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르윈 롬멜원수 만큼 2차대전으로 유명해진 장군들도 드뭅니다. 하지만 롬멜원수는 나치였다고,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고 비판하십니다. 그리고, 병참선의 문제도 삼으시며, 초반에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것도, 운이었다면서 말입니다. 이제 제 글을 읽어보며, 롬멜 장군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마티 보어만: "롬멜은 절대 나치가 아니야."
(사회주의자)
2차 대전 당시 어느 젊은 장교: 롬멜은 현대의 한니발과 같은 장군.
헤세: "그는 매우 가혹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그랬다."
한스 슈파이델: "그는 지도자적인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부대원들을 자신에게로
(롬멜 상관)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는데, 이것은 이성적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한 힘입니다."
지크프리트 베스트팔: "부대원들과 롬멜 사이를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엮는 끈이 있는 것
(롬멜 참모부관) 같았습니다. 이러한 연대감은 군대의 모든 지휘관들이 갖추어야할 덕목이
지만 결코 흔치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롬멜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
이는 것일 겁니다.
요제프 괴벨스: "롬멜은 독일군이든, 이탈리아 군이든 병사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다. 그는 거의
(나치 선전부장) 신화적 존재가 되었다."(괴벨스는 민족 영웅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나 실제적으로 롬멜은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임.)
오친렉: "비록 열정적이고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롬멜은 단지 인간일 뿐이며,
(영국군 총사령관) 또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라 하더라도, 병사들이 그에게 초능력을 부과하는 것
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내가 롬멜을 질투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작 레비: "나는 존경과 책임 의식을 가지고 이를 강조해 말하려 합니다. 내가 만났던
(제 8군 유대교 지도자) 아프리카 군단(롬멜장군의 부대)의 몇명의 병사와 장교들에게서는 유대인
을 싫어한다고 느낄만한 어떠한 표시나 행동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루게: " 롬멜은 한쪽과의 평화 협상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힘을 한데
(롬멜의 친구) 모아 다른 쪽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롬멜이 평화 협상을 하려는 쪽은 연합군 쪽이었습니다. 연합군과 평화 협상
을 한 이후 동맹등을 체결하여 소련을 견제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점은 독일
의 다른 수뇌부들도 생각하고 있었구요. 그러나 승리에 눈이 먼 미국의 아이젠
하워, 영국의 처칠등이 자신의 지지도등을 올리기 위하여, 이러한 점에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다가 소련은 전후 최강국으로 발돋움을 하게 되고 냉전의 시기가
도래하게 됩니다.)
롬멜의 연설의 일부분: "독일 민족은 어떠한 보복도 원치 않는다. 그저 우리 자신과 세계의 평화를
원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명예와 정의의 평화이다."
롬멜이 아내에게 보낸 카드: "1944년에는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오. 우리에게 승리와 긴
평화가 찾아오기를....."
롬멜의 일기장의 일부분: "국가의 기본 토대는 정의여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저 위의 지도부는
깨끗하지 못하다. 학상행위는 커다란 범죄이다.(롬멜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해서 알지 못했으며, 이는 롬멜을 포함한 여러 군부 상급 지
휘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롬멜은 유태인 학살에 대한 전모를 알게된
후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롬멜의 총통에 대한 평가: "독일은 전쟁에 패했다. 어쩔 수 없는 사실을 총통이 깨달아야 한다.....
이제 총통이 물러나야 할 시간이 왔다. 그는 무질서한 정치와 독단적인
군사개입으로 독일 국민을 나락으로 빠지게 했다. 우리는 이제 평화조약
을 맺어야 한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모든
것이 파괴되어 폐허로 변한다. 이것은 바로 범죄이다."
롬멜의 최후의 발언: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네, 나는 총통을 사랑하였고 아직까지도 그를 사랑한다네."
(증인:마이젤, 부르크도르프)
롬멜의 유언: "알딩어 이제 끝이야. 나는 죄가 없네. 나는 히틀러 암살기도에 관여하지
(증인: 알딩어, 만프레드 롬멜) 않았어. 나는 일생 동안 조국을 위해 싸웠으며 최선을 다했을 뿐이네.
나의 슈바벤 사람들에게, 특히 사랑하는 나의 옛 산악 전우들에게 내
마지막 인사를 건네주게."
뤁트슈테트: "지치지 않는 불굴의 전사는 국가사회주의자적인 이념으로 충만해 있었으며, 그것은
(롬멜의 옛 상관) 그에게 힘의 원천이었고 행동의 기본이었다. 그의 마음은 총통을 향해 있었다."
