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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의 역활

김현수 |2007.05.28 12:54
조회 30 |추천 1
그 나라의 역할



혼혈 미식축구선수 하인즈 워드가 한국에 와서 매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이때 약삭빠른 정치인들이 혼혈인과 혼혈인가족 지원법을 발의했다. 취지는 ‘그동안 차별했던 것을 바꿔서 교육을 시키고, 지원할 것 지원하고 군대도 가게 하자. 그리하여 이들도 우리나라 사람으로 품자’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 결혼 100쌍 중 무려 13쌍이 국제결혼이라고 한다. 특별히 농촌 사람들이 국제결혼을 많이 하는데 매년 20%씩 증가한다고 한다. 굉장한 숫자다. 예전엔 국가를 혈연공동체로 보았는데, 21세기 들어서 깨지고 있다. 그래서 점점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뭔가 해줘야 하는 기능공동체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 ‘치리’와 ‘양육’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본문을 보면 부럽다.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뭐 줄까?” 이때까지만 해도 솔로몬은 비범한 사람이다. 솔로몬은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백성을 재판에서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말했다.

솔로몬은 오늘날 하나님이 세우신 국가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솔로몬이 구하는 것은 오늘 우리나라도 구해야 될 문제다.

나라의 첫 번째 역할은 ‘치리’, 곧 ‘다스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국가를 세우셔서 공의로 이 나라를 다스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정치적 지혜다.

오늘날 국가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선악을 구분하고 이것을 통치하라고 주신 것이다. 즉 국가란, 선을 보호하고 악을 처벌하라고 주신 것이다. 선악은 늘 있다. 이것을 국가 권력이 구분하고 통치하는 것. 이것이 성경이 보는 국가관이다.

바울도 신약에서 똑같이 말한다. 로마서 13장 1절 ‘각 사람은……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공권력을 말씀하신다. ‘선을 행하라, 네가 악을 행하거든 공권력을 두려워하라.’ 이 땅의 국가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곳이다. 그래서 국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구석구석을 보면 공권력이 엉망진창이다. 공권력을 우습게 안다. 지금 국가가 국민들 보기에 웃긴다는 것이다. 파출소 들어와서 행패를 부린다. 경찰을 때리기까지 한다. 대낮에 조폭들이 패싸움을 한다.

민주화로 자유로워진 때문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 성경적인 국가의 모습은 아니다. 선을 보호하고 악을 처벌하는 국가의 역할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국민은 국가를 무서워해야 한다’고  했다. 이 기초위에 교회가 서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 두 번째는 ‘양육’이다. 국가는 백성의 민생과 먹을 것을  일단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주십사 하니 하나님이 부(富)를 얹어 주신다. 국가를 통해서 당신이 백성을 먹여살리셨다. 이게 국가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이다.

북한을 생각해보자. 무슨 사상과 혁명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네 나라 백성 밥 한 끼 못 먹이는 나라, 이건 엄밀히 나라가 아니다. 국가의 중요한 기능은 뭘 하든지간에 백성을 먹이고 봐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쟁의 잿더미에서 우리나라를 축복하셔서 국가를 통해 이 백성을 먹이셨다. 그래서 요즘 국가가 어렵지만 염려하지않는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축복하실 것이다. 우리를 먹이실 것이다.

요셉이 뭘 해서 유명해졌는가. 먹였다. 7년 풍년 때 곡식을 모아놨다가 7년 흉년 때 백성을 먹였다. 이게 오늘날 우리나라의 축복이 되길 바란다. 이제 흉년 때 이 나라를 축복하사, 국민을 먹이게 하시고, 주변국가 나아가 북한까지 먹이게 하시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주옵소서. 우리나라가 요셉과 같은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먹이게 하여 주옵소서.” 구체적인 기도가 있길 바란다. 치리하는 나라, 양육하는 나라, 이것이 국가다.

‘시인’과 ‘기술자’ 둘 다 필요하다

어느 철학자가 ‘현대의 문제는 시인과 기술자 사이의 갈등에 있다’고 했다. 즉 극단적 이상주의자와 극단적 현실주의자 사이의 갈등이다. 하나는 너무 꿈만 꾸고, 하나는 너무 계산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두 사람이 다 있어야 한다.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불교용어라고 한다. 이판승은 불경 읽고 염불하는 승려고, 사판승은 사찰의 운영과 사무에만 전념하는 승려다. 꿈꾸는 사람이 있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먼저, 시인처럼 꿈꿔야 한다.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나라를 축복하셔서 가장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I have a dream.’ 하나님의 일은 꿈꾸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두 번째, 기술자와 같은 현실주의자가 있어야 한다.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뜻이 잘 이루어지도록 입법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이 세워져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의 고난을 우리도 당해야 한다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 우리는 메시아의 고난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게 채우노라.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까지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의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저 개인적 환란ㆍ고통ㆍ질병을 십자가라 해서는 안 된다. 오늘 이 땅에, 이 나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짊어져야 할 고난, 즉 십자가가 있다. 정치적 고난이 있고 사회적 고난이 있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각각의 고난을 짊어져야 한다. 사회의 물결을 거슬러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고난이 있다면 자진해서 받고, 이것으로 영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김광건 논설위원 / 웨신대 선교신학 교수(뉴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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