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마다 무성한 나무가 보여서 마치 숲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151.8m2(46평) 아파트는 이보혁·은혜정 부부의 두 번째 집이다. 강변에 위치한 아파트 13층에 살던 부부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울창한 조경에 끌려 이리로 이사를 왔다. ‘뛰는 아이’도 없는데(이들 부부는 딩크족) 굳이 인기 없는 1층을 선택한 이유는 1층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방문을 떼내다
턱을 돋운 전면 창, 벽돌을 붙인 거실 등 아파트이지만 단독주택 느낌이 드는 독특한 집을 둘러보던 기자는 깜짝 놀랐다. 꽤 집 구경을 다녔건만 방문을 떼어버린 집은 처음 본다. 화장실에만 문이 제대로 달려 있고 침실, 서재, 드레스 룸, 식당은 뻥 뚫려 있다. 집 전체가 스튜디오처럼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졌으면 했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방문을 없앤 것이라고 한다.
대신 현관 쪽과 침실과 드레스 룸 쪽에 커다란 슬라이딩 도어를 두개 달아 크게 섹션만 구분했다. 문을 뗀 것도, 커다란 미닫이문을 단 것도 감각적이고 재미있다. 사실 방문을 떼어버릴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막상 감행하려니 집을 되팔 때 어쩌나 싶어 망설였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며 “문은 다시 달면 된다”는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의 현명한 대답 덕분에 과감하게 결정했다고 한다.
1 단순한 라인의 낮은 가구들과 부부가 고른 색감 좋은 소품들로 완성된 거실. 주택처럼 턱을 돋우어낸 전면 창 앞 벤치에 걸터앉으면 맞은편 주방 쪽 창으로 푸른 나무가 또 들어와 마음이 편안해진다.
2 현관 쪽에서 바라본 실내. 전면에 걸린 강아지를 수놓은 액자는 은혜정 씨의 할머니 작품이다. 작년에 쇳대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는데, 어린 시절 할머니 옆에서 색실을 꼬며 자라서인지 그녀 역시 색감이 참 좋다.
3 거실 쪽에서 바라본 현관. 사진에 보이는 문은 화장실인데 옛날 문을 그대로 두고 색만 새로 칠했다고 한다. 통통한 말을 올려놓은 작은 테이블은 오래된 부엌문을 상판으로 하고, 느낌을 맞춰 다리를 단 것.
4 다이닝룸. 허리 몰딩을 두르고 벽은 페인팅했다. 역시 방문이 없다.
내 집을 가꾸는 즐거움
집 공사를 시작한 2003년 봄, 부부는 처음으로 내 집을 고치는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퇴근 후에 스타일리스트를 만나 상의를 하고, 주말에는 ‘최가철물’이며 ‘윤현상재’ 등 인테리어 자재상을 돌았다. 평소에도 맘에 드는 인테리어 사진을 모아두는 등 주거 공간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보통 스타일리스트에게 리모델링한 집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바로 공사를 마친 곳을 알려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짐도 많아지고 커튼, 침구 등이 바뀌면서 처음 시공했던 스타일이 무너져 ‘다른 집’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집을 고친 지 4년이나 흘렀지만, 스타일리스트에게 무조건 내맡겨 고친 것이 아니라 그린 컬러, 철재보다는 따뜻한 나무, 벽지 대신 페인팅 등 서로 원하는 바를 소통해가며 주인의 취향을 담아 완성했기에 가구, 소품 등 살림살이가 늘어나 집이 채워지면서 점점 주인의 스타일을 담은 공간이 되었다.
단독주택 콘셉트의 파티 플레이스
이 집 시공을 맡은 스타일리스트 김보영 씨는 주택을 인테리어할 때면 디자인적 욕심보다 의식적으로 집주인을 중심에 둔다. 주인들이 행복하게 살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주택 인테리어의 정답이라고 생각해서다. 영국 유학 시절 선후배로 만나 오랜 세월 친구처럼 지내다가 결혼을 한 연상연하 커플, 딩크족,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부부.
이런 부부를 염두에 두고 그녀는 오픈 파티 플레이스라는 콘셉트를 잡았다. 방문을 없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 거실 전면 창은 턱을 높이고 선반을 둘러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걸터앉을 수 있다. 창밖 나무가 실내 인테리어와 잘 조화를 이루어 정원 딸린 아늑한 주택 느낌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휴식 공간이 될 것 같았다.
