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금강에서 바라본 하늘)
눈
1.(철수)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까? 지금은 떠나는 사람은 있어도 돌아오는 사람은 없는, 허름한 아파트 상가 앞에 한 평 남짓 한 구둣방이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 구둣방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철수가 착한 건 안다. 철수는 자신이 어디서 태어 났는지 알지 못한다. 태어나서 엄마도 아빠도 본 적이 없다. 자신의 모친의 고향이 화양면이라는 것, 그리고 외 할머니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 그가 아는 전부다. 그는 그곳에 운명처럼 던져졌고, 옥포리에서 철새가 날아들고 날아가는 것을 보며 자랐다. 철수는 누군가와의 만남과 이별을 배우기 전에 철새와 그것을 먼저 배우며 자랐다.
아침이 시작되면 철수는 구둣방주인이 오기 전에 작은 문을 열고 좁은 공간 안으로 허리를 굽혀 들어간다. 그리고 어제 닦다 남은 구두를 닦거나 오늘까지 해야 하는 수선을 시작 한다. 30살이 훌쩍 넘어버린 철수는 말을 잘 하지도, 잘 듣지도, 못하는 할머니와 산다. 그래서 일까? 그는 어려서부터 어눌했다. 유난히 안 생긴 얼굴 때문일까, 아님 가난 때문일까? 그는 이 나이에 결혼은 커녕 연애도 한번 못해봤다. 구두를 닦는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운 마음에 철수에게 얘기한다. 행복한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행복, 그리고 가정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철수는 그냥 웃어버린다.
그 두 가지 모두 무엇인지 철수는 잘 모르겠다. 그저 그가 보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 안에서 살아가고 그 안에서 죽어간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 뿐이었다.
2.(철수)
철수에게 즐거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목요일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구두를 걷으러 나갈 때면, 허리가 굽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보건소로 가는 예쁜 손녀딸 영희를 보는 것이 그것이었다. 20살 난 영희는 눈이 점점 멀어간다고 한다. 수술을 하면 낳을 수 있는 병이라 하는데, 영희는 오랫동안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영희의 할머니와 철수의 할머니는 박스를 모으면서 항상 얼마 되지 않는 수술비 이야기를 하곤 했다. 철수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어눌한 할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때 마다 영희의 눈을 고쳐주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언제부터인지 목요일마다 나타나는 영희와 그녀의 할머니가 통 보이질 않는다. 왜 영희가 나타나지 않는 건지 할머니에게 물어볼 만큼 용기 있는 철수도 아니었다. 철수는 할머니가 영희에 대해 얘기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일 후 할머니가 유난히 주섬 주섬 말끔한 옷을 주워 입고 나갈 때 영희의 할머니가 죽었음을 알았다.
장례라고 할 것도 없었다. 검은 정장 차림의 사람도 없었고, 곡하는 사람도 없었다. 찾아와 돈을 건네는 사람도 없었고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다. 철수는 초점 없는, 아니 초점을 잃은 영희의 눈을 처음 가까이 보았다.
그 후 철수의 할머니는 구슬과 실을 영희에게 가져다 주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영희는 수전증 때문에 구슬을 꿸 수 없는 철수의 할머니의 부업을 대신 한다. 철수는 영희에게 구슬과 실을 전해주고, 완성품을 건네 받은 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준다. 작고 더러운 방안에 혼자 사는 영희에게 철수의 할머니는 가끔씩 청소와 밥을 해주었고, 그런 할머니를 철수가 도왔다. 철수는 조금씩 영희에게 할머니를 핑계로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오후다. 철수는 자신의 몸이 비를 젖는 지도 모르고 열심히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영희네를 향했다. 철수에게서 건네 받은 구슬 봉지의 물기가 만져졌다. 영희가 수건을 건네자 비로소 철수는 비가 그칠 때까지 그녀의 집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한번도 카페에 가본 일 없는 철수와 영희에게 비 소리는 음악이었다. 그 둘은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철수는 그녀를 밝게 만드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시(詩)라는 놈임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병원에 못간 영희는 이제 어설픈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됐다. 영희와 함께 병원에 간 철수는 더 늦기 전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짜증을 듣었다. 철수는 영희는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 하다는 걸 알았다.
3.(철수)
얼마 후 철수도 할머니를 떠나 보내야 했다. 그는 할머니가 없는 텅 빈 방이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서야 누군가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영희는 더듬 더듬 다가와 철수의 손을 잡았다.
철수는 영희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들은 하루 하루 옆에 숨을 쉬고 꿈틀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철수는 영희를 씻겨주고, 먹여 줬다. 언제나 따뜻한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게 했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영희가 좋아하는 시(詩)를 읽어 주고, 그녀가 쌔근 쌔근 잠든 모습을 보며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며 살았다. 구두를 닦는 그의 손은 더욱 더 굳어가도 아픈 지 몰랐고, 영희도 자신의 이까지 닦아 주는 철수는 분명 천사라고 생각하며 철수의 딱딱한 손을 어루만졌다. 철수도 영희도 최소한 그들에게 세상은 아름다웠다.
