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베로니카는 죽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통증은 지상의 특징이 아닌가.
아! 이 지상의 고통! 그것은 유니크한 것이다.
혼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살아났으니 살아야 하나?
베로니카는 곰곰히 생각해본다.
일상으로 복귀는 여전히 무의미하다.
'나'를 거듭거듭 유보하며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적응'하며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다.
베로니카는 아직 죽을 용기와 기회가 있을 때
빨리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 죽음은 여전히 매혹적인 자태로 베로니카 앞에 있다.
그렇지만 일순간에 상황이 변하고 만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말미암은
심실 회저(신체 조직의 일부가 썩어 기능을 잃는 병)로
길어야 일 주일밖에는 더 살 수 없음을 통보받은 것이다.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짜가 정해진 죽음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 그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베로니카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두려움이 베로니카로 하여금 주변을 둘러보게 했다.
베로니카는 모든 것을,
특히 자기 속의 수없이 많은 베로니카들,
매력적이고, 끼로 넘치고, 호기심 많고, 용기 있고,
언제든 위험을 무릅쓸 준비가 되어 있는
그 베로니카들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온 삶의 방식을 증오했다.
고통이 지상의 특징이라면, 증오는 살아있음의 특징 아닌가?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
죽음의 눈앞에서 삶을 맛본다는 것, 그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스스로 답할 일이다.
하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로운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
에뒤아르와 더불어 빌레트를 탈출한 베로니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한 말은 너무나 새삼스럽다.
"너에게 살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된다"
비로소 베로니카는 자기 삶이 영원하다고 믿었을 때
항상 미루어왔던 일들을 다 해보고 싶어졌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리고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싶어졌다.
그것이 죽음이라 해도.
"기적이야. 하루를 또 살 수 있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中-
갑작스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야 할때가 있다_
주변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
죽도록 힘이 드는 개인적인 일들,
고민....고민....된다_ 한번, 아니 두어번쯤 검색창에 쳐보았다.
죽으면..?
1. 아무것도 없어
2. 있다고 해도 믿지 않아
3. 천국이 있을 거야 하나님이 계시니까
4. 다음 생이 있어
..........................................등등,,
스크롤을 내리며 한참동안 보고 있으니
아_아무도 확실히는 모르는 구나_느끼게 되었다.
진리를 알게 되면 싱거울까?
그래, 그렇지만,,
그 중 한개만. 아니 단 한개라도 알았으면 좋겠어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