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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cha Heifetz plays Melodie by Gluck

황기훈 |2008.02.24 22:30
조회 133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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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cha Heifetz plays Melodie (from Orfeo ed Euridice) by Christoph Willibald von Gluck (Transcribed by Heifetz).
Accompanist: Emanuel Bay

 

 

 

Gluck, Willibald Christoph (1714.7.2~1787.11.15 독일)보헤미아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은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하였다. 1727~1735년까지 프라하에서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면서 작곡을 하였다. 이후 빈에서 잠시 지내다가 밀라노 궁정의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이곳에서 삼마르티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작곡가들과 교분을 쌓았다. 1741년, 최초의 오페라 <아르타세레 (Artasere)>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오페라 창작을 시작하였다. 런던, 빈, 함부르크, 드레스덴 등을 방문하면서 수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1750년대의 오페라 개혁 운동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1750년대 초부터 오페라 코미크를 쓰기 시작하였고, 첫 작품 <La fausse esclave (부정한 하인, 1758)>을 시작으로 1760년 이전에 7편 이상의 오페라 코미크를 작곡하였다.     1761년에는 대본 작가 칼차비히(Raniero de Clazabigi, 1714~1795)를 빈에서 알게 되었다. 칼차비히는 오랫동안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오페라의 문제점을 보아 왔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글룩과 칼차비히는 서로 같은 생각을 갖고 합동하여 1762년 빈에서 <Orfeo ed Euridice>를 작곡하였다. 3막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종합적인 예술성을 강조하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적인 요소가 적절히 혼합된 이 작품은 합창과 발레를 극의 진행에 따라 적절하게 삽입하였으며 아리아는 세코 레치타티보(secco recitativo)없이 연주하였다.
 이후 5년 동안 <Il trionfo di Cleria (클리리아의 승리, 1763)>와 <La recontre imprevue (예기치 않은 만남, 1764)>, <Comedie melee d'ariettes>등 몇 편으 무대작품을 썼다. 글룩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 <La recontre imprevue>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Die Entfuhrung aus dem Serail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에도 일부가 인용된다. 1767년에 작곡된 칼차비히의 비극 <알체스테 (Alceste)>는 글룩의 성숙한 양식과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오페라 요소의 융합을 보여준다. 1769년 파리에서 출판된 <알체스테>의 서문에는 오페라 개혁에 대한 글룩의 의지가 나타나 있다. "오페라의 음악은 대본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봉사적 기능으로 한정되어야 하고, 성악가들은 과장된 장식이나 기교를 금해야 하며 다 카포(da capo)아리아는 수정되어야 한다." "관현악을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에 모두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음악적 구분을 줄여야 한다." "서곡은 극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오페라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 오페라 개혁운동은 글룩 이외에도 샤이베(Scheibe), 알가로티(Francesco Algarotti) 등에 의해 더욱 진전되었으나 <Orfeo ed Euridice> 이후에 발표된 몇 편의 개혁 오페라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구습에 의한 오페라들이 다시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페라 개혁 이후 음악과 극의 균형이나 혼합은 현저하게 나아졌다. 글룩은 1733년에 파리에 와서 라시느(Racine)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Iphigenie en Aulide)>를 작곡하였다. 1775년에는 글룩과 피치니(Piccini)가 각각 <로날드 (Ronald)>를 쓰기 시작하였으나 글룩이 중도에 포기하였다. 이후에 글룩은 피치니와 함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 (Iphigenie en Tauride)>를 써서 크게 성공하였다. 이 작품은 륄리와 라모의 전통적인 서정비극(tragedie lyrique)과 이탈리아 정가극을 혼합한 형태로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문제점을 최소화시킨 작품이다. 전체 악장은 4막으로 독창, 합창, 오케스트라, 발레가 극과 잘 조화되어 있다. 고전양식의 걸작품으로 인정받는 이 작품은 모차르트에서 베를리오즈, 바그너 등의 낭만파 작곡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글룩의 후기 작품으로는 오페라 <에코와 나르시스 (Echo et Narcisse)>와 살리에리(Antonio Salieri)에게 헌정한 4성부 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De Profundis>가 있다. 글룩은 이미 앞에서 지적한 대로 오페라 개혁운동을 통하여 음악과 극의 균형을 이루게 하였고, 후일 바그너의 음악극(music drama)으로 행하는 한 단계를 마련하여 주었다. 글룩은 정가극의 작곡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 코미크와 프랑스의 서정 비극도 고전양식의 오페라 계열에 확연히 들어서게 하였다.
추천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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