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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던지다

신혜인 |2006.10.19 09:42
조회 37 |추천 0


"The bird fights its way out of the egg.
The egg is the world.
Who would be born must first destroy a world.
The bird flies to God.
That God's name is Abraxas."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서스. –

 

......................................
나는 독립된 주체이길 꿈꾸지만,
완전한 고립을 원한적은 없다.


보수와 개방의 공존.
그 모순은,
늘 나를 괴롭히고, 때로 분노케 했다.

 

나는 나에게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와 가정을 증오했지만,
동시에 사회와 가정의 안락을 이용했고,

무리들에게 인정받길 원했다.


조금 더 “나은”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런 의무를 지우는 사회에 대한 증오.


(여기서 갑자기 such obligations

어쩌고 하면서 기사를 써버리려는
지독한 직업병 -.-)

 

스물 여섯, “데미안”을 다시 집으며 

답을 구했다: 하나의 완전한 주체가 되는 법.
그 답은,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인 분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주 막연하게 그리고 강하게 나를 찾아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했다. 

 

하지만.

"데미안" 은 역시나 어려웠고,
니체와 프로이트의 사상을 뒤적이기까지,
이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이해에 대한 집착은 나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었으며 -.

결국 답은 얻지 못한 채 난 좌절했다.

 

그럼에도 책을 덮으며 밀려온 몇 가지
막연한 “느낌”이 있다.

 

청소년 권장도서로서의 “데미안”과,
미숙한 성인의 인생탐구서로서의 “데미안.”
그 두 가지 모두 난 "무서웠다."

 

"데미안(Demian)" 이 Demon악마에 어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헤르만헤세 역시,
이성과 종교와 사회의 울타리를 넘어선 그 무언가에
악마적인 의미를 부여했다는 뜻일 테니,

나같이 겁만은 인간에게 두려움은 당연할 수 있다.

 

(중학교 시절.

“데미안”에 내포된 동성애와 근친상간적 코드를
철학적으로 걸러낼 지식이 부족했던 난,
금기를 건드리는 막연한 코드들 자체에 토하며 울었다.

이런 책을 권장도서로 지정한 학교를 욕했고,

독후감을 쓰면 용돈을 주겠다는 말로 날 유혹한 아빠를 원망했다.


데미안은 착한 소년 싱클레어를 꼬득여
나쁜 남자로 만들어 버렸고,
그는 악마. 그의 모친은 악마두목이었다.

 

게다가 싱클레어는 툭하면,
내가 내키면 아무나 죽여도 된다는 뜻이냐, 라고 물어댔다.
자유의지가 왜 살인과 죽음으로 연결되어야하냔 말이다.
무서운 게 당연하지 않나 -.-)

 

어쨌든 조금 더 파고들어보면,
어릴적 두려움이나 다 커서의 두려움이나
한 가지 사실에 착안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난,
사회의 윤리를 깨부수는 관념들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분명 이 책이 쓰여진 당시의 시대상황 - 전후 혼란상태 -과
지루하리만치 “평온”한 현재와는 괴리가 있다. 

 

패전의 독일에게 니체의 실존주의는
획기적이고도 불가피한 사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에겐,

이성과 질서가 아닌

내면적 인격실현에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는 이미 너무 똑똑해졌고,
중요하건 사상과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밥먹고 사는 문제일 뿐이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아직은" 순수한 싱클레어.


결국 난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고,
오히려 크나큰 좌절을 맛보았으니,
내가 "알을 깨고 싶지 않은 인간"의 부류에 속함을 알게된 것이다.

 

내 안의 모순된 성향 중 하나를 쳐내야한다면,
친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부분을 버릴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것을 이제 인정해야만 겠다.

 

내 가슴을 때린 구절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온다"가 아니었다.

 

“Each man has his 'function'

but none which he can choose himself,

define or perform as he pleases.
An enlightened man had but one duty;

to seek the way to himself, to reach inner certainty,

to grope his way forward

no matter where it led.”
 

인간에게 부여된 숙명.
결국 우리는,

그 숙명을 혼자서 짊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우리는 모두 "자연의 투척물"이며,
우리 스스로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라는 것.

 

바이바이 데미안.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 너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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