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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극 산 책
나를 찾고 싶었다
영하 40 'C의 거센 바람이 불고
AM8 : 00 해가 떠오를 때면 빙벽 너머로 구름과 하늘이 온통 붉게 타오른다. 설산을 뒤덮은 산불, 빙벽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붉은 연기.
남극의 아침은 불과 얼음으로 가득 채워진다. 태양도 얼음을 이기지 못한다. 불은 얼음으로 옮겨 붙지 않고 금세 꺼지고 만다.
불로 시작한 하루는 불로 끝난다. 하늘과 호수를 뒤덮은 구름을 붉게 태우며 전속력으로 몰려오는 어둠. 제 정신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창밖의 블리자드를 바라보듯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안절부절못할 필요는 없다. 누구도 블리자드에 맞설 수는 없다. 마음속을 채우고 있는 블리자드를 바라보며 자신의 불가항력을 인정하는 순간 평화가 찾아온다.
여름바다는 푸르다. 얼음이 녹은 바다 위로 푸른 하늘이 담긴다. 바다는 푸른색의 거대한 데칼코마니가 된다.
빙벽을 한번 보면 가슴 속에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 한 조각을 간직하게 된다.
바람과 얼음의 대륙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남극산책 | 고경남 지음 | 북센스 2006년 1월 소아과 의사 고경남(33)씨는 얼음 절벽이 치솟은 남극 세종기지로 떠났다. 떠나기 전 그는 "일상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모든 것에 시큰둥" 했다고 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나' 를 찾고 싶다" 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세종기지에서 복무할 공중 보건의를 뽑는 공고를 봤다. 고씨는 번쩍 손을 들었고 5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사진 촬영을 즐기던 이 젊은 의사는 남극행 보따리 속에 묵직한 일제(日製)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와 망원 렌즈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지난 2월. 13개월간의 기지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고씨는 눈과 얼음과 펭귄과 폭풍과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을 담은 사진 수천 장을 건져 왔다. 영하 40~20도를 오르내리는 극지에서 1년 이상을 먹고 자고 뒹군 사람만이 잡아낼 수 있는 이 사진들과 그의 짧은 글들은 25일 '남극산책'(북센스)에 담겨 발간됐다.
"저는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글을 읽는 게 제일 좋았어요. 어머니께서는 제가 공부로 1등을 했을 때보다 백일장에서 상을 탔을 때 더 좋아하셨어요. 아버지도 글 쓰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셨다면서, '너는 꼭 아버지를 닮았다' 고 흐뭇해하셨죠. 남극 간다는 얘기를 어머니께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뜻밖에 선선히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세종기지는 서울에서 1만7240㎞ 떨어진 곳이다. 여름이면 끝없는 얼음 위에 해가 하루 스무 시간씩 떠서 지지 않는다. 겨울이면 시도 때도 없이 눈폭풍이 휘몰아친다. 겨울엔 17명까지 줄었다가, 여름이면 다시 50여명으로 불어나는 세종기지 식구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게 의사인 고씨의 첫째 임무였지만, 할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주방 보조도 겸했거든요. 진료할 사람 없는 평온한 날이면 쌀 씻고 찌개 끓이고 설거지를 했죠." 게다가 카메라 들고 온 '죄'로 기지의 각종 활동을 촬영하는 일도 그에게 맡겨졌다. 덕택에 남극의 이곳 저곳을 누비며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고씨의 렌즈에 담긴 남극은 기묘하게 아름답고 동시에 무자비하다. 검은 눈을 말똥말똥 뜬 펭귄 부부와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 두 마리를 찍은 단란한 '가족 사진' 아래 고씨는 이렇게 적었다.
"칼을 품고 달려오는 눈보라를 뚫고 기적처럼 성장한 귀여운 펭귄 형제 중 한 마리는 앞으로 몇 달을 채 못 버틸 것이다. 남극에서 자연이 생명을 다루는 방식은 신비로우면서도 가혹하다."
고씨는 "누구라도 빙벽을 한번 보면 가슴 속에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 한 조각을 간직하게 된다" 고 했다. 서늘한 대륙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젊은 의사 고씨는 오늘도 수원 응급의료정보센터에 근무 중이다. 내년 4월에 공중보건의 임기를 마치면, 대학에 돌아가 소아 신경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조선일보 발췌-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