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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카이토-

김동익 |2007.06.22 11:43
조회 35 |추천 0

 창문에서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도 모를 회색의 세계. 수풀처럼 세워져 있는 무기질의 concrete 건물 사이로, 미안하다는 듯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부자연스러운 자연의 녹색. 짜증을 잠시라도 감출 수 없다는 듯이 울려대는 차들. 거기에 어울려 무표정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 동경 tower만이 이채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건너편으로 펼쳐진 하늘도, 두꺼운 구름에 덥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나미는 과연 올까......

 

 여태껏 꿈꿔 왔던 힐즈에서의 생활. 물론 나쁘진 않은 생활이다. 하지만 이 생활에서 도망쳐 즐거웠던 기간은 처음 1주일뿐. 그 후로는 또다시 routine의 반복. 나라사키 카이토라는 인간으로서가 아닌, 지금 한창 잘 나간다는 배우 [나라사키 카이토]에게 달려드는 군중을, 차가운 눈빛으로 방관하며, 그들이 바라는 [나라사키 카이토]로 존재하는 것. 정말 자신이 생각해도 이제는 진저리가 날 정도다. 이렇게 혼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회색 저편으로 빛이 보일 거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날로부터 3년......

 

 [있잖아, 나미, 우리들, 앞으로도 주욱 함께 하는 거지?!]

 끌어안자, 머리카락에서 맴도는 floral의 향기가, 달콤하게 내 몸을 감싼다.

 [그런 말 해도 괜찮아? 나중에 후회해도 모른다구]

 나미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미소를 지어준다.

 [후회같은 거 할 리가 없잖아. 나미를 만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알았으니까. 영원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도]

 [카이토는, 항상 그런 식으로 여자 꼬시지? 꼭 영화나 drama 대사 같다니깐]

 [어이, 농담처럼 애기하지말라구. 난 진심으로 애기하고 있는데......]

 [고마워. 그래도......,"영원한 사랑"인가......]

 [정말 나미도 참......"나도 카이토, 영원히 사랑해"이 정도는 말해 줄 수 없는 거냐고]

 [그러네......]라며 웃고 있는 듯한 눈동자 속으로, 나로서는 손도 댈 수 없을 정도의 쓸쓸함이 보인다.

 [저기, 혹시 헤어지게 되더라도, 1년에 1번, 약속한 날에, 둘만의 장소에서 만나자는 건 어떨까?]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미의 가늘고, 떨리는 듯한 목소리에, 일순간, 이별이 다가올거라고 짐작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것도 아니라면, 뭔가 다른 수단으로 연결되고 싶어 했던 것뿐인 걸지도. 혹시 그렇다면, 언젠가 함께 봤던 영화 대사가 갑자기 생각난 건 아닐까.

 [어떻게 할까......]

 [나, 나미. 헤어질리가 없잖아, 이런 애긴 이제 그만하자. 나미......]

 [어떻게 할까......] 그 다음말을 애써 삼켜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나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어, 내가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담아 kiss를 했다.

 

 올해야말로, 나미.......과연 와 줄까......

 

 분명 올 거다. 나미는 와 줄거야. 혼잣말로 자기 자신에게 되뇌이며, 나미와 같은 모양의 cross의 necklace를 기도하듯이 꼬옥 감싸 쥐었다. 이렇게라도하면, 지나가버린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에, 아플정도로 강하게 쥐었다.

 문득 정신이 들자, 틀어둔 채 품속에 넣었던 radio에서, Mr.Children의 [CROSS ROAD]가 흘러 나왔다.

 

 속만 태우며 터져버릴 것 같은 밤도

 받아들이겠어 지금 이순간의 슬픔은

 언젠가는 빛나는 미래로 연결될테니까

 

 그 날, 그 장소에서 흘러나왔던 melody. 그 때는, 전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런 가사였구나. 지금 나한테는 딱 맞는 가사네. "빛나는 미래"를 위해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실물'을 찾으러 가 볼까. radio의 switch를 끄고, 한 번 더 밖을 보자, 두꺼운 구름 사이로, 한 줄기의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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