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집에 가고 싶어. 지치고 배고파. 가족이 보고 싶어.
이 담장 바깥에 있는 누구라도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신경이나 쓸까?'
요한(맨 앞)과 부데요비체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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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를 점령한 1939년 3월 15일 아돌프 히틀러가 군대를 사열하고 있다.
악마가 우리의 평화로운 땅을 침범한 지
5년이 흘렀다.
죽음이 집집마다 방문했다.
전쟁이 끔찍한 시절을 만들었다.
어머니와 딸들은 촛불을 켠다.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며.
-에 소개된 시
독자이자 기자인 유대 아이들의 희망 찾기 -
히틀러의 나치 치하에서 유대 소년들이 만든 비밀 신문 에 얽힌 희망과 열정, 저항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 실화집 (원제: The Underground Reporters)이 도서출판 푸르메에서 출간되었다.
프로인트 일가. 왼쪽부터 요한, 어머니 에르나, 아버지 구스타프, 형 카렐.
요한 프로인트 : 운동경기, 특히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
비밀신문 (클레피)에 '의사인 아버지가 내머리를 다듬어준 이야기'라는 유머스러스한 기사를 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아 캐나다로 이민 갔으며, 나중에 22호 전체를 확인해 그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카렐 프로인트 : 요한보다 세 살 위인 형.짓궂은 개구쟁이로 요한과 아웅다웅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가 탈진해 쓰러져서 총살당했다. 의사였던 아버지도 카렐과 함께 총살당했다. 어머니는 가스실에서 죽었다.
'클레피, 희망의 기록'은 평범한 소년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만했던 시련과 수백만의 유대인의 인명을 앗아간 수용소의 실상 등 2차대전 당시 유대인의 삶과 죽음을 라는 신문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재조명한 책이다. 나치의 폭력으로 인해 열악하고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평화로운 세상을 갈망하고 평범했지만 자유로웠던 자신들의 삶을 되찾기 위해 저항하는 유대 소년들의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히틀러의 나치가 점령한 체코슬로바키아 남부 도시 부데요비체. 유대인들의 권리가 짓밟히고 목숨의 보전조차 어려운 극한 상황에서 일단의 소년들이 비밀리에 지하 신문을 만든다. 신문의 이름은 체코어로 '뒷말'이라는 뜻의 이다. 타자 친 종이에 약간의 사진과 그림을 곁들인 이 초라한 신문은 매호 발행부수가 한 부뿐인,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신문이었다.
명민했던 소년 루다 스타들러는 유대 공동체가 신문을 매개로 연계를 유지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신문을 발행한다. 부데요비체의 모든 유대 청소년들이 필자이자 독자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신문은 회를 거듭할수록 발전했다. 첫 호는 달랑 세 쪽에 불과했지만 1년 남짓한 기간에 걸쳐 모두 22호를 발행하는 동안 신문의 분량은 무려 33쪽으로 열한 배나 증가한 것이다. 는 루다가 바란 대로 유대인 사회, 특히 아이들이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훌륭히 그 역할을 해냈고, 유대 공동체 전체의 표현 수단으로서 구실했다.
'클레피, 희망의 기록'은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평화를 갈구하고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던 유대 아이들의 기록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편집 방식과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실제 의 사진들이 책을 읽는 데 묘미를 더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는 물론 에서 , 에 이르는, 홀로코스트를 모티프로 하는 작품들과 비견될만큼 감독적인 작품이다.
