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양군 알래스카에 빠지다.
written by 양희종
photo by 양희종, 정은조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을 것만 같은 나라, 4계절 내내 하얗게 눈이 부신 나라, 그곳이 바로 내 상상속의 알래스카였다. 털모자와 두터운 장갑, 새어나오는 하얀 입김, 개들이 썰매를 끌며 뛰어 다니고 있을 것만 같은 나라, 그 곳이 바로 내가 상상하던 알래스카였다. 하지만 고된 비행 끝에 찾아온 알래스카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약간 어긋난 출발”
나의 탐사는 공항에서부터 약간 어긋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 대원들은 알래스카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문제가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해서 항공권과 수화물 수속을 할 때 문제는 시작되었다. 우리가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알래스카에서는 모기가 극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많은 양의 모기 퇴치용 스프레이를 구입하였지만 기내 반입 금지 물품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수화물 수속을 밟기 전 짐을 풀어 분리해야 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까지는 즐거운 비행을 상상하며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짐을 하나하나 챙겨가며 우리 팀 마지막에 줄서있었다. 앞쪽에서는 수속이 시작된 듯 했다. 나는 계속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때 앞쪽에 있던 은조가 나에게 여권을 냈냐고 물어봤다. 나는 당연히 같이 하는 줄 알고 아직 안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앞에서 벌써 몇몇 씩 짝을 이루어 여권으로 항공권 발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서둘러 앞으로 가 여권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다른 팀원들과 좌석을 다르게 배정받게 된 것이다. 나처럼 짐 확인에 여념 없던 창섭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직원에게 좌석을 다시 배정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해 물어봤다. 탑승객이 많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도 창섭이와 나는 최대한 붙여달라고 말했다. 비행시간은 한 두 시간이 아니었다. 그 오랜 시간 내내 팀들과 따로 떨어져 있어야 했다. 순간 서운하고 좀 서글퍼졌다. 그래도 창섭이와 앞뒤로 앉게 되어 다행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너무 미안해했다. 그렇게 창섭이와 나는 팀원들과는 조금 동 떨어진 비행을 하게 되었다.
“시애틀 공항에서 있었던 일”
미국의 입국심사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환승을 하더라도 처음 입국하는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아야 하며 수화물을 다 개봉한 채 다시 검사한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상당한 부담감을, 아니 겁을 먹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단비는 계속해서 자기 짐에 있는 휘발유 버너에 대한 걱정을 했다. 검색대 요원들은 아웃도어 활동에 무지한 사람들도 있어서 이것이 무엇인지 설명을 해도 모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드디어 시애틀 공항에 내리게 되었고 입국 심사대로 향하였다. 풍경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 심사대 앞으로 향하였다. 심사 직원은 라틴계의 미국인 같았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원어민 발음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배운 회화 수준으로 물음에 대답했다. 내 여권을 살피던 도중 그는 내 직업에 대해 궁금해 했다. 나는 자랑스럽게 학생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여권에 찍혀있는 많은 입출국 도장들을 살피며 의아해 했다. 그와 나는 되지않는 영어를 주고받으며 농담도 했다. 그는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과거에 외국에 나갔을 때도 일본인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에 난 웃으며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심지어 일본에 갔었을 때조차 현지인이 나에게 길을 물어볼 정도였으니 그 역시 못 믿겠다는 눈치로 계속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유쾌한 입국 심사가 끝나고 수화물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는 알래스카로 가는 알래스카 항공기로 환승하기 위해 그쪽으로 향하였다. 우리는 듣던 대로 수화물을 다시 개봉하여 검사할 줄 알았는데 그런 번거로운 일은 없었다. 단지 우리의 임형칠 대장님이 검색대 요원에게 불려 가시게 되었다. 대장님의 짐과 함께 말이다. 아직까지 무엇이 문제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우리의 짧은 추리로는 대장님이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계셨다는 점, 그리고 과거에도 많은 짐과 많은 현금 신고와 함께 입, 출국이 잦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불법 보따리상이나 마약 거래상으로 오해받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별 문제 없이 곧 검사를 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다시 수화물을 알래스카 항공편에 부쳐지고 나서 우리는 한 시간 정도 후에 환승 할 수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알래스카에 도착한다.
