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잉글랜드 북동지역 뉴캐슬과 타인강(江) 사이에 위치한 인구 20만의 작은 소도시 게이츠헤드(Gateshead)는 우리 거제시처럼 조선도시로 유명했다. 한때 조선, 철강산업과 그에 종속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름 알찬 중공업도시였으나 2차대전 이후 시대적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제조업 몰락 등의 영향으로 공장들이 속속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생계를 잃은 사람들도 차츰 떠나가고 오염된 환경에 실업자들과 노인만 남은 유령도시로 전락해버렸다. 웃음을 잃고 죽어버린 도시를 소생시키기 위한 첫 프로젝트는 '문화'를 테마로 한 도시재생사업(Culture-led Urban Regeneration)이었다.
영국 게이츠헤드 도시재생 프로젝트 현장 게이츠헤드 시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을 시기적으로 보면 1. 공공미술 프로젝트 추진하여 시각적 문화적 변화 홍보,
2. '다리'라는 기능의 고정관념을 깬 디자인의 밀레리엄 브리지 개통,
3. 철거하려던 공장을 리모델링하여 문화공간으로 만든 발틱현대미술관 개관,
4. 지역민 문화향유와 예술교육을 위한 세이지 음악당 개관이다.
특히, 이 성공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총감독은 건축가나 도시계획가가 아니라 연극을 전공한 예술가 피터 스타크(Peter Stark)가 맡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98년 의회는 게이츠헤드 외곽 남쪽에 80만 파운드(약 16억 원)를 들여 ‘북쪽의 천사(The Angel of the North)’라는 대형 야외 조형물을 건립했다. 조각가 안토니오 곰리(Antony Gormley)가 1만개의 빈 코카콜라 깡통을 이용해 만들어낸 이것은 날개가 달린 거대한 우주인과 같은 형상이다. 이 조각의 설립을 처음 제안하였을 당시에는 시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빈민구제도 모자란 판국에 돈을 들여 쓰레기를 유치하는 바보짓이라며 거센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 돈으로 차라리 학교를 짓고 병원을 건립하자고 시민들은 제안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쪽의 천사’를 보기 위해서도 연간 수백만의 관광객이 이 도시를 찾고 또 재생예술의 세계적인 본보기가 되었다. 게이츠헤드의 모든 주민들 또한 이 조각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스러워한다. 파리의 에펠탑도 건립초기에는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으나 지금은 에펠탑 없는 파리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북쪽의 천사’도 도시의 흉물이 그 도시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Land Mark)로 변모한 성공적인 사례다.
-문화에 투자,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살려낸 게이츠헤드
‘21세기는 문화의 시대’ 삼척동자도 줄줄 꿰는 말이다. 세계의 도시와 기업들이 부가가치가 높은 디자인과 문화, 예술에 승부를 걸고 있다. 도시의 상징도 경제나 상업보다는 지역축제나 예술을 주제로 캐치프레이즈를 내건다. 게이츠헤드의 성공도 도시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후에 철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한걸음씩 나아간 의지의 결과였다. 프로젝트의 총감독은 개발에 앞서 지역의 문화와 역사, 정체성을 철저히 연구했다. 외부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신경을 쓰기 보다는 주민들을 위한 문화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살고 있는 지역민들이 만족하는 도시여야만 관광객들도 만족한다는 생각이었다. 주민공동체들과의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가 이어졌다. 다양한 의견들이 수렴되었고 받아들여졌다.
밀레리엄 브릿지와 발틱현대미술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텔과 교통, 요식업 등의 문화 인프라를 먼저 확충한 뒤에 많은 예산을 들여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과 전시를 유치했다. 처음에는 관심이 저조하던 언론도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공연과 전시를 펼치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 좋은 문화행사의 지속으로 언론의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역경제가 활성화 되면서 20%에 육박하던 실업률도 4%대로 떨어졌다. 힐튼호텔을 비롯한 유명 호텔들이 들어서고 이에 관련된 종사자들이 새로이 생겨나면서 고용창출도 크게 늘었다. 현재 이웃한 도시 뉴캐슬과 더불어 약 6만 명이 문화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1년에 2,0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공연과 미술전시회를 향유하기 위해 찾아오고 연간 100만 명 정도의 예술가와 여행객들이 장기투숙을 하며 문화생활을 즐긴다. 이에 따른 부가가치도 엄청나니 관광수입만으로 연간 40억 파운드(약 8조4000억 원)를 올린다고 한다. 그 유명세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게이츠헤드를 찾았다. 런던에서 기차로 3시간. 7월이지만 꽤 쌀쌀한 날씨였다. 기차역에 짐을 맡기고 나와 5분여 걸으니 건너편으로 밀레니엄 브릿지(Millennium Bridge)가 보인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눈동자 형상의 이 다리는 2001년 개장했고 사람과 자전거만 지나다닐 수 있다. 하루에 두 번 윙크하듯 다리가 접힌다. 그래서 ‘Winkling Bridge’라는 별명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다리’는 신속한 교통을 위해 직선으로 놓이지만 역발상으로 실용적 기능성 보다 ‘여유’를 주는 창의적 디자인 이었다. 다리 위에서 강 이편과 저편을 바라보았다. 활기차게 사람들이 오가고 시커멓게 더러운 강물 위로 배들이 오간다. 거대한 애벌레나 우주선 형상 같은 세이지 음악당(The Sage Gateshead)과 그 옆에 자리한 발틱 현대미술관(Baltic Center for Contemporary Art)도 보인다.
