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애들셋을 끌어안고 밤새 눈이 퉁퉁 부울 만큼 울어본 적이 있는지요?
저는 73년 소띠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이 힘겹다고 느끼고 살고 있는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스무살에 한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증금 없는 월세방에서 보금자리를 꾸미고 수물셋에 첫딸을 낳고 열심히 일하며 조금씩 전세집도 마련하고 스물여섯에는 쌍둥이 아들까지 낳아서 살고 있었습니다.
애기 아빠는 천성적으로 책임감이 없고 실증을 잘 내며 친구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저는 학교 졸업하고 레스토랑에서 피아노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는 밤무대 통기타 가수로 업소를 돌며 타임제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저 나이 차이는 네살차이
옛말에 네살차이는 궁합 볼것도 없다고 했는데....
그는 구년동안 일년에 한번씩 직업을 바꾸었고 그때마다 쉴때면 그동안 모든 돈을 쓰고 도 뭐든 시작하면 목돈을 들여서 하고 또 실패하고....
애를 낳고도 저는 계속 일하며 돈을 벌고 그때마다 그사람은 사업에 실패하고...
저는 그 사람이 사고를 치면 언제나 뒷치닥거리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전세금으로 그 사람 빚을 갚고 애 셋을 데리고 월세방에서 살다가 저는 친정살이를 시작했습니다.
말이 친정살이지 친정살이는 아니었습니다.
집에는 우리 식구와 제 남동생 하나만 있었구요 부모님은 딴곳에서 살았지요
그러다 우리는 그 사람 빚으로 또 사업 변경과 카드 빚으로 난 이혼을 제기 했고 그는 그런 내 말을 믿지 않았어요
제가 그저 겁을 주려고 그러나 보다 생각했나봐요
그는 이혼하는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서 무효가 됐고 난 또 신정서를 내고 끝내 그는 나타나서 법적으로 이혼이 되었어요
이혼 조건은 애들은 네가 맡는다는 조건이었어요
그는 집도 없이 경영하는 가계에서 먹고 자고 했으니까 그 당시 돌 밖에 안된 아이를 줄수도 없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빚 진 천만원정도빚을 제가 갚는다는 조건이었어요
난 7살난 딸과 이제 돌 지난 딸을 데리고 일하며 살았어요
한달에 생활비를 주겠다는 약속은 두달만 지킨체 주지 않더군요
저는 결국 친정 아버지께 이혼 사실을 알리고 친정아버진 다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 핏줄을 제가 왜 키우냐며 애들을 애들 아빠에게 보낼것을 강요 했어요
저는 친정살이를 하는터라 아빠 말을 따르는 수 밖에 없었어요
사실 그 땐 애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내 나이 그때 수물 여덟 ! 친구도 만나고 싶고 애들이 어려서 너무 힘들고 또 살림도 넉넉치 않아서 공장을 다녔는데 정말 그땐 그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친정집이란 이유로 구청에서는 모자 신청서를 받아주지 않아서 국가 지원도 받지 못해서 제가 버는 팔십만원은 애들놀이방비로 고스란히 육십만원이 들어가니 이십만원으로는 생활이 안되더군요
저는 서울행을 결심하고 쌍둥이는 애들 아빠에게 보내고 딸은 초등생이라서(생일이 빨라서 일곱에 학교 입학) 시집간 여동생 집에 맡기고 저는 서울로 왔죠
하지만 저는 애들이 너무 보고 싶고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고 결국은 등뼈가 신경을 누르는 병이 생겨서 숨도 쉬기 힘들만큼 힘들게 되었어요
저는 애들을 데려와야 겠다는 생각에 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부항도 뜨고 해서 등은 멍투성이로 해서 일시방편으로 겨우 몸을 추스린뒤에 전남편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그는 처음에는 완강이 거부했지만 그도 상황이 상황인만큼 애들을 보게 하더군요
애들 고모집에서 애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고모가 허리를 다쳐서 앞으로 일하기가 힘들다고 하더군요
여자 둘이서 집에서 할것도 없고 그저 애들데리고 하루하루 보내는데..
고모집도 그리 넉넉한 집이 아니예요
언제까지 그렇게 얹혀 살수도 없고 해서 마침 고모는 일하러 못가니까 우리 애들 학원에서 저녁6시에 오면 저녁시간에만 봐달라고 하고 저는 일을 할 참 이었어요
전 남편에게는 그때가지도 천오백만원정도 빚이 있었는데 전 마침 좋은 직장이 나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돈을 벌겠다고 했었요
그땐 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돈을 벌어서 방한칸이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저는 고모에게 애들을 맡기고 전 남편 빚 천오백만원을 저도 카드 대출을 받아서 갚고 서울로 왔어요
그 사람은 일해서 고모에게 생활비 주고 전 벌어서 카드빚을 갚을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두달만에 ... 애들 못 보겠으니까 고아원에 보낸다고 하는거예요
그땐 딸도 고모집에서 학교 다니고 있었거든요
저는 두달만에 엄청난 빚만 진체 다시 애들고 방한칸 없이 오갈때도 없었어요
친정집으로는 더 이상 갈수가 없었어요
저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그 전세 계약서를 친구에게 주고 이자 없이 돈을 빌리고 한달에 조금씩 갚겠다고 하고 서울에 방을 구했어요
지하 단칸방에서 월세를 좀 더 내야 하는 방이었어요
비가 오면 부엌에는 물이 세고 지하방이라 가파른 계단엔 애들과 정말 힘들었어요
저는 전남편에게 지금 빌려준 천오백만원을 한달에 팔십만원씩 받고 있고 저도 일하고 애들은 이제 영세민 신청이 되서 놀이방에는 정부에서 돈을 지급해서 조금씩 살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에게서 빌린 전세금을 한달에 팔십만원씩 갚고 있어요
제가 버는 걸로는 월세와 공과금 애들과 생활비밖에 안되죠
신용카드!!!다들 쓰셔봐서 아실꺼예요
저는 더이상 카드를 도려 막을수도 없는 상황이되었어요
현금서비스는 한정적인데 대출금까지 매달 금액이 늘어나니 더 이상 갚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카드회사에서는 하루에 두세번씩 전화가 오고 지금 난리입니다.
요새 인생 대 역전이라나 뭐라나 그런 복은 왜 나에게는 오지 않나?하는 생각 뿐입니다.
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애들은 자꾸 커가고 전 신용불량자에다가 ...정말 괴롭습니다.
하지만 전 절대 애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두번다시 누구에게도 애들을 맡기지 않을 겁니다.
다행이도 애들이 성격이 밝고 낯도 가리지 않고 셋이나 되니까 우애도 좋아서 서로 챙겨주고 하니까 아직은 맘이 든든하니다.
저도 수십년이 지난뒤 지금 일들을 웃으며 회상할수 있을까요?
이혼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앞으로 애들과 살길이 막막하기만 하네요
죽고 싶을 많큼 힘들지만 내 속으로 낳은 내 강아지들 땜에...
제게 용기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