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 (에세이)
- 에스테 빌라, 평점 95점, 글쓰는시점 : 2007-1-14-일.
상당히 도발적인 책이다. 그리고 적나라한 책이다. 하지만 용기 있는 발언이 가득한 책이다. 이책의 내용이 좋고 나쁨을 떠나 그 동안 흔히 일반적으로 간주되어온 남녀에 관한 시각을 완전히 거꾸로 돌려 보았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암묵적인 지지와 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그와 다른 시각에서 얘기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에서 얘기한다는 것은 상상력과 통찰력이 필요한 만큼 일반적인 의견을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작업이다.
이 책의 원작은 1971년에 발간되었다. 하지만 지금 읽어도 굉장히 획기적이고, 자극적이다. 70년대 발행될 당시의 세간의 반응이 어느 정도 추측된다. 이 책의 제목(원작의 제목은 모르겠지만)인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은 이 책의 내용을 정말 제대로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책 내용대로라면 우리의 그러한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착취대상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다. 여자는 우둔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남자를 다루는데 만큼은 소질이 있다. 심지어 여자는 남자인 자신이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착취대상으로 여기게끔 한다. 사실은 그 자신이 착취당하면서도 말이다.
이 책은 막연하게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속시원히 구체적으로 서슴없이 서술하고 있다. 오히려 그 이상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할 정도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나름의 예시와 설명을 하며 자신의 주장을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예시와 설명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갈만한 것이다.
이 책 전체 내용은 왜 여자가 길들이는 존재이고, 왜 남자가 길들여지는 존재인지를 말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나 역시도 전혀 눈여껴보지 않은 부분까지 끄집어내 보여주었다. 그녀의 주장이 좀더 설득력을 갖는 건, 그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가 여자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주요한 쟁점을 책내용을 중심으로 몇 가지 말하겠다.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결혼전에 직장이 있었다면)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이것을 ‘희생’이라 표현하지만, 사실은 편안함을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다. 그녀에게 길들여진 남자가 그녀를 위해 돈을 벌어다 줄 것이기 때문에 경쟁이 난무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생활을 계속할 이유가 그다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건 남자들도 그것을 여자의 희생이라는 데 동의하는데 있다.
여자는 일반적으로 멍청하고, 호기심이 적다, 15세 정도가 되면 그 때부터 자신의 외형을 가꾸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여자에게 외형의 향상은 좀더 부유하고, 지위가 높고, 잘 길들여질 만한 (한 마디로 우수한 굴종의 대상인) 남자를 선택할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잠깐의 외출을 위해 몇 시간씩 화장을 한다. 옷을 고르는데, 스카프 색깔을 선택하느라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전혀 지적이거나 생산적인 활동과는 관련이 없다. 남자는 여자의 그러한 활동을 ‘여성적’이라는 표현으로 감싸고 오히려 가치를 높여서 생각한다.
여자는 남자가 겪지 않는 출산의 고통과 가사의 부담을 겪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과장된 측면이 많고 때로는 착각하는 면도 있다. 몇 개월 동안 배가 불러 있다는 이유로 (여자들의 거의 유일한 임무인) 자신을 꾸미고 남자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활동마저도 하지 않아도 된다. 즉 한층 게으름을 피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기간 동안 여자는 더욱더 남자위에 군림하는 동시에 그녀의 의무(외모 가꾸기, 섹스, 단순한 가사활동)에서도 일정부분 벗어난다. 남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오히려 몇 개월동안 무거운 몸인 여자를 안타깝게 여긴다.
몇 시간의 출산의 고통은 과장된 측면이 많다. 아마도 여자들이 남자가 자신에게 더 굴종하도록 하기 위해 과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출산의 고통은 남자가 직접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의 얘기가 출산의 고통에 대한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만약 몇 시간 동안 치과 치료를 받는 대가로 평생동안 굴종의 대상을 얻는데 유용한 것이라면, 그것을 감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저자는 출산의 고통을 치과 치료에 비유했다. 저자가 남자였다면 터무늬 없는 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말한 저자는 여자다. 그리고 의사이다.
여자들도 결혼 후에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들이 일하는 이유와 다르다. 남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다. 즉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그녀들이 즐기는 단순한 가사일(청소, 빨래, 설거지..)이 더 이상 그녀의 무료함을 달래는데 부족해서이다. 그리고 그녀가 번 수입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 그것은 그녀에게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번 돈은 자신의 몫이고, 남자가 번돈도 일정부분 자신의 몫이다. 남자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랑 비교되는 부분이다.