자유를 꿈꾸는 아이들, 희망을 만드는 신문
'클레피, 희망의 기록'은 지금껏 출간된 유대인 혹은 유대인 학살을 모티프로 다룬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흔히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들을 접하면 결국엔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적으로 '나치 타도'를 외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클레피, 희망의 기록'은 우울하지 않다. 단순히 히틀러로 대표되는 나치의 억압과 폭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억눌리고 갑갑한 상황을 열고 뛰쳐나오고 싶어한 유대인의 자유를 향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자유의지는 단순히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에는 이념이나 이해득실을 따지는 잣대 따위는 없다. 유대 아이들에게 전쟁은 학교에 갈 수 없고 기독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유롭게 공원에 갈 수가 없고 부모님의 우울한 얼굴을 봐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급격하게 변해버린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은 당연한 선택인 양 옹기종기 모여 신문을 만든다. 그들은 글쓰기가 자유를 다시 되찾기 위한 한 방편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글을 쓰고 신문을 만들어 유대 사회에 돌려 읽힌다. 아이들의 눈에 미래는 바로 자유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현재에 대한 낙관과 미래에 대한 희망은 어쩌면 지금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유대인을 있게 한 숨은 힘인지도 모른다, 어린아이가 젖을 찾듯 본능적으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유대 아이들의 모습은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테레지엔슈타트의 아이들은 이와 같은 다락방에서 열리는 공연 등을 보았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신문
는 1940년 8월에 창간되어 이듬해 겨울까지 발행되었다. '공식' 언론이 아니기 때문에 세계 언론사의 어느 페이지에서도 이 신문에 관한 언급을 찾기는 힘들다. 독자였던 아이들이 모두 기고자였던, 가장 이상적인 신문의 형태를 갖추었던 는 그 지역의 유대인들에게는 엄연한 신문인 동시에 '신문 이상'이었다. 그들은 신문을 통해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했고, 는 평화로운 세계가 오기를 희망한 그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이 신문 뭉치는 바로 그들의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는 부데요비체의 유대인 아이들을 위한 연결고리로서, 그들의 생각과 발상이 한데 모여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마당이 되었다. 날이 갈수록 유대인을 속박하는 제약과 법령들이 늘어나고 억압이 심해졌지만 는 계속 발행되었다. 몸을 옥죄는 제약들이 그들의 마음까지 억누를 수는 없었다. 유대 아이들은 두려움을 이기고 글을 썼다. 그들은 글을 쓰고 신문을 만드는 일이 곧 자유를 되찾는 것이라고 믿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유대 아이들은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나치의 폭력에 저항한 것이다.
루다가 만든 는 부데요비체의 유대인들을 한데 끌어모았고, 무언가 싸워서 지켜야 할 게 있다는 것을 유대인의 가슴에 심어주었다.
, 정말 할 말 많은 '뒷말'
'클레피, 희망의 기록'은 라는 '지하 신문'의 출현과 그 파장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신문의 기고자 중 한 사람이었던 요한 프로인트라는 소년이 겪은 2차대전과 그때 행해진 유대인 박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평범한 소년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시련을 겪어야 했는지, 결국 수백만의 인명을 앗아간 유대인 수용소의 실상은 어떠했는지를 매우 선명하고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최초의 편집진. (위로부터 ) 루다 스타들러, 칼리히르시, 루디 푸르트, 지리 푸르트
요한(오른쪽)과 어린 시절의 친구 즈데테크 스베치. 즈데네크는 나치의 명을 어기고 요한과 놀아준 유일한 기도교도 친구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아홉 살 어린 나이였던 요한은 1942년 4월 테레지엔슈타트를 거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지만, 마지막 순간 기적처럼 살아난다. 부모와 형 등 가족과 베다를 비롯한 친구들은 이미 나치에게 목숨을 잃은 뒤였다. 전쟁이 끝난 뒤 요한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캐나다로 이주한다.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가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1989년, 예순 살 노인이 되어서야 다시 고국 땅을 찾는다. 요한은 의 발행인이었던 루다 스타들러의 누이인 이레나를 찾아가고 마침내 그곳에서 이레나가 보관하고 있던 전부를 다시 만난다.
요한과 지은이 캐시 케이서가 부데요비체의 중앙광장에 서있다.(左)
지은이 캐시 케이서와 프란세스 노이바우어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프란세스 의 집 앞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右)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순간 를 보관할 안전한 피신처를 물색하는 오누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 신문'을 맡아 보관한 이웃, 그리고 반세기 가까운 세월 뒤 신문의 행방을 다시 추적해 확인한 주인공의 노력은 그 자체가 감동이다.
이런 여러 사람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현재 는 체코 프라하 유대박물관에 보관되어 전세계인들이 관람하고 있다.
우리 놀이터는 정말 좋았느니,
작지만 즐거운 오두막도 있었어라.
그러나 겨울이 오고 온통 얼어붙게 되면
우리가 갈 곳은 없게 될 터.
그러니, 유대의 아이들이여,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내에 가까운 오두막.
우리의 공상이 실현되는 곳.
노래와 놀이와 기쁨의 탄성이 넘쳐흘러라!
