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회원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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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26일 ..
한 할머니의 세가지 유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달라”
두 번째는, “내 동무들의 이야기를 해달라”
세 번째는, “죽어간 동무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지판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위와 같은 유언을 하신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2004년 2월 26일은 위안부 정서운 할머니가 81세의 일기로 운명하신 날입니다.
할머니와 동무들의 삶은 일본으로 부터의 배상과 사과를 받는 문제로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침탈을 당하고, 주권을 빼앗기고, 그 결과로 할머니들이 끌려 가셨던 그 지옥의 현장...
당시의 시대 속에서, 그리고 후손을 대신해 강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들의 가혹하고 참혹한 삶들....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원혼은 달래드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고,
살아 돌아오신 할머니들께는....
참회와 위로, 그리고 상대국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와 배상을 이끌어 내어야 하겠습니다.
국가가 응당히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합니다.
또한 따뜻한 눈길과 사랑, 그리고 정성과 보살핌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국민과 이웃들이 외면해선 안되는 의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할머니들의 삶은 우리를 대신한 것이기 때문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는 할머니들을 외면해 오고 있었습니다.
“환향녀”라고....
그것도 모자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화양년, 화장년, 양년, 양색시”라는 말로 변해 오기도 했지요..
잔인한 역사입니다.
나라도 백성도, 그리고 가족과 이웃들 모두가 그 잔인한 역사를 써내려온 당사자일 것입니다.
고 정서운 할머니는 “행복하다”는 말을 남기셨다 합니다.
고향으로 살아 돌아와서 결혼도 하고, 젊은 총각들의 봉사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참으로 행복해 하셨다고....
누군가의 작은 관심과 위로가 할머니에겐 세상 가장 커다란 행복으로 기억되었나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죽어간 동무들에게 너무도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3가지 부탁을 남기고 동무들 곁으로 가셨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널리 알려달라. 동무들의 이야기도 해달라. 그리고 동무들이 고향을 찾아 올 수 있도록 표지판 하나라도 세워달라.”
정서운 할머니 이전까지 수많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셨지만 아무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 했던 사실도 알리지 않은채 모든걸 용서하고 동무들 곁으로 가셨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딘가에서 존재하고 계시는 할머니들께 할 수 있는 일들...
-할머니들을 행복하게 해드리자. 즐겁게 해드리자.
-좋은 기억으로.. 행복한 기억으로 그리운 동무들을 찾아 갈 수 있도록 해드리자.
-그렇게 해서 이나라의 역사와 이나라 백성들의 뻔뻔한 외면 마져 용서 할 수 있도록 해드리자.
‘재미난 복수’ ‘아름다운 복수’ 그렇게 할머니들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용서의 시간을 마련해 드려야 하는것...
그와 같은 관심과 참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이들의 양심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환향녀”라고 손가락질 하는 그릇된 역사의 반복을 거부하기 위해서...
할머니들을 외면하는 후안무치한 현재를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후손들에게 당당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얼마전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한 이용순 할머니와 함께 하는 역사기행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는 듯합니다.
3월에 시작해 5월까지 진행하고, 5.26일에는 평화의 탑 제막식과 평화나눔 문화제를, 그리고 8.15 광화문 문화제 행사등....
1년 12달 매일매일을 함께 할 수 없겠지만, 시기마다 행사마다 참여의 발길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동행.......
그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의무이겠지요.....
뱀발.
박정희시절 받았던 3억달러, 이젠 할머니들을 위해 쓰여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