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는 유럽에 살았습니다. 유럽에 거주하는 동안 주말이면 여행을 떠났습니다. 파리, 런던, 비엔나, 밀라노등 좋은 도시가 많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도시는 바로 바이에른 주의 州都 뮌헨이었습니다.
뮌헨에 가면 독일을 함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BMW본사와 올림픽 공원에 가보면 독일의 최첨단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밝아만 보이는 뮌헨이지만 뮌헨에는 독일인들이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다. 바로 나치의 흔적입니다. 히틀러의 정치적 고향이었던 이 도시답게 이 도시 외곽에는 다카우 수용소가 있습니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정도 크기는 아니지만, 인간이 전체주의에 미치면 어떻게 변하는 가를 보여주는 흔적. 이 흔적이 바로 다카우 수용소입니다.
그곳에 처음 간 것이 1991년. 아직도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의기양양하게 히틀러 앞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 수용소를 나올 때쯤에는 사진을 찍기가 싫을 만큼 무서웠습니다. 학살의 흔적이 남아있는 땅 뮌헨에서 화장실에 가면 유태인 귀신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독일 뮌헨에서는 화장실을 안간 기억도 있습니다.
독일인들이 두고두고 후회하는 유태인 학살. 그 배경에는 나치즘이 있습니다. 혹자는 파시즘이라고도 하는 이 이념.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을 했다면 이런 이념 자체가 독일인들에게 퍼지지 않았겠지만 당시 독일은 불행히도 지독히 불황이었습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대다수 독일 민중들에게는 어필할 수 있는 지도자는 강한 이념을 바탕으로 불황을 해소할 수 있는 그런 리더였습니다.
히틀러. 최적의 인물이었습니다. 우선 뉴 도이치 마르크를 발행하면서 독일 경제를 안정시켰습니다. 추가로 독일인들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불만을 해소시킬 당근이 필요했습니다. 그 대상은 당시 1%의 인구로 독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유태인들. 이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경제를 살리다 보니 히틀러를 독일 대중들은 떠받들게 됩니다. 정상적인 발언을 하는 지식인들은 독일 대중들이 유태인에게 쏠린 사이 처단하고, 나치즘으로 도이치 민족의 오욕을 생산하게 됩니다.
저는 이번 디워 영화를 둘러싼 논란을 193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나치즘과 이 문제를 무리해서 연결시켜 보고 싶습니다. 학벌이나 학력으로 가로막히면 성공하기 힘든 폐쇄적인 한국 사회입니다. 능력 위주 사회로 바뀌고 있다고는 하나 신문지명상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위 학벌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영화판도 충무로로 대표되는 엘리트 영화인들이 그들만의 ‘벌’을 형성하고 있는 곳입니다. 영화 자체를 떠나 이런 곳에서 외면받던 한 감독의 노력과 나름의 성과물에 함께 동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심형래라는 개인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었던 셈입니다. 1%에 불과한 유태인들이 좌지우지 하던 독일 사회에서 살던 기존 독일 대중들이 유태인들을 학살하면서 엄청난 만족을 느꼈던 당시 1930년대처럼 말입니다.
히틀러가 은밀히 바른 말하는 지식인들을 죽였다면, 네티즌들은 디워를 비평하는 집단이나 개인을 집단 사이버 폭행합니다. 언론도 충무로와 함께 또다른 엘리트 집단으로 인식되는 현 대한민국입니다. 그들의 비평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보이지는 않겠지만 상위 몇 퍼센트의 엘리트를 이겼다는 그런 사회학자 호네트가 말한 ‘인정 심리’가 생기지 않을까요? 네티즌과 언론의 싸움은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한 감독의 마케팅 전략(애국주의, 민족주의, 인간극장 코드)에 쉽게 호도되는 일반 대중이라면, 특히 그 동조가 경제적 어려움과 기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반발로 일어나는 것이라면, 오버해서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히틀러 같은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내재한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우리도 제 2의 다카우를 남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참고로 히틀러 전성기 때 독일 경제는 호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