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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프랑스 앙시

한아름 |2008.11.29 22:21
조회 127 |추천 0

0818 mon 제네바 10시 20분 발 Annecy행 버스타고 이동, 12시경 도착 도착해서 타운까지는 윤제의 능숙한 불어로 잘 도착하지만, 윤제와 헤어지고 각자 돌아다님 완전 맛있는 그리스식 샐러드 먹고 거리악단 4시에 윤제 만나서 제네바로 복귀 간사님 다시 만나지만 결국 헤어짐

앙시를 4시간 밖에 구경하지 못함. 아쉬웠지만 그냥 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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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시 행 표지판이다. 제네바 꼬르나뱅역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남짓 가면 앙시가 나온다. 이곳은 프랑스이다.

 

앙시 터미널

 

밥을 먹던 레스토랑 근처 길목. 모든 길은 저렇게 조각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멋진 친구가 되어준 자전거 

 

앙시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 사진을 찍으려고 두번의 셔터를 누르가 윤제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정말 이번 여행에서 찍은 사진중 가장 맘에 드는사진 

 

햇살이 아름다운 오후였다. 

 

갤러리에선 고 미술품을 팔기도 했다.

 

모자가게에서 삼각대를 세워두고 여러가지의 모자를 써보았다.

 

 이사진을 찍자 옷가게 주인이 나와 내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흰옷만 파는가게였다. 가게 주인은 사진이 매우 잘나왔다고 전문 사진작가냐고 농담을 했다.

 

인파속의 나

 

그리스식 샐러드를 먹던 레스토랑. 바로 앞에서 밴드의 연주가 있었다.

 

내가 먹은 그리스식 샐러드. 모짜렐라 치즈, 토마토, 각종 야채, 살라미가 발사믹 식초와 어우러진 건강식

11.5유로였다.

 

가족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찍어주었다. 둘째딸의 미모가 돋보인다. 

 

내가 이 사진 찍는것을 보고 위의 가족이 사진을 부탁했다.

 

옷가게 주인이었던 여성과 친구들. 이곳에서 도마뱀 무늬의 타이 투피스를 25유로에 샀다. 완전 득템했다고 좋아했었다.

이 여자분, 아기엄마였지만 밴드가 스윙을 연주하자 길거리에서 춤추시던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이다. 누가봐서 아기엄마라고 하겠는가.

 

밴드 공연을 마치고 공연비를 받으러다니던 연주자.

 

이렇게 바로 눈앞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식당에서 내 옆테이블에 앉았던 스위스인들. 내가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자 자신들도 찍어달라고 하며 활짝 웃었다.

 

어떻게 자전거를 타고가는게 이렇게 스타일리쉬 할 수 있을까. 그는 내가 사진 찍는것을 알았나보다.

 

걷는게 화보인 한 여성

 

돼지가 귀여웠다.

 

앙시에서 가장 맘에 든 사진. 나와, 그 속의나와, 또 그속의 나.

 

역시 내 속의 나.

 

 

 

 

순간 포착했는데 극과 극의 두 여성을 보여준 사진이다.

이슬람에서 난민으로 와서 구걸하는 여성과

하이패션을 입고 도도하게 걸어가는 여성. 나는 이 사진을 찍고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앙시에서 돌아오던 길.

 

독특한 야생동물 구조물 앞에서

 

 

 

전날 이브아르에서 제네바로 돌아온 후 우리는 함께 인턴했던 일행 중 한명인 지현이를 한국으로 돌려 보냈다. 국장님과도 작별인사를 하고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제네바에서 묵었던 2주 넘는 시간동안 우리의 휴식처가 되어준 시티호스텔은, 그리고 생각보다 작디작은 제네바 시내는, 그렇게 오래 함께 지낸것도 아닌데 마치 고향처럼 친근하고 친숙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하기로 한 윤제와 나는 국장님이 추천해주셨던 또 다른 프랑스의 마을, 앙시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일어나자 마자 여행 갈 채비를 하고 호스텔을 나섰다. 환전이 필요하다는 윤제의 말에 환전소부터 들렸지만, 하루에 네 대밖에 없다는 앙시 행 버스가 사뭇 마음에 걸려서 나는 윤제를 환전소에 두고 버스를 확인하러 역으로 뛰어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 순간 길 건너편에서 유유히 몸을 옮기는것은 다름아닌 앙시 행 버스. 나는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마자 전력질주를 해서 앙시행 버스에 도달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기사에게 부탁을 했다. "이버스 꼭 타야 하는데 일행이 아직 환전중이거든요.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안될까요?"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버스기사는 나에게 5분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딱 5분이예요. 5분있다가 출발하겠습니다." 원래 출발하는 시간은 10시 20분인데, 우리 때문에 승객들은 5분을 더 기다리는것이고, 버스 기사 역시 5분 더 늦게 출발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 전력질주를 해서 길 건너편에 있는 환전소로 갔다. 마침 윤제는 환전을 거의 마치고 나오려던 찰나였다. "윤제야, 25분에 버스 출발한다고 해. 내가 5분 연장해서 버스 잡아놨어. 얼른 뛰어가자."