“하얀 나라”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그것도 아주 추운 1월 말이었다. 부모님은 엄청 추운 겨울에 산고의 고통을 참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참 겨울과 눈을 좋아한다. 스스로를 겨울아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내가 겨울의 나라 알래스카로 오게 된 것이다. 조금 후에 내 눈앞에 펼쳐질 하얀 나라를 상상하며 알래스카 공항으로 나섰다. 일단 주위는 고요 했다. 조용했다. 생각보다 작은 공항이었다.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우리와 비슷한 복장이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공항이니까 여행객이 많아서 그러겠지 하고 생각했다. 공항 로비로 나섰다. 현지에 계신 오갑복 선배님과 그의 아들 샘이 마중을 나와 주셨다. 천천히 살펴보았다. 똑같다. 다를 게 없다. 다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하얀색은 커녕 회색 역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현지 합류 대원인 재화형을 만나게 되었다. 하얀색 후드 티를 입고 있었다. 하얀색이었다. 새 하얀색.. 수화물을 모두 찾고 공항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은 짙은 먹구름과 조금씩 내리는 빗줄기였다. 내 상상속의 하얀 나라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곰들아, 미안해~”
오지탐사대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었지만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동물은 곰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이 들으면 서운해 할 이야기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우리말을 듣지 못한다. 항상 우리는 곰님들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관계 속에 하나가 곰 스프레이라는 물건이다. 알래스카에서 처음 보게 된 곰 스프레이는 한마디로 곰 퇴치용 무기이다. 그렇다고 곰을 죽이거나 제압할 수 있는 대단한 물건은 아니다. 원리는 간단했다. 온갖 맵고 짜고 최악의 냄새를 농축시켜 만든 스프레이이다. 그 냄새를 곰에게 뿌려서 도망가게 하거나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비단 이것은 곰 퇴치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코가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퇴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데날리 국립공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팀원 중 창섭이와 재훈이가 이 냄새에 퇴치 당할 뻔 했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좀 더 좋은 탐사 내용을 얻고자 그들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새로운 트레일(trail)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들을 얼게 만든 한 소리가 있었다. 그들은 그 비싼 곰 스프레이를 개봉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곰 스프레이를 사용할 기회는 오지 않았지만 그만큼 숨 가쁜 순간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곰 스프레이를 개봉 한 후 창섭이와 재훈이는 호기심에 못 이겨 전방 발사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냄새를 들이 마신 순간..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고 했다. 곰님들은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랭겔 세인트 국립공원에서는 우리가 원래 가기로 했던 캠프지가 며칠 전 곰의 습격을 받아 폐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곰들이 사람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눈앞에서 손짓하고 있는 도노호 봉우리 등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자리 잡은 베이스캠프에서 도노호 봉우리를 바라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았다. 여기서 바라보는 저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서 지금 이 곳을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을 탓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잘 살고 있었지만 우리가 그 선을 조금씩 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곰뿐만이 아닌 자연이라는 주인공의 위치를 우리가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탐사 내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빙하의 한기”