1 거실 벽돌 벽을 따라 테라스 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나오는 서재. 현관 쪽으로 방문이 있었는데 문을 떼고 막았다. 책상 뒤 볼록 유리가 있는 부분이 본래 문이 있던 자리. 책장은 주방 상부장 나무와 같은 소재를 사용해 스타일리스트가 붙박이로 시공했다.
2 안방 포인트 벽지는 부부의 2006년 12월 31일 프로젝트였다. 무늬가 화려한 수입 벽지를 최대한 아끼면서 무늬를 맞춰 재단해 도배를 했는데 본래 있던 벽지(국산 벽지는 PVC가 섞여 풀이 잘 먹지 않는다)를 떼어내지 않아 다음날 떨어져버렸다. 결국 벽지를 다시 사서 도배에 성공했다. 둘이서 얼마나 힘들고도 즐거웠을까 싶다.
주거공간 프로젝트
와인, 여행, 그림 보기, 그릇 사기. 부부가 함께 즐기는 취미 목록은 참 부럽게도 많기도 하다. 보통 남편들은 여행지에서 아내가 그릇 쇼핑을 시작하면 짐 걱정부터 하는데, 이 집은 남편이 내가 들고 갈 테니 더 사자고 해서 오히려 아내가 말린다. 둘 다 살림 쇼핑을 좋아해서 교토에서 산 에도시대의 접시며 태국에서 사온 색감 좋은 실크 쿠션 등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나날이 살림이 는다.
결혼한 지 8년 된 부부는 각자 일에 몰두하면서도 둘이 만날 때는 아직도 ‘프로젝트’를 벌이며 알콩달콩 즐겁게 지낸다. 마당 있는 주택에 사는 것이 꿈이었던 부부가 이 집에 이사 온 첫해에 시작한 것은 정원 프로젝트. 베란다 밖 앞마당을 돌볼 생각이었는데 무작정 전문가에게 툭 맡긴 것이 아니라 둘이서 공부하고 몸을 움직여 가꾸었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품종이 뭔지 알아보고, 조경을 위해 남편은 줄톱으로 나무를 베는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아 경비실에서 달려왔던 에피소드도 있다. 첫해에는 양재동 꽃시장에 가서 장미, 모란, 단풍나무를 사서 심고, 이듬해에는 영산홍, 그다음 해에는 꽃사과, 꽃복숭아를 정원에 심었다. 봄부터 여름까지 피어 있는 장미를 보노라면 회사에 가기 싫다고 한다.
부부는 이어서 ‘조선 목가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가구를 사러 이태원에 갔다가 우연히 조선시대 고가구를 파는 숍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정돈된 선을 지닌 우리 가구의 기품에 반한 것. 인터넷으로 조선 목가구에 관한 논문을 몇 개 찾아 읽고 책도 사서 공부를 한 후 장한평을 열심히 돌며 골라 집에 반닫이와 돈궤 등 고가구를 들였다. 기자에게 반닫이니 돈궤니 하는 명칭 외에도 가구에 붙은 장식을 보며 어떤 것이 더 오래전에 만들었는지 등의 꽤 전문적인 설명을 해줄 정도로 이들은 정말 가구 주인이 되었다.
한나절 방문객에게도 고즈넉한 휴식을 준 주택 같은 아파트. 그런 집에 살면서도 그들의 꿈은 마당 있는 진짜 주택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연희동, 부암동, 삼청동 등지로 집 찾는 나들이를 다닌다. 담이 높고 덩치가 큰 주택이 아니라 마을 느낌이 나는 동네, 집보다는 마당이 큰 곳. 이사 갈 기한을 잡은 것이 아니라 원하는 집이 찾아지면 이사를 갈 생각이다. 조만간 또는 오랜 후에 생겨날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집이 기대된다.
1 그린 컬러를 좋아하는 부부는 현관, 주방, 슬라이딩 도어에 그린 톤을 넣었다. 주방의 청록빛 타일과 합판으로 만든 상부장의 어울림이 참 편안하고 따뜻하다. 일자형 주방 앞의 널찍한 아일랜드 조리대가 ‘바’의 역할도 한다.
2 주방 쪽으로 난 창. 반닫이 위의 접시는 교토 여행에서 사온 에도시대 앤티크. 남편이 시리즈로 더 사오려는 것을 아내가 겨우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