 

우리는 환전소를 나서자 마자 길을 건너서 꼬르나뱅 역 앞에서 기다리는 앙시 행 버스를 향해 마구 뛰었다. 다행히 신호등이 곧바로 바뀌어 무단횡단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앙시 행 버스에 몸을 실은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고, 기다려준 버스기사에게 활짝웃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했다. 자그마한 동양 여자애 두명이 버스에 들어섰을 때 승객들은 또 얼마나 귀엽다고 생각했을까. 아, 나는 그렇게 귀엽지 않지만, 나와 함께 앙시행을 택한 윤제는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운 프랑스 소녀같은 한국인이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앙시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제네바는 프랑스 국경과 인접한 도시이기 때문에 제네바 근처에 프랑스령의 작은 도시들이 많이있다. 앙시는 그중 하나이다. 어제 찾았던 이브아르도 역시 프랑스 령의 작은 섬이었고. 앙시로 가는 길에 우리는 아기자기한 마을을 제법 들려서 가게 되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의 눈으로, 나의 신경을 통해 머리에 각인되는 피사체들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그것은 처음 해외에 왔기 때문에 생기는 의무감과 생소하고 낯선 아름다움과 익숙하지 않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했다. 동시에 나는 그런생각도 잠시 들었다. '아무리 우리나라에 26년 살면서 이곳저곳 돌아봤다고 해도, 우리나라에도 돌아보지 않은 곳들이 많이 있겠구나. 그런 숨겨진 아름다움에게 미안하다.' 하는 생각.

 

사실 우리나라와 전반적인 분위기가 사뭇 다른 이곳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제가 잠든 후 자리를 옮겨 심심한 마음에 셀카를 수십장 찍어도 보고, 버스가 몇 번 멈칫거리며 승객을 태운 후, 우리는 앙시에 도착했다.

아뿔싸, 도착은 했는데 여기서 어디로 걸어가야, 또는 어디로 버스를 타야 그렇게 말로만 듣던 예쁜 마을에 도착하는지는 모르겠다. 우선 윤제와 나는 버스터미널에서 지도를 하나 받고 길건너 버스기사에게로 갔다. 윤제의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은 잠시동안의 머뭇거림을 느낌표로 바꿔주었다. "언니, 그냥 저쪽으로 걸어가면 시내가 나오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관광지가 전체적으로 있대요. 저기가 올드타운이라고 하더라구요."

 

우리는 버스기사가 안내해준 올드타운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들렸던 이브아르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고 이국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이탈리아를 축소시켜놓은듯한 열정과 에스닉함을 담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이곳에서 한 할머니와 청년이 얘기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는데 몰두했던 나는 조금만 앞으로 걸어가면 윤제와 만나겠지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앞으로 걸어가도 나와 동행했던 윤제는 나오지 않았다.

 

앙시에 도착한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나와 윤제는 서로를 잃어버렸다. 나는 잠시 그 주위와 커다란 다리 주변을 맴돌며 윤제를 찾았다. 하지만 찾을 수록 여기서 윤제를 찾는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체념하고 혼자 앙시주변을 돌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우리는 제네바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미리 구매했기 때문에 앙시 터미널에 4시 전까지 도착하기만 하면 거기서 만날 수 있었다. 아마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그냥 체념하고 혼자 돌아다니기로 작정했을거라고 짐작했다.