저 멀리 빙하가 보였다. 나는 그때까지 빙하의 정확한 구분을 모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기공룡 둘리가 타고 왔던 빙하를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곧 내가 생각하던 그것과는 다르단 것을 알 수 있었다. 랭겔 세인트 국립공원에서 캠프지를 정한 후 우리는 루트 빙하지대 트레킹을 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자일과 안전벨트, 카라비너, 아이젠에 슈패츠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캠프지를 나섰다. 눈앞에 루트 빙하가 펼쳐졌다. 빙하지대에 올라서서 모두 슈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하였다. 그리고는 아이젠을 이용한 도보법을 임형칠 대장님과 양유석 지도위원님에게 배웠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방향전환을 할 때나 넘어졌을 때, 그리고 발 전면으로 딛어야 하는 도보법은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소모하게 했다. 빙하 사이사이로 크레바스도 보였다. 하지만 눈이 오지 않았었기 때문에 모두 육안으로 식별 가능했다. 사이사이에 계곡 같은 것도 보이며 아래에는 빙하 물이 흐르고 있었다. 엄청 차가웠다. 빙하 겉면은 모래같은 것이 쌓여 지저분해 보였지만 안쪽은 정말 투명한 보석 같았다. 시간이 흐를 수록 우리에게는 추위가 느껴졌다. 아무리 우모복에 자켓까지 입고 있었다 해도 알래스카 빙하의 한기는 우리를 점점 얼게 만들었다. 날씨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저 높은 고산에서 외로이 추위와 함께 돌아가신 분들이 떠올랐다. 그 분들은 얼마나 더 외롭고 추웠을까? 지금 내가 춥다고 느끼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막영의 즐거움”
‘열하루 째 비만 주르륵, 텐트 안이 마를 날 없네~’
이러한 가사가 우리 팀가에 나온다. 이 가사는 절대 거짓말로 쓰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열 하루째에 이 노래가 최종 완성 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또 비가 내렸으니 열하루 째란 가사가 거짓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오갑복 선배님은 이 노래를 들으시고 날씨가 가사를 따라가는 것 같다고 가사를 바꿔보라고 하셨다. 이처럼 우리 팀의 보름간의 알래스카 오지탐사 중 열흘 이상은 비가 왔다. 따뜻한 알래스카의 햇살을 본 것도 두 세 번뿐이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항상 막영을 했다. 처음에는 정말 짜증나고 힘들었다. 물론 국내에서 오지탐사 훈련 할 때도 비가 오긴 했었지만 운행 중 올 때가 많았었다. 그리고 한 번 쏟아지면 다시 햇살이 비춰주곤 했었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날씨는 우리를 그렇게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텐트 치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비도 오고 땅도 질퍽하고 아직 손에 익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또 물길을 제대로 파지 못하거나 텐트 위치선정 실패로 텐트가 물바다가 될 때도 많았었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를 모르는 Allezka 팀이었다. 각 텐트마다 3명~4명 정도가 사용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텐트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물색하고 땅을 고르게 했다. 그리고는 텐트를 펴서 순식간에 쳤다. 마지막으로 돌과 장비들을 이용해서 물길을 파고는 앞에서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모든 게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이루어 졌다. 우리 텐트에서는 나와 시형이형, 재화형 그리고 철훈이가 사용하게 되었다. 탐사 초반에는 무리 없이 자리 배정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나와 시형이 형이 가운데를 쓰고 재화형과 철훈이가 양 쪽 끝을 사용했다. 하지만 텐트 막내 철훈이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점점 옆에서 부터 차오르는 물과 습기를 참기 힘들어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우리에게 제안을 했다. 공평하게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는 거였다. 그리고는 철훈이는 이겼다. 하지만 그날 밤 철훈이는 한 쪽 끝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약육강식의 세계는 냉정했다. 다음에 철훈이가 너무 아쉬운 듯 다시 의견을 제시했다. 가위 바위 보로 정말 공평하게 정하기로 했다. 나는 좀 더 재미를 위해 일등 한 사람이 자리를 배분해 주자고 제안했고 모두 수락했다.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일등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역시 철훈이는 한쪽 끝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총 다섯 동의 텐트에서는 새록새록 이러한 추억들이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오지탐사의 의미”
