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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데릴사위를 공개 모집한 1천억원대 재력가가 사윗감을 찾았다. 지난해 서울 강남 일대에서 부동산 임대업 등으로 1천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60대 후반의 남자는 사윗감을 공개 모집하면서 장남보다는 차남이거나 막내이고, 딸에 준하는 학벌과 직업을 갖고 있어야 하며,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 신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딸이 좋은 배필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 그는 데릴사위 공개 모집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딸은 올해 38살이며 본인의 재산만 20여 억원이 넘는다. 미국에서 영상 관련 분야 학부와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현재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
까다로운 조건에도 당시 데릴사위 모집에 총 2백70명이 지원했다. 대부분은 결혼정보회사에서 A급 신랑감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직업은 의사, 변호사, 펀드매니저, 한의사 등 유망한 전문직 종사자가 많았다.
‘士’자 직업에도 등급이 있다
이번 맞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 선우 측은 “많은 지원자 중 여덟 번째 맞선남과 올해 2월부터 교제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여덟 명의 남자를 만났는데, 전문직에 종사하는 40대 미남형 남자 회원과 지난 2월부터 교제해 5월 양가 상견례를 치렀다. 만난 사람 중에는 의사, 교수 등이 있었으며 공개 모집에 지원하지 않은 회원도 포함돼 있다. 교제가 성사되지 않은 남자 대부분은 여자 쪽에서 거절했지만 남자 쪽에서 먼저 거절 의사를 밝힌 경우도 있다.”
선우 측은 아직 결혼이 성사된 게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으며 좋은 결실이 맺어지면 그때 회원의 동의를 얻어 공개하겠다는 것.
공개 모집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지만 많은 결혼정보회사가 일반 회원과 별도로 VIP 회원을 특별 관리하고 있다. 노블레스, VIP, 명품 등 각기 다른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회원을 선정하는 방식이나 서비스는 비슷하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VIP’로 대우받을까? 또 최고 배우자감의 조건은 무엇일까?
VIP 회원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로 가입하는 일반 VIP(Very Important Person) 회원과 이른바 명문가 자제들이 가입하는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 회원이다. VIP 회원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입회심사를 거쳐야 한다. 평가 기준은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직업, 학벌, 외모, 재산 등을 본다. 남자는 직업 30%, 학벌, 집안 배경, 재산 각각 20%, 외모 10%이며, 여자는 외모 30%, 직업, 집안 배경, 학벌 각각 20%, 재산 10% 순으로 집계해 VIP 기준을 적용한다.
일반 VIP 회원은 남자의 경우 전문직이면 대부분 가입된다. 단, 장남, 35세 이상, 비호감 외모, 곱슬머리와 특정 혈액형, 특정 지역 출신, 음주 빈도, 건강 상태 등에 따라 감점을 받는다. 여자의 경우 직업, 학벌, 재산보다는 외모와 집안의 경제력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남자는 ‘직업’이 없으면 회원 등록이 불가능한 반면 여자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도 회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 대신 아무리 능력 있고 뛰어난 전문직 여자라 해도 나이가 많으면 회원 가입이 불가능한 업체가 많다. 남자 쪽에서 커리어우먼보다는 예능계 전공자나 신부수업을 받는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능력 있고 경제력 있는 골드미스가 인기라는 말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이곳’에서만큼은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는 모양이다.
VVIP 회원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능력은 물론 가문 역시 중요하다. 남녀 모두 학력은 서울대, 연·고대 이상이어야 하며 부모님 직업은 장·차관급의 고위 공직자, 대기업 임원 이상이어야 한다. 부모님 재산은 50억원 이상이고 본인 연봉은 1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개천에서 난 용’ 출신은 가입할 수 없다. 이같이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결혼정보회사 VVIP 회원에 가입하기 위한 문턱은 턱없이 높다. 대신 심사에 통과하면 직업, 학력, 가정환경은 물론 취미와 가치관도 고려한 일대일 맞춤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그렇다면 비용은 얼마일까? 결혼정보회사 일반 회원 1년 가입비가 약 1백만원대인 데 반해 VIP 회원 가입비는 약 3백만~5백만원이며 한 단계 높은 VVIP 회원 가입비는 1천만원대다. 일반 회원이 1년 기준 한 달에 1~2회 만남을 갖는다면 VIP 회원은 1년에 5~7회 만남을 갖는다. 일부 결혼정보업체에서는 한 번 가입으로 결혼에 이를 때까지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이 경우 가입비는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또 성혼 확정이 안 될 경우 가입비 일부를 돌려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만약 맘에 드는 상대와 결혼에 이르게 되면 사례비로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사법연수원생 NO, 로펌 변호사 YES!
많은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자신에게 맞는 최고 조건의 배우자를 찾겠다는 게 VIP 회원들 생각이다. 때문에 이들을 담당하는 커플매니저들은 경력 5년차 이상 팀장급이다. 한 결혼정보회사 VIP 담당 커플매니저는 “일반인보다 VIP 회원이 더 상대하기 쉽다”고 말했다.
“일반 회원 중에는 막연히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등을 찾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말이 좋아 ‘착한 사람’이지, 맞선에서 착한 사람을 찾는 것은 현금 1백억원을 가지고 있는 부자를 찾는 것보다 힘들다. 반면 VIP 회원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을 솔직하게 말한다. 물론 무리한 조건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른바 명문가 자제들은 사회적 체면 때문에라도 매너 있게 행동하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강남 소재 한 결혼정보회사 VIP 회원인 S씨의 경우, 배우자감으로 오로지 의사만을 고집한다. 현재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강사로 활동 중인 그녀는 막내아들에 학벌은 서울대, 연·고대 출신이어야 하며 스마트한 외모에 키가 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해외 영주권자여야 하며 차는 특정 외국 브랜드 이상을 조건으로 달았다. 이처럼 VIP 회원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얄미울 정도로 뚜렷하게 밝힌다.