철수는 영희를 데리고 다시 한번 병원을 찾았다. 보건소에 앉아있는 의사는 이 곳 시골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었다. 삶의 기운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무렇게 나 있는 수염과, 오목하게 들어간 의사는 초췌한 눈으로 영희를 성의 없이 진찰했다. 아내가 바람나서 미쳤다는 소문도 있고, 수술을 잘못 해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도 있고, 서울 병원에서 쫓겨났다는 말도 있었다. 그나마도 몇 개월은 출근을 하지 않아 진찰을 받을 수도 없었다. 영희는 다시 출근한 그 의사의 손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
철수는 영희의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창밖에 날아드는 철새들을 본다. 그리고 철새들이 봄이 오기 전에 날아갈 거라는 당연한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4. (영희)
수술하는 동안 영희는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을 생각한다. 냄새 나는 작은 방, 할머니의 추위에 터진 손, 그리고 거울에 비춰지는 자신의 예쁜 얼굴. 가난과 초라함이 싫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꼭 철새처럼 금강을 떠나겠다고 한 다짐은, 그녀의 눈을 조금씩 가려가는 이물질과 함께 가려져 갔다. 그러나 소설에서나 존재하는 따뜻하고 헌신적인 사람과 보낸 시간을 생각해 본다. 천사 같은 철수와 함께라면 지겨웠던 금강의 바람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술이 끝난 붕대 안에 있는 영희의 눈은 어서 빨리 철수,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것들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의 붕대가 풀려갈 때 영희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빨리 철수가 보고 싶었다. 빨리……
눈을 떴을 때 희미하게 세 사람이 보였다. 검은 점퍼를 아무렇게나 입은 초라한 아저씨, 그 옆에 있는 하얀 가운의 말끔한 남자, 그리고 쨍그랑거리는 용기를 만지고 있는 여자. 다시 한번 낡은 검정 점퍼를 입고 서있는 남자를 본다. 얼굴은 가맣고, 하얗게 일어 난 입술을 가늘게 떨고 있었으며, 작은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점점 더 또렷해지는 그의 모습에 영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한동안 머뭇거렸다.
철수는 울먹거리며 의사에게 미친 듯이 고맙다고 했다. 의사는 별 감동 없이 돌아 섰다. 영희는 어깨를 감싸는 철수의 팔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보건소를 나와 한참을 걸었다. 좁은 골목에 몇 일 동안 버리지 않은 쓰레기 더미가 싸여있었다. 녹이 슨 대문을 통과해 또 작은 허름한 문을 열었다. 어둡고 눅눅한 작은 방 앞에 그에 걸 맞는 작은 부엌에 들어갔을 때, 철수는 황급히 방에 들어가 별로 환하지 않은 불을 켰다. 영희는 부엌인지 욕실인 지 알 수 없는 곳에 놓인 찌그러진 식기를 보았다. 그 옆에 싸여있는 설거지 속에 있는 이가 나간 찻잔, 모가 누워있는 꼬질 꼬질 한 칫솔을 보았다. 철수는 영희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했다. 둘이 따뜻하게 뒹굴었던 포근한 이불은 바래져 언제 뜯어질 지 몰랐다. 뽀얀 먼지 낀 거울속에 영희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어느덧 뒤에 철수가 거울에 비쳤다. 영희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5.(철수)
영희의 눈이 보이는 것이 그들 행복의 절정이라고 철수는 생각하며 더 열심히 일했었다. 그러나 뭐가 잘못됐는지 영희는 눈이 보이던 그 순간 행복을 잃은 듯 했다. 오히려 초점 없었던 눈동자가 더 사랑스러웠던 것 같다. 영희는 더 이상 커피도 안 마셨고, 좋아하던 시도 읽지 않았다.
영희가 보건소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냉냉함은 더했다. 철수는 그녀의 무표정에 대해 물을 수도 없었다. 오늘도 영희는 아직 집에 안 들어 왔다. 철수는 점점 늦어 지는 영희의 귀가시간에 대해서 물어볼 용기도 없으면서 무작정 보건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점점 못 견디게 예뻐져 가는 영희가 보건소 의사와 같이 있다는 소문은 이제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었다. 바람이 몹시 찼지만 철수는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늦은 시간 보건소는 거의 불이 꺼져 있었다. 캄캄한 복도를 타고 들려오던 영희와 그녀의 눈을 뜨게한 의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철수는 등을 돌려 보건소를 나왔다.
집에 돌아온 철수는 불을 켜지 않았다. 한참 동안 어둠이 지나고 작은 창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그 사이로 낡은 이불, 때 낀 빗, 먼지 싸인 거울이 점점 또렷하게 보인다. 그러나 방안의 모든 것이 움직이질 않는다. 영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방안의 소리는 또 다시 멈췄다. 작은 창 사이로 바람에 아무렇게나 날리는 눈이 보였다. 점점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침이다. 철수는 구둣방주인이 오기 전에 작은 문을 열고 좁은 공간 안으로 허리를 굽혀 들어간다. 그리고 어제 닦다 남은 구두를 닦거나 오늘까지 해야 하는 수선을 시작 한다. 30살이 훌쩍 넘어버린 철수는 예전보다 더 말 수가 줄었다.
점심 때가 다 되어 어김없이 구두를 걷으러 나온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는 흐린 하늘을 철수는 멍하니 바라본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