나에게 오지탐사란 무엇이었을까? 알래스카 탐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오지탐사란 목적에 맞는 것일까? 더 높은 봉우리를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좀 더 힘든 탐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팀원 각자 마다 자신의 생각하는 오지탐사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충돌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밤 이 모든 게 폭발하였다. 팀원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알래스카 오지탐사의 의미를 내비췄다. 의견은 크게 알래스카까지 와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 극기를 체험해봐야 한다는 측과 알래스카에서 하는 모든 경험 자체가 소중하다는 측으로 나뉘었다. 이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정답은 각자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답이 있을 것이다. 물론 오지탐사대 자체의 목적이 전자의 의견에 조금 더 가까울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모른 체 높은 산만 오르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지탐사를 다녀와서 친구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국토 대장정중 의미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고 있을 때 대장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고 한다. 일단 걸으라고, 일단 도전해보라고, 지금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그건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그때가 되면 찾지 않으려 해도 무엇인가 찾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 말의 의미를 미리 알았다면 나의, 우리의 오지탐사도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랑해.. Allezka~"
우리 팀의 이름은 ‘Allezka’ 이다. 축구나 등산에서 응원하는 의미의 불어인 ‘Allez’에 우리나라 여흥구인 ‘카~’를 붙여 맞는 단어이다. 또한 발음이 알래스카와 비슷하여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 이름을 짓는 데는 우리 팀의 보고서 팀장 혜정이의 힘이 컸다. 혜정이는 예술적 재능이 많아 우리 팀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최고의 요리사 류쉐프, 제 3의 눈을 가진 저스틴, 수송의 제왕 곰창섭, 기록의 달인 단비씨, 디자인팀장 혜자, 완벽장비 철훈, 회계여왕 은조, 학술과 개그 조화 막내 재훈, 어메리칸 개그의 진수 재화형, 뷰티 메딕 지욘지욘 그리고 독한양군 나까지 이렇게 11명의 대원과 양유석 지도위원님, 이상열 PD님, 이수인 부대장님, 임형칠 대장님, 이병완 대장님까지 총 16명이 대원이 모두 모여 Allezka를 이루고 있다. 모두들 각자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며 탐사를 계속 해나가고 있었다. 나의 담당은 행정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행정적인 부분은 다른 분야보다 탐사기간 내내 할 일이 적었다. 조금 무안했다. 그래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류쉐프를 도와 음식도 준비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대원들을 깨우기도 했다. 그래도 무엇인가 부족했다. 우리의 미션 중 팀가를 만드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나의 천명이라 생각했다. 이걸로 팀원들에게 나의 존재를 각인 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민에 고민을 계속 했다. 하지만 쉽게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단비가 나에게 비수 꽂는 한마디를 던졌다.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쓸모도 없다고.. 팀가 하나 못 만든다고 말이다. 나는 그날부터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자는 척 했지만 계속 해서 팀가만을 생각했다. 절대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다음 날.. 우주최강 알래스카 팀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단비에게 인정을 받았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saving the earth"
처음에는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활동을 원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하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의견을 모아가며 고민했다.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렇게 해서 시작된 우리의 조그마한 봉사활동.. 와실라 산장에서 캠프로 내려가는 낡은 계단 보수와 캠프에 위치한 천막 보수.. 마지막으로 눈부신 보석처럼 눈앞에 펼쳐진 와실라 호수 정화.. 각자 역할을 나누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무로 계단을 덧대고 넘어지지 않도록 땅을 다졌다. 나는 해군 병장 명예를 걸고 수경을 끼고 직접 호수 속으로 들어가 썩은 나무들과 쓰레기들을 건저 올렸다. 커다란 나무와 쓰레기가 물 위로 건져 올려질 때마다 우리의 입에서는 탄성이 새어 나왔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가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 작은 움직임이 모이고 모이면 언젠가 커다란 힘을 발휘 할 수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그렇게 지구를 지키고 있었다..