-에 실린 어느 소년의 시
p.88
"모르겠어? 신문은 그 자체가 저항의 한 형태야. 우리가 무얼 쓰는가는 거의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신문을 발행하고 돌려 읽힌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거야. 유대 사회의 단합을 유지시키는 게 바로 그거라고. 너무 노골적으로 발언하다가 문이라도 닫게 되면 그런 게 다 없어지는 거야."
p.126
유대인 남자들은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사진에서는 홍수 방지를 위해 강바닥 준설 작업을 벌이기 위한 차림이다.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개인적으로도 언론 일반에 관해, 그리고 어느새 20년을 향해가고 있는 기자 생활에 관해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루다라는 소년 혼자의 힘으로 창간한 신문이 제법 편집 진용을 갖추게 되면서 편집위원들 사이에서는 신문을 어떻게 만들지에 관해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한마디로 '재미냐 의미냐'를 둘러싼 논쟁이라 할 수 있겠다.
나로서는 처음 새 신문을 만들고자 안국동 사무실에 모인 선배 및 동료들과 신문의 형태와 방향을 놓고 토론하던 시절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옮긴이 : 최재봉 한겨레신문 문학전문기자
언론이 주목한 베스트 BOOK
국가의 역할 (장하준 지음/이종태,황해선 옮김/부키)
"우리의 미래를 누가 결정하게 할 것인가. 신자유주의자들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에 맡기라고 한다. 반대론자들은 국가로 하여금 공론의 장을 통해 합의를 끌어내고 제도화함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고 한다."이 책의 저자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사진)는 작년에 '쾌도난마 한국경제'란 책을 통해 후발산업국가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책은 '쾌도난마'보다 앞서 2003년 영문판으로 출간됐고 이번에 우리 말로 옮겨졌다.
'우리의 미래를 누가 결정하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이 책을 왜 썼는지를 설명한다. 우리의 미래를 불확실성에 가득 찬 시장의 손에만 내맡길 수 없다는 믿음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필자는 그 점에서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을 향해 분노한다.
국가를 "약탈자나 정치적으로 강력한 집단이 그 당파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정치를 "집단적 의지에 빌붙어 시장이 내린 결과를 뒤엎는 합법적 수단"이라고 보는 신자유주의자들을 경멸한다.
그의 비판은 날이 서있다. 신자유주의는 적어도 이 책 속에선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백전백패'다.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구조변동과 개발도상국에서 국가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논한 대목은 설득력이 있다. 시장의 개별적 경제주체들은 체제(system) 전체를 보는 비전이 없거나 다른 경제주체의 행위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우왕좌왕한다. 그래선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 장 교수는 "경제 전체를 효율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어떤 한 경제주체가 중심적 위치에서 조정 기능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분산된 경제주체보다는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부가 그 역할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실패 위험이 있더라도 조직이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는 '기업가적 역할'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국가를 지나치게 매도(罵倒)해왔다고 말한다. 예컨대 "정보에서 기업은 국가를 앞선다" "정부 산업정책은 무용지물이다" "관료 권한 강화는 부패를 부른다" "정부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주장들은 근거 없는 '마타도어'라는 것이다. 그는 또 '탈규제만이 선(善)인가'라고 묻고 "규제가 없었다면 시장도 없었고, 시장은 규제(정부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답한다.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제도주의'(institut ionalism)를 제시한다. 국민경제의 성패는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들에 달려있다. 시장은 매우 중요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여러 제도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지나치게 저평가된 국가의 역할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그의 문제 제기는 의미 있다. 그러나 정부와 시장의 역할 논쟁을 너무 '신 자유주의와 안티 신자유주의'의 이분법적 틀 속에서 보려고 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갖는 역동성, 효율성, 자기조절과 자기복원 능력과 같은 장점들을 평가하는데 인색했다.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국가의 역할도 '신자유주의와 안티 신자유주의'의 중간 어디쯤 있다는 걸 그도 모르지 는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발췌)
'지식인 마을' 시리즈 (장대익 外 지음/김영사)
공자·갈릴레오·에디슨·이황…이들이 한 마을에 산다면
동서양의 문화·문명을 이끌어온 길잡이들을 한 마을에 모아 가계를 정리하면 어떤 족보가 나올까. 도서출판 김영사가 내년 상반기까지 전집 50권 완간을 목표로 출판 중인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국내 소장파 학자들의 시각으로 제작한 일종의 '지식족보'여서 흥미롭다.
