래 플라마는 2명을 파견하기로 했었는데 바뀐 사람의 명단을 그대로 두어 아마도 3명이 등록된 듯 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온 기자들은 4명에 불과했다.
일본 기자들의 수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중국도 그랬다. A3의 대회관심도와 기자수는 정비례하는 듯했다. 경기장의 관중수나 경기가 끝난 뒤 일본의 TV 방송에서 다루어지는 것도 그랬다. 평일 낮이라고는 하더라도 일반적인 J리그의 경기보다도 수자가 눈에 띄게 적었다. 후에 들었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J리그의 서포터들의 관심은 J리그에 집중된다고 한다. J리그가 아닌 이런 이벤트성 경기는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가 인기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물론 2회 때의 우리나라 정도보다는 관중이 많았다.)
A3 홍보대사인 강타와 박경림이다.
하지만 ‘준비는 열심히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갖추어진 대회였다. 대회의 공식가이드북의 질이나 대회 내내 경기장과 TV 광고에서 울려 퍼질 ‘공식 이미지 송’(개막식에서 직접 공연한 키요키바 슌스케가 부른 ‘Believe’라는 곡은 처음 들었을 때는 ‘뭐 이딴 노래가 다있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게 점점 중독이 되어 이제는 어렴풋이 생각날 정도가 되었다)은 이런 점을 잘 보여주었다. 키요키바 슌스케는 개막식에서 멋진 공연을 했지만 아마 자신의 콘서트를 했다면 더 많이 모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중은 많지 않았다.(이 공연을 소개하기 위해 A3의 홍보대사라는 강타와 박경림이 등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언급무용일 듯. 아마 비슷한 시기 일본을 방문중이던 배용준을 등장시켰으면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2편에서 일본 미디어석을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