“free hug in Allezka"
우리 팀은 앵커리지 시내에서 각자 미션을 수행하기로 했다. 두 명의 대원이 팀을 짜서 각자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오는 것이다. 우리 팀은 나와 은조였다. 우리는 free hug 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앵커리지에 있는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팻말을 만들 궁리를 했다. 이리 저리 찾아다니다 어느 음반 가게에 있는 포스터를 슬쩍 가져왔다. 그리고 은조가 뒤에다가 크게 free hug 라고 쓰고 알래스카 주기와 태극기를 붙였다. 우리는 당당하게 출발했다. 한적한 공원에서 free hug 팻말을 높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한 여인이 갑자기 책을 덮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안겼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 여인의 눈은 따뜻함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처음으로 한 free hug 였다. 그 후로 여러 사람이 와서 따뜻하게 포옹을 해줬다. 따뜻한 격려의 한마디와 함께.. 사진을 찍어 주는 나에게도 따뜻한 눈길과 미소를 보내주었다. 우리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으로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바로 앵커리지 관광 안내소 앞이다. 먼저 그녀의 자리를 잡아주었다. 보도 한쪽에 서서 관광 안내소를 앞에 두고 조심스레 free hug 가 쓰인 종이를 들었다. 그리고는 나도 약간 떨어져 자리를 잡아 앉았다. 역시 처음 반응은 시큰둥했다.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그저 처다만 볼 뿐이었다. 그녀도 그러한 반응에 서운해 하는듯한 기색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free hug를 해달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다시 우리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나, 둘.. free hug 해주는 사람이 많아질 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밝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도 조금 더 밝아지기 시작했다. 내 얼굴도 밝아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조금씩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등인주의”
우리가 올랐던 점보 마인은 원래 계획에 있었던 도노호 봉우리의 차선책이었다. 곰 출현으로 인한 폐쇄로 입산 자체가 금지된 도노호 봉우리를 뒤로 한 채 우리는 옆에 있는 점보 마인을 오르게 되었다. 도노호 봉우리에게 마음을 뺏겨서 그런지 나의 마음속에는 계속 점보마인에 대한 실망만 쌓여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다를 것 없는 산길, 그다지 높지 않은 높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위로 갈수록 알래스카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풍경과 드높은 하늘, 그리고 만년설의 아름다움까지.. 우리는 구름 위를 거닐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아래에서 바라보았을 곳을 우리가 걷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하산하는 도중 조그마한 사고가 났다. 재화형이 넘어져서 돌에 무릎을 찍힌 것이었다. 하지만 재화형은 웃으면서 괜찮다고만 했다. 산을 내려와서 치료를 하고 며칠간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얼마 뒤 데날리 국립공원에서 마가렛 산을 오르게 되었다. 우리는 재화형에게 쉬라고 했지만 형은 쉬는 게 더 힘들다며 같이 오르자고 했다. 마가렛 산은 지금까지 우리가 오르던 산과는 조금 달랐다. 고산지대에서 나타나는 키가 작은 나무들과 풀들 그리고 툰드라 지형도 있었다. 올라가는 내내 야생동물과 야생풀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는 멋진 풍경도 펼쳐졌다. 하지만 계속 올라갈수록 날씨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재화형의 상태도 악화되어갔다. 마침내 마가렛 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그 순간 엄청난 바람이 불면서 약간의 진눈개비가 휘날렸다.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장님은 빠른 하산을 결정하셨다. 우리는 다시 채비를 단단히 하고 하산을 준비했다. 재화형이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재화형을 재훈이와 창섭이가 교대로 업으며 천천히 내려왔다. 아무도 불만을 토하지 않았다. 다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화형은 계속 팀원들에게 미안해했다. 하지만 우리가 재화형에게 더 미안해했다.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안전하게 산을 내려왔고 재화형의 상태도 호전되었다. 누군가 우리에게 산을 왜 오르냐고 하면 그 사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오른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을 보내며..”
어느 덧 알래스카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내일 새벽이면 우리는 이 아름다운 알래스카를 떠나야 한다. 알래스카의 밤은 아주 늦게 찾아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밤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백야현상.. 저녁 8시부터 해가 조금씩 지기 시작하여 12시까지는 우리나라 초저녁 같은 분위기를 낸다. 그리고 자정이 넘어서야 해가 완전히 저 우리가 말하는 밤이 되는 것이다. 그날 밤 분위기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다들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우리의 이 여행도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이다. 오갑복 선배님과 샘이 우리를 위해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알래스카 밤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불꽃들.. 그렇게 우리는 알래스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점점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아쉬워하며 짐을 챙겼다. 그리고 우리는 알래스카를 남겨두고 떠나게 되었다. 우리 생애 가장 추운 여름을 보낸 알래스카.. 그곳에 이미 빠져버린 후였다. 사랑해, Allez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