특히 결혼 상대자의 직업에 대한 선택이 분명하다. 의사는 이비인후과, 안과, 성형외과, 치과 등이 인기가 좋으며 변호사는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면 자격 미달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에는 사법연수원생이라는 간판만으로도 미팅 건수가 줄을 이었지만 이제는 사법연수원도 믿지 못하는 상황.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 상위에 들어 검사나 판사로 임용된 회원들은 미팅 제의가 많은 반면, 성적이 하위권으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변호사 개업을 한 사람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 VVIP 회원은 부모님의 직업을 본다. 본인 조건이 아무리 뛰어나도 가문이 좋지 않으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없다. 실제로 서울 명문대 출신에 국내 굴지의 로펌에 근무하는 J씨는 1백80㎝가 넘는 키에 준수한 외모, 높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부모님이 VVIP 회원 가입 기준에 못미처 거절당했다. 강남의 D결혼정보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직업이 전문직이어도 부모님의 학벌, 집안의 경제력 등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VVIP 회원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VVIP 회원들은 이른바 명문가 자제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직업보다 가문을 먼저 본다. 그들은 우리가 주는 정보 외에 따로 상대방 프로필을 확인하는데, 부모님 재산도 중요하지만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 집안이 모두 의사인 대학병원 원장, 재벌 못지않은 집안인가를 확인한다. 대부분 포털 사이트에서 이름만 검색하면 프로필이 나오는 사람들이다.”
정·재계 유명인사의 자녀 등 최상류층 인사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청담동 H결혼정보회사는 외모는 기본이고 가문, 직업, 학벌 순으로 회원을 심사한다. 그리고 출신 고등학교와 부모의 학벌을 추가적으로 본다. 이 업체가 출신 고등학교나 부모의 학벌을 보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어떤 환경에서 생활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회원들은 주로 강남, 서초, 강동, 분당 출신을 선호한다. 부모님 학벌 역시 서울·연·고대 이상이다. 우리는 연예인은 가입할 수 없다. 외국에서 공부했다면 하버드, MIT, 옥스퍼드 정도 돼야 한다. 유명하지 않은 외국 대학을 나온 것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다. 부모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본인 이력이 떨어지면 역시 가입하지 못하며, 본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부모 이력이 떨어지면 가입하지 못한다. 주로 어머니가 대신 회원 가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회원들끼리 서로 알 만한 집안이다 보니 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소개하면 금방 입소문이 돈다. 따라서 돈 많은 졸부형 명문가는 애초 가입 신청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집안 배경만 믿고 생활하는 재벌 2세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평생 쓸 수 있는 돈이 있지만 교육수준은 물론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도 많다.”
VVIP 회원들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결혼에 있어서 부모의 말을 잘 따르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부모가 싫어하는 사람과는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H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이들은 비슷한 사람끼리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가업이나 재산이 비슷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배우자감을 원한다. 문화적 취향, 출신 고등학교 등을 꼼꼼히 따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름을 말하면 먼저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 프로필을 보면 다들 너무 잘나가기 때문에 조건이 비슷한 집안끼리 연결해야 혼사가 잘 성사된다. 이들은 교제를 시작하기까지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교제를 시작하면 결혼은 빨리 결정된다.”
명문가 자제들은 보수적인 결혼 원해
현재 결혼정보회사 측에서는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회원들의 신상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데릴사위 공개 모집 때와 마찬가지로 종종 사실이냐를 두고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취재 중에 만난 한 남자 회원은 “현재 일반 VIP 회원의 경우 남자 전문직 종사자들의 회원 가입비가 여자보다 싸다. 어떤 결혼정보회사는 전문직 남자들을 거의 무료에 가까운 금액만 받고 회원으로 가입시키기도 한다. 한 커플매니저는 나 같은 총각 변호사나 의사를 만나면 무조건 친구들을 소개해달라고 조른다”고 말했다. 반면 커플매니저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최근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결혼시장에서 전문직 프리미엄이 전과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로펌에 소속되지 않은 변호사에 대한 인기가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자신이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무슨 가입비를 받느냐?’는 반응을 보이는 회원도 많다.”
미국 유명 로스쿨에서 국제변호사를 취득한 한 남자 회원은 유학파 국제변호사에 대한 여성회원들의 선입견만 믿고 여러 여성 회원에게 추파를 던졌지만, 연봉이 낮은 개인 변호사란 이유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현재 면적이 약 1백91㎡(58평) 되는 강남 아파트와 고급 벤츠 승용차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J씨는 부모가 상당한 재력가다. 아담한 키, 귀여운 외모에 외동딸인 그녀는 특별한 직업이 없지만 남성 회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VIP 회원권을 싸게 양도하는 모습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빼어난 외모에 음대를 졸업한 한 여자 회원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여자에게 3백만원 상당의 결혼정보회사 VIP 회원권을 싼값에 양도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녀는 원칙적으로 양도가 불가능하지만 회사 측에 양해를 구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혼정보회사들은 ‘사고’를 미연에 막기 위해 각종 증명서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조작 여부는 알 수 없다. 많은 결혼정보회사가 ‘최상의 배우자를 연결해준다’고 말하지만 일부 회원들 사이에서는 투명하지 못하고 수준에 못 미치는 회원 관리 때문에 불만이 쏟아지는 게 현실이다. 결혼이 ‘조건’ 맞는 집안끼리의 만남이라는 측면이 강한 한국만의 독특한 결혼문화가 빚어낸 풍속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