-죽은 밀가루 공장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다시 살아나다
2002년 7월에 개장한 발틱 현대미술관은 밀가루공장을 개조해 ‘예술공장’을 표방한 현대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철거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방치해두었던 제분공장이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부활하였다. 5년에 걸친 리모델링으로 5개의 갤러리, 예술인들의 스튜디오, 영화관, 강의실, 도서관과 자료실, 기념품샵과 레스토랑이 있다. 지역민 예술체험 교육과 소장품 없이 새로운 창작작품 생산을 지향하는 21세기형 미술관으로 운영해 개관 첫 해에만 10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매년 250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발틱 미술관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하며 몇 개월간 머무를 수 있는 레지던스(residence)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필요할 때는 세이지 음악당과 연계한 아트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또한 지역민과 연계하여 지역예술인을 발굴하여 양성하고 주말에는 가족들을 위한 전시를 연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일본작가 ‘요시토모 나라’展이 열리고 있었다. 밀레니엄 브릿지와 바깥의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투명한 엘리베이터로 5층까지 올라갔다가 계단을 통해 걸어 내려오며 관람을 하였다.
발틱미술관 지역주민 예술교육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전시를 관람하는 가족의 다양한 모습이 보기 좋았고, 작은 꼬마들이 작품 앞에 앉아 도슨트의 이야기를 듣는 광경도 무척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멋진 미술관이 과거에 밀가루 공장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1층 기념품 샵에서는 전시를 하고 있는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을 활용한 기념품을 팔고 있었는데 그림이 페인팅된 머그컵이나 다이어리, 캔버스 가방과 핸드폰 고리 등이 너무 앙증맞게 만들어져 사고 싶은 욕구를 마구마구 부추겼다. 외부에 있는 벤치에 앉아 문화기행 일행들과 조각피자와 사과, 음료수를 곁들여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깨끗이 먹고 조용히 정리를 하였다. 문화적인 공간에서는 행동도 문화적인 시민이 되나보다. 우리는 스스로가 고상하게 느껴진다며 농담을 하였다. 건너편의 세이지 음악당으로 향했다. -소라고동을 모티브로 한 아름다운 공연장
어릴적에 바닷가에서 소라껍데기를 주워 귀에 대면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을 경험한 추억이 다 있을 것이다. 이런 추억이 세계적인 건축가에게도 있는 것일까? 세이지 음악당(Sage Music Center)은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디자인으로 1,400억 원을 들여 2004년에 개장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음향시설을 갖춘 1,700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400석의 소공연장, 세미나실, 리허설 룸, 주민들을 위한 음악학교, 음악 정보센터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공연 외에도 갓난아기부터 70세까지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지역민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 중이며 공연과 교육이 각각 50%씩 비중을 차지한다.
소라껍데기 형상의 세이지음악당 이 도시를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타지의 공무원들과 각자의 목적을 가진 수많은 방문객들이 소라껍데기 모양의 세이지 음악당을 구경하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든다. 멀리서보면 쇠로 만든 애벌레가 구불구불 기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주선 같기도 하다. 내부는 매우 현대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통유리로 조망권을 시원하게 확보하였고 전망이 가장 뛰어난 곳에 모던한 커피숍이 자리하고 있다. 지하 어디에선가 연습을 하는 것 같은 합주소리가 조용히 들려오는 것 외에는 매우 고요하고 청결하였다. 커피숍에 앉아 카푸치노를 한 잔 주문했다. 통유리 너머로 밀레니엄 브릿지를 통행하는 사람들을 망연히 구경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어도 무척이나 평화로운 분위기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츠헤드의 성공은 지역주민들의 복지지원에서부터 이루어졌다. 좀 더 여유를 부리고 싶었으나 런던으로 가는 기차시간이 임박하었다. 나중에 다시 꼭 이곳에 들러 세이지 음악당의 공연도 보고 발틱 미술관에서 영혼의 귀족이 되어보자 다짐하며 아쉬운 눈도장을 찍었다.
