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예수 믿지 않으면?
한 기독교 신자가 “당신은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불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불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예수를 믿고, 착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아니, 무지의 편견에 사로잡혀 그릇된 복음(福音)?을 전달하는 그 분은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믿음을 갖고 있는지 자명해진다.
그는 나름대로 아프리카의 고아와 난민 그리고 세계의 각 전쟁 지역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봉사가 복음전파인지 순수한 봉사인지 모르지만, 전쟁이 발생하고 고아와 난민이 발생하는 근원적 이유를 깨닫지 못한 채, 무조건 봉사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히틀러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죽였을 때, 히틀러에 동조했던 독일 국민들 상당수가 자신들이 하는 것을 옳았고, 조국을 위한 봉사이고 애국심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이 믿고 확신하는 것에 대한 조금의 반성이나 회의도 없이, 무조건 상대를 비난하고 비방하여 죽음으로 몰아가도 그들은 전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처럼 자신이 사랑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매도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기독교, 아니, 개신교적 사랑의 실천 주장에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말문이 막히면 성경을 구절을 꺼낸다. 정말 가소로운 일이다. 어디 성경에만 아름다운 말씀이 있는가? 불경에도 아름다운 말씀은 얼마든지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을 많이 암기하고 있으면 무엇 하겠는가? 실천 없는 사랑의 신앙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일제가 한반도 침략을 미화하고 왜곡시키고 있는 것처럼, 자신들의 그릇된 신앙심을 전파하기 위해 종교전쟁을 일으킨 것은 깊숙이 은폐하고 왜곡된 신앙심만 양산하고 있는 한국의 개신교들의 목회자들의 개탄스러운 신앙심은 일제의 그릇된 식민지사관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아름다운 소년과 소녀들을 주말에 붙들어가서, 오직 성경만 보고, 기타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다고 가르치며 청맹과니(눈뜬 장님)로 만들어서, 영원한 신앙의 노예로 만들어, 자발적인 선(善)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악과 선을 구분 못해서, 무조건 명령에 복종하는 수동적 인간으로 개종하고 있느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도, 자신들은 하느님을 보았다고 자신하고 확신한다. 그것은 주변의 세뇌 작용에서 나타난 정신적 현상이라는 것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현상(하나님과 만나 대화했다.)는 것만 진리이고, 다른 것은 미신이라고 매도한다. 어찌 가소롭지 않겠는가?