여자의 착취를 여러 매체들은 옹호한다. 그 이유는 생활전반에 걸친 소비재의 구매자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일에 치여 쇼핑할 여유도 없고 그 쇼핑한 물건을 사용할 시간도 없지만, 여자는 다르다. 단순한 가사일 (그것마저도 기술의 발달로 훨씬 수월해졌다. 밥은 밥통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집안 공간은 점차 부엌활동이 편하게 변화한다) 혹은 소일거리(뜨게질, 수다...)는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기 때문에 그녀는 TV 광고나 홈쇼핑 볼 시간이 되고, 직접 쇼핑몰에 가서 쇼핑할 여력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주도, TV, 신문, 판매자들도 여자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녀가 사용하는 돈은 남자가 번 돈일 확률이 높지만 직접 구매하는 당사자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한때 어떤 단체의 들은 온연한 남녀의 평등을 주장했다. 심지어 그녀들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녀들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이런 주장은 비교적 양심적이다. 말하자면, 군대갈 자유, 무거운 상자를 옮길 자유... 등등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이내 사그라졌고 온데간데 없어졌다. 건강한 서구의 여자는 왜소한 베트남 남자보다 힘이 약할까? 힘센 여자와 약한 남자가 있을 때 무거운 상자를 당연히 남자가 옮기는 게 맞는 것일까?
여자는 남자에 비해 직업적인 측면에서 차별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못생긴 여자만 차별을 받는다. 그러한 점은 남자도 마찬가지다.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다른 능력이 비슷하다면 이왕이면 외형적으로 잘생긴 남자를 고용할 것이다. 그건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남녀를 떠나 개개인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비슷한 능력의 아름다운 여자와 남자가 있다면 (일의 성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히려 여자쪽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직업적인 측면에서조차 남자가 차별 받는 것은 아닐까? 만약 남자를 선호했다면 그건 고용주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아마도 여자는 남자보다 일을 빨리 그만둘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지, 성별에 의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남자는 꼭 애인이 아니더라도 같은 조건이라면 여자를 더 선호한다. 여자도 여자를 더 선호한다. 남녀의 유일한 공통점은 그 관심대상이 여자라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고 여자들 또한 남자들에 대한 칭찬보다 다른 여자들에 대한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저자는 여자 중에도 지적인 여자가 있다고 한다. 그런 부류에는 못생긴 여자, 즉 남자를 굴종시키는데 조건이 좋지 않은 여자일 가능성이 많다. 남자가 자신에게 굴종당할 확률이 아름다운 여자보다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남녀 비율이 1:1이거나 오히려 여자가 적기 때문에, 착취할 남자를 획득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물론 우수한 굴종의 대상인 남자를 획득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여자는 남자와 다르게 섹스에 어느정도 조절이 가능하다. 섹스광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섹스에 전혀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일반적인 여자는 그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는 어느 단계를 지나치면 섹스에 대한 조절이 어렵다. 이러한 점은 여자가 남자를 길들이는데 유용한 수단이다. 즉 조련하는데 필요한 채찍과 당근 중에 섹스는 아주 괜찮은 당근이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있어 남자의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자가 못생긴 남자와 커플인 경우가 많다. 남자의 외모가 이왕이면 잘 생기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외형이 못났더라도 우수한 품질(돈, 지위, 여자에게 복종..)의 착취대상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돈이 많고 못생겼다면 조련하기가 더 쉬워진다. 왜냐하면 남자의 입장에서는 못생긴 자신과 살아주는 아름다운 여자가 큰 희생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동시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더 많은 돈을 쓰고, 말도 더 잘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는 능력없는 아름다운 남자보다 능력있는 못난 남자를 더 선호한다.
포르노 스타, 모델, 삼류 모델 등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외형이 뛰어난 여자들이 거물급 남자들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부인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단지 외형만 뛰어난 여자도 거물급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 남자와 동등한 수준의 돈과 지위를 한 순간에 획득한다. 설사 그 남자의 외형이 볼품이 없거나 나이차가 많아도 그게 문제 될 건 없다. 차후에 남자가 일찍 죽거나, 그와 헤어져도 괜찮다. 그녀는 이미 유명인사이고 엄청난 위자료를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재클린 케네디가 케네디를 유혹하는데 성공한 것 외에 그녀가 지금까지 우리의 머리 속에 남아 있을 만큼 뛰어난 점이 있는가? 케네디와 결혼했기 때문에 그녀는 뛰어난 혹은 유명한 존재로 남은 것 뿐이다. 그녀정도의 여자는 수두룩하다.