 

나는 많이 돌아다닐 요량으로 편한 스포츠 샌들을 신었다. 하얀색의 아사면으로 된, 꽤나 시원해보이는 롱블라우스를 걸쳤고, 혹이나 야해보이지는 않을까 해서 짧은 반바지를 속에 입었다. 비록 똑딱이 카메라이긴 했지만 그동안 별로라고 생각해왔던 우리나라 브랜드의 한 카메라의 저력을 여행 내내 확인하면서 하루에 수백장의 사진을 찍어오던 터였다. 사진찍고 찍히기 편한 복장으로 나는 앙시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이 보든 말든 이상하게 생각하든 말든 나는 삼각대를 펼치고 최대한 다른사람에게 피해가 안가는 선에서 독사진을 찍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급은 아니었다. 내가 제일 예뻐서 독사진을 남겨야 해 도 아니었다.

 

비록 혼자 여행한것도, 해외여행한것도 처음이었지만 나는 삼각대가 있어야 내가 원하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진을 남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예상 이상으로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타이머를 맞추고 앙시의 한 다리에 올라가 종탑과 성당을 배경으로 몇 번씩 사진을 찍었다. 나를 바라보던 외국인들은 내가 혹 전문 사진작가라도 되는줄 알고 나에게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수 차례 해 왔다.

 

나는 가족 혹은 연인처럼 보이는 그들의 사진을 성심껏 찍어 주었다. 앙시의 올드타운안에 있는 마을로 들어가자 어제의 이브아르와는 사뭇다른 매력이 한껏 몰려왔다. 나는 천천히 인파를 뚫고 마을의 사잇길을 돌며 아름다운 건물과, 고즈넉한 매력과, 자유로운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벌써 오후 한시가 다된 시간, 나는 오늘만큼은 돈을 아끼지 말고 괜찮은 식사를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한 식당에서 그리스식 샐러드를 맛있게 음미하는 한무리의 사람들을 보고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그 식당으로 들어섰다.

 

프랑스어로 된 메뉴판을 아무리 봐도 어떤게 나은지 잘 모르겠기에, 나는 옆 테이블에 앉은 여성이 먹는 맛있어 보이는 그리스식 샐러드를 보고 " 저거랑 똑같은거 주세요. " 라고 했다. 이곳에서 수돗물은 top water이라 하는데, 수돗물 말고 그냥 물을 달라고 하면 병에 담긴 생수를 주면서 물값을 따로 받으니까 유럽 여행하는 사람들은 유의해서 주문해야 할 것이다. 어떤 식당에서는 수돗물을 주면서도 돈을 받는 경우까지 있다.

 

나는 내가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삼각대를 세워놓고 또 한차례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다. 옆에서 식사를 하던 한 무리의 청년들은 나를 매우 웃긴 사람처럼 취급하며 바라보았다. 조그마한 동양 여자아이가 삼각대를 세워놓고 몇십번이고 타이머를 맞춰 사진을 찍으니까 얼마나 웃겼겠는가. 사실 동양여자아이가 아닌 서양 여성이었어도 그들에게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나는 그들에게 "저는 혼자 여행하고 있거든요. 사실 여행하면서 남는게 사진밖에 없잖아요." 라고 웃어넘겼다. 그러자 그들 중 몇 명은 나에게 "함께 사진 찍는 건 어떨까요." 라고 제안했다. 나는 멀리있는 삼각대의 타이머를 맞추고 나와 맞닿은 테이블에 있는 그들과 함께 결국 사진을 찍었다.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잠봉(돼지 뒷다리를 말린 햄) 갖가지 야채, 빼빼로 모양의 과자가 버무려진 나의 그리스식 샐러드가 나왔다. 사실 정말 맛있었다. 나는 마치 미식가라도 된 듯 천천히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내가 밥을 먹는 식당 바로 앞, 특히 나의 자리는 야외의 길목 바로 앞이었는데, 거기서 거리의 악단이 연주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 준비시간을 갖지도 않고 악기를 꺼내자 마자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먹던 식탁에 삼각대를 작게 오무려서 올려놓은 후 그들의 공연을 녹화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말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거리의 악단을 하는 청년들은 음대생들인데 여행자금을 벌려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게 좋아서 악단을 만들어 여기저기 떠도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내가 음식을 먹던 식탁에서 몇발자국 떨어지지 않은곳에서 그들은 흥겹게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모든 연주를 성심껏 듣고나서 그들의 악기통에 동전 몇 개를 넣었다. 정말 멋진 음악이라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정말이었다. 나는 행복한 식사시간을 보냈다. 혼자 도도하게 샐러드를 먹었지만,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주변에는 살아있는 음악이 있었고, 나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있었고, 멋드러진 풍경이 있었다.