마우리체 필립 레미 1: "롬멜의 명성, 그 '롬멜 신화'는 히틀러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롬멜은 본의
('Mythos 롬멜'의 저자) 아니게 , 어쩌면 자신도 진정 모르는 사이에 살인적인 정권의 공범자가 되었다. 이
사실로 야전장군으로서의 그의 능력과 업적이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는 그의 개인적인 죄가 아니다. 무엇보다 롬멜의 양심은 히틀러의 비인간적인 명령
에 꿈적하지 않았다."
마우리체 필립 레미 2: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더 시에 포함된 프리더스도르프라는 작은 마을의 교회에는
('Mythos 롬멜'의 저자) 낡은 기념판이 하나 걸려 있다. 이 기념판은 이곳에 매장된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의
중령 요한 프리드리히 아돌프 폰 데어 마르비츠에게 헌정된 것이다. 마르비츠는 드
레세덴에서 있었던 '7년전쟁' 때 보복 조치로 후버투스부르크 성을 불태우라는 국왕
의 명령을 거부한 대가로 관직을 박탈당했다. 1781년 12월 14일 죽은 마르비츠의 기
념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영예로운 일이 아닐때 그는 총애
를 잃는 길을 택했다." 이 말은 에르빈 롬멜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P.S
참고로 몽고메리 매니아 분들은 롬멜보다 몽고메리가 한수 위였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두 인물의 우위를 평가하기 어려우나, 객관적으로 롬멜은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몽고메리는 알람 할파 전투에서 완벽하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영국의 비밀 정보원이었던
프레데릭 윈터보트햄의 책 울트라 액션을 통해, 에니그마 전신기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거짓으로 들
통나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군이 투입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순수하게 영국군만으로 승리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겠지요.
롬멜이 연합군과 싸울 당시에는, 독일군 수뇌부는 케세링등의 반 롬멜 세력이 롬멜을 모함하고 있었고,
군수물품 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롬멜이 보급선이 너무 길어서 폭격을 당한
것이라고 말하시지만, 북아프리카 전쟁 초기부터 히틀러에게는 부차적인 전선이었고, 소련이 주 목표
였기 때문에 병참 공급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롬멜은, 항공전력이 소진되었지만,
수뇌부에서는 공군기를 지급해주지 않았서 제공권을 놓치게 되었고 이는 북아프리카 전쟁 패배의 원인
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업친데 덥친격으로, 이질 때문에 롬멜 휘하 부대원의 70%가 넘는 인원
이 이질에 시달리게 됩니다. 롬멜도 자주 고열과 설사병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말라리아 증세까지 보였
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영국군은 북아프리카군의 병력의 5배, 항공전력은 10배가 훨씬 넘는 상황에 병참
까지 원활한 상태로 공격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롬멜의 군대에는 큰 피해가 없었고, 북아프리카
전쟁말기에는 5만명의 부대원들이 살아서 귀환을 하니, 롬멜이 명장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병참선이 넓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롬멜 장군은 북아프리카 전쟁 초기에 북아프리카를 재패하여,
상대적으로 작전반경이 너무나 넓었기 때문 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막전에서는 병참선의 구분을 하기
애매한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롬멜 장군이 제공권을 장악하고 계셨으면, 병참선은 문제도 되지 않았
겠죠. 하지만 독일군 공군 수뇌부의 케세링 공군원수는 롬멜장군을 개인적으로 싫어하고 열등감을 느끼
고 있어서 롬멜 장군을 음해하고, 항공전력을 통한 병참 보급 역시 제대로 이루어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공전력을 이용하여, 북아프리카의 제공권을 사수하지 못한 것은 케세링의 전적인 잘못이며,
이를 통해, 롬멜장군은 영국군과 연합군의 폭격 세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북아프리카로 전출된 크루
게 장군은 처음 부임했을때는 롬멜장군과 북아프리카군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지만, 바로 앞에 떨어지는
폭탄등의 엄습에 그들을 존경하게 됩니다. 당시 영국군은 모든 병력, 병참을 북아프리카에 소진하고 있
었고, 롬멜장군은 독일군 군단병력과 이탈리아 패잔병을 포함한 5만명으로 맞섰습니다. 이탈리아 패잔
병은 전투력을 상실하였고, 독일군 군단병력 역시 영국군과 다국적군(프랑스, 호주등)의 공격등으로 큰
손실을 입은 상황이었지만, 이를 대신할 병력, 병참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기갑전력이 중요한
석유조차 제대로 보급받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에 영국 정보국에서 이니그마 전신기를
개발하여, 독일의 암호문을 하루 이내로 모두 해독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이 이니그마 전신기 오퍼레이터를
영국군 중장 몽고메리는 상당수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몽고메리 중장은 병력 지원, 병참 지원, 군 수뇌부
의 지지, 국민의 지지를 받은 상황에 적에 대한 정보까지 사전에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롬멜 장군이
보급난 등에 시달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2년 가량 영국군과 연합군을 북아프리카
라는 지역에 묶어둔 롬멜장군이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입니다. 그리고 롬멜장군은
북아프리카의 중요성을 누누히 히틀러와 군수뇌부에 누누히 지적했지만 이를 무시하자 북아프리카가 붕괴
된 이후로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독일은 전쟁에 패배하고 맙니다.