24일 현재까지 15권이 간행돼 권당 2명씩 30명의 주민을 추린 이 시리즈는 마을 지형을 원로급 촌장마을과 후계자들의 일꾼마을로 크게 나눈다. 촌장마을을 양분하는 가계는 플라톤가(주민 42명)와 다윈가(18명). 그 인근의 일꾼마을은 아인슈타인가(22명)과 촘스키가(18명)로 대별된다.
총 주민 100명은 너나없이 인류사의 물줄기에 큰 영향을 미친 선각자들이다. 촌장마을에는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아우구스티누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이상 플라톤가) 갈릴레오 베이컨 뉴턴 데카르트(이상 다윈가) 등이 살고, 일꾼마을에는 하이데거 후설 하버마스 푸코 들뢰즈(이상 촘스키가) 토플러 보어 에디슨 하이젠베르크 오펜하우어 괴델(이상 아인슈타인가) 등이 거주한다.
주민들은 파란만장한 삶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어떻게 그런 불꽃 같은 사상과 과학적 각성이 나오게 됐는지도 설명한다. 그러면서 다른 동료 지식인은 물론 이웃 주민도 소개해준다. 단짝도 있고, 앙숙도 있다. 저마다 둘씩 짝을 지어 한집에 산다.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면 동서고금의 지식 계보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홀로 만들어진 사상도, 철학도, 발명품도 없다는 것이 새삼 확인되는 순간이다.
쟁쟁한 주민 가운데 한국인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는 물론 정약용 최한기 신채호 함석헌 우장춘 석주명 등 8명이 당당한 마을 주민이다. 세종대왕이나 원효대사가 입주를 못 하긴 했지만, 스피노자, 밀, 애덤 스미스, 마키아벨리, 코페르니쿠스, 융 등도 입주권을 얻지 못한 데서 애써 위안을 삼아 본다.
마을 설계에는 미국 터프츠대 인지연구소의 방문연구원인 장대익 박사를 비롯해 동양철학자 강신주 박사, 최훈(강원대) 김광기(경북대) 이태주(한성대) 조숙환(서강대) 조지형(이화여대) 하상복(목포대) 홍태영(국방대) 교수 등 소장파 학자 36명이 참여했다.
한국인이 만들어 국내 서점가에 배포한 '지식인 마을'은 조만간 미국과 일본 등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김영사의 신은영 편집기획실장은 "주로 외국서 번역에만 의존했던 국내 인문서 시장에 비로소 우리가 독자적으로 기획한 시리즈가 나왔다"면서, 특히 "다른 나라엔 없는 전혀 새로운 마을이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벌써 관심과 호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발췌)
마인드 세트 (존 나이스비트 지음/안진환 옮김/비즈니북스)
마음은 눈을 지배한다. 우리의 눈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우리는 이 사회가 일방적으로 주입시켜 모든 사람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마음가짐-마인드 세트-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마인드 세트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선택권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사회적 강압에 의해 주입된 마인드 세트를 끝까지 고수할 수도 있으며, 스스로 적극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신중하게 새로운 마인드 세트를 개발할 수도 있다.
마인드 세트는 일종의 인식의 도구이다. 필요한 정보를 추려내고, 지금 현재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그림을 제시하며, 우리 앞에 놓인 미래로 향한 문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어 준다. 우리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명확하게 꿰뚫어보기 위해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그림은 단순한 추론이나 미지에 대한 탐색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여 그려져야 한다. 마인드 세트의 안내에 따라 현재가 보내오는 신호(signal)를 세상이라는 거대한 그림 속에서 전체적인 흐름에 초점을 맞춰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은 미래에 무엇이 펼쳐질지를 예측할 수 있는 열쇠이다.
마인드 세트는 우리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는 별과 같다. 그것은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 항로를 알려 주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안내해 준다.
지난 40년간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해온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 박사는 "한국의 역동성은 항상 나를 흥분시킨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방한 때의 느낌은 좀 달랐던 것 같다. 중국 베이징에서 22일 서울에 도착한 그를 맞이한 것은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였던 것이다. 아내의 손을 잡고 인터뷰 룸에 들어선 그는 "어제 서울시청 근처에서 끔찍한 교통지옥을 겪었다"며 반(反)FTA 시위 얘기부터 꺼냈다. "1967년 내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은 국민소득 140달러의 작고 볼품없는 나라였다. 그런 한국을 이렇게 강하게 만든 것이 바로 세계화인데, 여기에 반대하다니 이런 아이러니(모순)가 어디 있는가."
