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 계(Lust, Caution)』는 경계(border)에 관한 영화다.
홍콩으로 피난해 린난따쉐(공교롭게도 본인이 다니는 대학과 같은 이름인 영남대학)를 다니고 있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연극반으로 모여든다. 항일 구국운동이라는 거대 담론을 실행하기 위해 이들은 저항 연극을 넘어 요인 암살을 기도하게 되고 왕치아즈(탕웨이)는 이때부터 막 부인이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암살 계획은 그 어설픔으로 인해 현실이 아닌 연극에 가깝다.
첫 번 째 경계는 극과 현실이다. 왕치아즈는 막 부인이 되기 위해 동료와 아무런 감정없는 섹스를 시작한다. 연극이 현실로 바뀐다. 현실에 익숙해질 즈음 암살 대상이었던 리(양조위)는 갑작스럽게 상하이로 전근을 가게 되고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가장 먼저 뛰어넘은 왕 치아즈는 절망하게 된다. 뒤이어 이들과 리를 연결하는 데 이용되었던 광위민의 학교 선배가 아지트로 들어온다. 학교 선배가 이들을 모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광위민과 동지들은 단도로 복부와 척수를 찔러 죽인다. 한 명 씩 차례차례로 선배를 찔러 죽이며 이들은 모두 연극의 경계를 넘어 현실로 들어온다. 이제서야 그들 모두에게 리를 죽이는 일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두 번 째 경계는 욕망과 경계다. 왕치아즈가 리에게 보였던 욕망은 연극으로 시작된 것이다. 요인을 유혹하여 암살한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니깐. 때문에 리와 처음으로 섹스를 한 왕치아즈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맺힌다. 하지만 리가 본격적으로 욕망에 의해 더딘 걸음으로 무너져 감에 따라 왕치아즈의 욕망은 더 이상 연극이 아니게 된다. 이제 리와 섹스를 한 후에도 왕치아즈는 미소 짓지 않는다. 욕망이 현실이 되면서 성취감이 아닌 괴로움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친 남자의 폭력과 눈물에 왕치아즈는 욕망을 느끼게 되고 경계를 놓아버린다. 욕망에 무너진 왕치아즈는 리를 도주시키고 이로 인해 왕치아즈는 채석장의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왕치아즈는 '色'이다. 하지만 관객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왕치아즈를 만나지도 살려주지도 않은 리는 '戒'다. 색은 살고 계는 죽는다. 영화는 현실의 법칙에 대해서 가감없이 냉혹하다.
세 번 째 경계는 개인과 집단이다. 이를 위해 개인은 섹스로 집단은 암살로 환유된다. 센세이셔널하게 회자되고, 때문에 결국 이 영화를 흥행작으로 만든 섹스장면은 유독 호흡이 길다. 왕치아즈와 리가 섹스를 할 동안 그들은 섹스 그 자체에 몰입한다. 욕망이 계율을 포섭한 그녀는 총을 눈 앞에 두고도 쏘지 않고, 욕망이 계율을 흔드는 그는 총을 눈 앞에 두고도 섹스를 계속한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경험을 우리와 공유하는 중국인들에게는 민족운동가와 친일파의 사랑은 소재만으로도 파격이 된다. 게다가 영화는 한술 더 떠서 민족운동가가 성적, 물질적 욕망이 이끄는대로 친일파와 사랑에 빠지는 현실의 사랑을 인정하며, 낱낱이 보여준다. 거기에 대한 민족적 책임감도, 사랑에 대한 미화도 없다. 둘은 섹스에 탐닉했고,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에 진심을 깨달았다. 어느 것하나 고결한 척하지 않지만 집단이 아닌 개인의 감정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고결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행하게 되는 기본적인 행위 중에서 섹스만큼 극단적인 양면을 지닌 것은 흔치 않다. 그것을 구분짓는 것은 소통이다. 소통이 부재한 섹스는 폭력이 되지만 소통에서 비롯된 섹스는 아무리 거친 섹스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에 내재된 폭력마저 무화시킨다. 왕치아즈와 리는 이완 감독 스스로의 표현을 빌자면 그들은 '지옥 같은 사랑'을 택했다.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지옥 같은 섹스를 하면서, 아무런 종교적 메타포 없이 구원도 받지 못하는 그들은 지옥같은 사랑에 어쩔 수 없이 빠져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긴 섹스장면이 낯설지 않은 것이며, 민망하지 않은 것이며,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탕웨이의 전라가 적나라하게 나왔음에도 중년관객들이 어이없어할 수 밖에 없었고, 호기심에 극장을 찾은 어린 친구들이 실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영화의 섹스가 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영화의 무게가 우리가 호흡하는 현실의 무게에 버금가는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지옥 같은 사랑을 사랑한다.
물론,내사랑의8할은탕웨이의미모때문이지만.
『 色 | 戒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