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엄마 미안해 제 2탄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시고 나서도

윤남임 |2007.01.26 19:32
조회 17 |추천 0

엄마 미안해 제 2탄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시고 나서도 2001년도에는 건강하셨다. 그런데 추석지나고 나서 큰 오빠가 엄마를 모시러 오셨다. 내가 엄마께 가시기 싫으면 엄마 저희 집에서 같이 살아요. 당신께서 돌아가실꺼를 아셨나보다. 큰 오빠가 모시러 오셨는데 엄마는 오빠를 따라 가고싶은 생각이 없으셨다. 최서방이 장모님 가시기 싫으시면 안 가셔도 되요. 엄마 하시는 말씀이 큰 아들이 대리러 왔으니 같다가 또 옴세. 그래서 내가 엄마 저하고 돌아가실때까지 같이 살아요. 엄마가 저곁에 잠시 계실때 맛있는걸 못 해드려서 내가 돈여유가 있으면 엄마하고 같이

여행도 보내 드리고 내가 면허증을 따서 우리엄마 회의 여행은 못 보내 드려도 우리 나라 라도 팔도강산을 제가 모시고 다니면서 가는 곳에서 해가 지고 밤이되면 여간에서 엄마 안고 잠을자고 아침되면 또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모시고 다니다가 엄마가 못난아 나 피곤하니까 이제 구경 그만하고 집에가자. 그러면 집에와서 엄마를 편히 쉬게

해드리고 못난아 또 여행가자! 한번 다녀 왔으니까 밖에 나가서 엄마가 좀더 편하시게 끔 집에서 준비해가지고 다니고 다니고 다니고 또 다니고 지금은 그렇게 못해드린게 가슴이 한이 됩니다. 그 돈 아껴서 그 돈 모아서 집산것도 없고 차산것도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만 3년이 되가는데도 우리집 살림 사리 더 나아진것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일기 제목이 엄마 미안해다. 그렇게 빨리 돌어거실 줄 알았으면 큰 오빠 못 따라가시게 엄마를 붙잡을 껄...내가 엄마에 자식 중에서 제일 못났고 새기를 못나아서

엄마께서 마음고생 저 때문에 80십년동에 쓸어 진 적도 있었다. 엄마께서 나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 말씀을 제가 좀더 진지 하게 받아 드릴걸 왜 그렇게 엄마 마음을 몰랐을까? 오빠를 따라 가실때 못난아 잘 잇거라 잘 살거라 엄마를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렇게 오빠를 따라 가셔서 그해 겨울에 큰오빠 집에서 낮잠을 주무시다가 소변이 마려워서 변소에 가시다가 얼음판에 미끄러 지셔서 엄마가 정신이 하나도 없으셨는데 그 마당에 그대로 누우셔서 잔감 내가 꿈을 군것 같다. 꿈속쳐럼 엄마가 큰소리로  못난아 못난아 못난아 부르시다가 깨어낫다고 하셨다. 나도 그날 밤에잘때 꿈을 꾸웠는데 엄마 젊었을때 머리에 미녀를 꽃고 예쁜옷을 입으시고 저희 집에 오셨다.나는 엄마가 젊었을때고 늙으셨어도 항상 예뻤으니까 그런 꿈을 꾸고도 엄마께 전화도 드리지 않았다. 그 때 전화만 드렸드라면 엄마가 편찮으신걸 더 빨리 알앗을건데 우리 망네 동생이 설이 다가 오니까 엄마께 전화를 드렸는데 언니 엄마가 많이 편찮으신거 같에 나는 설을 샐려고 몇칠 전에 시가집에 내려 왔었다. 설을 새고 와서 동생들과  다같이 큰오빠집에 엄마를 배러 갔다

그런데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다. 

병원에 가서 엄마를 뵙는데 엄마가 눈밭에 넘어지실때 다리가 꼬리뼈가 불어지셨다고

큰오빠 말씀이 동생들 다 오면 의논 해서 수술을 하던지 안 하던지 할려고 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이제서야 병원에 모셨어요. 구정 안에 다치 셨다 면서요? 큰 오빠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차가 다니지를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를 병원에 빨리 못 모셨다. 내가 오빠께 그랬다. 구급차라도 불러서 병원에 빨리 모셨어야죠

 그렇게 많이 아프신 엄마를 8일 만에 병원에 모시다뇨?!! 아직까지 수술도 안 하고 계시길레 의사를 찾아가 엄마 엑스레이를 보여달라고 했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보여주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다. 의사 말씀이 꼬리뼈가 불어지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를 막 넘어 졌을때 그 때 빨리 모시고 오셨으면 쉽게 하실수 있는 수술이었다고 하셨다. 지금은 날짜가 8일이 넘어서 피가 고여서 뼈가 잘 안보이니까 잔뼈는 잘 보이지 않으니 수술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수술시간이 6시간이나 걸렸다. 우리 막네동생이 엄마 수술할때 계속에서 엄마 곁에있었다. 큰오빠 작은오빠 다 집에가시고 나는 남동생과 같이 집으로 왔다. 나는 당뇨가 심해서 엄마 수술 하실때 엄마 몇칠이따

못난이 또 올께 그 다음에 엄마에게 갈때는

인수리린주사를 많이 챙겨서 엄마께 갔다.

내가 병간호 할테니 다 가라고 했다.여동생하고 한번씩 번가라 병간호 해드렸다.다 낳으셨을때는 제가 모시고 우리집으로 왔다.

또 저희집에 얼마 동안 계셨는데 큰오빠가 또 모시러 왔다. 그때는 2002년도 5월달이었다. 5월달에 큰오빠가 모시고 가셨다.