그의 메시지는 간명했다. 한국은 사람이 우수하고 따라서 미래가 밝다는 것이었다. 단 여기엔 '정부가 방해 말 것'이란 조건이 붙었다. 정부 규제가 나라 경제를 망친다는 것이 그의 저서와 강연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화두(話頭)다. 인터뷰는 23일 오전 신라호텔에서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됐다.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평가는 지금도 유효한가.
"그렇다. 나는 매번 한국인의 교육열에 놀란다. 한 나라의 운명과 미래는 그 나라 사람에게 달려 있다. 한국이 여기까지 온 것도 한국민들이 스스로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다. 한국은 한 나라 국민의 힘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당신은 이번에 출간한 '마인드 세트'의 한국어판 서문에 한국이 '기회를 찾는 사람들의 나라'라고 썼다. 무슨 뜻인가.
"적극적으로 기회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변화를 일으키고 혁신한다는 뜻이다. 바로 한국이 그런 나라다. 삼성을 보라. 예전엔 꿈도 못 꾸던 세계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은 언제나 미래를 바라보며 앞에 놓인 기회를 찾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움켜쥐었다."
―하지만 요즘 한국은 활력의 쇠퇴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 규제가 늘고, 시장 경제에 장벽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라. 규제를 완화하고, 개방하라. 그러면 자신감을 되찾을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한국 정부처럼 계속 규제만 더 만들어 낸다면 곤란하다." (그는 'Get out of the way!' 라고 외쳤다. 정부는 기업에 방해가 되지 말고 비키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부는 '큰 정부'로 나가고 있다.
"그것은 잘못된 방향이다(그는 'wrong'이란 표현을 몇 번 반복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내 투자를 줄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저서에선 유럽의 규제형 모델이 실패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유럽엔 규제가 너무 많다. EU(유럽연합)가 회원국들에 적용하는 규제가 무려 9000페이지에 이른다. 예컨대 브뤼셀에선 아파트 문고리를 고치려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브뤼셀 시민들은 모두 똑같은 문고리를 달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 낙관론자'지만 재벌 시스템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한국의 문제는 재벌에 있다"고 진단하는 그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눈부신 성공을 어떻게 설명할까.
―재벌 시스템이야말로 한국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지적도 있다.
"재벌의 공로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 경제의 재벌 의존도, 재벌의 시장 점유율이 균형 수준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또 재벌이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재벌은 큰 조직인 만큼 관료화 되기 쉽다. 작고 민첩한 기업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크다."
―21세기는 중국이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중국은 정말 경이로운 나라다. 하지만 연간 10%씩 성장하는 중국도 경제 규모가 2조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은 13조 달러다. 중국이 매년 10%씩 성장해도, 미국에 근접해지려면 35~40년쯤 걸린다."
―미국의 패권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미국은 제국(empire)이다.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로마와 같은 제국이다. 나도 미국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로마가 1000년을 지속했듯이 미국도 21세기 대부분 동안 패권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
―한국에 닥친 미래의 위협 중 가장 무서운 것이 인구 고령화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는 '엊그제 한국 통계청자료를 말하는 것 맞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방대한 분량의 신문을 읽으며 세계를 손바닥 보듯 하고 있었다).
"고령화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겪고 있는 고민 중 하나다. 내가 책에서 '미래는 현재에 내재(內在)돼 있다'고 했는데, 인구 구조는 운명이다. 우리는 '노령화'의 씨를 뿌린 채 살고 있다. 해결하기 쉽지 않다."
―당신이 만약 손주를 위해 투자한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주식을 사겠는가?
"아, 이 세상에 '한국 주식'이라는 것은 없다. 개별 기업, 즉 삼성전자 주식 또는 현대차 주식이 있을 뿐이다."
그는 오려진 신문 기사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인도와 브라질이 세계 철강업계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그는 "이건 틀렸다. 인도와 브라질이 아니라 인도 철강회사, 브라질 철강회사라고 써야 한다"고 외쳤다.