저자는 책 속에서 계속해서 여자가 착취자인 이유와 그것을 인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남자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녀의 시각은 때로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성적으로 어필할 시기가 지났을 때 남자를 착취할 유익한 볼모로 아이를 말한 점 같은 경우이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듯이 그녀의 얘기가 옳고 그름을 떠나 그녀의 시각은 신선하고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얘기는 분명 귀기울일만하다. 그녀의 책은 남녀에 대한 특정한 방향의 생각에 있어 심각한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준다. 저자는 여자이다. 또한 지적인 수준이 높다. 그녀는 의사이기도 한데, 지금처럼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시대가 아닌 1935년생이라는 점에서 여자로서 그 의사라는 직위는 지금의 의사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의사라는 직위자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의사나 작가로 활동할 정도의 지적인 능력이 있기도 하거니와, 본인이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의 얘기는 좀더 신뢰성을 얻는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여자는 아닐지라도 일정부분의 여자들의 심리나 행태를 반영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 그녀를 ‘여성 증오자’‘보수주의자’심지어 ‘파시스트’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녀의 얘기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었다. 더욱이 동조하는 사람들이 여자라는 사실은 저자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것은 분명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그녀 외에도 다른 여자들이 책내용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으로, 남녀평등을 주장하다가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여자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여자는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남자와 똑같은 수준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마다한다. 기술이 발달된 지금, 일부 분야만 빼고는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다. 방아쇠(군대) 당기는데는 큰 힘이 들지 않으며, 큰 트럭이라 해도 운전대 돌리는데 큰 힘이 드는 건 아니다. 문제는 상황에 따라 남녀평등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기준이 바뀌면 그것은 기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판단을 내릴 여지가 없어진다.
나는 여성 증오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내용의 일정부분 공감한다. 나는 맞벌이를 한다면 남녀가 가사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최근에 종방된 드라마‘열여덟 순정’에서 큰 사위 안정훈이 맡은 역처럼 남자중에도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집안일이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그런 남자라면 집안 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건 남녀의 차이의 문제보다는 사람마다 스타일, 적성의 차이로 말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남자가 집안일을 할 수도 있고, 여자가 돈을 벌어 가정을 부양할 수도 있다고 본다. 각자 스타일, 적성이 맞다면 괜찮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여성들에게 묻겠다. 사랑하는 남자가 집안일이 적성에 맞다면 그리고 자신도 일을 하고 있다면 그런 남자와 결혼할 의향이 있는가? 솔직히 말해달라. 혹 이 물음에 집안일을 하겠다는 남자를 ‘파렴치한’이나 ‘뻔뻔하고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이 많을수록 이 책의 내용은 진실에 가깝다. ‘파렴치한’으로 표현한 행위를 많은 여자들이 당연시 하는 것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일이 중요하다면, 그걸 꼭 여자가 해야 될 이유가 있는가? 여자가 남편과 아이를 부양할 직업을 가지면 안되는이유가 있는가? 요즘은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하다. 그리고 굳이 혼자사는 것도 괜찮다고 여기는 여자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결혼을 할 의향이 있는 여자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여자들도 돈을 많이 버는 추세지만, 그 돈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가족을 부양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것을 여자들은 납득할 수 있는가? 납득할 수 있다면 이 책의 내용은 적어도 그렇다고 대답한 여자들에게는 거짓에 가깝다.
이 책의 가치를 높이 사는 건 독특한 시각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각이 매우 논리적이고 그럴 듯하다. 특정한 시각이 일반화되고 그것이 쌓이면 또 다른 시각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것은 아예 어떠한 시각이 없는 상태에서 특정한 시각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이 책의 저자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을 펼치고 읽어 나갈 때 대부분의 문장이 길어 읽는 게 쉽지 않았다. 마침표가 나올만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쉼표와 접속사로 문장을 쭉쭉 늘려놓았다. 내용 자체는 어려울 게 없었지만 그것이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이내 적응되었고, 신선한 시각에 빨려들었다.
이 책의 평점(95점, 내 기준으로 95점은 거의 최상의 평점이다.)을 더 높여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 매우 극단적이고 단정적이라는 면에서 평점을 조금 줄였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도 잘못됐다고 보지만,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알맹이 내용만 다를 뿐, 그 형식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성별로 나타나는 주요한 성향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남자, 여자 이 두부류로만 뭉텅그려 얘기할 만큼 인간이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남녀를 떠나 10사람이 있다면, 10사람 모두 그 나름의 개성이 존재하리라.
성별이 주요한 참고사항이라면 개개인별 특성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주목해야 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가 통계적으로 흔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얘기라면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100%인 얘기인 것이다. 반대로 여자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을 뜨게질 좋아하는 여자에 비해 나쁘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남녀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건 이성끼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끼리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그것은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착취하고 착취당한다기보다는 각각의 인간으로서 판단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