당시 독일은 2차대전 발발전에, 프랑스를 사전에 함락시키고, 소련을 공격하여, 빠른 시일내에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를 함락하고, 소련을 연합국에 동맹을 맺지 못하도록 하거나, 독일과 동맹을 맺고 영국, 미국에 대
항할 전략을 폈습니다. 물론, 석유가 부족해서 독일이 전쟁에서 졌다는 말이 나오는 만큼, 소련의 영토인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지역을 점령할 목적으로 소련을 공격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에 반해, 롬멜
원수는 소련을 치지 않고, 북아프리카 지역을 평정하고, 주력군으로 하여금, 중동지역을 점령하여, 석유를
확충하고, 인도까지 공격하여, 영국의 주력군들을 섬멸하여, 영국을 고립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물론, 영국
도 인도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중요시 하여, 북아프리카 지역에 주력군인 8군을 주둔시켰지만, 초반에 영국
은 롬멜장군에게 패배당하여 주력이 인도와 북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후퇴를 한 상황이었기에,
롬멜 장군의 전략대로 나갔다면, 독일은 패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독일은 미국과 영국과
지속적인 전쟁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를 점령하고, 프랑스를 자치적으로 정치를 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였고, 영국에게는 히틀러는 공격전에 휴전을 신청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과의 전쟁 역시,
원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차 대전 이후 독일은 식민지들을 반환하고,
세계공황의 영향으로 유럽의 강대국들이 경제블럭을 형성하여 살길이 없었기에,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었죠. 히틀러가 원하는 것은 세계 제국 건설보다는 프랑스, 소련을 전쟁 초기에 무력화 시키고, 유전지
역을 확보한 다음, 다른 강대국처럼 경제블럭을 형성할 지역을 건설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발
발한 이유로 히틀러나, 처칠이나, 루즈벨트나 스탈린이나 모두 다른 방면으로 변해갔습니다. 히틀러는 살인
마가 되었고, 처칠은 자신의 위신을 위한 일만 도모했고, 루즈벨트는 앞으로 소련이 자국을 위협할 것은 생
각지도 못하고, 종전과 독일로 부터 얻어갈 여러가지 군사적인 경제적인 이익에만 앞섰습니다. 스탈린 역시,
독일에 완충지역을 확보하고 유럽을 재패할 야욕에 물들었고 말입니다. 결론적으로는 히틀러는 현재, 비판
을 받지만, 처칠, 루즈벨트는 위인으로 추앙을 받고 스탈린은 그나마 백정 소리 들으며 비판을 받지만, 모두
거기서 거기인 인물들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
입니다.
이야기가 다른데로 세었지만 중요한 것은 롬멜은 다른 장군처럼 승리에 도취해있지도 않았고, 언제나 군장병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롬멜이 5만명을 후퇴시켰을 당시 히틀러는 최후까지 사수하라고 지시했고, 이 명령을 어긴
롬멜은 언제 히틀러에 의해 죽을지 몰랐습니다. 때문에 롬멜도 하루를 고민했었고, 위대한 퇴각명령이 이루어졌
습니다. 이 퇴각명령으로 5만명을 살린 롬멜..... 그는 그의 인생 말기에 하루란 시간을 고민하지 않고 바로 퇴각
하지 않은 점을 후회하였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국가를 사랑했고 염려하고 걱정하였습니다. 그는 나치가 아니었지만, 그를 나치라고 롬멜
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한체 롬멜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롬멜은 이순신 장군과 달리, 자
신의 기분이 상하거나 슬프거나 괴로울 때는 아내, 루시에 롬멜과 편지등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롬멜은 이순신 장군과 달리 연승 연패가 아닌, 빛나는 승리 뒤에 뼈 아픈 패배도 있었지만, 그의
인간적인 모습, 윤리의식, 조국에 대한 사명감, 부하에 대한 사랑, 부당한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는 점에서 우리 대
한민국의 이순신 장군과 동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해전에 이순신 제독이 있다면, 육전에는 롬멜 원수가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