질문을 바꿔 "그럼 한국의 어떤 회사 주식을 사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내가 지금 신라호텔에 있으니, 삼성 주식을 유심히 살펴보겠다고 답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경제 대담 발췌)
몽타이유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 지음/유희수 옮김/길)
오래 전 TV에서 본 어느 영화를 떠올려 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 일행의 좌충우돌 모험담이었는데, 일행 가운데 역사학자가 한 사람 있었다. 일행이 위기에 빠진 왕국을 구해 역사의 진행 방향을 역사 기록대로 바로잡고 현재로 돌아오려는 순간, 역사학자는 현재로 돌아오지 않고 남겠다 말한다. 자신이 연구하는 시대에 계속 살겠다는 것. 모르긴 해도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그 영화 속 역사학자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아날 학파 제3세대 대표주자로 평가받는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에게 타임머신 구실을 한 것은, 14세기 초 자크 푸르니에 주교가 주도한 이단재판을 위한 심문 기록이다. 무대는 피레네 산의 1300m 고원 지대에 자리한 몽타이유 마을. 이 마을에는 물질계를 악한 신의 피조물로 보는 기독교 이단종파인 카타르파가 1290년대에 이식되었다. 13세기 중반 로마 교회가 대대적으로 카타르파를 척결하자 잔존 세력이 피신처로 안성맞춤인 피레네 산간으로 도망쳐 마지막 포교활동을 펼쳤고, 몽타이유 마을이 그들의 포교활동에 포섭되었던 것이다.
이단 심문은 철저했다. 심문관들은 마을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까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혐의 사항을 확인했고, 푸르니에 주교가 직접 혐의자들을 심문하여 피의자 진술과 심문관의 기록 사이의 차이점을 다시 확인했다. 라뒤리는 이 심문 기록을 바탕으로 몽타이유라는 중세 말 남프랑스 마을 사람들의 심성과 일상의 총체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마을의 물질적 환경, 다양한 권력 관계, 양치기의 삶과 심성, 동성애를 포함한 섹스와 결혼 그리고 성관념,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 사회 관계, 공간 인식, 자연에 대한 인식, 종교와 신앙의 다양한 실천 양태 등등.
라뒤리는 몽타이유 사람들의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몽타이유 문서는 오늘날까지고 실행되고 있는 정중함의 몸짓이 농민에게서 기원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무의식적으로 두건을 벗고 일어서 친구나 지인, 아랫사람이나 윗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일서서서 인사하는 것'이 대등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통했고, 오래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날 때는 서로 손을 잡았으며, 아낙네들끼리는 다정하게 팔짱을 끼곤 했다.
정중한 인사·악수의 기원 암시
몽타이유의 문화는 어떻게 유통되었을까? 몽타이유의 문화적 위계는 이러했다. 라틴어를 읽을 줄 아는 카리스마적 엘리트 지식인, 라틴어를 약간 알지만 카리스마가 없는 엘리트 지식인, 라틴어를 모르는 교양 있는 평신도, 다수의 문맹자. 이 가운데 교양 있는 평신도들은 중세 프로방스어인 오크어를 읽을 줄 알았지만 라틴어를 몰랐기 때문에 존경을 받지 못했다. 책에서 나온 사상을 문맹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구술, 즉 이단자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설교였고,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은 가족 집단 내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전수했다.
종교와 신앙 측면에서 몽타이유 사람들은 자연과 물질을 선한 하느님의 작품으로 보지 않았으니, 농촌적 자연주의가 초자연적 창조와 신적 개입을 주장하는 이론과 대립되었다. '식물을 꽃피우고 여물게 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악마다.' '나무는 땅의 자연에서 나오지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위며 꽃이며 곡물이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하느님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결국 14세기 몽타이유의 종교와 문화는 민속 문화의 속살에 기독교의 옷이 헐렁하게 입혀진 일종의 민중 기독교 양상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마을 사람들의 도덕의식의 기초는 가톨릭이나 카타르파의 교리가 아니라 전통적 관습, 이웃의 평판, 수치심이었다. 동시에 두 자매와 성관계를 갖는 것은 죄인가? "내가 친척 여자들과 잤다면 난 수치스런 짓을 저지른 셈이다. 그러나 친척도 아닌 다른 집 자매를 두 명씩 데리고 잤다니까! 정말 아무 일도 아냐." 신학적 의미의 죄 개념이 아니라 인류학적 의미의 수치 개념과 이웃의 평판을 중시했던 것이다.