 

40여분동안 천천히 점심을 먹고나서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거리의 악단을 보느라, 그 모습에 흠뻑 젖어있느라 시간이 흐르는줄 몰랐다. 다시 제네바로 돌아가는 버스를 4시에 타야 하는데 시계바늘은 벌써 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앙시는 제법 넓었다. 단 두어시간이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던 이브아르와는 달랐다. 나는 온통 하얀 옷만 파는 옷가게 앞에 삼각대를 세우고 하얀옷이 입혀진 마네킹 가운데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가게 주인이 나와서 "사진 찍어줄까요?" 하다가, 내 삼각대를 보고는 피식 웃으며 내가 사진찍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가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 하길래 나는 방금찍힌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입에 발린 칭찬일까, 정말 잘나왔다고 한 것일까. 그는 사진이 정말 잘나왔다고 얘기했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사실 이곳은 어떻게 사진을 찍든 아름답게 나왔다. 나는 사진을 잘 찍거나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 전문가도, 사진에 있어서는 아마츄어도 아니지만, 지난 2주동안 인턴을 하면서 2천장의 사진을 찍었고, 매순간을 기록하려 노력했다. 똑딱이로 불리우는 카메라지만 수동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기에 나는 사진 한 장한장 느낌을 다르게 주려고 노력했고, 카메라가 손에 익어 갈 수록 더 맘에드는 사진, 더 남기고 싶은 사진이 나오기 시작했다.

 

앙시에서 내가 본것은 올드타운밖에 없다. 서너개의 다리를 지나다니며, 음식점과 젤라또를 파는 카페, 크레페를 파는 카페, 성당, 옷가게, 기념품가게를 한참동안 헤메고 다녔다.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내 동선은 그렇게 넓지 않았고, 남은 두어시간동안 눈에 보이는것은 모두 사진에 담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내 카메라는 4시를 꼭 40분 남겨놓고 밥을 찾기 시작했다. 배터리가 나가버린것이다.

 

나는 한참 생각했다. 그냥 눈에 더 많은 것을 담아 기억에 저장하고 올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충전할 방법을 만들어볼것인가. 다행히 나는 가방속에 항상 충전용 잭과 어답터를 가지고 다니던 터였다. 터미널에서 걸어서 15분거리정도 되는곳까지 종종걸음으로 아쉬움을 안고 와서 한 젤라또가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자마자 점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여행객인데요, 카메라 배터리가 다됐어요.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에 충전을 하면 안될까요?"

젊은 여자 종업원은 나를 5초정도 쳐다보더니 기다리라고 한다. 곧 나이가 지긋이 들어보이는 젤라또가게 주인이 나왔다.

"아가씨 무슨 부탁을 하려는겁니까?"

"제 카메라 배터리가 다됐거든요. 아이스크림을 먹는동안 충전을 하면안될까요?"

그는 메뉴판을 펼쳤다. 나는 원래 젤라또 하나 먹기는 미안해서 두 개짜리를 시킬려고 했는데 그는 아예 메뉴를 펼치고 한쪽 페이지를 가르켰다.

"이쪽에서 시키셔야만 합니다."

그는 재빠른 계산으로 일반 젤라또가 아닌 비싼 젤라또를 시키기를 바라고 있는 터였다.

나는 시간을 뺏기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곳을 찾으러 가고 싶지도 않았다. 4.6유로에 두 개의 젤라또를 선택할 수 있는 메뉴를 가르키며 "블루베리와 초컬릿이요."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카메라와 충전잭을 그에게 건넸다.