쇠락해가던 이 도시가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 것은 게이츠헤드 시청 ‘아트 팀’의 기지이다. 이들은 중앙정부에 문화도시 개발과정과 사례를 제출하고 투자를 요청하였다. 이에 정부는 문화 복권 사업 수입금으로 투자금의 일부분을 지원하였다. 도시 재생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전환되면서 기업 등 외부의 투자도 활발해지고 옆 도시 ‘뉴캐슬’과 함께 2030년까지 100억 파운드 유치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도시의 산업도 나날이 번창하며 부와 명예를 가진 현대적인 개념의 예술 문화도시가 되었다.
-컬처노믹스 시대, 거제도의 정체성을 살린 문화 경쟁력을!
거제도는 아름다운 바다와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이 있다. 조선소, 관광지 외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도시에 2003년 10월 거제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였다. 장승포에 위치한 거제문화예술회관은 바다를 항해하는 돛단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전국에 있는 문화예술회관 중에서는 대한민국 제일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요즘은 TV에서 포스코의 CF로도 방영되고 있어 더욱 친근하다. 거제도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문화예술회관의 노력이 무척이나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게이츠헤드 사례처럼 문화는 곧 도시의 얼굴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자부심이다. 거제도의 정체성을 살린 행사와 계층별, 장르별로 다양한 공연을 많이 유치하고 발굴하는 한편 주민들을 위한 아카데미나 아트 프로그램의 도입이 원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해의 ‘그림으로 보는 거제도展’이나 연극 ‘거제도’, ‘폐왕성’, 여름 바다축제 등이 참 좋았다고 기억된다. 문화는 곧 주민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비슷비슷한 행사와 고만고만한 축제가 전국에 만연하다. 거제도만의 색깔과 고유함을 간직한 얼굴마담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적인 문화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관심과 협조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시당국의 재정지원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실무자들의 추진력이 관건이다.
세이지 음악당 실내그리고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군수공장을 활용한 중국의 798갤러리와 같은 예를 보듯 무조건적인 ‘개발’보다 ‘재활용’처럼 저비용 고효율이 예술분야에선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기발한 생각 하나가 도시 전체를 먹여 살린다. 어느 누가 화력발전소와 공장이 그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멋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예술가들이 살면 땅값이 오른다?
낙후된 곳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문화 공동체를 형성해 활동하는 지역을 일컫는 ‘스콰트(squat)’는 프랑스에서부터 시작되어 외국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활성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의 문래동과 최근 주목되고 있는 이웃도시 통영의 동피랑 마을을 비슷한 예로 들 수 있겠다. 동피랑 마을은 산꼭대기에 있는 철거예정인 판자촌을 보존하고자 ‘푸른 통영21추진위’에서 3,000만 원을 내걸고 벽화공모전을 벌였다. 전국에서 모인 화가들이 마을을 예쁘게 색칠하고 단장하여 예술가들의 입주촌으로 꾸몄다.
대구 가는 길에 한번 들러보았는데 아기자기 오밀조밀 참 이쁘다. 도시의 천덕꾸러기였던 판자촌이 전국적인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다. 서울에 있는 지인도 동피랑을 구경하기 위해 사진 동호회 회원들과 두 번 출사를 나갔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지역의 땅값이 오른다는 부동산 시장의 법칙이 있다. 영국의 로스 글래스(Ruth Glass)가 주택재고의 변화를 연구하며 고안한 결과로 “예술가 주도의 Gentrification(고급화)”이라고 한다.
발틱현대미술관 전시관람 재개발 정책은 낡은 건물을 다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돈을 들여 짓는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그보다 적은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한다. 그리고 예술촌의 재개발은 예술가들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함이 경쟁력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따라하기식으로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지역의 정체성과 주민들의 욕구를 반영하여 장기간의 연구와 계획으로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관광기구에서는 문화관광이 전체 관광의 37%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요는 매년 15%씩 증가한다고 내다보았다. 문화가 가장 경쟁력 있는 사업이자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거제도에도 폐교나 낙후된 마을을 개발하여 우리 도시의 랜드마크로 발굴해보면 어떠할까? 거제도는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환경으로 이미 다른 도시보다 우위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명품 문화도시로 가는 길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착실한 실천의 한걸음부터 이다. 바야흐로 세계의 대세는 *컬처노믹스이다. 세계가 문화를 통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글로벌 경쟁력을 향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 컬처노믹스(Culturenomics):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교수인 피터듀런드(Peter Duelund)가 처음 사용하였다. 최근에 문화의 상품화와 문화를 통한 창의적 차별화를 강조하는 새로운 도시발전 논리로 부각되고 있으며, 이미 세계 주요도시들이 창조적인 문화도시로의 전환을 위한 '컬처노믹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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