성행위에 대해서도 쾌락 자체를 죄로 보지 않았다. 본당 신부와 성관계를 가진 소녀 그라지드 리지에는 이렇게 말했다. "성직자가 주도했든 내가 주도했든 간에 그와 육체관계를 맺는 것이 나는 물론 그에게도 즐거웠다. 그래서 나는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그래서 지금은 그와 육체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죄라고 생각한다."
라뒤리가 속한 아날 학파 제3세대의 특징은 장기 지속적인 구조에 주안점을 두는 이전 세대 아날 학파와 달리, 이렇게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주안점을 둔다. 이에 따라 아날 학파 제3세대의 흐름을 역사 인류학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구체적인 생활방식과 상징체계, 즉 인류학적 문화 개념을 역사에 적용한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이 보여 준 거시적 전체사와 사회경제사와 대비시켜 이해해볼 수 있다.
성행위 '쾌락'죄로 보지 않아
역사학의 계보로 보면 역사 인류학과 심성사는 모든 계급이 공유하는 집단적이고 공통적인 것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상통하고, 신문화사와 미시사는 계급의 문화적 개체성과 주체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미시사, 신문화사, 심성사의 이해를 위해서는 각각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문학과 지성사),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지식의 풍경), 필립 아리에스의 (새물결)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옮긴이 유희수 교수(고려대 사학과)는 를 역사 인류학의 범주에 포함시키면서 동시에 신문화사와 미시사 등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역사학의 종합적 전범으로 평가한다.
가 학술사의 계보에서 차지하는 의미도 의미지만, 무엇보다 는 재미있다. 읽는 내내 13세기 말 14세기 초 남프랑스 농촌 마을로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기분, 몽타이유 사람들과 함께 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라뒤리는 그 기분을 짧지만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1320년의 이데올로기적 경찰에 의해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몽타이유는 일시적인 용감한 일탈 그 이상이다. 몽타이유, 그것은 서민들의 생생한 역사요 삶의 떨림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한겨레신문 발췌)
세계적 인물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빅터 고어츨 지음/박중서 옮김/뜨인돌출판사)
미국영재교육협의회 회장을 지낸 고어츨 부부와 그 아들이 세계적 인물(미래의 세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 600명을 그들의 전기와 자서전을 바탕으로 성장배경과 가정교육을 조사하여 사례별로 분류했다.
1962년 초판 출간 당시, 세계적 인물 400명의 성장과정을 담아내 교육계와 언론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던 이 책은 영재교육서의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20여 년간 절판 상태에 있었지만 찾는 사람이 많아 2003년 고어츨 부부의 아들인 테드 조지 고어츨이 현대의 세계적 인물 200명을 추가하여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천재를 예찬하거나 '천재 만들기'를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두각을 나타냈던 영재들의 사례를 하나하나 살펴봄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재능'을 인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시키는 한편, 그런 능력이 허비되지 않도록 부모나 교사나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고어츨 부부는 영재교육의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 조사를 실시했다. 세계적 인물의 어린 시절을 연구하고 어떤 공통분모를 발견하려 한 것이다. '세계적 인물에게는 어떤 특별한 기회가 있었을까? 그들은 특정한 방법으로 교육되거나 훈련받았을까? 그들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어떤 특별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일까?'를 말이다.
두 부부는 인근의 공립도서관에서 세계적 인물들(미국 뉴저지주 몬트클레어 공립도서관)에서 엄격한 기준에 의해 선정된 400명)의 어린 시절의 성장배경이 담긴 전기와 자서전을 무려 수천 권 읽으며 자료를 도출해냈다.
저자들이 찾아낸 유명 인물들의 공통된 특성은 크게 2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자신의 이상과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끈기를 보였다는 점과 자신의 야망을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부모나 교사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동료학생에게 배신자로 폄하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TV 방송사를 찾아다녔고, 조지 W. 부시는 예일 대학의 급진적인 학생문화에 등을 돌리면서까지 자기가 배운 전통적인 가치를 고수했고,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화국의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혜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혁명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끈기를 보였다.
타이거 우즈는 경기 때마다 동행하며 끊임없이 조언해 주는 열겅적인 부모가 있었으며, 빌 게이츠의 부모는 아들이 공립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자 미련 없이 수준 높은 사립학교로 전학시켰다. 또 리처드 파인먼의 아버지는 아들이 과학에 관심이 많은 것을 보고 끝없이 아들을 격려해 최고의 과학자로 키워냈다.