엄마가 오빠집에서 잘 사시는 줄말 알았는데 2003년도에 또 마당에서 뒤로 떵 하셔가 넘어지실때 그때도 빨리 병원에 안 모시고 약도 안 사다 드리고 그냥 엄마를 방치하고 그냥 낫두신 거 같다. 엄마는 말씀을

못하시니까 저희들에게 전화도 못하시고

그러고 사시다가 어느날 큰오빠가 저희집에 전화를 하셨다. 엄마에게 점심밥을 드렸느데 한숫가락 잡수시던 만은 숫가락을 놓으시면서 밥을 못먹겠다하며 손을흔드신다

그래서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엄마를 찾아갔다. 오빠가 병원에 모셔서 그 날 우리가 내려간날 그 때셔야 엄마를 병원애 모셨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으로 엄마를 찾아갔다.

자식들이 찾아갔어도 말씀을 못하셨지만 정신은 멀정하셨다. 저희들을 보시며 엄마는 우셨다. 그 때나는 큰 오빠가 미웟다. 엄마를 왜이렇게 잘 못 모셨을까? 이렇게 못모실빠에는 저희 집에 저 보러 오셨을때 엄마를 모시고 가지말지 엄마 한배 속에서 태어낳지만 아들하고 딸 하고 이렇게 마음이

다르다. 저는 엄마를 보는 순간 마음이 못하시니 제가 쳐다보고 엄마엄마 엄마 엄마 우니까 저를 가슴으로 안아서 손한쪽은 못으시니까 한쪽손으로 네 눈물을 닦아 주셨다.엄마께 난 하고싶은말도 많은데 엄마 말씀데로 앞으로 현명하고 똒똒하게 세상을

잘 살태니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저에게 말좀해봐 엄마 하시는 대로 다할께 엄마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어? 엄마는 손짓 발짓 다하셨지만 저는 하나도 못알아 들었다. 난 너무 가슴이 아파서 엄마 엄마 내 엄마... 나는 엄마 없는세상 생각도 안 했는데 말씀을 못하셔서 저희들곁에서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그런데 엄마가 뭐라고

손짓 발짓 하셨다. 내가 뭔말이냐고 계속 이말 저말 묻다가  엄마 안 되겠어 더 큰병원에 모셔야 겠어. 경희대병원이 좋다해서

한방가로 모셨다. 병원에서 입으로 밥을 못드시니까  줄을 코로끼어 가지고 밈을 줄에다 떠넣으면 줄을 타고 위로 들어갔다. 엄마가 코가 답답하시니까 코에다 끼어넣은 줄을 자꾸만 당신손으로 빼내 셨다. 또 코에다 줄을 끼어넣으면 또 답답하셔서 빼가 버리시고 자주 그러셨다. 코하고 위하고 연결시켜논 줄이라서 빼낼때 위가 많이 아프셔서 무척 힘들어 하셨다. 손으로 벽을 치며 고통스러워 하셨다. 간호사가 양쪽손을

침대에다 묶어 놓고 밈을 떠서 넣어드리라고 했다. 그렇게 밈을 드리다가 엄마 보기 않으러워서 팔을 풀어드렸다. 병원 간호사가 풀어졌다고 내게 뭐라했다. 내가 간호사보고 우리 엄마 팔을 내가꼭 잡고 있을태니

걱정 마세요 내가 잠을 안자고 엄마가 코줄에 줄을 못빼게 나는 잠을 안자고 엄마 손을 잡고 있었다.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있는데 엄마가 내 손을 잡고서 위를 가리키서 내가 엄마 위를 만지면서  엄마 위가 아프셔??? 엄마가 아프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다. 간호사를 찾아가 위가 많이 아프시다 하니 빨리 조치를 취해주세요. 지금은 선생님이 안 계시니 기달리세요. 선생님이

오셔서 약을 다르게 처방을 해 드렸으니 낳으실겁니다.몇칠을 기달려도 낳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양방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양방으로 가실려면 태원 수술을 밟어야 합니다. 태원 석을 마치고 큰병원 양방으로

갔더니 입원 수석을 밟으라고 했다. 입원실이 없으니 하루종일 응급실에 계셔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조금한 병원에 입원 하셨을때 그 병원으로 내가 모시고

갔다. 거기서 주사낳주고 약 한번 드셨는데

엄마 인제 안 아퍼 내가 물었다. 엄마가 안아프다고 끄덕끄덕 하셨다. 그 병원에서 하루밤 주무셨는데 엄마 얼굴이 밝으시고 편안하게 보였다.엄마 다 낳을때까지 이 병원에 있어 하니까 엄마께서 위를 가리키며 위가 낳으면 큰 병원으로 가자고 가리켰다. 엄마 큰병원 가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다. 위가 다 낳으시니까 엄마가 저에게 큰 병원에 가자고 그러셨다. 엄마 큰병 가자고? 그러니까 엄마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다. 나는 작은 병원에서도 엄마를 많이 낳으신것 같아서 큰 병원에는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큰 병원에 안 모시고 작은 병원에 계속 계시계 했다. 지금은 내가 그 돈 어껴서 뭐할려고? 누구 줄려고?

엄마 큰 병원에 안 모시고 아낀 돈 만큼 내 가슴이 아프다. 엄마가 빨리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병원 비라도 아까워 말고 쓸걸 지금은 후회하고 날이면 날마나 울면은 잠이들고 내 눈은 너무나 나빠졌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나 안 아프게 해달라는 말씀

못 드리고 엄마 좋은데 가셨어? 아버지 만났어?? 그말만 하고 웃다.

2편 끝 3편에 계속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