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원대한 계획이 있음을 발견해야한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산다면 과연 그것은 기쁜 일인가? 아니다. 낙원이 아닌 이 세상에서 분쟁과 죄악, 그리고 고통을 겪으며 영원히 산다는 것은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고 영원한 벌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원죄를 심판해야만 하셨던 공의의 하나님은 땅에 저주를 내리시고 인간이 고통 속에서 살아 가야하는 벌을 내리셨지만, 영원히 사는 것을 막으시고 우리에게 죽음을 내리신(창3:19) 후에, 하나님께로 다시 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이다.
즉, 인간의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친히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음의 고통을 맛보시고(히2:9),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온전한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Savior)로 믿는 자에게는 누구나 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와 같이 하나님과의 친밀했던 관계가 복원되고, 죽음과 고통이 없는 낙원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요3:16, 계21:3-4, 22:3). 이제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복음(Gospel)이요, 기쁜 소식이다. 이 얼마나 멋진 계획인가? 이로써 하나님은 의(righteousness)와 사랑을 모두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와 구원이 마치 "병주고 약주는 것"처럼 모순으로 느껴져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데, 필자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한다. 과거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담임을 맡은 학급에서 학생들의 소지품이 자주 없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말 것을 학생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하였는데도 같은 일이 계속 발생하자, 할 수 없이 아무도 모르게 조사를 해서 결국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찾아내게 되었는데 그만 진퇴양란의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학교에서 남의 물건을 훔친 죄는 정학에 해당하는 벌칙이 주어지지만 사실상 퇴학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도둑질을 했다는 것이 공개되면 그 학생은 창피해서 도저히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바르게 되라고 가르치려했던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게된다. 그렇다고 해서 못 본 척하고 지나친다면 아이를 바르게 교육시켜야할 교사로서의 책임을 기피하는 것이 된다. 징계를 하자니 아이가 불행하게 되고, 사랑을 앞세워 묵과하자니 아이의 못된 버릇이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그래서 고심한 끝에 아이를 은밀하게 불러서 혼을 내준 뒤, 잘못했다고 죄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고 용서해 준 일이 있었다. 인간을 심판하셨던 하나님의 심정도 그렇지 않으셨을까 상상해 보곤 하는데, 잠언서 3장 12절의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서도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원의 계획이 처음 기록된 성경이 창세기이다. 창세기 3장 17절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동정녀 마리아의 후손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만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며 결국에는 사탄을 결박하여 불못에 내던지고 승리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계20:10).
아담의 원죄와 그 결과로 오게된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유이다. 이 내용들이 기록된 성경이 창세기이므로 창세기는 복음의 기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진화론은 죽음과 삶의 고통이 인간보다 먼저 있었으며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진화하여 인간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복음의 기초를 파괴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진화론의 공격에 영향을 받은 일부 크리스찬들이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는 신화를 모은 것이거나 상징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아담이 실존인물이 아니고, 그가 지은 죄와 타락, 하나님의 심판이 사실이 아니라면, 복음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가?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의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탄이 진화론을 이용하여 창세기를 공격하는 이유를 알아야한다. 사탄의 정체와 그가 인류를 죄짓게 하고 고통에 빠뜨린 사실과, 인류의 구원에 대한
계획이 모두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의 기초를 보존하려고 한다면, 이 기초를 파괴하는 진화론과 타협하거나 방관하지 말 것은 물론이고,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진화론을 반대하여야한다. "터(foundation, 기초)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시11:3)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