 

나는 작은 젤라또 가게에 혼자 앉아 내 젤라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5분정도 지나서 투명하고 예쁜 아이스크림 컵에 분홍빛 보라색과 진한 초컬릿색을 띤 젤라또 두덩이가 매력적인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옆에는 웨하스와 스틱과자도 꽂혀있었다. 아, 생크림도 한덩이 들어있었다. 나는 젤라또를 먹으면서 잠시동안 행복해했다. 스위스에서는 아이스크림이 너무 비싸서 2주 내내 한번도 사먹지 못했다. 아니, 한번 기회가 있었다. 주말에 제네바의 올드시티를 돌아다니다 4명이서 1인분양의 젤라또를 사먹다가 젤라또가게가 아닌 자리에 앉았다고 구박을 받고 재빠르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와야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돈으로 6천원이 훌쩍넘는 젤라또를 여유롭게 먹게 되다니. 나는 생각했다. 오늘은 혼자서 나름 사치를 부렸구나. 13유로나 되는 그리스식 샐러드를 먹고, 5유로 남짓되는 젤라또까지 먹다니.

 

머릿속에 너는 오늘 약간의 사치를 부렸구나 하는 생각이 둥둥 떠다닐때 옆에 앉은 가족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4명의 가족은 오른쪽 끝자리에 앉아 접시에 가득 담인 젤라또를 먹고 있었는데,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유럽계 백인부부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기자기했다.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어느나라에서 왔어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제네바를 돌아다니던 지난 2주동안 도대체 한국인이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0명이면 10명 다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대뜸 물었다. 나는 여기와서 그리 크지 않던 애국심까지 생겨버렸다. 물론 내 외모가 중국인같기도 하고 앞머리를 일자로 잘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는 나라이름을 먼저 얘기하지 않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봤다. "당신은 중국인이죠? 일본인이죠? 가 아닌 예의 바른 당신은 어느나라에서 왔어요?" 라는 질문은 지난 2주간 느껴보지 못한 약간의 뿌듯함이었다.

나는 카메라가 충전되는 동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 가족과 한참 수다를 떨었다. 네 가족중 유일하게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중학생 남자아이가 아버지의질문을 통역했다. 프랑스계 스위스인 아버지는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은 듯 했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탁구에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는것도 알고 있었다. 15분쯤 지났을까. 벌써 4시가 되기 15분전이다. 난 가족들에게 반가웠다는 인사를 하고, 아이스크림 옆 접시에다 약간의 팁을 올려두고 사장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 카메라와 충전기를 챙겨 나왔다. 아까 사진을 미쳐 찍지 못한곳이 있었다. 나는 손목시계와 아까 그 장소를 번갈아 둘러보며 열심히 뛰었다. 결국 아까 그 장소 앞에서 나는 두장의 사진을 남겼다. 자전거 앞에서 나를 찍고, 자전거 옆에 있는 한 남자를 찍었다. 그리고 시계를 쳐다보았다. 이런, 버스시간까지 8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카메라의 삼각대를 가장 작게 접고 무조건 뛰기 시작했다. 뛰고 또 뛰고나서 2분을 남기고 앙시 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시 윤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윤제는 나를 찾았다고 했다.

"나도 너 한참 찾았어. 하지만 어차피 4시에 보기로 했으니까,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윤제만 찾느니 그냥 돌아다니는게 낫겠다고 생각했어."

"언니, 나 아까 밴드 연주하는거 봤는데, 언니도 봤어요?""어. 나 그 밴드 바로 앞에서 점심 사먹었는데? 그것도 밖에서."

"하하, 언니 우리 바로 근처에 있었는데 못만난거예요."

"그러게, 어이가 없다."

우리는 돌아오며 서로가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짧은 시간을 아쉬워했다. 앙시는 이브아르보다 훨씬 큰 도시이다. 어제의 이브아르가 아기자기했다면, 앙시는 더 큰 규모의 동화마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금은 에스닉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다.

나는 앙시에서 사람들을 보았다.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여행객보다 그 마을에서 대부분 자영업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유를 보았고, 여유속에 감추어진 보드라우면서도 열정적인 일상을 보았다. 그들에게 손님 접대는 삶의 한 부분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것도, 새로운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하는것도 연속되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누가 시켜서 그런것도, 매출을 올리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유쾌할 뿐이었다. 앙시이기 때문에 그런것일까, 앙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그들을 그렇게 단련시킨것일까. 나는 전자에 마음속으로 동전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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