40여 년 동안 영재교육의 필독서였던 이 책은 구글에서 무려 900여 개가 넘는 링크가 검색되었을 정도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또한 학부모를 위한 각종 권장도서 목록에 거의 예외 없이 올라가기도 했다.
학계와 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부모에 이어 저명인사들의 교육 배경을 연구해 온 테드 고어츨은 초판이 출간된 이후 40여 년간의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인정하면서 이전에 연구한 결과가 지금도 맞는지 알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에 현대의 세계적 인물 200명을 추가하였다. 결과는 40년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게 크게 변화가 없었다.
11살 때까지 글을 읽지 못한 우드로 윌슨,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루이 암스트롱, 싸고도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작고 병약했던 아이인 모한디스 간디, 엄마가 아무 음식이나 잔뜩 해먹여서 비만이 된 마리아 칼라스, 남자였는데도 먼저 죽은 누나를 대신해 여자처럼 자라야 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미혼모에게서 버림받고 권위적이고 오만한 할머니 밑에서 자란 오프라 윈프리, 일곱 살 때 여동생의 죽음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조지 부시, 젊은 시절 반항아였던 넬슨 만델라 등 일반적인 위인전에선 찾을 수 없던 대상인물과 그 주변인물들이 남긴 진솔하고 생생한 증언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이 책은 600명 인물들을 조사했지만 각 인물들의 일생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각 인물들이 어린 시절에 공통적으로 경험한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방대한 사례를 제시하지만 이 책은 통계 위주의 저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실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저명인사가 어린 시절에 어떻게 도전을 이겨내고, 또 기회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교육자나 학부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 1,2 (윤해동 外 지음/역사비평사)
이 책은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기획됐다. 암울했던 1980년대를 바탕으로 했던 '…인식'의 세계해석과 역사 인식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다했으며 '…재인식'은 한국학계와 사회를 냉전적인 진영 논리로 채색하고 말았다. 저자들은 개발 지상주의 및 국가주의로 요약되는 근대주의와 제국주의의 쌍생아로서 민족주의,이 두가지를 모두 넘어서 역사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모두 6부 28편의 논문으로 구성됐다. 이 중 역사학과 문학이 20여편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나머지 논문은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종교학 교육학 등 다방면을 아우르고 있다. '…인식'과 '…재인식'의 공과는 차치하고서라도 새로운 시선으로 낡고 오래된 가치와 학문적 방법을 과감히 비판한 젊은 인문학자들의 노력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대장정-세상을 뒤흔든 368일 1,2
(웨이웨이 원작, 왕쑤 지음/선야오이 그림,송춘남 옮김/보리)
역사적으로 가장 밀접한 국가였으며 오늘날 그 존재가 없으면 한국 경제(혹은 세계 경제)를 생각하기 어려운 중국이라는 나라의 코드를 우리가 제대로 읽고 있는지. 옆집 드나들듯 오갈 수 있고 때론 우리보다 짙은 자본주의 냄새를 풍기기도 하지만 결국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경제발전이라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다더니 다시 균부론(均富論)의 군불을 솔솔 지피고 있는 속내는 무엇인지. 이런 문제로 한번쯤 고개를 갸웃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8만 명의 홍군이 남부 장시(江西)성에서 북부 산시(山西)성까지 9654㎞에 이르는 죽음의 행군을 마쳤을 때 고작 7000명만 남았지만 그 같은 고난의 씨앗이 어떻게 사회주의 국가 건설로 발아할 수 있었는지가 광대한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특히 대장정 길을 두 번이나 답사하고 홍군 군복 특유의 주름까지 세세히 묘사하는 등 철저한 고증을 거친 926장의 판화는 마치 독자로 하여금 대장정에 직접 따라나선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웨이웨이의 장편 소설 '지구의 붉은 띠'를 원작으로 한 이 책은 중국인의 눈으로 직접 바라본 대장정 역사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이다. 그림을 그린 선야오이의 말처럼 "공산주의 이상을 위해 싸운 장정 정신을 선전하려는 공리적 목적"이 전반에 흐르는 이유다. 그렇다고 심한 왜곡과 과장은 발견되지 않는다. 대장정 이야기로 유명한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이나 해리슨 솔즈베리의 '대장정, 작은 거인 등소평'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몇 군데 장면에서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역할이 바뀌어 있는데 정황으로 볼 때 이 책이 옳다는 게 개인적 견해다.
(중앙일보 발췌)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