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2003년 11월, 이 책을 읽고 쓴 글을 찾아보았다. 말미에 이렇게
적어놨더군.
'글쓴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중국인, 중국의 모습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나도 고등학교 때 배운 중국어 다 까먹기 전에 한 번 가봐야
할텐데. -_-'
일단 소원 하나는 이룬 셈이다. 그런데, 웃기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이렇게 느끼는게 다르다니. 4년이 조금
더 된 시간동안 '나'라는 사람이 그만큼 달라진걸까. 당시 글을
다시 읽어보라. 글쓴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중국인, 중국의 모습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고 적다니, 내가 제정신이었나!!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 책은 그걸 이야기하려고 만들어진 것이거늘......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온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어쩜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이토록 똑같을까.
중국에 온지 두 달이 다 된 요즘, 처음 올 때부터 '다시 읽어봐야지'
마음먹은 이 책을 '늘 그랬듯' 이제서야 읽었다.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며 쉴새없이 놀랐다. 첫째는 내가 이미 읽었던 내용이지만
거의 기억하는 내용이 없었던 점, 둘째는 한비야가 겪은 사건과
각종 에피소드, 생각과 느낌이 지금 내 삶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왜 그런걸까. 이것도 생각해보니 그럴싸한
분석이 나온다.
일단 최근 몇 년간 나 스스로 성장한 까닭일게다.
대학에 온 후 많이 배우고 싶었다. 경험하고 싶었다. 선교여행을
다녀오고, 군대를 갔다왔고, 정신없이 학교생활 하고, 교환학생
생활로 베짱 키우고, 배낭여행으로 한껏 기분도 냈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한편 '지식의 내면화' 과정을 거쳐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해도, 이전에 읽은 그녀의 책들이 내 머리
속에 있다가 내면화되고, 그것이 곧 나의 생각과 경험에 녹아들어
동화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맞다. 그런 것 같다. 기억을 더듬으면
난 한동안 그녀의 책을 몰아서 읽었고 그 이야기에 폭 빠져 지냈다.
'언젠가는' 이란 단서를 붙였지만 나도 비스무리한 삶을 흉내낼
것이라 스스로에게 약속했었다. 아, '비스무리한' 이란 약속은
하지 말 것을. 나는 현재 정말로 '비스무리한' 삶을 흉내내고
있음을 느낀다. (-_-;)
어쨌거나 책 내용으로 돌아가보자.
그녀는 베이징(북경)에 머물렀고, 나는 난징(남경)에 머무르고
있다. 북경이 중국의 수도고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좀 꿀리긴
한다(ㅡㅡ;). 그러나, 난징은 역사적으로 보면 베이징보다 더
유구한 역사와 중요한 의미를 지닌 도시이다. 음....솔직히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 ㅡㅡ; 2개월동안 나도 난징 사람 다 됐으니깐.
북경엔 중국어 공부하는 사람이면 다 인정할 정도로 최고의
학교, 시설 등이 운집해 있다. 하지만 한국사람이 너무 많다. 이건
외국어 공부에 있어 최악의 환경이 된다. 반면 이 곳 난징은
한국사람 많지 않은 편이다. 무엇보다 내가 있는 학교는 약간
외곽이라 한적하면서도 20~30분이면 금새 시내가 닿고 주변에
온통 중국인들 뿐이라(외국인도 별로 없음) 중국어 공부에는
최적의 환경이라 감히 평가한다. 고로, 중국견문록에 적은 그녀의
불평에 내 어깨가 으쓱해지는 때도 있었다 이거다. -_-v
자전거를 세 번이나 분실한 이야기에 '꼬소해' 했다. 왜냐면 나는
자전거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맘 좋은 중국친구를 만나
비싼 돈 주지 않고 자전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거에 혼자
좋아하다니, 나는 쪼잔한걸까, 아님 한비야를 질투하고 있는걸까.
왠지 후자 쪽인 것 같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책을 읽는동안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 실컷 흉보고 나를 자랑하고 또 부러워하고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냈으니까. 왠지 지금이라도 기차타고
북경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정말 재미
있을텐데. 한비야랑 같이 중국어 공부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일이겠는걸. 아, 나는 그녀에게
애틋한 감정이 생긴걸까. 내 작은이모뻘 되는 사람에게?! ㅡㅡ^
내가 중국에 와 있는 이상, 책에서의 그녀와 지금의 나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자질구레한 각종 명분과 그럴싸한 이유로
중국에 오지 않았다는 점. 그냥 중국어 한 번 공부해보고 싶은
평생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이 뭐라든, 중국에서
갖은 고생하고 때론 중국인들에게 타박맞는 '굴욕' 속에서도
중국, 중국인들을 좋아하고 아낀다는 점이 그것이다. 중국에
왔으니 이들의 문화를 경험하고 옆에서 중국에 대해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는가. 그런 것들을 열심히 기록하려
노력한(노력하는) 것도 비스무리하다.
다만 부러운 것은 그녀가 오직 중국어만 공부할 수 있었던 반면
나는 중국어에 영어까지 겹쳐 머리에 팽팽 돈다는 현실이다. ㅡㅡ;;
거기에 일부 전공과목까지 들으려니 마음만 급하지 몸은 따라주지
않고 진도도 영 지지부진이다. 1년을 계획한 그녀와 달리 현재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학기, 6개월이 채 못된다. 천하의 한비야도
그 고생고생하며 중국어에 매달려 HSK7급 따기까지 1년이 걸렸다.
나는 6월쯤 볼 생각인데 초중급에서 급수나 받을 수 있으려나.
아아, 그럼 안될 일. 7급까진 못되도 어떻게든 앵겨 봐야겠다.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고 처음 생각과 다른 생활을 하기에 적기인
요즘,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 펼쳐든 이 책 덕분에 내게 적당한
자극과 동기부여가 되는 결과를 얻었다. 그녀는 늘 자신이 평범한
중년여성에 불과하다고 겸손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열정과 바지런
함이 부럽기만 하다. 난 내가 이 정도 책을 쓸 정도로 대단한 중국
생활을 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떳떳한 모습으로
중국생활을 마치고 싶다. 그리고 중국에 관심있어 할 누군가에게
기꺼이 이 책을 소개하며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
"야, 나도 이 책 읽고나서 비스무리하게 살다 왔다."
중국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오르면서도,
'한비야'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차오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